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열국지( 401∼500회) 13

제 413 화. ​​노와 제, 서로 돈독해지는가.

제 413 화. ​​노와 제, 서로 돈독해지는가. 새해가 되자, 노(魯)의 군신들이 조당에 모여 노선공(魯宣公)에게 하례를 올리었다. 하례가 끝나자 중수(仲遂)는 노선공에게 다가갔다. 주공, 안주인 자리가 아직 비어 있나이다. 지난번 제혜공(齊惠公)과 혼인을 약속하였나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으나 더는 늦출 수가 없나이다. 좋소! 누가 제(齊)나라에 가서 혼사를 주선하겠소? 신이 혼사의 일을 청하였던 바이오니 신이 빨리 다녀오도록 하겠나이다. 이에 노선공(魯宣公)이 망설이지 않고 받아들이자, 중수(仲遂)는 그날 밤 독대를 청하여 노선공과 마주하게 되었다. 주공, 제혜공(齊惠公)과 장인과 사위 사이가 된다고 하더라도, 두 나라의 우호 관계가 오래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주공께서 군위를 얻으신 방..

제 412 화. ​​사람은 ​​왜 권력에 목을 메는가.

제 412 화. 사람은 ​​왜 권력에 목을 메는가. 제혜공(齊惠公)이 후원을 약속하자, 자신감을 가진 중수(仲遂)와 득신(得臣)과 경영(敬嬴)은 비밀리에 계책을 세워나갔다. 망아지가 태어났다고 했느냐? 마구간에 날쌘 자객들을 매복 시켜라. 됐다! 어서 세자 오(惡)에게 고하도록 하라! 경영(敬嬴)은 미리미리 비밀리에 계획을 짜고 시종을 시켜 알리자, 세자 오(惡)는 동생 공자 시(視)와 함께 망아지를 구경하러 왔다. 주공, 종자 좋은 말이 망아지를 낳았나이다. 주공, 어서 나와 보시옵소서! 이윽고 두 사람이 마구간 앞에 나타나자, 매복해 있던 자객이 갑자기 일어나 두 사람에게 달려들어 몽둥이로 때려죽였다. 두 사람이 죽은 걸 확인한 중수(仲遂)는 재빨리 머리를 굴려 반대할 세력의 우두머리부터 제거하기로 ..

제 411 화. ​​반역의 조짐은 어떻게 생기는가.

제 411 화. ​​반역의 조짐은 어떻게 생기는가. 계손행보(季孫行父)는 중수(仲遂), 팽생(彭生). 득신(得臣)이 모두 자기에게는 숙부의 항렬(行列)이 되었기에 감히 나서지 못하고 조정의 권한을 세 사람에게 양보했다. ​ 세 사람 중 숙중팽생(叔仲彭生)은 사람됨이 가장 후덕하였으며 또한, 세자의 태부(太傅) 직까지 맡고 있었기에 노(魯)나라 정사는 중수(仲遂)와 득신(得臣)에게 맡기면서 깊이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형제간이라 하지만 팽생(彭生)의 친동생인 득신(得臣)은 형과 상반되는 성격이었다. 득신(得臣)은 어떤 권한을 손에 쥘 때마다 여러번 멋대로 하면서, 비난을 사기도 했다. 한편 진(秦)에서 시집온 경영(敬嬴)은 노문공(魯文公)의 총애를 많이 받고 있음에도, 그녀의 소생인 공자 왜(倭)가..

제 410 화.​​ 바람기를 누가 잡을 수 있는가.

제 410 화.​​ 바람기를 누가 잡을 수 있는가. ​노(魯) 나라의 노문공(魯文公)이 군위에 오른 것은 주양왕(周襄王) 26년이며 기원전 626년의 일이었다. 노문공(魯文公)은 제소공(齊昭公)의 딸 성강(聲姜)과 혼인하여, 오(惡)와 시(視) 라는 두 아들을 두었다. 또한 진(秦) 나라의 여인 경영(敬嬴)을 사랑하여 왜(倭)와 숙힐(叔肹) 이라는 두 아들을 두었다. 네 아들 중 공자 왜(倭)가 가장 나이가 많았으나 공자 오(惡)가 성강(聲姜)의 소생이며 적자였으므로 세자로 세우며 숙중팽손(叔仲彭生)을 태부로 삼았다. ​ 당시 노(魯) 나라는 노문공(魯文公)에게 증조부(曾祖父)가 되는 노환공(魯桓公)의 세 아들을 삼환씨(三桓氏) 라 불렀으며, 그들은 맹손씨(孟孫氏), 숙손씨(叔孫氏), 계손씨(季孫氏)였다..

제 409 화. 무능한 군주는 어떻게 죽는가.

제 409 화. 무능한 군주는 어떻게 죽는가. 주공, 성안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허허, 기어이 반란이 일어났단 말인가? 송소공(宋昭公)은 맹제(孟諸) 땅의 사냥터를 향해, 중간쯤 가고 있을 때, 상구성(商丘城)에서 변란이 일어난 걸 알게 되었다. 주공, 사성(司城) 탕의제(蕩意諸) 이옵니다. 사마(司馬) 화우(華耦)가 송군(宋軍)을 이끌고 오고 있사오니, 이웃 나라로 피하시옵소서? ​ 아니다! 위로는 할머니가 공자 포(鮑)를 밀어주고, 백성들 모두가 과인을 원수로 대하고 있는데, 타국으로 떠난들 어느 제후가 나를 반기겠는가? 방황하다 죽기보다는 차라리 고향에서 죽겠노라! 사성 탕의제(蕩意諸)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게 하라! 우리 다 함께 어울려 맛있게 먹어보자! 송소공(宋昭公)은 수레를 세우게 하고, ..

제 408 화. 자질이 안 되면 바꿔야 하는가.

제 408 화. 자질이 안 되면 바꿔야 하는가. 제(齊)의 상인(商人)이 제의공(齊懿公)이 되었을 때, 송(宋) 나라 군주는 송소공(宋昭公) 이었다. 송소공(宋昭公)은 송양지인(宋襄之仁)으로 유명한 송양공(宋襄公)의 손자이며, 송성공(宋成公)의 아들이다. 송소공(宋昭公)은 초목왕(楚穆王)이 진(陳), 정(鄭), 채(蔡) 나라를 굴복시키자, 겁이나 스스로 찾아가 항복해 버리고 말았었다. 또한 초목왕(楚穆王)에게 잘 보이려 초(楚), 진(陳), 정(鄭), 채(蔡)의 제후들을 맹제(孟諸) 땅의 소택지(沼澤地)로 사냥을 초대하였다가, 부싯돌을 준비하지 않았다 하여 초목왕(楚穆王)에게 참담한 수모를 당하면서도 한마디 말도 하지 못 한 아주 유약한 군주였다. 송양공(宋襄公)의 부인 왕희(王姬)는 주양왕(周襄王)의 ..

제 407 화. 악의 끝에는 죽음이 따르는가.

제 407 화. 악의 끝에는 죽음이 따르는가. 주공이 술에 취해 곯아 떨어졌소! 염직(閻職)! 신지(申池)의 물이 맑기도 하오! 우리도 오랜만에 멱이나 감읍시다. 좋지요! 이곳 자갈밭이 좋겠소이다! ​ 아니! 병촉(邴歜)은 왜 갑자기 때리시오? 우리 사이에 왜 이리 심하게 때린단 말이오? 염직(閻職)은 마누라를 빼앗길 때도 화를 내지 않더니, 대나무에 맞아 상처도 나지 않았는데 그것도 못 참고 화를 내는가? ​ 마누라를 빼앗긴 일은 비록 나의 치욕이지만 그것은 나 한 사람만의 일이었소! 그러나, 병촉(邴歜)은 들어보시오? 아비의 시신에서 다리가 잘려나가는 것을 쳐다보고만 있던 치욕은, 네 집안이 입은 치욕인데, 내가 입은 치욕이 더 크겠는가? 그대는 아비가 입은 치욕을 참고 있으면서 나보고 처자를 빼앗긴..

제 406 화. 큰 복수는 말로 하지 않는가.

제 406 화. 큰 복수는 말로 하지 않는가. 노문공(魯文公)은 왕실에서도 제의공(齊懿公)을 제압하지 못하자, 대부 계손행보(季孫行父)를 진(晉) 나라의 조돈(趙盾)에게 보내, 제(齊) 나라의 시역(弑逆) 사건을 일으킨 내용과 제의공(齊懿公)이 선백(單伯)과 소희(昭姬)를 감금시켜버린 사실을 고했다. 노문공(魯文公)이 나를 왕실에 고발했구나! 내 어찌 노문공(魯文公)을 용서하겠는가? 우리 제군(秦軍)은 노(魯) 나라를 향해 쳐들어가리라! 조돈(趙盾)은 노(魯) 나라로부터 긴급한 구원 요청을 받자, 송(宋), 위(衛), 채(蔡), 진(陳), 정(鄭), 조(曺), 허(許), 등의 제후들을 옹(雍) 땅에 모이게 하여, 진영공(晉靈公)을 모시고 토벌계획을 세웠다. 노문공(魯文公)이 나를 왕실에 고발했구나! 내 ..

제 405 화. 인자한 얼굴에 비수가 있는가.

제 405 화. 인자한 얼굴에 비수가 있는가. 그때 제(齊) 나라의 제소공(齊昭公) 반(潘)은 마침 병이 들었기에, 마음과 달리 진(晉) 나라가 통보한 신성(新城) 땅의 맹회에 참석하지 못하였으며, 얼마 후 병세가 악화하여 죽게 되었다. 그의 아들 세자 사(舍)가 제후(齊侯)에 올랐다. 세자 사(舍)의 어머니는 노(魯) 나라 공녀 출신인 숙희(叔姬)였으며, 사람들은 소희(昭姬)라고 불렀다. 소희(昭姬)는 비록 제소공(齊昭公)의 부인이었지만 제소공(齊昭公)이 살아 있을 때 총애를 받지 못했고 또한, 세자 사(舍) 역시 재주가 부족하였으므로 제(齊)의 사대부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했다. 제환공(齊桓公)의 아들들은 유별났다. 정실부인(正室夫人)에서 태어난 아들은 하나도 없었으며, 첩에게서 여섯 아들을 두었는데..

제 404 화. 사회, 손수 육탄으로 사죄하는가.

제 404 화. 사회, 손수 육탄으로 사죄하는가. 사회(士會)와 위수여(魏壽餘)는 하수(河水)를 건너오게 되었으며, 하동(河東)이 있는 동쪽을 향해 바삐 가고 있는데, 미처 얼마 가기도 전에 한 떼의 군마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왔다. 수계(隨季) 임께서는 무량(無量) 하시옵니까? 그대 소년 장군은 누구 이기에 나를 부르는가? 저를 모르시옵니까? 바로 조삭(趙朔) 이라 합니다! 사회(士會)는 선조께서 수(隨) 땅을 식읍(食邑)으로 받았기에 부르는 자를 수계(隨季)라 했다. 사회(士會)가 가까이 다가오는 소년 장군을 보니 바로 조삭(趙朔)으로 중군 원수 조돈(趙盾)의 아들이었다. 조삭(趙朔)은 어쩐 일로 마중을 나왔는가? 부친의 명을 받들어, 다시 진(晉) 나라로 돌아오시는 두 분을 기다렸다가 영접하라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