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밝아지는 운명
제 173 화. 사람의 진가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백리해百里奚는 십여 년 전 진晉의 공주 백희伯姬가 진秦 나라로
시집가는 대열에 잉신媵臣으로 따라가던 때를 생각하여 본다.
진秦 나라는 황하黃河 서쪽 산악지역의 작은 나라로
필시 중히 쓰려고 나를 잡아가는 것이리라.
진목공秦穆公은 도량이 넓고 속이 깊은 사람일까.
여자나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닐까.
좋다. 한번 만나, 사람 됨됨이를 알아보자.
집의 현관문玄關門이 열리며 이른 아침 햇살이
반짝 스며들어오던 꿈이 생각나는구나,
무슨 뜻일까.
기왕에 들어오는 햇빛이 한 번에
왕창 들어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조금 들어오다니, 조금씩 풀린다는 뜻일까.
왜 그리, 더디게 풀리게 하려는 걸까.
어떤 다른 뜻이 숨어 있는 것일까.
양금택목 良禽擇木 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良. 새禽는 나무木를 가려서擇 앉는다.
良禽擇木而棲 賢臣擇主而事
량금택목이처 현신택주이사
어진 새는 나무를 가려 깃들고, 현명한 사람은 훌륭한 군주를
가려내 섬긴다는 말로 널리 쓰인다. 춘추좌씨전 春秋左氏傳의
노魯 나라 애공哀公 편에 공자孔子의 말에서 나온다.
유능한 신하가 어질지 못한 군주 밑에서
일하는 것을 안타까이 생각하여,
어질고 능력 있는 군주 밑으로 들어 와, 자기의 뜻을
펼쳐보라고 권하는 장면에서 많이 인용되는 말이다.
백리해百里奚가 우虞 나라 우공虞公에게 몸을 담으려 할 때
건숙蹇叔이 한 말이며, 또한 진晉 나라의 주지교舟之僑가 같이
일해보자며, 대부 벼슬자리를 권할 때도 한 말이었다.
희망 希望
세월은 쉼 없이 흘러만 가는구나.
떠도는 사이에 세월만 지나갔구나.
내 살아가는 인생길이
모은 것 없이 이렇게 지나가며
허송세월이 되었다는 것인가?
갈고 닦으며 기다리고 기다려도
내 생을 걸고 바라는 희망의 때는
이리 쉽게 찾아오질 않으니
하늘을 바라보며 물어보아도
하늘은 희망을 말하여 주지 않누나.
어두운 하늘의 별빛을 보며
밤하늘의 달빛을 보며
별빛에 달빛에 내 모습 비춰보며
아 하. 그래, 그렇도다.
언젠가는 나의 기회가 오긴 올 거야.
나는 이렇게 외치며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요즘처럼 살아가기 힘들 때 급한 마음에 믿을 수 없는 사람의
그럴듯한 말을 덥석 믿고 쉽게 따라가면, 얼마 못 가 헤어지게
되며, 피해를 볼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백리해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진秦 나라 국경에 다다르게 되자
진秦 나라 공손지公孫枝가 기다리며, 초楚의 장수 투진鬪軫에게
죄인을 받았다는 증표證票를 주며, 죄인의 함거轞車를 넘겨받는다.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저는 진秦 나라 대부 공손지公孫枝 라 합니다.
이제 저에게 죄인을 넘겨주시면 됩니다.
초楚 나라의 장수 투진鬪軫과 군사들은 성희成僖 가 정성껏
뒷바라지하여준 성의誠意에 무척 정이 들어 아쉽게 바라본다.
성희成僖 야. 너는 어쩌겠느냐.
우리와 함께 돌아가자.
저는 목사牧師 임을 끝까지 따라가겠습니다.
이 젊은이는 누구인가.
목사牧師 임을 모시는 목부牧夫 성희成僖 이옵니다.
함거轞車를 인솔하고 온 장수 투진鬪軫과 초楚 나라 군사들이
멀리 가자, 공손지가 진秦 나라 군사들에게 조용히 명령을 내린다.
함거轞車를 조심스레 열어라.
잘 모시어야 한다.
백리해百里奚는 함거에서 나오자 결박이 풀리며, 일어나자마자
커다랗게 기지개를 켜고, 다리와 무릎을 활짝 펴보며 흔들어본다.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저는 공손지公孫枝 라 합니다.
저 백리해百里奚, 마중 나와 주시어
고맙게 생각합니다.
우리 주공께서는 선생님을 만나고자
오랫동안 기다리고 계시옵니다.
우리 진秦 나라는 산악지대가 많아 척박瘠薄 하며
융족戎族 들의 등쌀에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아무쪼록 진秦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데
많은 힘을 보태어 주십시오.
공손지公孫枝는 진목공秦穆公이 바라는 바를 이야기하여 주게 되며
둘은 옛 친구를 만난 듯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란히 가게 되었고,
성희成僖는 이제 마음을 놓고 짐 실은 말을 끌며 뒤따라간다.
백리해百里奚는 진목공秦穆公이 그런 정도의 군주라면
큰일을 도모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공손지公孫枝의 안내를 받아 옹성雍城에 도착한다.
진목공秦穆公은 백리해百里奚가 당도當到 했다는 전갈을 받고는
큰 기대를 걸면서 정청政廳으로 달려나갔으나, 그러나 거기에는
백발에 볼품없게 서 있는 한 노인을 보며, 크게 실망을 하고 만다.
나이가 몇이나 되었소이까.
이제 70살입니다.
아깝구려. 너무 많이 늙었소이다.
진목공秦穆公은 그렇게 기다리던 백리해百里奚가 백발의 힘없는
늙은이로 보였으므로, 대업大業을 도모하기 힘들겠다 생각하면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눈길을 돌리고 마는 것이다.
진목공은 혈기가 왕성한 약 35세이고, 백리해는 나이 70이나
되었으니, 너무 많은 나이를 탓할 수가 있었으리라. 그러자
백리해百里奚는 이미 짐작한 바라며 힘차게 말을 시작한다.
날아가는 새를 잡고,
사나운 맹수猛獸와 맞서 싸우라 하신다면,
신臣은 분명 늙었습니다.
하오나, 앉아서 나랏일을 맡아보라 하신다면
신臣은 아직 젊은 나이 옵니다.
일찍이 태공망太公望 이신 강태공姜太公은
위수渭水 강가의 반계磻溪에서 곧은 낚싯바늘로
낚시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을 때
주문왕周文王은 여든 살이나 된 강태공姜太公을
재상 중에 으뜸이라며, 상보上父로 삼아,
함께 주周 나라를 일으켜 세우고,
마침내 천하를 통일하였습니다.
신臣을 그때의 강태공姜太公과 비교하신다면
신臣은 아직도 열 살이나 젊은 나이입니다.
사람을 어찌 겉모양으로 판단이 되겠습니까.
사람의 능력이 어찌 겉모습에 나타나겠습니까.
백리해百里奚의 말에 그의 비범함을 눈치챈 진목공秦穆公은
그의 말을 깊이 음미하다가, 그제야 실수하였음을 깨닫고는
자세를 가다듬으며 정중히 사과하는 것이다.
정말 그렇습니다.
과인寡人의 경솔함을 용서하여 주시 오.
초楚 나라로 도망간 신의 죄를 물으시겠다면
신은 그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아니 오. 선생을 불러들인 것은
선생의 도움과 지도를 받고자 함이오.
우리 진秦 나라는 융적戎賊들 사이에 끼어
중원中原과 교류를 맺지 못하는 어려운 실정이오.
나는 포부가 작지 않아 고심하여 오던 중에
선생의 명성을 듣게 되어 어렵게 모셨으니
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지도하여 주시 오.
이 늙은 백리해百里奚를 망한 나라의 포로로
보지 않으시고, 보잘것없는 늙은이로 보지 않으시니
성심껏 답변을 올리겠습니다.
우리 진秦 나라를 어찌하면 일으켜 세울 수 있겠소.
진秦 나라는 지세가 험하고 척박하여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진秦 나라를 키워나갈 수가 있겠소.
어떤 계책을 세우면 좋겠소이까.
진秦 나라는 외진 곳에 있어 지세가 퍽 험한 곳이나,
그런 산악을 다니게 되는 병마兵馬는 강하고 날쌥니다.
강한 병마兵馬는 진격하면 공격할 수 있고,
물러나면 능히 지키기에 유리한 땅이 이곳입니다.
유리한 조건을 충분히 이용하여 힘을 키웠다가
기회를 노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렇기에, 이 척박瘠薄 한 곳에서
주周 나라 왕실이 일어났습니다.
이 땅은 나라를 일으키기에 좋은 환경이라고
거꾸로 생각하여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사람도 열악한 환경에서
크게 성공하는 사람이 나오며
나라 또한 어려움을 디디고 극복해 나가며
힘을 키워야만 강한 나라가 될 수 있나이다.
진秦 나라의 산들은 들개 이빨처럼 날카로우며
논과 밭은 산 골짜기와 산등성이를 따라 있다 보니
긴 뱀과 같이 꾸불꾸불합니다.
이러한 환경은 큰 외침을 받지 않을 수 있으므로
주변의 작은 족속族屬 들을 잘 다스려,
나라의 힘이 되도록 많은 사람을 끌어모아
진秦 나라의 백성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주변에 나라라 하는 것들이 수십 개나 있어.
이들을 진秦 나라 땅으로 합할 수만 있다면
농토가 많이 생겨 식량은 늘어날 것이며
백성들을 끌어모으면 어떤 나라와도
싸울 수 있는 군사軍士의 숫자가 나오게 됩니다.
이런 점이 다른 제후국 들보다 유리한 점이며
이런 점이 바로 하늘이 도우시는 환경입니다.
이 옹雍과 기岐 땅의 환경을 잘 이용하여
주문왕周文王과 주무왕周武王이 일어나
주周 나라를 세워 힘을 길렀으며
천하를 통일하게 된 것입니다.
군후께서는 덕을 베풀어 백성을 위로하며
강건한 힘으로 융적戎賊 들을 쳐나가,
흩어져있는 융적戎賊 들을 완전히 우리 것으로
만들어 합한다면, 나라가 크게 일어날 것입니다.
내부를 다지며 나라의 힘을 길렀다가
험난한 산천을 방패 삼아,
중원中原을 바라보며, 마땅한 기회가 올 때,
힘차게 앞으로 나아간다면
어찌 패업을 성취 못 할 리 있겠습니까.
백리해百里奚가 조리 있는 말로 정곡을 찌르니, 진목공秦穆公은
그의 탁월한 식견에 감격하여 벌떡 일어나 답례를 한다.
나에게 백리해百里奚가 있다는 것은
제환공齊桓公에게 관중管仲이 있는 것과 같도다.
그동안 멀리서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이삼일 공관에서 노독路毒을 푸시다가
다시 만나 논의하면 좋겠습니다.
백리해百里奚가 공손지公孫枝의 안내를 받으며 공관에 머물게
되었으며, 제일 기뻐하는 건 목부 성희成僖 였다.
성희成僖 야.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
이 진秦 나라에서 자리를 잡아보자.
저는 목사牧師 임이 이렇게
훌륭하신 분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사람은 때와 뜻을 같이할 사람을 잘 만나야!
자기가 갈고닦은 실력이 나오는 거란다.
성희成僖 야. 너도 소를 키우고, 말을 키워 봐서
알겠지마는 몸도 마음도 잘 단련하여 놓아야!
기회가 올 때 써먹을 수 있단다.
하나의 집념執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현실적으로 자기에게 맡겨진 작은 일이라도
성실히 수행하면서 때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진목공秦穆公은 백리해百里奚와 며칠 낮 밤을 지새워 천하를 논한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진목공秦穆公은 결심을 하여 제안을 한다.
둘은 서로 마음이 통한 것일까,
백리해百里奚는 양금택목良禽擇木을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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