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 열국지( 001∼94회 )

제 54 화. 천총을 역이용하는가.

서 휴 2023. 3. 30. 07:08

54 . 천총을 역이용하는가.

 

       주공, 왕실의 정당한 명분으로

       제후들을 설득해 연합군을 만든다면,

       송()나라인들 어찌 견디겠사옵니까?

 

       좋은 방안(方案) 이긴 하나?

       주환왕(周桓王)을 만나기가 몹시 거북하도다

 

       주공. 지난 일을 너무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온수(溫水)와 낙수(洛水) 땅을 우리가 침범한 것은

       주환왕(周桓王)이 주공의 경사직(卿士職)을 빼앗으며

       우리 주공을 멀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흉년이 들었다고 분명하게 이야기하였기에

       충분한 이유를 설명한 것이 되옵니다.

 

       이제 그만큼 곡식을 실어 보내며 사죄하시오면,

       주상도 용서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허 어, 거참, 옳은 말이로다

       그렇지! 잘못은 주상에게 있었도다

 

       주공. 모두 일순간에 지나간 일이오니

       모른 체하시고, 주상을 알현(謁見)하시옵소서.

 

       하오나, 주공, 지난해 곡식을 훔쳐 온 일로

       주상께서 주공을 홀대하거나 심하게 비난할 때

       주공께선 과연 잘 참아내실 수 있으신지요?

 

       흠, 그래야 하지 않겠소

       큰 목적을 위하여 참아야지 어쩌겠소?

 

정장공은 세자 홀()과 채족(祭足)에게 국내의 일을 맡기고 왕실로

출발하며, 미리 주공(周公) 흑견(黑肩)에게 연락하여 알려 주었다.

 

       주상. 주공(周公) 흑견(黑肩) 이옵니다.

       정장공(鄭莊公)이 알현하고자 예방하오니,

       옛일을 내색하지, 마시옵고 맞이하시옵소서

 

주환왕도 지난해 정() 나라가 흉년이 들었다며 정군(鄭軍)시켜

온수(溫水)와 낙수(洛水) 지역의 곡식을 모두 갈취해간 사실을

전혀 내색하지 않으면서, 태연하게 정장공(鄭莊公)을 맞이하였다.

 

       정백(鄭伯)! 주상의 건안 하심을 비 옵니다

       주상, 11월 초하루이옵니다.

 

       이는 다가올 새해를 축하하는 기간이므로

       적은 공물이오나 성심껏 가져왔나이다.

 

       경의 나라는 가을걷이가 어떠하오?

       주상의 하늘과 같은 은혜에 평년작은 하였사옵니다.

 

       올해는 온수(溫水)의 보리와 낙수(洛水)의 벼가

       잘 익어 짐()도 넉넉하게 되었도다

 

이때는 제후마다 가을 추수를 하여, 한창 공물을 바치고 있을 무렵

이었으므로, 주환왕(周桓王)도 여유가 생겨나고 있었다.

 

이에 지난해 정군(鄭軍)이 온수(溫水)와 낙수(洛水) 지역의 보리와

벼를 모두 갈취해간 일을 상기시키려는 듯 인사도 제대로 받지

않으며 쳐다보지도 않고 비아냥거리는 것이다.

 

       경()에게 기장 쌀 열 수레를 보내는바

       이것으로 흉년에 잘 대비토록 하라

 

정장공(鄭莊公)은 주환왕(周桓王)의 비웃음과 조롱을 계속 받다 보니,

()나라를 토벌하겠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입술만 깨물며

울분을 참고 앉아 있다가,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오고 말았다.

이때가 주환왕(周桓王) 재위 3년 차이며 기원전 717년의 일이다.

 

       정장공(鄭莊公)은 제족(祭足)이 부탁한 바가 있으므로

       주환왕(周桓王)의 빈정거림에도 한마디 변명도

       못 하면서, 입술을 깨물며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영채(令寨)에 돌아와 울분을 삭이고 있는데, 그때 난데없는 수레

소리가 나면서 주공(周公) 흑견(黑肩)이 갑자기 찾아온 것이다.

 

       주공(周公) 흑견(黑肩)께서 무슨 일이십니까

       웬 비단(緋緞)을 두 수레나 가져왔소이까

 

       이렇게 개인적으로 선물하시는 것은

       왕실의 뜻을 어기는 것이 아니겠소?

 

       그렇기는 하지요. 그러나 받아두시오

       흑견(黑肩) !무슨 부탁이라도 있는 것이오?

 

       그렇소주환왕(周桓王)에게는 큰아들 타()

       둘째 아들 극()이 있는 바이나,

       주상은 둘째 아들 극()을 더 총애합니다.

 

       머잖은 장래에 적장자(嫡長子)의 지위를

       빼앗으려는 음모가 일어날까 걱정이 되는 바이오

 

       그때, 정백(鄭伯)께서 도움을 주시기 바라며

       아무쪼록 주상과 잘 지내시길 부탁하는 바이오

 

주공(周公) 흑견(黑肩)이 갑자기 비단 두 수레를 싣고 와 선물로

주고 돌아가자, 정장공(鄭莊公)은 같이 온 신료들을 영채(令寨)

모두 모이게 하여, 구수회의(鳩首會議)를 하고 있는데, 이때 또

왕실에서 기장쌀 열 수레를 보내주어 도착하고 있었다.

 

       기장, 쌀 열 수레이옵니다.

       받아두었다가 흉년에 잘 쓰라는 주상의 분부이십니다.

 

       주상이 나를 완전히 놀리는구나

       이 기장, 쌀 열 수레를 받아야 하겠는가?

 

       주공, 신 공자 려() 이옵니다.

       주공,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하옵니다.

 

       주상이 내리신 물건을 천총(天寵)이라 합니다.

       천총(天寵)은 좋건 싫건 받으셔야만 합니다.

 

       천하의 제후들이 우리 정 나라를 존중하는 이유는

       누대에 걸쳐 주 왕실에 경사직(卿士職)을 봉직하며

       왕실을 보좌해 왔기 때문입니다.

 

       만일 받지 않으신다면 왕실을 무시하는 행동으로

       왕실의 믿음을 잃게 되면서 등을 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천하의 백성이나 제후들도 비난할 것이며

       모두에게 따돌림을 당할 수 있사옵니다.

 

       주공, 일단은 모르는 척하면서 받아두십시오.

       주공(周公) 흑견(黑肩)의 비단은 어찌해야겠소?

 

       주공(周公) 흑견(黑肩)의 비단을 받으면

       장차 부담되는 일이 생기지 않겠는가

 

       저 비단 두 수레를 돌려주는 것이 어떻겠소?

       주공, 꼭 그렇지는 안 사 옵니다.

 

       주공, 주공(周公) 흑견(黑肩)은 전부터

       우리 정() 나라에 의지하려는 마음이 큽니다.

 

       지난번에 우리가 온수(溫水)와 낙수(洛水) 지역의

       양곡을 훔쳐 왔을 때도, 몹시 화를 내는

       주환왕(周桓王)을 만류해준 사람이었습니다.

 

       주공. 비단을 돌려주지 말고 받으시옵소서.

       채색 비단은 장차 쓸데가 있을 것입니다

 

       그걸 받아 어디에 쓴단 말이오?

       주공. 우리가 왕실을 찾아온 목적에 씌시옵소서

 

       우리가 주환왕(周桓王)을 알현한 사실을

       이제는 모르는 나라가 없게 될 것이옵니다.

 

       주상께서 보내신 기장, 쌀 열 수레마다

       선물로 받은 비단을 나눠 싣고,

       비단(緋緞) ()로 덮어 씌워놓는 것입니다.

 

       그 위에 붉은 화살과 붉은 활을 얹어놓으면서

       주상의 어명(御命)을 받은 것으로 위장하는 것입니다

 

       주공, 왕사군(王師軍)을 승낙하여 주신 것으로

       천하 모두가 알도록 소문을 퍼트리는 것이지요

 

       아니, 왕사군(王師軍)으로 만들란 말인가

       나는 주환왕(周桓王)께 송()나라를 치겠다는 말도

       꺼내지도 못하고 돌아왔잖소

 

       허 참, 그런데 왕사군(王師軍)을 허락해준 것으로 하다니?

       허허, 그게 가능한 일이겠소

 

       허 참, 오 호. 그렇구나!

       왕사군(王師軍)의 명분을 갖게 된다면

       당당히 송()나라를 토벌하기 쉽겠구나

 

       공자 려지혜로운 사람이란?

       경과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소

       과인은 경이 말 한 바를 어김없이 따르리라

 

() 나라의 귀국 행렬은 대단히 화려하였으며, 비단을 실은 열

개의 수레가 맨 앞장을 서서 나오며, 낙읍(洛邑)을 벗어나자마자,

몸집이 큰 군사들이 큰소리치면서 지나가는 것이다.

 

       송()나라가 오랫동안 조공을 바치지 않아,

       어명을 받들어 송()나라를 토벌하게 되었노라

 

정군(鄭軍)의 행렬은 귀국길 내내 어명(御命)을 떠벌리면서, 큰소리로

()나라를 토벌한다면서 지나가자, 이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믿을

수밖에 없었으며, 또 이 소문은 송()나라에 비상이 걸리게 하였다.

 

다급해진 송상공(宋殤公)은 위() 나라의 위선공(衛宣公)에게

쫓아가, 적당한 뇌물을 주며 도와 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하게 되었다.

 

       위공(衛公)은 우리 송나라를 좀 도와주시오

       송공(宋公)은 너무 염려치 마시오

       많은 보물도 받았으니 내 꼭 도와주겠소이다

 

       위공(衛公)은 어떻게 하려는 것이오

       앞으로 송(). (). (). () 네 나라가 만나

       맹회(盟會)를 열어 동맹(同盟)을 맺는 것입니다.

 

       동맹(同盟)을 맺었는데 어찌 쳐들어올 수 있겠소

       정() 나라가 쳐들어오겠다는데 동맹을 맺겠소

 

       그리되도록 해봐야 하지 않겠소이까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소이까

 

위선공(衛宣公)은 송상공(宋殤公)의 뇌물을 받아 챙기고는,

와옥(瓦屋) 땅에서 맹회(盟會)를 갖자고 하면서, 의도적으로 정

나라를 빠트리고 () 나라에만 사신을 보내고 마는 것이었다.

 

맹회(盟會) 날이 되자, 제희공(齊僖公)은 당도하였으나, ()

나라 정장공(鄭莊公)은 끝내 오지 않았으며, 세 나라만 모이게 되자,

송상공(宋殤公)이상히 여겨 다급하게 물어본다.

 

       아니, 위공(衛公) 어찌 된 것이오

       네 나라가 맹회(盟會)를 갖자고 하였는데

       어째서 정() 나라가 안 오는 것이오

 

55 . 가짜 어명을 사용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