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101∼200 회

제 175 화. 가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서 휴 2022. 8. 24. 14:43

175 . 가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건숙蹇叔, 선생께서는 인사를 받으십시오.

        소인. 공자 칩이옵니다.

        찾아뵙게 되어 영광이로소이다.

 

        어떤 일로 이 깊은 벽촌僻村까지 오시었소.

        백리해百里奚의 편지를 가져왔습니다.

 

        백리해百里奚 라 하셨소.

        내 아우 백리해百里奚 라 하시었소.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소식이오.

 

        나의 아우 백리해百里奚의 편지를 가져오셨다니

        먼저 보여줄 수 있겠소.

 

백리해百里奚의 서신을 전해 받은 건숙蹇叔이 봉함封緘을 뜯고

편지를 읽어나가는 모습이 자못 신중하게 보였다.

 

        우매한 아우는 형님의 말씀을 듣지 않다가

        나라가 망하는 데 휩쓸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라에 숨어 살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진목공秦穆公이 초나라에서 이 몸을

        빼내어 정사를 맡기려 하는데, 아무리 생각하여도

        형님의 식견과 재주를 따를 수가 없습니다.

 

        이 아우의 뜻을 헤아려 주시어,

        형님의 재주와 지혜를 발휘하신다면,

 

        나라를 위할 수 있겠는바

        의 군주에게 형님을 천거하였습니다.

 

        군주께서도 형님의 덕망과 인품을 사모하여

        폐백幣帛을 내려, 형님을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바라옵건대 이제 명록촌鳴鹿村에서 나오시어,

        평생에 품으신 큰 뜻으로 이 진나라의 앞길을

        열어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만일 형님께서 산림을 사랑하사,

        그냥 머물러 계시겠다 하시면,

 

        이 아우 백리해도 벼슬을 버리고

        형님과 함께 명록촌鳴鹿村에서 평생을 살겠습니다.

 

건숙蹇叔은 편지를 다 읽고 나자, 공자 칩에게 백리해百里奚

대하여 소상하게 물어보았으며, 공자 칩또한 그간에 있었던

백리해百里奚의 사정을 소상昭詳 하게 이야기하여 주게 되었다.

   

       어떻게 진목공秦穆公을 만나게 되었습니까.

       나라가 망하자,

       우공虞公과 함께 포로가 되었습니다.

 

       나라의 공주 백희伯姬가 진나라로

       시집가는 데 따라가는 잉신媵臣으로 뽑히게 되어

 

       나라로 가는 도중에 도망쳐 달아나다가

       멀고 먼 초나라 완성宛城에서 잡히었습니다.

 

       나라 완성宛城에서 성주에게 잘 보여

      완성宛城의 목장에서 소를 키우게 되고

       소를 너무나 잘 키운다는 소문이 나게 되자

 

       초성왕楚成王이 불러 말 키우는 동해목장東海牧場

       책임자 어인圉人인 목사牧師로 삼았습니다.

 

포부가 큰 진나라 진목공秦穆公이 백리해百里奚가 현사賢士 임을

알게 되어, 지혜를 발휘하여 염소 가죽 다섯 장을 초나라에

주고, 간신히 진나라로 데려올 수가 있었습니다.

 

       진목공秦穆公은 백리해百里奚 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나라 국정을 모두 맡기려 하였으나

 

       상경上卿의 벼슬을 한사코 거절하시며,

       선생을 모셔와야만 정사를 맡겠다고 하십니다.

 

공자 칩은 백리해百里奚의 전후 사정을 빠짐없이 설명하여 주며,

건숙蹇叔에게 양해의 말씀도 전한다.

 

       저희 주공께서는 직접 올 수가 없어

       예물을 가지고 선생을 모셔오라며

       저에게 명하시어,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소이까. 지난날 우나라 우공虞公

       백리해百里奚 알아보지 못하여

      나라가 망하고 말았는데

 

       진목공秦穆公이 백리해百里奚를 알아보고

       나라의 정사를 맡긴다면

       앞으로 진나라는 크게 일어날 것이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만한 능력이 없을뿐더러, 몸도 늙어

       세상일에 관심을 버린 지 오래입니다.

 

       돌아가시거든 안부나 잘 전해주시오.

       아니 됩니다. 선생께서 가지 않으신다면

       백리해百里奚 선생도 진나라를 떠날 것입니다.

 

건숙蹇叔이 길게 탄식하고 있는데, 그때 동자童子가 들어와

좌중座中을 향하여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사슴 다리가 멋있게 잘 익었습니다.

        그러하냐. 어서 저녁 상을 차려보아라.

 

        새로 빚은 술통도 가져오고

        , 우리는 모두 빙 둘러앉읍시다.

 

붉게 잘 익은 사슴 다리를 안주按酒 삼아, 잔마다 가득 술을

따르며 서로 권하니, 명록촌鳴鹿村의 술 향기가 초당草堂을 가득

메우며, 모두가 조용히 취하게 되자, 건숙蹇叔은 일어서 나간다.

 

       이 공자 칩,

       다시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우리 군주께선 건숙蹇叔 선생을 모시고 싶은 마음이

       농사철의 심한 가뭄에 한줄기 비를

       기다리는 심정과 같사옵니다.

 

       잘 헤아려 주십시오.

       알겠소이다. 먼저 일어나니 맛있게들 드시오.

 

그러나 공지 칩은 마음 편하게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술잔도

들지 못하며, 어떻게 하면 건숙蹇叔의 마음을 돌릴까만을 고심한다.

 

두 노인도 무어라 말하지 않으며, 술잔을 비우고 일어서려 하자,

공자 칩이 따라 일어나며, 두 노인에게 부탁의 말씀을 올린다.

 

       두 분 노인께서 한 말씀을 올리시어

       저를 도와주신다면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우리는 귀인貴人이 여기에 온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듯합니다.

       이만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두 노인도 돌아가고, 공자 칩은 초당에草堂 에서 잠을 자려 눕게

되었으나, 혹시 건숙蹇叔이 같이 가지 않는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어 설치게 되었다.

 

한밤중이었다. 건숙蹇叔은 뜰에 나와 서성이는 것이다.

한동안 달을 바라보다가 한동안 하늘의 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서서는 지난날의 회포懷抱에 젖어 긴 숨을 내쉬었다.

 

       지난 10여 년간 정을 쏟으며 같이 살았던

       그렇게 아끼던 마음의 동생이 그리워지는구나.

 

그때 갑자기 길게 흐르는 밝은 유성流星을 보며, 건숙蹇叔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한동안 서 있기만 하다가, 들어가 잠을 청하였다.

 

       아침이 되었소이다.

       여기 술통을 메고 왔소이다.

       이웃집 두 노인 임,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주공께서 모심은 논이 쩍쩍 갈라져

       몹시 단비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건숙蹇叔 선생 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소. 나라가 이렇듯 우리 선생을 존중하니

       빈 걸음으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지요.

 

이때 건숙蹇叔이 초당草堂에 들어와 모두를 앉게 하며, 모두 자리에

조용히 앉자, 자기의 마음을 털어놓는 듯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여러분. 모두 다 앉아주시오.

       내 아우가 큰 뜻을 품고 있음에도

       아직 시험조차 해보지 못하고 있음이라

 

       20년 만에 이제야 자기를 알아주는

       훌륭한 군주를 만났다 하나?

 

       나로 인하여 그 뜻을 이루지 못한다면

       내 어찌 나의 도리를 다한다 할 수 있겠소.

 

       내 어찌 돕지 않을 수가 있겠소이까.

       내 아우를 위해 가기는 하겠으나

       오래지 않아 내 아우가 자리 잡힌다면

 

       나는 다시 이곳 명록촌鳴鹿村에 돌아와

       지금처럼 농사를 지으며 함께 살게 될 것이오.

 

       건병蹇丙 . 모두 앞에다 술잔을 놓고

       술통을 들어 잔에 술을 채워라.

       , 여러분. 모두 술잔을 듭시다.

 

공자 칩이 무릎 꿇으며, 술잔을 높이 들어 건숙蹇叔에게 

올리니, 모두 일어나 다 같이 건배乾杯를 하게 된다.

 

공자 칩은 가져온 두 수레의 예물을 모옥茅屋 마당에 모두

펼쳐놓으며, 품목이 적힌 장부帳簿에 맞추어, 건병蹇丙에게

예물을 모두 건너게 된다.

 

      어 유, 참 빛깔이 곱 기도하는구나.

      저게 다 뭐야. 많기도 하구나.

      저게 비단緋緞 이란 거야.

      저건 또 뭐야. 어 유.

 

이웃 노인들과 이웃집 부녀자와 아이들까지 모여들어 처음 보는

예물을 신기한 듯 감탄하며 모두 쳐다보는 것이다.

 

       아들. 건병蹇叔 .

       동네 사람들에게 예물을 나누어주어라.

      아끼지 말도록 하여라.

 

       여러분. 나는 다시 돌아올 것이오.

       언제나처럼 부지런히 농사를 지으시고

 

       집안일도 논밭도 거칠게 만들면

       아니 됨을 유념하셔야 합니다.

 

       두 노인께서는 내가 없는 사이에

       내 집과 가솔家率 들을 잘 보살펴주시오.

 

건숙蹇叔이 집안 삶임을 잘 꾸려나가는 것이 사람의 도리道理 라며

힘주어 말하고 나자, 공자 칩이 건병蹇丙의 재주를 칭찬한다.

 

       건숙蹇叔 어른, 건병蹇丙도 동행하고 싶습니다.

       그래 건병蹇丙도 같이 가겠느냐.

       . 아버님 넓은 세상에 나가고 싶습니다.

 

이윽고 공자 칩이 건숙蹇叔, 건병蹇丙 부자와 함께 송나라

명록촌鳴鹿村에서 출발하자, 두 노인과 동네 사람 모두가

멀리까지 따라 나오며, 손을 흔들어 열렬히 환송하는 것이다.

 

           금란지교 金蘭之交

 

        와 같이 단단하고 난처럼 품위 있는 사귐을

        금란지교 金蘭之交 라 한다네.

 

        한 사람의 힘은 미약하나?

        두 사람의 마음이 뭉쳐지면 단단한 쇠라도 자르고

        같은 향기가 풍겨 사람을 감동하게 한다네.

 

        이런 친구가 하나만 있어도 행복한 사람이라며

        어느 사람은 친구를 사귈 때마다

 

        조심스레 장부에 올리고

        정성스레 향을 피워 조상祖上에 고 하였다, 하네.

 

        진정한 친구는 자기보다 친구를 먼저 생각하니

        같이 있으면 든든하여 큰일을

        도모할 마음이 한데 모인다고 하여

 

        사람들은 누구나 금란지교 같은

       친구를 갖기를 원하며

       언제나 갖고 싶어 살피며 살아가고 있다네.

 

        친구와 주고받는 것을 따지며 사귀는

        보통 사람들은 서로 마음이 뭉쳐진 듯하나?

 

        마음속 깊이 난의 향기가 깊게 배질 않아

        얼마 안 가 돌아서거나 싸우기도 한다고 하네.

 

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

이인동심 기리단금 동심지언 기취여란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면,

       그 예리함이 쇠를 자를 수 있고

 

       마음을 같이 하는 말은,

       그 향기가 난초의 향과 같도다.

       라는 뜻에서 금란지교 金蘭之交라는 말이 생겨난다

 

       주역周易을 삼경三經의 하나로 보아,

       역경易經 이라고도 하며, 이에 덧붙여

       설명하는 글인 계사繫辭 에도 나온다.

 

건숙蹇叔은 내색하지는 않으려 하였으나 새로운 결의가 나타났으며

건병蹇丙은 처음으로 출사出仕 하는 것인 만큼 꿈에 부풀게 되었다.

 

건병蹇丙은 아버지의 수레를 몰고, 다 같이 객잔客棧에서 잠을 자며,

다 같이 이른 새벽에 일어나, 나라의 옹성雍城으로 달려간다.

 

       주공. 신 공지 칩이옵니다.

       건숙蹇叔 선생이 옹성雍城 밖에 당도當到 하였습니다.

       그의 아들 건병蹇丙 도 장수 감이라 함께 왔습니다.

 

       참으로 잘하셨소. 너무나 고생이 많았소.

       백리해百里奚 선생을 빨리 부르도록 하시오.

 

176 . 오고 대부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