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 열국지( 001∼94회 )

제 52 화. 아들을 죽여 대의를 세운다.

서 휴 2023. 3. 27. 15:11

52 . 아들을 죽여 대의를 세운다.

 

진(陳)의 자겸(子鎌)은 갑자기 석작(石綽)으로부터 서신을 전해 받자,

이를 다 읽어보고는, 진환공(陳桓公)과 의논하며 대책을 강구한다.

 

       자겸(子鎌)! 석작(石綽)의 말이 사실이겠소?

       주공, 석작(石綽)이 혈서(血書)로 쓴 편지이오며

       석작(石綽)은 꾸미거나 거짓말할 사람이 아니옵니다.

 

       어떤 방법으로 어찌하는 게 좋겠소?

       위()의 나쁜 일은 우리에게도 나쁜 일입니다.

 

       두 사람은 스스로 죽음을 재촉하고 있나이다.

       두 사람이 죽기 위해 진()나라에 오고 있으니,

       어찌 죄를 묻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주공, 가까운 위() 나라의 악행을 그대로 넘기면

       장차, 우리 진() 나라에 번질 수 있사옵니다

 

       주공, ()나라 상경(上卿) 석작(石綽)의 말대로

       반드시 죽이시어 천하의 본보기로 만드십시오

 

()나라는 순()임금의 나쁜 아들 상균(商均)에 의해 순()

임금의 제사가 끊기게 되면서 상() 왕조까지 이르게 되었다.

 

주무왕(周武王)이 주()나라를 세우면서, ()임금의 후손 중에

규만(嬀滿)이라는 사람을 찾아내어 진() 땅에 봉하고,

()임금의 제사를 받들도록 했다.

이 규만(嬀滿)이라는 사람이 곧 호공(胡公)이다.

 

       호공(胡公)은 대대로 도공(陶工)으로 살아왔으며,

       그들이 만든 도자기(陶瓷器) 그릇이

       백성들의 생활에 아주 큰 도움을 주었기에,

 

       주무왕(周武王)은 이들의 일을 매우 치하하면서,

       딸 읍강(邑姜)을 호공(胡公)의 아내로 삼게 하였고,

 

       진(陳) 땅의  완구(宛丘)에 도성을 짓게 했으며

       또한, 후작(侯爵)의 작위까지 내려준 나라이다.

 

진환공(陳桓公)의 동생인 공자 타()는 주우(洲吁)와 석후(石厚)

반갑게 맞이하며, 객관(客館)에 머무르도록 공손하게 안내하였다.

 

       편안하게 기침(起寢)하셨는지요?

       친절히 보살펴주시어 고맙소이다.

 

       진후(陳侯)께서 태묘(太廟)에서 뵙자고 합니다.

       아니, 어찌 조상의 위패(位牌)를 모신 태묘(太廟)로 갑니까?

 

       하하, 우리 태묘(太廟)에는 선조들의 많은

       도자기(陶瓷器) 작품이 전시되어 있지요!

 

       또한, 주요한 분의 이야기는 기밀이 새 나가지 않도록

       우리 주공께서는 반드시 태묘(太廟)에서 접견하십니다.

 

       두 분은 어서 오십시오.

       이제부터는 이 자겸(子鎌)이 안내하겠습니다.

 

       반갑고 고맙습니다.

       아니, 이 큰 팻말은 왜 서 있습니까?

 

       충성치 못한 자와 불효한 자는

       이 태묘(太廟)에 들어가지 마라니요?

 

       이 팻말을 세운 뜻이 무엇인지요?

       그저 우리 선군께서 남기신 교훈입니다.

 

       우리 주공께서는 그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특별히 이곳에 큰 팻말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저 교훈(敎訓)에 불과하지요.

 

공자 타()는 따라온 위군(衛軍)을 태묘(太廟) 밖에 머무르게 하여

자연 스럽게 분리(分離)시키며, 두 사람만이 태묘 안으로 들어가

아름답고 기묘한 도자기 작품들을 한동안 구경하다가, 조용히

손님 자리에 앉아 진환공(陳桓公)을 기다리게 되었다.

 

       진환공(陳桓公)이 들어오자 주우(州吁)

       예물 목록을 바치고 예를 올리려고 무릎을 꿇었다.

 

이때 별안간 자겸(子鎌)이 고함지르며 꾸짖자, 미리 숨어있던 힘센

갑사들이 갑자기 몰려나와 일순간에 주우와 석후를 결박시켜버리니,

둘은 엉겁결에 반항도 하지 못하고. 묶인 채 끌려가게 되었다.

 

       진()나라 태묘(太廟)는 신성한 곳이다.

       어찌 불충한 자가 이곳에 들어왔단 말이냐?

 

       이 자겸(子鎌)은 두 사람에게 위() 나라의 재상

       석작(石綽)의 편지를 소리 높여 읽어 주노라.

       어서, 저 두 놈을 끌고 나가라!

 

그제야 주우와 석후는 이 모두 석작(石綽)이 주모(主謀)하여()

나라의 손을 빌려 처벌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또한 이를

위군(衛軍)의 군사들에게 알리자, 군사들은  하늘의 이치로 보아

당연한 일이라고 인정하며 몸을 다치지않고, 위(衛)나라로 돌아갔다.

 

       州吁昔日餞桓公 (주우석일전환공)

       주우가 지난날 환공을 전별연에서 죽였는데

 

       今日朝陳受禍同 (금일조진수화동)

       오늘은 진나라 조당에서 똑같은 화를 당하는구나.

 

       屈指爲君能幾日 (굴지위군능기일)

       손꼽아 세어 보라! 군주 노릇을 며칠이나 하였나?

 

       好將天理質蒼穹 (호장천리질창궁)

       하늘의 도리가 무언지 푸른 하늘에 물어보라.

 

한편 진()나라 사자는 밤낮으로 쉬지 않으면서 위(衛)나라로

달려갔으며, 석작(石綽)에게 모든 사실을 알려주었다.

 

       석작(石綽)께선 그동안 안녕하신지요?

       이 자겸(子鎌)이 오랜만에 소식을 전합니다.

       보내신 편지의 뜻을 이행하였소이다!

 

       상경 석작(石綽)께서 말씀한 대로

       주우(洲吁)는 복읍(濮邑)에 가두어놨으며

       석후(石厚)는 도성(都城)의 옥에 있소이다.

 

       수행하였던 위군(衛軍)은 모두 살려 보냈으며

       석후(石厚)는 귀공(貴公)의 하나뿐인 아들인바

       둘 다 죽이지 못하고 있소이다!

 

석작(石綽)은 진()나라 재상 자겸(子鎌)의 편지를 받자, 급하게 대부

우재(右宰) ()와 가신 누양견(獳羊肩)을 진()의 완구(宛丘)

보내며, 주우(洲吁)와 석후(石厚)의 참수 장면을 지켜보게 하였다.

 

       대부 우재(右宰) ()와 가신 누양견(獳羊肩)은 함께

       진()나라 도성인 완구(宛丘)에 당도하여

 

       먼저 진환공(陳桓公)을 알현하고, 반란자들을

       대신 체포해 준 일에 깊은 감사를 드렸다.

 

대부 우재(右宰) ()가 복읍(濮邑)에 이르러 주우(洲吁)를 시정의

한가운데로 끌고 나오게 하여 목을 치려고 하였다.

 

       너는 나의 신하가 아니냐?

       어찌 감히 나를 범하려 드느냐?

 

       위() 나라에 신하로 군주를 시해한 자가 있었다.

       내가 그를 본받아 행하고자 할 뿐이다!

 

주우(洲吁)가 우재 추에게 큰소리로 외쳤으나 우재 추의 답변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 하고 머리를 숙여 순순히 형을 받았다.

 

한편 누양견(獳羊肩)은 완구(宛丘)의 옥에서 석후(石厚)를 끌어내

형을 집행하는 자리에 참석했다.

 

       나의 죄는 죽어 마땅하나 부친의 얼굴이라도

       한 번 뵙고 형을 받들면 안 되겠소?

 

       부친의 명을 받들어 반역도를 죽이러 왔다.

       기어이 부친을 뵙고자 한다면

       너의 목을 가져가 상면시켜 주겠노라!

 

석후(石厚)가 아저씨처럼 따르던 가신 누양견(獳羊肩)에게 말했으나

그는 주저하지 않고, 즉시 허리에 차고 있던 자신의 긴 칼을 뽑았다.

 

       여기에서 큰 의리를 지키기 위하여 부모와 형제도

       돌보지 않는다는 대의멸친(大義滅親)이란 말이 생겨났다.

 

       대의멸친(大義滅親)이란?

       큰 대, 옳을 의, 멸망할 멸, 친할 친.

       큰 의리를 지키기 위해 부모와 형제도 돌보지 않는다.

 

대부 우재(右宰) ()와 가신 누양견(獳羊肩)은 진환공(陳桓公)

재상 자겸(子鎌)에게 석작(石綽)이 감사하는 말을 올리고 돌아왔다.

 

       대부 우재(右宰) ()는 수고하시었소!

       부중(府中)에 신료들이 다 모였다 하니

       함께 부중(府中)으로 들어가도록 합시다.

 

       모든 대부는 잘 들이시오!

       이것이 진()나라 재상 자겸(子鎌)의 편지요?

 

       대부 우재(右宰) ()가 확인하고 돌아왔듯이

       이제 주우(洲吁)와 석후(石厚)는 참수를 당하였소.

       이 모두 우리 위() 나라 종묘사직을 위하는 일이었소!

 

       주우(洲吁)는 죽어 마땅하겠으나,

       석후(石厚)는 그저 주우(洲吁)를 따른 것이며

       더욱이 석후(石厚)는 재상의 하나뿐인 아들이라

       살려둘 수도 있었지 않았겠소?

 

       주우(洲吁)의 반역은 모두 내 자식이 꾸민 일이었소.

       석후(石厚)가 나라에 너무 많은 폐를 끼친 것이오.

 

       이 석작(石綽)도 반역을 막지 못한 무능함을 한탄하오.

       이제 위환공(衛桓公)의 혼령께 사죄할 따름이오.

 

중신들의 뜻을 모은 석작(石綽)은 형() 나라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던 공자 진()을 모셔왔으며, 신료들은 정중히 호위하였다.

 

       공자 진()은 비명에 죽은 형 위환공(衛桓公)을 위하여,

       종묘에 제사를 올리고 보위(寶位)에 올라가니,

       이분이 위() 나라 제15대 위선공(衛宣公)이 된다.

 

이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쓴 좌구명(左丘明)은 석작(石綽)에게

감명 받아 다음과 같은 글을 써서 넣는다.

 

       公義私情不兩全 (공의사정불양전)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은 같이 행할 수 없어

 

       甘心殺子報君寃 (감심살자보군원)

       기꺼이 아들을 죽이고 군주의 원한을 갚았구나.

 

       世人溺愛偏多昧 (세인익애편다매)

       자식 사랑에 눈이 멀어 분별력을 잃은 속인들은

 

       安得芳名壽万年 (안득방명수만년)

       어찌 아름다운 이름을 만세에 전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농서거사(隴西居士)는 석작에 대해 논하기를 석후가 주우와

같이 돌아다니며 시정을 어지럽히고 다닐 때 죽이지 않았기에,

후에 주우(洲吁)와 같이 시군(弑君)의 죄를 저지르게 했다고 하였다.

이후로 진()과 위() 두 나라는 더욱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53 . 정장공, 다시 또 움직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