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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에 있는 돌

골목길에 있는 돌 서 휴 저만치 트인 골목엔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였다 흩어지고 아이는 뙤약볕 아래 커다란 성벽을 쌓을 듯 돌을 모으며 다듬다가 일어나 세상에 나서려는 듯 선을 그었습니다. 출발선인가 보다 아이는 선을 밟고 있다가 선 앞으로 나아가 커다란 동그라미도 그렸습니다. 아이는 출발선에 다시 와 동그라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동그라미 안에 들어가 돌을 놓으며 서로 부딪치며 다듬어주고 서로 받쳐주고 메워주며 쌓이고 있는 돌의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서로 당겨주고 밀어주고 받쳐주며 동그란 세상을 쌓아 올리듯 살아가고 있다는 말을 골목을 지나는 아무도 말하여 주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올렸다 내렸다 쌓았다 허물었다 출발선에 섰다가 동그라미 안에 들어갔다가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다음날에도 ..

마음 이야기 2012.03.23

정력요리

정력요리 서 휴 최고의 정력 요리는 얼마나 좋은 걸까? 가장 좋은 정력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옛날엔 왕이나 황제나 천황일 것이며 지금은 대통령이나 수상이나 그룹사의 회장님들이나 아니다. 먹을 수 있는 돈만 있으면 된다. 이들은 드는 돈 걱정 안 하고 좋은 걸 골라서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먹고 싶다고 해도 그에 맞는 식재료가 있어야 하고 잘 만들 수 있는 요리사가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넉넉한 시간과 여유로운 마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청나라 6대 건륭황제는 세계요리의 정수라 하는 만한전석이라는 요리를 좋아하였다는데 재료만 예를 들어도 요란하다 곰의 오른쪽 앞발바닥, 낙타의 혹과 발바닥, 표범의 태아, 원숭이의 골과 입술, 백조, 공작, 거북, 뱀, 쥐..

음식 이야기 2012.03.22

부평 초의 사랑

부평 초의 사랑 서 휴 바닥에 뿌리 내리지 않으며 한곳에 머물지도 않으며 파도에 휩쓸려도 자맥질하여 줄기와 이파리를 다시 세우는 떠다니는 한낱 풀로 태어났지요. 흘러가는 데로 살아간다고 나를 부평초라 부른답니다. 뭐 좋은 게 있나? 뭐 맛있는 게 있나. 날 보고 기웃거린다고 하네요.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며 기웃 꺼리는 것이 나의 모습이라고 다들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기우뚱 갸웃뚱 흘러가다 보니 그렇게들 말하는 것 같습니다 떠다니며 이런 곳도 가보고 떠다니며 저런 곳도 가보고 이런 이야기도 들어보고 저런 이야기도 들어봅니다. 보는 곳이 많고 듣는 것이 많으니 한곳에 붙박이처럼 사는 이들이 부러워하기도 하고 때론 손가락질한답니다 한곳에서 성실하게 살아가지 못한다고요 역마살이 끼었냐고요 예. 나는 그런 풀입니..

생활 이야기 2012.03.22

거문도의 밤

巨文島의 밤 서 휴 거문도 巨文島 수월산 水越山 외로운 등대燈臺 바람은 몸을 스치고 파도에 달빛이 부서진다. 등대 불빛에 맺혀 다가오는 그림자 날이 새면 헤어져야 하는 밤 그대 가슴에 얼굴 묻어 울고 있을 때 그대는 쓰다듬으며 맺힌 이슬에 말은 하지 않았다. 사랑도 세월도 가고 수월 산 등대만이 깜박이는 밤 그대의 숨결이 먼 어선의 불빛이 되어 반짝인다. 달빛도 별빛도 파도에 흩어지며 내 마음처럼 그리움이 반짝인다.

사랑 이야기 2012.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