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3 화. 병 주면 약도 줘라.

제 73 화. 병 주면 약도 줘라.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주환왕(周桓王)은 30리 밖으로 물러나게

되며, 겨우 어가(御駕)를 세우고는, 다시 진채(陣寨)를 세우게

하면서 치중(置重)과 병거(兵車)를 모두 점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주상, 진(陳) 나라 군사들이 흩어지는 바람에

      패배(敗北) 하게 되었사옵니다.

 

      인제 와서 진군(陳軍)을 탓해 무얼 하겠소?

      모두 짐(朕)의 용병술(用兵術) 책임이오.

      각 군을 잘 운용하지 못한 짐(朕)의 잘못이오.

 

      다시 각 군을 정비하여 싸울 준비를 시키시오！

      이제 마지막까지라도 정군(鄭軍)을 혼내줘야 하오！

 

정군(鄭軍)의 장수들이 후퇴의 징을 울린 것에, 다 같이 아쉬움과

불평을 쏟아내자, 정장공이 손사래를 치며 분위기를 가라앉힌다.

 

      주공, 우리 정군(鄭軍)은 맹렬히 공격하였습니다！

      후퇴하는 왕사군(王師軍)을 확실하게

      박살 낼 수 있었사옵니다.

 

      주공, 신, 축담(祝聃 )이옵니다.

      주공, 어찌하여 후퇴 명령을 내렸사옵니까?

 

      주공, 신의 화살이 왕을 정확하게 맞힌바

      왕실군을 박살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허 어. 다들 참으시오！

      왕께서는 내가 베푼 덕(德)을 원망으로 갚고 있기에.

      우리는 만부득이 응전(應戰) 하게 된 것 뿐이오！

 

      경(卿)의 말대로 왕을 사로잡아 온다거나

      만약 어체(御體)에 중상을 입혀 목숨을 잃게 한다면

      우리가 왕을 시해하였다는 죄를 덮어쓰지 않겠소?

 

      모두 모두 많은 수고를 하였소！

      경(卿) 들의 훌륭한 전술과 용감한 용기로

      이제 우리 정(鄭) 나라 사직을 보존하게 되었소！

 

      자, 이것으로 족(足) 한 것이오！

      어찌 더 많은 것을 바랄 수 있겠소?

 

      주공, 신 제족(祭足) 이옵니다.

      주공의 말씀이 너무나 옳사옵니다.

 

      주상께서는 우리의 강한 군사력에 놀랐을 것이며

      왕사군(王師軍)도 겁을 많이 먹었을 것이옵니다.

 

      주공, 이제 마땅히 왕께 사신을 보내시어,

      문안 인사를 정중히 올리시옵고

 

      어깨를 쏜 것이 주공의 뜻이 아니었음을

      은근(慇懃)히 밝히셔야 하옵니다.

 

      제족(祭足)은 모두 옳은 말을 하였소！

      그동안 우리가 왕실을 제일 많이 지켜줬는데

      왕실을 꺾어 망하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소?

 

      경(卿) 이야말로 좋도록 잘 수습할 수 있을 것이오.

      상경(上卿) 제족(祭足)은 곧바로 준비하여

      지금부터 왕사군(王師軍) 진영에 다녀오시오.

 

      주공, 신, 제족(祭足)이 받들어 이행하겠나이다.

      어서 선물을 준비하여 다녀오시오！

 

제족(祭足)은 소 12마리와 양 100마리와 사료 50 수레와 군량미

20 수레를 가지고, 왕사군의 진영(陣營)을 찾아가게 되었다.

 

      주상, 신 정(鄭) 나라 상경 제족(祭足) 이옵니다.

      주상의 만수무강을 비나이다！

 

      저희 주공께서 죽을 죄를 지었사옵니다！

      저희는 오르지, 사직을 보존하고자

      부득이 응전하게 되었나이다！

 

      뜻밖에도 신중치 못한 군사가 있어.

      옥체를 범하는 큰 죄를 저질렀사옵니다！

 

      저희 주공께서는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어

      삼가 신을 보내어 군문 앞에 엎드려

      대죄를 청하오니 용서하여주시옵소서！

 

      삼가. 다행히 더 큰 탈이 없으시오면

      보잘것없는 물건이나마

      군사를 위로하시옵길 바라오며

      삼가 엎드려, 주상의 자비심을 바라고 바라나이다.

 

제족(祭足)이 찾아와 정장공(鄭莊公)이 사죄한다는 말을 올리자,

주환왕(周桓王)이 참담한 표정으로 제족(祭足)을 물끄러미

굽어보며 말을 하지 않자, 괵공(虢公) 임보(林父)가 앞으로 나선다.

 

      정백(鄭伯)이 자신의 죄를 알았다 하니

      너그럽게 용서하노라！

      사신은 일어나 사은의 예를 올리도록 하라！

 

제족(祭足)은 머리를 조아려 주환왕(周桓王)에게 정중히 삼배하고

난 뒤에, 각 군영을 돌아다니며 안부 인사를 다 하고 돌아갔다.

 

       그 후 정장공(鄭莊公)은 마음속으로

       주환왕(周桓王)을 무시했으나, 겉으로는 제후의

       책임과 봉사를 성실히 수행하면서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주환왕(周桓王)은 정(鄭) 나라 제족(祭足)이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고 돌아갔음에도 도저히 분을 삭일 수가 없었다.

 

      어서 괵공(虢公) 임보(林父)를 부르라！

      주상. 무슨 일이 있으시옵니까?

 

      너무 분하여 참을 수가 없노라！

      저 정장공은 나의 아버지를 인질로 잡았으며

      또 일찍 돌아가시게 한 원수로다！

 

      지금도 그에 대한 예의도 갖추지 않고

      뉘우치기는커녕 뻔뻔스럽게

      짐(朕)을 능멸(凌蔑)하려 들고 있지 않은가?

 

      천하의 제후들에게 격문(檄文)을 보내

      정장공의 죄상을 성토할 것이오！

 

      주상. 참으시옵소서！

      주상께서 군사를 가벼이 움직이시어

      연합군으로도 공을 이루지 못하였사옵니다.

 

      이제 제후들에게 다시 격문(檄文)을 보내신다면

      주상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되옵니다.

 

      또한, 진(陳), 위(衛), 채(蔡) 세 나라를 제외하면

      모두 정(鄭) 나라와 우호를 맺고 있사옵니다.

 

      그러하오니. 만약에 군사를 징집하여도

      징집한 군사가 오지 않는다면

      오히려 정(鄭) 나라의 비웃음만 사게 되옵니다.

 

      정(鄭)은 제족(祭足)을 시켜 사죄하였으며

      제족(祭足)은 군영마다 위로하고 돌아감으로써

      속죄의 체면치레를 한 것이 되옵니다.

 

      주상, 이번 기회를 잘 이용하십시오.

      차라리 사면(赦免)의 은전(恩典)을 내리시어

 

      저들이 스스로 반성하게 하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왕실을 받들도록

      자비(慈悲)를 베푸시면, 장차 굽혀 들어올 것입니다.

 

주환왕은 괵공 임보의 합리적인 설득에 더는 말을 할 수 없었으며,

왕사군으로 참여한 진(陳), 위(衛), 채(蔡) 세 나라의 노고를 위로하고

돌아가게 하였다,

 

주환왕(周桓王)은 왕실로 복귀하고, 이 일이 있고 난 후로는 죽을

때까지 정(鄭) 나라에 대하여,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정장공(鄭莊公)은 주 왕실에 바치던

       조공도 끊어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으며

       왕실을 무시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더구나 수갈(繻葛) 전투에서 왕사군을

       이김으로써, 제후와 왕의 권위가

       대등해지는 계기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를 신호탄으로 힘있는 제후들이 천하를 도모하겠다는 큰 뜻을

가지고, 서로 넓은 영토를 차지하려는 쟁탈전이 뜨겁게 펼쳐진다.

 

       이로써 왕실의 권위가 왕을 신봉하며 왕명에 따르던

       봉건 사회의 전통사상이 무너지는 시점이 되고 있었다.

 

또한, 수갈(繻葛) 전투에서 부터 어리진(魚麗陳)의 진법을 적용 

함으로써, 병거(兵車)가 중심이 되어 싸우던 단순한 전술에서,

 

뒤따르던 보병이 스스로 작전을 펴기도 하고, 유기적으로 합해져

합동 작전을 펴게 되는 새로운 전술의 큰 변화를 가져왔다.

 

제 74 화. 맺힌 한은 풀어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