춘추 열국지( 001∼100회) 100

제 70 화. 권위냐. 자존심이냐.

23. 주환왕과 정장공. 제 70 화. 권위냐. 자존심이냐. 한편, 괵(虢) 나라는 비록 작은 나라지만, 주무왕(周武王)이 상(商) 나라를 무너트릴 때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준 동생 괵숙(虢叔)에게 봉지를 주면서 공작(公爵)의 작위(爵位)까지 내린 나라다. 이에 괵(虢) 나라는 주(周) 나라의 왕실 가족이었으므로 왕실과 더욱 친하게 지내면서 오랫동안 깊은 인연을 맺어오고 있었다. 주평왕(周平王) 때에는 괵공(虢公) 기보(忌父)가 경사(卿士) 직을 맡아보며 왕을 보필하였고, 주환왕(周桓王) 때에는 괵공(虢公) 임보(林父)가 경사(卿士)가 되어 정장공(鄭莊公)을 견제하였다. 경사(卿士)는 자기 나라를 다스리면서 또한, 왕 명을 보좌하는 제일 높은 관원이면서 제후들의 일을 조정하기도 한다. 경사(卿士)께서는 소..

제 69 화. 남매의 사랑은 어찌 될까.

제 69 화. 남매의 사랑은 어찌 될까. 그렇게 어여쁘고 재원이라면 어떤 사연에 뒤엉킨 건 아니겠는가? 주공, 아니옵니다. 제희공(齊僖公)께서 정(鄭) 나라 세자 홀(忽)과 혼인을 맺으려 하였사옵니다. 세자 홀(忽)은 얼마 전에 혼인하지 않았는가? 주공, 그러하옵니다. 세자 홀(忽)은 큰 제(齊) 나라를 부담스러워했으며 이제는 제희공(齊僖公)도 연을 끊었다 하옵니다. 그게 사실이오? 주공, 사실이라면 신이 서둘러도 되겠는지요? 좋소, 태재(太宰)가 직접 나선다면 더욱 좋소! 공자 휘(翬)는 곧바로 구혼사절을 이끌고 제(齊) 나라를 찾아갔으며 제희공(齊僖公)에게 온 뜻을 밝히며 설명하였다. 공자 휘(翬)는 어서 오시 오! 노환공(魯桓公)은 과인도 알고 있잖소? 귀(貴) 나라 노환공은 나이가 많고 내 딸 문..

제 68 화. 비련의 사랑을 맺는가.

22. 남매의 사랑 제 68 화. 비련의 사랑을 맺는가. 제희공(齊僖公)은 정실의 아들로 세자 제아(諸兒)가 있으며, 정실 딸로는 위(衛)나라에 시집간 선강(宣姜)과 그 동생으로 시집을 가지 않은 문강(文姜)이 있었다. 문강(文姜)은 언니 선강(宣姜)만큼 빼어나게 예뻤으며, 총명하기도 하여 글도 잘 지어 문강(文姜)이란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문강(文姜)은 나이가 찰수록 더욱더 예뻐졌으며 그 아름다움에 요염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제희공은 문강(文姜)을 혼인을 시키려 하였으나 세자 홀(忽)이 진(陳)나라의 규씨(嬀氏)를 맞이함으로써, 그때부터 문강(文姜)의 사랑이 비련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문강(文姜)은 어릴 때부터 이복오빠인 제아(諸兒)와 서로 정답게 자라나면서 점점 서로에게 빠져들며, 결국에는 사..

제 67 화. 실리를 취하지 못하는가.

제 67 화. 실리를 취하지 못하는가. 고거미(高渠彌) 장수는 세자를 수행했거늘, 어찌하여 성사되도록 적극적으로 간하지 않았소? 허 어, 내가 적극적으로 권하여 보았소이다! 고거미(高渠彌) 장수는 세자와 그리 가까이 지내면서도 설득을 못 시켰다니 정말 알 수가 없구려? 허 어, 내 참, 내가 여러 번 말씀을 올렸지만 들어주지 않으니 어쩌란 말이오? 제족(祭足)은 나에게 더는 말하지 마시오! 만약, 제(齊) 라는 동맹을 잃게 되면, 우리의 앞날에 큰 어지러움이 따를 수도 있소! 제족(祭足)은 고거미(高渠彌)를 불러, 세자 홀(忽)이 제희공의 청혼을 거절하게 된 내용을 다 듣고서는 길게 탄식하였다. 그리고 제족(祭足)은 고거미(高渠彌)가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자, 자기가 너무 심한 말을 하지 않았나 걱정하면서..

제 66 화. 선연과 악연은 따로 있는가.

제 66 화. 선연과 악연은 따로 있는가. 제후(齊侯)님, 정(鄭) 나라 세자 홀(忽) 이옵니다. 대량(大良)과 소량(小良)의 수급과 생포한 포로와 전리품을 모두 받으시옵소서! 정(鄭) 나라 세자 홀(忽)은 과연 영웅이오! 우리 제(齊) 나라를 안정시키는데 그대, 홀(忽) 세자의 공(功)이 너무나 컸도다! 세자가 아니었다면 저 많은 북융(北戎)을 어찌 이리 쉽게 물리칠 수 있었겠소? 작은 공(功)을 세웠을 뿐이 온대 제후(齊侯)께서는 너무 과찬의 말씀을 하시나이다. 사로잡은 북융(北戎)의 갑병(甲兵)은 삼백 명에 불과했으나, 싸움 중에 죽인 북융(北戎)의 융사(勇士)의 숫자는 셀 수가 없었다. 제희공(齊僖公)은 승전의 연회를 성대하게 베풀게 되면서, 정(鄭) 나라의 세자 홀(忽)과 고거미(高渠彌) 장수와..

제 65 화. 서로 돕는 게 동맹인가.

21. 선연과 악연 제 65 화. 서로 돕는 게 동맹인가. 오, 세자 홀(忽)의 지혜와 용기가 대단하오! 그 방 안대로 작전을 짜리다. 공손 대중(載仲)은 한 무리 군사를 이끌고 융족(戎族)과 싸우다가 패한척하며 조심스레 후퇴하라. 공자 원(元)은 동문 앞의 갈대숲에 매복하여 있다가 추격해오는 북융(北戎)을 기습하라. 세자 홀(忽)은 말한 바와 같이 정군(鄭軍)과 함께 북쪽으로 나아가 매복하고 있다가 달아나는 북융(北戎)을 전부 섬멸시키시오. 제군(齊軍)이 뒤쫓아가며 합세하여줄 것이오. 제희공(齊喜公)은 공손 대중(載仲)이 북융(北戎)과 열심히 싸우다가 제군(齊軍)의 매복군에게 유인하게 하면, 북융(北戎)의 머리와 꼬리와 옆구리를 동시에 공격할 수 있어, 틀림없이 대승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으므로 자신감을..

제 64 화. 백성의 마음을 훔쳐라.

제 64 화. 백성의 마음을 훔쳐라. 투실(鬪實) 장수, 내 말을 잘 들으시오! 정(鄭) 나라는 제(齊), 노(魯)와 연합하고 있소! 연합군이 또다시 쳐들어온다면 나라가 망할 것이며 송군(宋軍)은 전멸당할 수도 있소이다! 이제는 서로 화해를 해야 살아날 수 있소! 이제 공보가(孔父嘉)가 죽었으니 앞으로는 투실(鬪實) 장수가 군부를 다 맡아야 할 것 같소? 주공께서 내일 애도하러 공보가의 집을 찾을 것이오. 투실(鬪實) 장수! 나라의 앞날을 걱정해주시오! 태재(太宰) 임, 알겠습니다. 태재 님이 하시는 말씀은 군사들의 마음과 같습니다! 송상공이 투실(鬪實) 장수의 정중한 호위를 받으며, 사마 공보가의 집에 도착하여 살피고 있을 때, 투실(鬪實) 장수가 손을 흔들자, 군사들이 다 같이 달려들어 송상공(宋殤公..

제 63 화. 정확하게 때를 읽는다.

제 63 화. 정확하게 때를 읽는다. 태재 화독(華督)은 백성들의 움직임에 몹시 신경을 쓰면서, 어느 봄날 우연히 지나치다 언뜻 보았던 사마 공보가(孔父嘉)의 너무나 어여쁜 위씨(寪氏)를 떠올리며, 엉뚱한 욕심을 내게 되었다. 내가 어쩌다 밤낮없이 위씨(寪氏) 만을 생각하며,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지게 되었는가? 그렇다. 이번 일만 성공하여라! 내 반드시 공보가(孔父嘉)를 죽이고 저, 어여쁜 위씨(寪氏)를 차지하고 말리라! 그때 사마 공보가(孔父嘉)는 정군(鄭軍)에게 패한 울분과 죽어간 군사들에 대한 죄송한 마음이 가득 차 있었으므로, 오직 나라를 지켜 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군사를 모집하여 조련시키면서 오직 제(齊), 정(鄭), 노(魯), 연합군의 침공에만 대비하고 있었다. 사마 공보가는 평소 강직..

제 62 화. 모사는 이렇게 꾸미는가.

제 62 화. 모사는 이렇게 꾸미는가. 죽은 노은공(魯隱公)은 공자 휘(翬)가 반역할 기미를 이미 눈치챌 수가 있었다. 더욱이 공자 휘(翬)가 공자 궤(軌)를 죽이자고 청했을 때 그냥 화만내고 넘겨버림으로써 반역을 저지르게 내버려 둔 거와 같다고 하겠다. 만약에 공자 휘(翬)의 죄를 밝혀 조정(朝廷)의 신료들과 백성에게 알렸더라면, 공자 궤(軌)는 진실한 마음으로 감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노은공(魯隱公)은 양위(讓位)하겠다는 말만 하다가, 시역(弑逆)의 악행을 불러들였으니 이는 우유부단(優柔不斷) 했던 탓으로 보이며 스스로 화를 불러들여 몸을 망친 것이라 하겠다. 이제 계획대로 공자 궤(軌)가 보위에 올라 노환공(魯桓公)이 되었고, 공자 휘(翬)는 원하는 대로 제일 높은 태재(太宰) 벼슬이 되었다. 시..

제 61 화. 살기 위해 형을 죽인다.

18. 군주 시해 사건. 제 61 화. 살기 위해 형을 죽인다. 노혜공(魯惠公)은 원비(元妃)에게 자식이 없었으므로, 착한 궁녀 성자(聲子)에게서 단(團)을 낳고, 다른 궁녀에게 휘(翬)를 두었다. 단(團)이 휘(翬) 보다 두 살 위였으나, 둘은 허물없이 잘 자라났으며, 동생인 휘(翬)는 힘도 세고 바른말도 잘하며 성격이 아주 시원시원한 편이어서, 두 형제는 우애가 아주 좋았었다. 노혜공(魯惠公)은 원비(元妃)가 죽자, 송무공(宋武公)의 둘째 딸인 중자(仲子)를 맞아들여, 공실의 계비(繼妃)가 되면서, 낳은 아들이 궤(軌) 이다. 노혜공(魯惠公)은 적자(嫡子)인 궤(軌)에게 대를 잇게 하리라고 마음먹고 있었다. 노혜공(魯惠公)이 죽자, 관례대로 라면 공실의 적자인 궤(軌)를 보위에 올려야 하나 그때는 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