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101∼200 회

제 174 화. 목표를 성급히 쫓아가야 하는가.

서 휴 2022. 8. 24. 14:20

174 . 목표를 성급히 쫓아가야 하는가.

 

      상경上卿 자리를 맡으시어

      우리, 이 진나라를 키워나가 주십시오. 

      신의 재주는 별로 뛰어나지 않나이다.

 

진목공秦穆公은 백리해百里奚 3일간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백리해百里奚의 비범함에 확신하게 되면서, 제일 높은 상경上卿

벼슬을 내려 주면서, 나라의 모든 국정을 맡기려고 하였다.

 

       아니. 상경上卿 자리를 맡지 않겠다니요

       맡지 못할 다른 뜻이 있는 것이오.

 

백리해百里奚는 마음을 비운 지 오래되어 눈앞의 욕심에서 이미

벗어나 멀리 바라보며, 앞일을 헤쳐 나갈 생각을 먼저 하는 사람이다

 

진목공秦穆公은 백리해를 상경으로 제수하고 모든 정사를

위임하고자 하였으나, 끝내 상경의 직을 고사하고는, 한 사람의

인물을 천거하여 자기의 직을 대신토록 상주上奏 했다.

 

       상경上卿 벼슬을 맡지 않겠다니, 무슨 뜻이오.

       어서 말씀해보시오.

 

       신에게 친한 벗이 한사람 있사온데

       그의 재주는 신보다 열 배나 뛰어납니다.

 

       주공께서 큰 뜻을 품으셨다면,

       그에게 나랏일을 맡기시고,

       신에게 그를 돕게 하십시오.

 

       아니, 그렇게 감춰진 사람이 다 있었소.

       어서 말씀해보시오.

 

       그 사람 이름이 무엇이오.

       그의 이름은 건숙蹇叔 이옵니다.

       건숙蹇叔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오.

 

       건숙蹇叔은 현인賢人 임에도

       세상 사람들이 그를 알지 못합니다.

 

       나라나, 송나라에서도 모르고 있습니다.

       건숙蹇叔이 비범하다는 것은 신만이 압니다.

 

       신이 벼슬을 살고자 제나라에서 수년을 헤매며

       어려운 곤경에 빠져 밥을 빌어먹는 거지가 되었을 때,

       건숙蹇叔이 저를 거두어 주었습니다.

 

       실로 옛날의 이야기입니다.

       신이 제나라에 새로 군주가 된

       공손무지公孫無知를 섬기려 하였으나

 

       건숙蹇叔이 만류하여 공손무지가 피살당하는

       재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왕실의 왕자 퇴가 소를 잘 키우는

       사람을 후대厚待 한다, 하여 신이 찾아가 만나니

 

       왕자 퇴 을 높은 자리에 등용登用 시켜주기로

       약속하였으나, 건숙蹇叔이 또 만류하였습니다.

 

       곧이어 왕자 퇴가 반란을 일으켜 주왕이 되었으나

       곧 주살당하였으므로은 그 재난에서

       겨우 피해 살아남을 수가 있었습니다.

 

       나라 우공虞公을 섬기려 할 때도 막았지만,

       은 워낙 어려운 처지라 욕심을 부리게 되었으며

       우나라 중대부中大夫가 된 것입니다.

 

        두 번의 만류로 두 번의 위험을 피했으나

        한번 말을 듣지 않아, 나라가 망하면서,

        은 잉신媵臣이 되었다가, 한밤에 겨우 도망쳐

        산속과 들판을 헤매며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은 이에 초나라에서 10년을 고생하며

        건숙蹇叔의 현명함을 배우고자 하였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부끄러운 부분을 감추려 하나, 백리해百里奚

솔직히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모두 다 이야기하는 것이다.

 

진목공秦穆公은 백리해百里奚의 거짓 없는 마음과 영달令達

욕심내지 않으며 겸양하는 진정한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으면서,

또한 새로운 인물의 이야길 듣자, 깜짝 놀라면서 기뻐해 묻는다.

 

        건숙蹇叔, 그분은 어디에 있소.

        그는 지금 송나라 명록촌鳴鹿村에서

        농사를 지으며 조용히 살고 있을 겁니다.

 

        세상을 등지고 살고 있다면

        쉽게 세상에 나오려 하겠소이까.

 

        먼 송나라이니, 내 직접 찾아가기도

        어렵고, 어찌 하는 게 좋겠소.

        군후께서 공을 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백리해百里奚의 말을 들은 진목공秦穆公은 건숙蹇叔의 만남에 뛸

듯이 기뻐하며, 공자 칩에게 당장 모셔오도록 명령을 내렸다.

 

공자 칩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막 떠나려는 이른 아침이 되자

백리해百里奚는 바삐 찾아와 편지를 내놓으며 부탁하게 된다.

 

       건숙蹇叔은 명록촌鳴鹿村에 파묻힌 은자隱者 입니다.

       건숙蹇叔은 쉽게 속세에 나오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이 편지를 꼭 전해주시오.

       꼭 모시고 와야만 합니다.

 

공자 칩은 초야에 묻혀있는 현인인 건숙蹇叔을 찾아, 모시러

가는 길이었으므로, 몇 명의 수행하는 무사와 함께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상인商人의 조촐한 복장으로 갈아입었으며,

 

폐백幣帛을 실은 두 수레를 인솔하며, 보름 동안 열심히 물어가며

걸어갔으며, 그제야 드디어 명록촌鳴鹿村에 다다르게 되었다.

 

        . 이런 곳이 다 있었구나.

        산은 높고 깊으며 숲도 울창하구나.

        신선들이 사는 마을처럼 아늑하구나.

 

밭을 매는 한 농부가 앞서 노래를 부르니 다른 농부가 따라 부르며

흘러들어오는 노랫가락에 공자 칩의 발길이 멈추어지게 되었다.

 

       山之高兮无攆 (산지고혜무련)

       산은 높아 돌아가려 하는데

 

       途之濘兮无燭 (도지영혜무촉)

       흙더미에 묻혀버린 듯 불빛이 없구나.

 

       相將隴上兮 泉甘而土沃 (상장총상혜 감천이토옥 )

       서로 함께 밭고랑 사이에 앉아있음이여!

       샘물은 달고 땅은 기름지도다.

 

       勤吾四體兮 分吾五谷 (근오사체혜)

       사지를 부지런히 움직이니 오곡이 생기는구나!

 

       三時不害兮 餐飧足 (삼시불해혜 찬손족)

       하루 세끼 거르지 않으니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네.

 

       樂此天命兮 無榮辱 (락차천명혜 무영욕)

       즐거운 곳에서 천명天命을 다하니

       영화榮華도 굴욕屈辱도 없도다.

 

공자 칩은 세속의 먼지가 전혀 묻지 않은 명록촌鳴鹿村의 노래를

들으며, 혼자서 흥에 겨워 탄식의 말을 하게 된다.

 

       바깥세상은 전쟁으로 살기 어려운데

       이곳은 신선들이 사는 양 아늑하고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아주 좋은 곳이로구나.

 

       현인군자가 있는 곳엔 고고한 기풍이 흐른다더니,

       건숙蹇叔 선생이 어떤 분이신지 가히 짐작이 가는구나!

 

       옛말에 작은 마을에도 군자가 있으면

       비속한 풍습을 바르게 잡는다는데

 

       오늘 건숙蹇叔 선생이 사는 동네에 이르니

       한낱 밭을 가는 농부들조차도

       모두 덕이 높은 사람들의 모습이로구나.

 

근주자적 近朱者赤 이란 말이 있다.

주사朱砂를 가까이하면 붉은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近朱必赤 近墨必緇

      근주필적 근묵필치

 

      주사朱砂를 가까이하면 붉게 되고

      을 가까이하면 검게 된다.

 

주사朱砂는 수은水銀과 황의 화합으로 만들어진 붉은 물질로

한번 묻으면, 붉은색이 잘 지워지지 않으므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항상 사용하던 붉은 인주印朱(도장밥)가 주사로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의 성격이나 능력은 주위 환경이나 친구에 의해 많이 좌우된다며,

좋은 사람 속에 살면 좋은 사람에 물드니, 좋은 친구를 사귀라고

강조하는 뜻으로, 서진西晉의 문신文臣인 부현傅玄이 편찬編纂

태자소부잠 太子少傅箴에 나오는 말이다.

 

       잠깐 만요. 말씀 좀 묻겠습니다.

       건숙蹇叔 선생의 집이 어디쯤입니까.

 

       이 길로 곧장 가면 대나무 숲이 나옵니다.

       그곳에 가면 샘이 있고 모옥茅屋이 있습니다.

 

공자 칩이 두 손을 높이 올려 인사를 올린 후에 다시 수레에

올라타고 반 리쯤 가게 되니 농부가 말한 곳에 모옥茅屋이 있었다.

 

공자 칩 눈을 들어 살펴보니 풍경이 과연 깊숙하고 아늑했다.

은거하는 처사의 생활을 노래한 농서隴西 거사의 시를 읽어보자.

 

       翠竹林中景最幽 (취죽림중경최유)

       짙푸른 대나무 숲속의 풍경은 더욱 그윽한데

 

       人生此樂更何求 (인생차락경하구)

       인생의 이런 즐거움을 어디서 구할 수 있으리오?

 

       數方白石堆云起 (수방백석퇴운기)

       여기저기 쌓인 돌무더기 위로 구름이 일고

 

       一道淸泉接澗流 (일도청천접간류)

       한 길가의 맑은 샘물은 실개천으로 흘러가누나.

 

       得趣猿猴堪共樂 (득취원후감굥락)

       원숭이를 구하여 같이 노닐자 하였더니

 

       忘機麋鹿可同游 (망기미록가동유)

       때를 놓쳐 사슴과 같이 놀게 되었구나.

 

       紅塵一任漫天去 (홍진일임만천거)

       번거로운 세상사 벗어나 한가롭게 지내니

 

       高臥先生百不懮(고와선생백불우)

       베개 높이 벤 선생은 근심 없이 백 살을 살겠구나.

 

공자 칩은 한 농부가 가르쳐 준 대로 풀로 이엉을 얹은 모옥茅屋

찾아가 모옥茅屋 앞에서 큰 소리로 부르게 되었다.

 

        안에 누가 계십니까.

        누구 이시온지요.

        , 동자童子 . 건숙蹇叔 선생임이 안에 계시느냐.

 

        아예, 냇가에 가셨는데 곧 오실 겁니다.

        집 안으로 들어오시어 기다리시지요.

        아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마.

 

공자 칩은 사립문 밖 돌 위에 걸터앉아 얼 만큼 지나자, 체구가

장대한 한 거한巨漢이 사슴을 어깨에 메고 가까이 다가오자,

예사로운 젊은이가 아님을 알고, 먼저 인사를 하게 된다.

 

       함자銜字가 어찌 되시오.

       건병蹇丙 이라 합니다만. 어떤 일인지요.

 

       건숙蹇叔 이라는 분과 어떤 사이입니까

       저의 부친이 되시옵니다.

       선생은 누구시기에 이 깊은 산골까지 오시었습니까.

 

       백리해百里奚 라는 분이 우리 진나라에서

       벼슬을 살고 계시는데, 저에게 편지를 주어

       부친에게 꼭 전해달라고 하여 오게 되었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가시어 잠시 쉬고 계시면

       부친께서 곧 돌아오실 것입니다.

       누추하오나, 이쪽 초당草堂 으로 드시지요.

 

건병蹇丙은 응접실應接室 인 초당으로 공자 칩을 안내하고 나자,

마침 짊어지고 온 사슴을 가져가 동자童子에게 말한다.

 

       귀한 손님이 오신듯하다.

       사슴 다리를 잘 익혀보아라.

       할아버지가 오시거든 속히 알려주어야 한다.

 

건병蹇丙은 초당草堂에 들어와 공자 칩에게 인사의 예를 올리고

나자, 둘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농사와 누에 치는 일을 이야기하다가, 무예武藝와 병법兵法

이야기에 들어가니, 건병蹇丙은 모든 병장기의 사용법을 정연하게

풀어가며, 막힘이 없도록 술술 이야기하니 공자 칩은 감탄하였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구나.

       참으로 박식하고 훌륭하도다.

       할아버지께서 돌아오고 계십니다.

 

건숙蹇叔은 이웃에 사는 두 노인과 함께 집 앞에 이르자, 문밖에

서 있는 두 대의 수레를 보고 의아疑訝 하게 생각한다.

 

       이 같은 벽지僻地 산골에 무슨 연고로

       큰 수레가 두 대씩이나 와 있는가.

 

건숙蹇叔은 두 노인과 같이 초당草堂에 들어와 공자 칩과 아들

건병蹇丙의 얼굴을 번갈아 보는데, 건숙蹇叔의 눈동자는 티 없이

맑아 호수처럼 아늑하며,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175 . 가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