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101∼200 회 100

제 180 화. 왜 곁에서 만나지 못하나.

제 180 화. 왜 곁에서 만나지 못하나. 두씨杜氏 부인은 정성껏 풀칠하여 다린 백리해百里奚의 관복을 들고, 백소아百素蛾를 찾아가며, 악사들이 늘어서서 앉거나 서서 연습하는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지나갔다. 백리해百里奚의 관복官服을 내놓자, 백소아百素蛾는 꼼꼼하게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두씨杜氏 부인에게 몇 가지를 물어본다. 꼼꼼히 잘 데렸네요. 앞으로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그냥 두씨杜氏 라고 부르면 됩니다. 혹시 고향이 어디입니까. 우虞 나라에서 살다가 왔습니다. 어쩐지 말씨가 고향 쪽이라 좋네요. 백소아가 반가워하며 고생하신다고 격려해주지만, 내가 백리해의 부인이란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고 돌아서서 나오는 슬픈 모습이다. 잠깐만요. 저기요. 빨래 말고 무얼 잘할 수 있나요. 자리를 옮겨 줄 수도 있습..

제 179 화. 고생은 끝이 없는가.

제 179 화. 고생은 끝이 없는가. 미루나무 골은 이제는 진秦 나라 땅이나, 옛날에는 우虞 나라의 작은 고을이었으며, 커다란 미루나무가 서 있는 동네였지요. 미루나무 골에는 청빈한 선비가 서당書堂을 훌륭하게 운영하는, 훈장訓長 두씨杜氏 로 존경받는 분이 있었답니다. 올곧아 청빈한 훈장訓長 두씨杜氏 에게는 정숙한 부인과 어여쁜 외동딸이 있었지요. 어여쁜 외동딸은 부모님을 닮아 예의바르고 머리 좋아 글도 또랑또랑 잘 읽으며, 거문고도 잘 탄다는 소문이 퍼져나가 좋은 혼처가 많이 들어오고 있었지요. 그때 한 마을에 부모를 일찍 여의고 할머니와 같이 사는 한 소년이 있었네요. 이 소년은 어릴 적부터 총명하며, 예의도 밝아, 크게 될 인물이라며, 청빈한 훈장訓長 두씨杜氏 께서는 소년을 늘 아끼며 항상 가까이 두..

제 178 화. 초록은 동색인가.

제 178 화. 초록은 동색인가. 허허, 요여繇余께선 뭐 하고 계시오. 진후秦候께서 오셨습니까. 그렇소, 무얼 하고 있었소. 그저 잠시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내일은 공손公孫 칩縶과 공손公孫 지枝 와 함께 기산崎山으로 사냥이나 다녀오시구려. 진후秦候께선 신을 어찌 자꾸 붙드십니까. 이제, 그만 돌아가고자 합니다. 아니요. 돌아가 봐야 급한 일도 없을 테니 좋은 이야기나 좀 더 나누고자 하오. 조금만 더 좀 머물러 주시 오. 진목공秦穆公은 요여繇余와 늘 자리를 같이하며, 음식을 먹을 때도 한자리에서 같이하는 등으로 붙들어 놓다가, 일 년이나 지나가자, 많은 예물을 실어주며 돌아가게 하였다. 적반赤班 임, 이제 돌아왔습니다. 허 참, 오래도 있다 왔구려. 그보다는 여자들을 멀리하십시오. 여러 해괴한 소문이 ..

제 177 화. 베품은 어떤 것인가.

제 177 화. 베품은 어떤 것인가. 어느 날 오후 녘이었다. 백소아百素蛾가 관복官服을 들고 같이 들어온 한 여인을 백리해百里奚에게 소개하자, 그 여인은 갑자기 무릎을 꿇으며 감동적으로 흐느끼면서 큰절을 올리었다. 나리. 이 여인을 알아보시겠는지요. 글쎄, 내가 어찌 알겠소. 누구인데, 무슨 일로 이렇게 우는 것이오. 소녀, 난순欒順 이옵니다. 난순欒順 이라니, 누구인가. 나리, 미루나무 골에 동생들을 보내주신 은혜를 평생 잊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루나무 美柳 골이라. 아하. 그렇구나. 많은 세월이 흘러갔구나. 이젠 동생들도 다 컸겠구나. 동생들을 만나봤는가. 하도 먼 곳이라 아직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벌써 십여 년이 흘렀는데 아직 만나지 못하였다니 하긴, 궁 안에 매인 몸이라 어려웠겠도다. 나..

제 176 화. 오고 대부는 누구인가

57. 운명적인 만남 제 176 화. 오고 대부는 누구인가. 백리해百里奚 와 건숙蹇叔, 의형제 두 사람은 거의 2십여 년 만에 만난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진秦 나라의 옹성雍城으로 들어갔다. 의형제 義兄弟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형제와 자매를 친형제라 부르네. 남남끼리 만나 서로 의기가 통하여 친형제보다 가까워지니 의형제라 부르게 된다네. 한번 맺어진 의형제는 마음의 진실함이 믿음 그 이상을 능가하여 확고한 신념으로 굳어 이어지니 변함없는 의리로 뭉쳐진다고 하네. 재물의 욕심을 초월하며 죽는 것도 먼저 나서며 죽을 때까지 같이하는 의형제. 그 일생의 모습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어 역사에 남겨지며 오랜 세월이 흘러도 아름다운 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고 하네. 백리해百里奚가 건숙蹇叔을 모시고 같..

제 175 화. 가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제 175 화. 가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건숙蹇叔, 선생께서는 인사를 받으십시오. 소인. 공자 칩縶 이옵니다. 찾아뵙게 되어 영광이로소이다. 어떤 일로 이 깊은 벽촌僻村까지 오시었소. 백리해百里奚의 편지를 가져왔습니다. 백리해百里奚 라 하셨소. 내 아우 백리해百里奚 라 하시었소.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소식이오. 나의 아우 백리해百里奚의 편지를 가져오셨다니 먼저 보여줄 수 있겠소. 백리해百里奚의 서신을 전해 받은 건숙蹇叔이 봉함封緘을 뜯고 편지를 읽어나가는 모습이 자못 신중하게 보였다. 우매한 아우는 형님의 말씀을 듣지 않다가 우虞 나라가 망하는 데 휩쓸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초楚 나라에 숨어 살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진목공秦穆公이 초楚 나라에서 이 몸을 빼내어 정사를 맡기려 하는데, 아무리 생..

제 174 화. 목표를 성급히 쫓아가야 하는가.

제 174 화. 목표를 성급히 쫓아가야 하는가. 상경上卿 자리를 맡으시어 우리, 이 진秦 나라를 키워나가 주십시오. 신의 재주는 별로 뛰어나지 않나이다. 진목공秦穆公은 백리해百里奚 와 3일간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백리해百里奚의 비범함에 확신하게 되면서, 제일 높은 상경上卿 벼슬을 내려 주면서, 진秦 나라의 모든 국정을 맡기려고 하였다. 아니. 상경上卿 자리를 맡지 않겠다니요 맡지 못할 다른 뜻이 있는 것이오. 백리해百里奚는 마음을 비운 지 오래되어 눈앞의 욕심에서 이미 벗어나 멀리 바라보며, 앞일을 헤쳐 나갈 생각을 먼저 하는 사람이다. 진목공秦穆公은 백리해를 상경으로 제수하고 모든 정사를 위임하고자 하였으나, 끝내 상경의 직을 고사하고는, 한 사람의 인물을 천거하여 자기의 직을 대신토록 상주上奏 ..

제 173 화. 사람의 진가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56. 밝아지는 운명 제 173 화. 사람의 진가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백리해百里奚는 십여 년 전 진晉의 공주 백희伯姬가 진秦 나라로 시집가는 대열에 잉신媵臣으로 따라가던 때를 생각하여 본다. 진秦 나라는 황하黃河 서쪽 산악지역의 작은 나라로 필시 중히 쓰려고 나를 잡아가는 것이리라. 진목공秦穆公은 도량이 넓고 속이 깊은 사람일까. 여자나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닐까. 좋다. 한번 만나, 사람 됨됨이를 알아보자. 집의 현관문玄關門이 열리며 이른 아침 햇살이 반짝 스며들어오던 꿈이 생각나는구나, 무슨 뜻일까. 기왕에 들어오는 햇빛이 한 번에 왕창 들어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조금 들어오다니, 조금씩 풀린다는 뜻일까. 왜 그리, 더디게 풀리게 하려는 걸까. 어떤 다른 뜻이 숨어 있는 것일까. 양금택목 良禽擇..

제 172 화. 선경지명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제 172 화. 선경지명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말馬은 목이 길고 귀는 곧추서있으며, 목의 갈기 부분인 기갑부鬐甲部가 높고 등과 허리는 짧으며 궁둥이 부분인 미근부尾根部가 높으므로 사람이 올라타기에 아주 적합하다. 털의 색깔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위모葦毛 라는 털은 태어날 때 갈색이나 흑색이었다가, 자라면서 백색으로 변한다. 체형이 잘 빠지고 말갈기가 아름다우며 잘 훈련이 된 말을 타고 다니는 사람은 그 지위가 더욱 높여 보이는 시대였다. 백리해百里奚는 일과를 마치면, 별빛을 헤아리고, 하늘의 운세를 살펴보다 자리에 들며, 이른 새벽에 어렴풋이 밝은 햇빛을 보게 된다. 사는 집 현관문이 조금 열리며, 밝은 햇빛이 스며들어오자, 누가 왔나 하며 일어서다가 꿈인 걸 알게 되자, 의구심이 생긴다. 참, 이..

제 171 화. 자기도 모르게 신상이 털린다.

제 171 화. 자기도 모르게 신상이 털린다. 백리해百里奚가 잉신媵臣이 되어, 할 수 없이 우虞 나라를 떠나게 되자, 크게 실망한 우공虞公은 궁벽한 한촌寒村에 유배되었으며, 할 일 없이 흐르는 산천을 바라보다가 쓸쓸히 죽어가게 되었다. 장계狀啓가 올라왔다고 하였느냐. 그러하옵니다. 우공虞公이 죽었다고 하옵니다. 진헌공晉獻公은 장계狀啓가 올라오자, 옛날의 가도멸괵假道滅虢 때를 생각하며, 측은한 연민憐憫의 정으로 후하게 묻어주라 하자, 한 시인이 지은 노래에 사람들이 따라 부르며 멀리 퍼져나갔다. 우공虞公 이여. 내 형제의 입술을 없애면 내 이빨이 시릴 줄 왜 몰랐는가. 우공虞公 이여. 부귀영화를 탐하여 형제가 망할 길을 빌려주다니 나도 따라 망할 줄 왜 몰랐는가. 그대는 부귀영화를 탐하였지만 부귀도 입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