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 열국지( 001∼94회 ) 94

제 54 화. 천총을 역이용하는가.

제 54 화. 천총을 역이용하는가. 주공, 왕실의 정당한 명분으로 제후들을 설득해 연합군을 만든다면, 송(宋)나라인들 어찌 견디겠사옵니까? 좋은 방안(方案) 이긴 하나? 주환왕(周桓王)을 만나기가 몹시 거북하도다! 주공. 지난 일을 너무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온수(溫水)와 낙수(洛水) 땅을 우리가 침범한 것은 주환왕(周桓王)이 주공의 경사직(卿士職)을 빼앗으며 우리 주공을 멀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흉년이 들었다고 분명하게 이야기하였기에 충분한 이유를 설명한 것이 되옵니다. 이제 그만큼 곡식을 실어 보내며 사죄하시오면, 주상도 용서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허 어, 거참, 옳은 말이로다! 그렇지! 잘못은 주상에게 있었도다! 주공. 모두 일순간에 지나간 일이오니 모른 체하시고, 주상을 알현(謁見)하시..

제 53 화. 정장공, 다시 움직이는가.

17. 네 나라의 싸움 제 53 화. 정장공, 다시 움직이는가. 위(衛) 나라 주우(洲吁)가 일으킨 5개국 연합군(聯合軍)이 신정(新鄭) 성을 포위하였다가, 위(衛)의 석후(石厚)와 정(鄭) 나라 공자 려(呂), 두 사람이 단둘이서, 단지 한차례 잠시 싸움을 하였을 뿐인데, 5개국 연합군(聯合軍)이 불과 5일 만에 모두가 흩어져 돌아갔다. 이 이상한 전쟁은 천하의 제후와 백성들에게 떠들썩한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이는 천고의 간웅(奸雄)다운 정장공(鄭莊公)이 탁월한 전술을 썼다고 칭찬하는 말도 있고 이에 반하여 주우(洲吁)의 명분도 없는 전술로 멍청한 어부지리를 얻으려 했다는 말도 떠돌았다. 이처럼 천하의 여론 중심에 정장공(鄭莊公)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그만큼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정장공(鄭莊..

제 52 화. 아들을 죽여 대의를 세운다.

제 52 화. 아들을 죽여 대의를 세운다. 진(陳)의 자겸(子鎌)은 갑자기 석작(石綽)으로부터 서신을 전해 받자, 이를 다 읽어보고는, 진환공(陳桓公)과 의논하며 대책을 강구한다. 자겸(子鎌)! 석작(石綽)의 말이 사실이겠소? 주공, 석작(石綽)이 혈서(血書)로 쓴 편지이오며 석작(石綽)은 꾸미거나 거짓말할 사람이 아니옵니다. 어떤 방법으로 어찌하는 게 좋겠소? 위(衛)의 나쁜 일은 우리에게도 나쁜 일입니다. 두 사람은 스스로 죽음을 재촉하고 있나이다. 두 사람이 죽기 위해 진(陳)나라에 오고 있으니, 어찌 죄를 묻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주공, 가까운 위(衛) 나라의 악행을 그대로 넘기면 장차, 우리 진(陳) 나라에 번질 수 있사옵니다! 주공, 위(衛)나라 상경(上卿) 석작(石綽)의 말대로 반드시 죽이..

제 51 화. 미끼를 쫓아가게 하라.

16. 나라를 지킨다. 제 51 화. 미끼를 쫓아가게 하라. 주공, 신 고거미(高渠彌)가 먼저 공격하겠사오니, 주공께서는 염려 마시고 신에게 맡기십시오! 주공, 신 공자 려(呂) 이옵니다. 우리가 저 많은 연합군과 한목에 싸우기에는 우리 군사의 수가 너무나 부족하여 한 번에 저들을 물리치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그렇습니다. 신 채족(祭足)이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주공. 저들이 함께 쳐들어오긴 하였으나 얻으려는 목적은 제각기 나라마다 다르옵니다. 네 나라의 목적이 서로 다르다니 무슨 뜻이오? 노(魯). 진(陳). 채(蔡)는 체면상 가담하였을 것이며, 위(衛) 나라는 주우(洲吁)가 민심을 달래기 위해 쳐들어 왔을 것이므로, 이 네 나라 연합군은 적극적으로 크게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송상공(宋殤公)은 공자 ..

제 50 화. 충동질로 합세하게 하라.

제 50 화. 충동질로 합세하게 하라. 송(宋)나라의 송상공(宋殤公)이 즉위한 일은 불과 서너 달 전으로 주우(洲吁)가 위환공(衛桓公)을 죽이고, 군위를 찬탈(簒奪)할 때와 거의 비슷한 시기였다. 누가 송상공(宋殤公)을 설득할 수 있겠는가? 주공, 영익(寧翊)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익(寧翊)은 말재주가 좋고 임기응변에 능한 사람입니다. 그를 송(宋)나라에 보내면 설득하고 돌아올 것입니다. 좋도다. 어서 영익(寧翊)을 부르라! 송(宋)에 사자로 보낼 사람이 마땅치 않았는데, 마침 석후(石厚)가 영익(寧翊)을 추천했다. 영익(寧翊)의 성은 영(寧)이고 이름은 익(翊)이며, 중모(中牟) 땅에 사는 사람이다. 중모(中牟) 땅은 현 하남성 정주시와 개봉시 사이에 있는 중모현(中牟縣)이다. 그대가 영익(寧翊)인..

제 49 화. 전쟁으로 민심을 돌려라.

제 49 화. 전쟁으로 민심을 돌려라. 위장공(衛莊公)이 죽고 큰아들인 완(完)이 즉위하여 위환공(衛桓公)이 되었으나, 주우(州吁)가 형인 위환공(衛桓公)을 죽여버리고 둘째 아들 진(晉)마저 형(邢) 나라로 달아나버리자, 크게 실망한 어머니 대규(戴嬀)는 눈물을 뿌리며 친정인 진(陳) 나라로 돌아가려 떠나고 있었다. 이때 장강(莊姜)은 대규(戴嬀)와 비록 모르는 사이로 위(衛) 나라 궁궐에서 만났으나, 같이 지내며 너무나 두터운 정을 쌓았으므로 못내 아쉬워하며 이별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장강(莊姜)은 만류할 수도 없어 멀리까지 전송하며, 형제처럼 정들었던 애틋한 마음을 노래하였다. 이 시는 시경(詩經) 국풍(國風) 제3 패풍(邶風)에 실려있으며, 이름이 연연(燕燕)이라는 연민의 애틋한 노래이다. 1...

제 48 화. 반역은 성공할 수 있을까.

15. 위나라의 반역 제 48 화. 반역은 성공할 수 있을까. 상경 석작(石綽)은 위장공(衛莊公)이 주우(洲吁) 공자의 못된 버릇을 고쳐주지 않자, 위(衛) 나라의 장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예의 없는 주우(洲吁) 공자의 거친 행동을 위장공(衛莊公)이 말리지 않으니 큰 걱정이로구나! 주우(洲吁)는 반드시 반역을 일으킬 것인바 이를 어찌해야 하겠는가! 이에 상경 석작(石綽)은 미리 피해를 막을 생각도 하여 보았으나, 위장공(衛莊公)이 그의 간청을 들어주지 않자, 때가 이미 늦었다는 걸 깨닿게 되었으며, 이에 나이가 많다는 이유를 들어, 늙었다면서 조례도 나가지 않으며 집에서 칩거하기 시작했다. 아들 석후(石厚)야. 이리 와 앉아보아라! 예에. 아버님 무슨 일이 있으시옵니까? 어제 어디 갔다 왔..

제 47 화.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제 47 화.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천하가 어지러워질 수 있다니, 무슨 말이오? 정(鄭) 나라는 제후국 중에서 제일 막강한바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르옵니다! 주상, 이번 일은 변방의 작은 일로 보시옵고 차분히 노기를 가라앉히시옵소서! 어떻게 하자는 것이오? 주상. 다행으로 생각하시옵소서! 아니, 다행이라니요? 정장공이 주상을 시험하고 있사옵니다! 짐(朕)을 시험 해 보려고 건드렸단 말인가? 주상, 그러하옵니다. 경사직(卿士職)을 그만두게 한 섭섭함을 이렇게 보복하는 것으로 보이오니, 조용히 지나가면 어떤 반응이 올 것이옵니다! 백성들의 식량은 어찌하면 좋겠소? 왕실도 흉년이 들어 어렵다고 하시면서 여러 제후에게 도움을 받으시옵소서. 주상, 온수(溫水)와 낙수(洛水) 땅의 곡식을 정(鄭) 나라가 갈취해갔..

제 46 화. 왕실의 보복이 시작되는가.

제 46 화. 왕실의 보복이 시작되는가. 왕실의 태자 호(狐)가 정(鄭)나라에 인질로 가 있은 지 1년여가 지나가자, 주평왕(周平王)이 재위 51년 만에 붕어(崩御)하였다, 주평왕(周平王)은 아버지 유왕(幽王)의 방탕한 생활로 견융(犬戎 )의 침공을 받아 유왕(幽王)이 살해당하고 호경(鎬京) 성이 불타 도저히 복구할 수 없게 되자. 서쪽의 호경(鎬京)에서, 동쪽인 낙읍(洛邑)으로 천도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주(周)나라를 서주(西周)와 동주(東周) 시대로 구분하게 만든 불운한 왕이 되었다. 이처럼 주평왕(周平王)은 우여곡절을 많이 겪으며 파란만장한 일생을 오래도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에 정장공(鄭莊公)과 주공(周公) 흑견(黑肩)이 장례를 주관하면서 정(鄭) 나라에 인질로 가 있던 세자 호(狐)를 ..

제 45 화. 왕과 인질을 교환하는가.

14. 왕과 제후의 갈등 제 45 화. 왕과 인질을 교환하는가. 괵(虢)나라에 관해 알아보자, 괵(虢)나라는 주문왕의 동생인 희중(姬仲)과 희숙(姬叔)이 봉해진 제후국의 이름이나 천하의 변천에 따라, 동괵(東虢), 서괵(西虢), 북괵(北虢), 소괵(小虢), 4가지로 변해 갔다. 괵(虢) 나라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므로 괵(虢) 나라를 올바로 알아야 이해하기 좋을 것이다. 1). 동괵(東虢)은 지금의 하남성 형양시 부근에 주문왕의 동생 희숙(姬叔)에게 봉해졌으나, 주평왕 4년에 정무공에 의해 멸망 당하여 편입되며 경성(京城)이 지어졌다. 2). 서괵(西虢)은 주문왕의 동생 희중(姬仲)에 봉해졌으며 주나라가 낙읍으로 동천 하자, 서괵(西虢)도 동쪽으로 이동하여 북괵(虢北)이라 칭했다. 3). 북괵(北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