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열국지( 001∼100회) 100

제 80 화. 군주가 편협하면 쫓겨난다.

제 80 화. 군주가 편협하면 쫓겨난다. 신. 정(鄭) 나라 상경 제족(祭足)이옵니다. 송후(宋侯)께 안부 인사를 올리나이다. 약소(略少) 하오나 예물을 받으시옵소서. 정소공(鄭昭公)의 즉위를 축하하오! 먼 길을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소! 내일 이야기하기로 하고 공관에서 좀 편하게 쉬도록 하시오! 제족(祭足)이 공관에서 옷을 갈아입고 잠시 쉬려던 때였다. 그때 난데없이 군사들이 몰려들어와 이유를 조금도 말하지 않고 갑자기 꽁꽁 묶어버리고는 끌고 가더니 옥에 처넣는 것이다. 당신 들은 누구요? 송(宋) 나라 장수 남궁장만(南宮長萬)입니다! 사신으로 온 나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이거 무슨 짓을 하는가? 어서 말해보라! 저희는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제족(祭足)은 난데없이 옥에 갇히게 되자 크게 당황하게 되었..

제 79 화. 분열하면 나라가 망한다.

24. 형제들의 싸움. 제 79 화. 분열하면 나라가 망한다. 정장공(鄭莊公)은 수갈(繻葛) 전투에서 주환왕(周桓王)의 왕사군을 물리치고 돌아오자, 곧바로 논공행상에 들어갔다. 수갈(繻葛) 전투의 일등공신은 공자 원(元)이로다. 그대에게 역읍(櫟邑)을 주면서 부용(附庸)으로 삼노라! 부용(附庸) 이란, 속국(屬國)이란 뜻으로, 기존의 읍(邑)과는 개념이 다르면서 엄연히 하나의 나라를 말한다. 다만 외교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독립하지 못했을 뿐으로 일종의 식민지라 할 수 있다. 당시 이웃한 소국을 병탄하여 부용(附庸)으로 삼는 경우는 많았으나, 나라 안의 읍(邑)을 부용(附庸)으로 승격시키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따라서 어찌 보면 공자 려(呂)와 공자 원(元)을 배려한 일종의 파격적인 특혜라 할 수 있..

제 78 화. 초나라, 왕호를 참칭 하는가.

제 78 화. 초나라, 왕호를 참칭 하는가. 계량(季梁)은 수(隨) 나라로 돌아오자마자, 웅통(熊通)이 바라는 바를 수후(隨侯)에게 자세히 이야기해주었다. 이거 큰일 났구먼! 왕호를 참칭 하려 하다니 이거 큰일 났구나! 주환왕(周桓王)이 허락할 리 없을 것이며 안되는 게 뻔한 일이 아닌가? 잘못하다간 내 목이 달아날 수도 있겠구나! 반역으로 몰릴 수도 있어 나라가 망하겠도다! 그렇다고. 웅통(熊通)이 바라는 반역의 말을 안 할 수도 없고 또 안 갈 수도 없잖은가? 허허 큰일 났구나! 어휴. 어허 휴! 어휴.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주환왕(周桓王)이 정(鄭) 나라 정벌에 실패하고 돌아와, 정(鄭)의 축담(祝聃)에게 얻어맞은 왼쪽 어깨의 화살 상처를 한동안 치료를 받으며 겨우 마무리하고, 오랫만에 정무(政務..

제 77 화. 초나라, 날개를 펴는가.

제 77 화. 초나라, 날개를 펴는가. 주공, 계량(季梁)처럼 겁을 내지 마소서! 초(楚)가 우리에게 온 것은 죽으러 온 것이오! 우리가 싸우려 들면 지난번처럼 도망갈 것이오! 빨리 공격하지 않으면 지난번처럼 또, 도망가 버리면 기회를 놓치게 되옵니다. 초(楚) 나라와 꼭 싸워야 하겠는가? 소사(少師)는 어서 말해보라! 저들은 우리를 두려워하는바 맹약을 맺자마자 허둥지둥 철군하는 허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신이 먼저 나가 싸운다면 초군(楚軍)의 절반을 포로로 잡아 올 수 있사옵니다! 이 기회에 다시는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초(楚) 나라를 섬멸시켜야 하옵니다. 주공. 이 소사(少師)를 믿으시옵소서! 주공! 저들을 쉽게 무찌를 수 있사옵니다! 수후(隨侯)는 소사(少師)의 말을 굳게 믿으면서, 그를 오른쪽에서 ..

제 76 화. 약한 모습으로 속인다.

제 76 화. 약한 모습으로 속인다. 초(楚) 나라 군영에서는 수(隨) 나라 사신으로 소사(少師)가 온다고. 하자, 웅통(熊通)은 대책을 세우기 위해 회의를 열었다. 신 영윤(令尹) 투백비(鬪伯比) 이옵니다. 소사(少師)는 천박한 간신(奸臣)으로 아첨을 잘하여 수후(隨侯)의 총애를 받고 있다고 하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소사(少師)는 우리를 염탐하러 오는 것이옵니다. 어떻게 대비하면 좋은지 말해보시오? 우리의 허약한 모습을 만들어 보이셔야 합니다. 우리의 군사들이 늙고 허약하게 보이 오면 저자 소사(少師)는 오만해질 것이며 그리되면 수(隨) 나라를 나태해지게 만듭니다. 저들에게 그렇게 보아야만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부릴 수가 있사옵니다! 신 대부(大夫) 웅솔(熊率) 이옵니다. 저들에겐 ..

제 75 화. 초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25. 초나라의 등장 제 75 화. 초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초(楚) 나라는 오제(五帝)의 전욱(顓頊)에서 시작된다고 하며, 전욱(顓頊)은 황제(黃帝)의 손자이자 창의(昌意)의 아들이다. 전욱(顓頊)은 칭(稱)을 낳고 칭(稱)은 권장(卷章)을 낳으며 권장(卷章)은 중려(重黎)를 낳았다. 중려(重黎)의 아들은 곤(鯀) 이며 곤(鯀)의 손자는 우왕(禹王) 이다. 중려(重黎)는 오제(五帝)인 제곡(帝嚳) 밑에서 불을 다스리는 화정(火正)의 벼슬을 맡아, 어두운 세상을 밝게 하였다고 칭찬받으면서 신화 속의 불의 신인 축융(祝融) 이라 불렀다. 나쁜 놈! 공공씨(共工氏)가 난을 일으켰구나! 중려(重黎)는 빨리 쫓아가 토벌하고 오라! 그놈들을 원만하게 수습하지 못했단 말인가? 중려(重黎)를 죽이고 그의 동생인 오회..

제 74 화. 맺힌 한은 풀어줘라.

22. 진나라의 평정 제 74 화. 맺힌 한은 풀어줘라. 진(陳) 나라 백원제(伯爰諸) 장수! 나 채(蔡) 나라 채계(蔡季) 장수 이외다. 백원제(伯爰諸) 장수! 이제 정(鄭) 나라와의 전쟁도 끝났으니 다시 만나길 바라오! 고맙소이다!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소! 채계(蔡季) 장수도 안녕히 가시오! 왕실군과 진(陳). 채(蔡), 위(衛)의 왕사군이 정(鄭) 나라에 패하여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채(蔡) 나라의 채계(蔡季) 장수는 귀국하자마자, 형이며 군주인 채장공(蔡莊公)에게 진(陳) 나라 사정을 이야기하여 준다. 주공, 진(陳) 나라 진환공(陳桓公)이 죽자, 공자 타(佗)는 조카인 세자 면(免)을 죽이고 스스로 보위에 올랐다고 하옵니다. 공자 타(佗)는 진환공(陳桓公)의 친동생이 아닌가? 어떻게 형..

제 73 화. 병 주면 약도 줘라.

제 73 화. 병 주면 약도 줘라.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주환왕(周桓王)은 30리 밖으로 물러나게 되며, 겨우 어가(御駕)를 세우고는, 다시 진채(陣寨)를 세우게 하면서 치중(置重)과 병거(兵車)를 모두 점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주상, 진(陳) 나라 군사들이 흩어지는 바람에 패배(敗北) 하게 되었사옵니다. 인제 와서 진군(陳軍)을 탓해 무얼 하겠소? 모두 짐(朕)의 용병술(用兵術) 책임이오. 각 군을 잘 운용하지 못한 짐(朕)의 잘못이오. 다시 각 군을 정비하여 싸울 준비를 시키시오! 이제 마지막까지라도 정군(鄭軍)을 혼내줘야 하오! 정군(鄭軍)의 장수들이 후퇴의 징을 울린 것에, 다 같이 아쉬움과 불평을 쏟아내자, 정장공이 손사래를 치며 분위기를 가라앉힌다. 주공, 우리 정군(鄭軍)은 맹렬히 공격하였습..

제 72 화. 패하지도 이기지도 않는다.

제 72 화. 패하지도 이기지도 않는다. 우리도 수갈(繻葛) 땅에 나아가 방어선을 치리라. 자, 우리 정군(鄭軍)도 수갈(繻葛)로 나아가라. 정군(鄭軍)이 왕사군이 있는 수갈(繻葛) 땅 가까이에 진군하여, 공자 원(元)의 계책대로, 세 곳으로 나누어 진채(陣寨)를 세운다. 정군(鄭軍)이 맞서겠다며 수갈(繻葛) 땅에 진채를 세우자, 이를 지켜보던 주환왕(周桓王)은 크게 분노하며 큰 소리로 말하였다. 정장공(鄭莊公)이 사자를 보내어 용서를 빌기는커녕, 한판 붙자는 것이 아닌가? 사죄해도 분이 풀리지 않는데 대항하려 든단 말인가? 왕사군은 쫓아가 정장공(鄭莊公)을 잡아 오도록 하라! 주상, 아니 되옵니다! 주상. 괵공(虢公) 임보(林父)의 말을 들어보시옵소서 정장공이 용서를 빌러 올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급하게..

제 71 화. 슬기롭게 대항할 것이냐.

제 71 화. 슬기롭게 대항할 것이냐. 주공, 신 제족(祭足)이 한 말씀을 더 올리겠나이다. 주공, 이번에 만약 왕과 싸움을 벌인다면 이겨서도 아니 돼 오며. 그렇다고 져서도 안 되는 어려운 싸움이 되고 맙니다. 주공, 용서를 빌면 왕사군이 돌아갈 것이오니 너무 무리한 일을 벌이지 마시옵소서! 주(周) 나라가 동쪽의 낙양(洛陽)으로 천도(遷都)한 후에, 아무리 왕실의 권위(權威)가 땅에 떨어졌다 하더라도, 주환왕(周桓王) 때까지만 해도, 명색이 왕이 이끄는 왕사군이었기에, 함부로 무력으로 맞서 싸운다면, 천하 제후의 공적(公敵)이 될 수도 있었으므로, 여간 부담이 큰 것이 아니었다. 이때가 주환왕(周桓王) 13년이며, 정장공(鄭莊公) 37년의 일로써, 기원전 707년에 해당하던 해였다. 주환왕(周桓王)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