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열국지( 001∼100회)

제 62 화. 모사는 이렇게 꾸미는가.

서 휴 2023. 5. 2. 12:51

 62 모사는 이렇게 꾸미는가.

 

       죽은 노은공(魯隱公)은 공자 휘()가 반역할

       기미를 이미 눈치챌 수가 있었다.

 

       더욱이 공자 휘()가 공자 궤()를 죽이자고

       청했을 때 그냥 화만내고 넘겨버림으로써

       반역을 저지르게 내버려 둔 거와 같다고 하겠다.

 

만약에 공자 휘()의 죄를 밝혀 조정(朝廷)의 신료들과 백성에게

알렸더라면, 공자 궤()는 진실한 마음으로 감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노은공(魯隱公)은 양위(讓位)하겠다는

      말만 하다가시역(弑逆)의 악행을 불러들였으니

      이는 우유부단(優柔不斷했던 탓으로 보이며

      스스로 화를 불러들여 몸을 망친 것이라 하겠다.

 

이제 계획대로 공자 궤()가 보위에 올라 노환공(魯桓公)이 되었고,

공자 ()는 원하는 대로 제일 높은 태재(太宰벼슬이 되었다.

 

       시해 사건은 중신도 백성도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공자 휘()가 무서워 아무도 입을 떼지 못했다.

 

정장공은 노(나라에 갔던 사신으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듣게

되자공자 휘()가 자기의 군주이며 형인 노은공(魯隱公)

시해하였다는 사실에 크게 분개하여 큰 소리로 말하였다.

 

      공자 휘()가 어떻게 형인 노은공(魯隱公)

      시해할 수 있더란 말이냐?

 

      왕명을 받들어 저 욕심이 많은 공자 휘()

      (나라를 어떻게 토벌하면 좋겠는가?

 

      중신들은 어찌 생각하는 것이오?

      주공이시여잠시 고정하시옵소서

 

      주공, ()와는 우호 관계를 잘 유지해왔사옵니다.

      조만간(早晩間)에 노(나라 사신이 오리라 봅니다.

 

      사신의 말에 따라 친선을 도모하거나

      토벌할 것을 결정하시어도 늦지 안 사 옵니다.

 

조회가 끝나려는 무렵에 노(나라 사신이 역관(驛館)에 왔다는

보고가 올라오자정장공(鄭莊公)은 곧바로 불러오게 하였다.

 

      귀국은 왜 노은공(魯隱公)을 시해하였는가?

      노은공(魯隱公)과 아주 막역한 친구인

      위(대부가 잠든 사이에 살해한 것입니다.

 

      (대부와 막역한 사이라면 어찌 시해하겠는가?

      둘 사이에는 골 깊은 원한이 서려 있었습니다.

 

      공자 휘()가 시해한 건 아닌가?

      결코절대로 그렇지 안 사 옵니다

 

      우리 노(나라는 이제 새로운 군주가 옹립되어

      새 군주께옵서는 선군 때의 우호 관계를 이어가고자

      신을 사신으로 보냈으며맹약을 원하옵나이다.

 

정장공(鄭莊公)은 사신의 말을 듣고 보니공자 휘()를 더는 탓할

수가 없었고또한 전쟁 때마다 용감히 싸워준 공자 휘()가 밉지

않았으므로(나라와 화평을 유지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판단

하게 되었으므로사신에게 후한 예물(禮物)을 주어 돌려보냈다.

 

       주환왕(周桓王) 9, 기원전 710년의 4월이 되자

       정장공(鄭莊公)은 월(땅에서 새로 옹립된

       노환공(魯桓公)과 삽혈(歃血행사를 치르며

       승계를 인정하여주고곧바로 귀국하였다

 

한편 송목공(宋穆公)의 아들인 공자 풍()은 주평왕(周平王) 말년인

기원전 719년에 정() 나라에 왔으며, 기원전 710년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10년 동안 망명 생활을 하고 있었다.

 

같은 해인 기원전 710년 가을이었다. 이때 송(宋)나라 사신이

국서를 전하기 위해 정(鄭)나라의 신정(新鄭) 성에 당도하였다.

 

      공자 풍()은 지금 무얼 하느냐?

      장갈(長葛)에서 도망쳐와 지금도 관사에 있사옵니다.

 

      ()을 어서 들라 하라

      정후(鄭侯) 님, 부르셨나이까? (이옵니다

 

      (나라 사신이 풍(공자를 모시고 돌아가,

      새 군주로 세우려 한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데리고 가서 죽이려 하는 것은 아닌지요?

      그게 염려스러워 살펴보았소.

      국서가 있고사신의 말이 틀림없는 것 같소

 

      하루속히 돌아가 송(나라의 군주가 되시오

      그대 뒤에는 정(나라가 있다는 걸 잊지마시오

 

짧은 기간에 송()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송상공번씩이나

(나라를 침공하였는데이는 모두 공자 풍()죽이려는

목적이었기에 전쟁에 시달리는 백성들은 이를 몹시 원망했었다.

이에 대해 사가(史家)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송목공(宋穆公)은 약속대로 송상공(宋殤公)을 군주로

      세워주었는데 송상공(宋殤公) 은혜를 모르는구나

 

      송목공(宋穆公)은 아들 풍()에게 군주 자리를 절대

      탐내지 말고  정(鄭) 나라에서 조용히 살라하였으니

      이는 유배나 다름없는 몸이 아니었겠는가

 

      무슨 능력이 있어 반역을 생각하며

      무슨 힘으로 반역을 할 수가 있더란 말이냐

 

      송상공(宋殤公)은 조용히 살아가는 공자 풍()을

      뭐가 두려워 죽이려고만 하였던 것일까?

 

      차라리 온 마음으로 백성에게 덕()을 베풀며,

      어진 정치에 한껏 정성을 쏟았더라면

      힘도 없는 풍()이 뭐 그리 두려울 일이었겠는가

 

그때 태재(太宰화독(華督)은 송목공(宋穆公)을 존경하였으므로 

송상공이 세번씩이나 정(鄭) 나라에  침공하면서, ()을 죽이려

전쟁을 벌리는 일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였었다.

 

       그러나 태재 화독(華督) 평소 군권을 쥐고 있는

       공보가(孔父嘉)의 위세에 눌려,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기회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만 있었다.

 

사마(司馬공보가(孔父嘉)대성(載城공략에서 크게 패하여

겨우 목숨만을 살려 돌아오자, 태재 화독(華督)은 기회가 왔다면서

그럴싸한 이야기를 노래처럼 만들어 유언비어를 퍼트렸다.

 

      송목공이 송상공에게 나라를 전한 것은

      밝고 아름다운 어진 마음이었다네.

 

      송상공(宋殤公)은 백성을 사랑하지 않으며

      그저 보위를 풍()에게 빼앗길까 봐, 오르지

      공자 풍()을 죽이려 전쟁만을 일으켰다네,

 

      군사 6천이 떠나 2십 명으로 돌아오다니

      숱한 고아와 과부만을 만들어내었도다.

 

      이제 애써줄 남자들이 없으니 이 많은 고아와 과부가

      된 우리는, 아 아어떻게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아아너무나 슬프도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도 죽고

      우리 송나라도 망하고 말겠네.

 

      이제 또 이런 전쟁을 일으킨다면

      젊은이들의 씨를 말리려 하는 짓이 아니겠는가?

 

      아아, 슬프고도 안타깝도다

      이처럼 여러 차례의 전쟁은 모두

      사마(司馬공보가(孔父嘉)가 부추긴 일이라네.

 

(나라의 병권은 사마(司馬) 공보가(孔父嘉)가 맡고 있었으며,

조정의 정사(政事)는 태재(太宰화독(華督)이 맡고 있었는데,

 

송상공(宋殤公)은 정(나라를 정벌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사실은 풍()을 잡아 죽이려고 침공하였던 것이다.

 

      송상공(宋殤公)은 재위 10년에 열한 번이나 전쟁을

      치르게 하여백성들을 견디지 못하게 만들었도다.

 

      나라가 어찌 이래서야 하겠는가

      백성을 살피지 않는 자는 군주가 아니다

 

      못된 군주의 무모한 정치를 왜 막지 않는가

      공보가는 어찌하여 백성은 돌보지 않고

      복수심만 불태우며 싸우려고만 하는가

 

전쟁으로 큰 피해를 보다 보니 사회는 점점 혼란스러워졌으므로

이에 백성들은 떠도는 유언비어(流言蜚語)를 믿으려 하였다.

 

사마 공보가(孔父嘉)는 송상공(宋殤公)에게 전쟁을 일으키지 말도록

적극적으로 말렸으나, 이를 직접 보지 못하고 유언비어(流言蜚語) 

듣게 된 백성들은 오히려 사마 공보가(孔父嘉)를 원망하게 되었다.

 

       태재 화독(華督)은 민심이 점점 혼란스러워지는

       틈을 타 퍼트리는 유언비어를 백성이 믿고

       따르게 되자다음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때는 춘삼월(春三月)이 되어 수양버들은 흐느적거리며,

아지랑이는 봄꽃 들과 어울려 비단처럼 화려한 빚을 내는데

선남선녀들은 서로 짝을 지어 봄 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 틈에 태재 화독(華督)도 봄 놀이하는 사람들 틈으로 수레를 

타고 가다가 용모가 수려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보게 되었다.

 

      허어! 알 수가 없구나

      저리 어여쁜 여인이 있었더란 말이냐

 

      여봐라저 어여쁜 여인이 누구이더냐

      예, 태재 어른어느 집 계실(繼室이옵니다.

 

      어느 집이라니 어느 집을 말하는 것이냐.

      사마 공보가(孔父嘉)의 계실(繼室)인 위씨(寪氏) 이옵니다.

 

화독은 그 어여쁜 여인이 하필이면 공보가의 첩이라는 것을 알고는

매우 놀라면서또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혼자 중얼거린다.

 

      세상에 어찌 저리 어여쁜 여인이 있었을까

      봄날의 어여쁜 꽃보다 더 아름답구나

      공보가(孔父嘉)는 어떻게 저리 어여쁜 여인을 찾아냈을까

 

      공보가(孔父嘉)의 아내가 아니고 계실(繼室)이라니

      계실(繼室)은 첩()이나 측실(側室)이 아니냐

 

      남의 첩(이라면 내 첩()으로 만들 수도

      있지 않겠는가? 좋도다

      저 어여쁜 위씨(寪氏)를 내 첩()으로 만들자

 

63 . 정확하게 때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