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열국지( 401∼500회)

제 413 화. ​​노와 제, 서로 돈독해지는가.

서 휴 2023. 12. 28. 17:26

 413 ​​노와 제서로 돈독해지는가.

 

새해가 되자, ()의 군신들이 조당에 모여 노선공(魯宣公)에게

하례를 올리었다. 하례가 끝나자 중수(仲遂)는 노선공에게 다가갔다.

 

       주공안주인 자리가 아직 비어 있나이다.

       지난번 제혜공(齊惠公)과 혼인을 약속하였나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으나 더는 늦출 수가 없나이다.

       좋소 누가 제()나라에 가서 혼사를 주선하겠소

 

       신이 혼사의 일을 청하였던 바이오니

       신이 빨리 다녀오도록 하겠나이다.

 

이에 노선공(魯宣公) 망설이지 않고 받아들이자, 중수(仲遂)

그날 밤 독대를 청하여 노선공과 마주하게 되었다.

 

       주공제혜공(齊惠公)과 장인과 사위 사이가

       된다고 하더라도두 나라의 우호 관계가

       오래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주공께서 군위를 얻으신 방법이 정상적이지

       않았기 때문에그 자리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맹에 참가하여 제후의 반열에 서야만

       비로소 군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나이다.

 

       신은 삽혈(歃血) 의식을 행하면서매년 빠지지 않고

       조빙(朝聘사절을 보내기로 맹세하였었나이다.

 

       그때의 약속으로 제후(齊侯)로부터

       주군의 자리를 후원 받게 된 것입니다.

 

       제후(齊侯)와의 약속이 이러하였사오니,

       재물을 아끼지 마시고 회합을 청하시옵소서.

 

       제후(齊侯)가 뇌물을 받고 회합을 허락한다면

       주군께서는 제후(齊侯)를 정중히 모셔야만 합니다.

 

       두 나라의 군주가 서로 친하게 된다면,

      주군의 자리는 태산처럼 튼튼하게 만들어집니다.

 

노선공(魯宣公)은 이 같은 말을 다 듣고 나자, 중수(仲遂)

삽혈(歃血) 의식에서  맹세한 내용을 이행하기로 약속해 주었다.

 

중수(仲遂)와 행보(行父)는 사신으로 임명되자, ()에 찾아가

제혜공(齊惠公)에게 노()나라의 국서(國書)를 바치기로 했다.

 

       제후(齊侯)의 보살핌으로 ()나라의 새로운

       군주가 되어 종묘를 지키게 되었나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혹 제후(諸侯)의 반열에 끼이지

       못하게 되어, 제후(齊侯)의 체면에 욕이 되지나

       않을까, 매우 근심하고 있사옵니다.

 

       제후(齊侯)께서 저를 어여삐 생각하신다면

       저와의 회합을 한번 허락해 주시옵소서

 

       변변치는 안 사 오나, ()의 진문공(晉文公)

       성복(城濮전투 당시 초()에서 빼앗아 우리에게

       하사한 제서(濟西)의 땅을 상국에 바치려고 하오니,

 

       제후(齊侯)께서 우리의 성의로 받아 주신다면

       저로서도 무한한 기쁜 일이 되겠나이다.

 

국서(國書)를 읽어본 제혜공(齊惠公)은 크게 기뻐하였으므로그해

여름 5월에 노후(魯侯)와 평주(平州) 땅에서 회합하기로 승낙했다.

평주(平州)는 지금의 산서성 래무시(萊蕪市서쪽에 있다.

 

이윽고 회합하는 날이 되자()와 노(), 두 나라의 군주가

모두 평주(平州)에 당도 했으며먼저 장인과 사위로서의 정의를

표한 후에, 다시 상호 군주로서 예를 갖추어 인사를 나누었다.

 

       신 중수(仲遂), 제서(濟西땅의 지적부와

       지도를 제후에게 바치나이다.

 

제혜공(齊惠公)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이자두 나라 군주는

바라던 일을 끝마치고 각기 자기 나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이다.

 

       주공신 중수(仲遂한 말씀 올리고자 하옵니다.

       성강(聲姜마마가 제()나라 별궁에서

       옳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에 두면, 어떤 일을 꾸밀지 모르오니,

       차라리 우리가 모시고 가는 것이 좋겠나이다.

 

이에 노선공(魯宣公)이 허락하자중수(仲遂)간곡한 편지를

써서 완성하자 사자를 시켜 성강(聲姜)에게 보냈다.

 

       성강(聲姜마마선군을 생각하시옵소서

       ()가 친정이라 하는데 왜 별궁에 계시옵니까

 

       성강(聲姜마마별궁은 감옥과 같은 곳이옵니다.

       그 열악한 곳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시겠습니까

       성강(聲姜마마()나라에 계시느니만 못하옵니다.

 

       지난 일을 눈물로 사죄드리오니, 조금이라도

       마음을 푸시어, 어서 노()나라로 돌아오소서

 

다행히 성강(聲姜)의 허락이 떨어지자행보(行父)가 사신으로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성강(聲姜)을 모시고 노()나라로 돌아갔다.

 

       이렇게 어려운 일을 매듭 짓게 되자,

       중수(仲遂)는 이제부터 베개를 높이 베고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다면서 마음을 놓았다. 

 

이때부터 노()나라의 군주가 직접 제나라를 방문하여 제후에게

조현(朝見)하고 돌아오면, 다시 뒤를 이어 조빙(朝聘) 사절이

출발하곤 하면서, 제()나라를 극진히 받들기 시작했으며,

또한 ()나라에도 계속 사절을 보내며 우호를 이어나갔다.

 

       이처럼 노()의 군신들은 앞다투어 허구한 날

       제()를 왕래하면서 많은 세월이 지나가게 되며 

       비록 영이 없다, 해도 따르지 않을 수 없었고,

       또한시키지 않는다 해도 받들지 않을 수 없었다.

 

숙힐(叔肹)은 비록 노선공(魯宣公)의 동복(同腹)동생이었으나,

그는 사람됨이 정직했으므로 욕심없이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숙힐(叔肹)은 어머니와 형이 중수(仲遂) 음모를 벌려 동생들인

세자 오()와 시()까지 죽이고 스스로 군위에 오르는 걸 보며

마음속으로 그 일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조당에도 일절

나가지 않았으며 형인 노선공(魯宣公)에게 하례도 드리지 않았다.

 

       친구 숙힐(叔肹)은 무얼 하고 있소

       주군께서 중용(重用)하려 하시는데한사코

       부름에 응하지 않는다니 무슨 일이 있는 거요

 

       나는 원래 부귀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이오

       내가 형님을 보게 되면 죽은 동생들이 생각남으로

       내가 이를 참지 못하게 될까 봐 참고 있는 것이오

 

       그대가 형의 일을 불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어찌하여 타국으로 망명이라도 가지 않는 것인가

 

       나의 형이 아직 나를 잊지 못하고 있는데

       내가 어찌 감히 형과의 인연을 끊을 수 있겠소

 

노선공은 때때로 사람을 보내 숙힐이 사는 형편을 살펴보면서,

생활에 불편하지 않도록 곡식과 비단을 보내주지만숙힐(叔肹)

오히려 보낸 곡식과 비단을 받지 않으면서 말했다.

 

       이 힐()이 다행히 추위에 떨며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니니 감히 나라의 공물을 축낼 수 없다고 전하라

 

       숙힐(叔肹이는 군명(君命)이옵니다.

       받지 않으시면 신이 혼이 나게 되옵니다.

 

       그렇다면 내 집에 양식이 떨어질 때 청하마.

       오늘만은 내가 감히 받을 수 없다고 전해라

 

사자가 여러 번 군주의 명이라고 받아 줄 것을 간청하다가 돌아가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친구가 숙힐(叔肹)에게 말했다.

 

       그대가 작록(爵祿)을 받지 않음으로써

       그대의 뜻은 세상에 충분히 밝혔다고 보네

 

       그대의 집에 양식이 다 떨어졌다는 걸 나도 아네.

       보내온 것들을 조금이나마 받아들여 끼니라도

       삼는다 해서 그대의 청렴함을 더럽히지 않을 것일세

 

       작록(爵祿)도 받지 않고 보내온 양식도 들이지 않으니

       이는 오히려 가족에게 심한 짓이 아니겠는가

 

숙힐(叔肹)이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자그 친구는 매우

탄식하더니, 어쩔 수 없이 섭섭하게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주공, 숙힐(叔肹공자께서는 아무것도 받지 않나이다.

       양식이 떨어져 가족들이 고생한다고들 하는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정말 모르겠구나.

 

       내관은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몰래 살펴보고 자세히 말하도록 하라

 

내관은 밤이 되기를 기다려 다시 숙힐(叔肹)의 집에 찾아갔으며

몰래몰래 자세히 살피고 난 후에 다시 돌아와 아뢰었다.

 

       주공숙힐 공자께서는 매일 밤 등불을 밝혀가면서

       밤새 신발을 엮어 아침이 되면 내다 팔아서

       그 돈으로 양식을 구해 생활하고 있나이다.

 

       허허내 동생 숙힐(叔肹) ,  내 말 좀 들어보아라.

       너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닮으려 하느냐

       수양산(首陽山)에서 고사리나 먹으며 살려 하느냐

 

       형님용서하십시오

       이 동생은 마땅히 백이와 숙제가 되고자 하옵니다

 

한결같이 지조를 지키던 숙힐(叔肹)은 노선공이 죽기 바로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숙힐(叔肹)은 죽을 때까지 그의 형인 노선공으로부터, 단 한 필의

비단이나단 한 톨의 곡식도 받지 않았으며더욱이 평생토록

그 형의 잘못에 대해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나라 백성들은 숙힐(叔肹)의 고결함을 높이

       칭송했으며 다음 해가 되자 노선공(魯宣公)도 죽었다.

 

노선공(魯宣公)은 노문공(魯文公)의 서(장자로 태어나 이복

동생인 어린 세자 오()()까지 죽이즉위하여

재위 18년 만인 기원전 591년에 죽었다.

 

       노선공(魯宣公)은 즉위 과정의 그 정통성 때문에

       중수(仲遂)와 득신(得臣등의 삼환씨(三桓氏)

       세력에 억눌려 지내며 별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노선공(魯宣公)이 죽자, 아들 흑굉()13세의 어린 나이에

노후(魯侯)의 자리에 올라 노성공(魯成公) 되었으며, 즉위하고

나자숙힐(叔肹)의 아들 영제(嬰齊)를 대부로 삼았다.

 

 414 . 초장왕은 어떤 인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