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4 화. 사회, 손수 육탄으로 사죄하는가.
사회(士會)와 위수여(魏壽餘)는 하수(河水)를 건너오게 되었으며,
하동(河東)이 있는 동쪽을 향해 바삐 가고 있는데, 미처 얼마
가기도 전에 한 떼의 군마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왔다.
수계(隨季) 임께서는 무량(無量) 하시옵니까?
그대 소년 장군은 누구 이기에 나를 부르는가?
저를 모르시옵니까? 바로 조삭(趙朔) 이라 합니다!
사회(士會)는 선조께서 수(隨) 땅을 식읍(食邑)으로 받았기에 부르는
자를 수계(隨季)라 했다. 사회(士會)가 가까이 다가오는 소년 장군을
보니 바로 조삭(趙朔)으로 중군 원수 조돈(趙盾)의 아들이었다.
조삭(趙朔)은 어쩐 일로 마중을 나왔는가?
부친의 명을 받들어, 다시 진(晉) 나라로 돌아오시는
두 분을 기다렸다가 영접하라 하시었나이다.
수계(隨季) 임, 뒤를 따라오는 우리 진군(晉軍)도
이미 당도하고 있을 것입니다.
조삭(趙朔)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십여 대의 병거(兵車)가
한 번에 들이닥쳤으며, 이어서 사회(士會)와 위수여(魏壽餘)를
수레에 태우고는 강성(絳城)을 향해 달려갔다.
사회(士會)는 하수(河水)를 잘 건너갔는가?
주공, 그렇사옵니다. 하오나, 갑자기 진군(晉軍)의
병거가 나타나더니 두 사람을 수레에 태우고
강성(絳城)을 향해 바람과 같이 사라져버렸나이다.
뭣이라고! 나를 속였단 말이냐?
허, 그게 정말이냐? 서로 짰단 말이더냐?
아주 괘씸한 놈들이구나!
우리 진군(秦軍)은 지체하지 말고, 빨리
하수(河水)를 건너가 저놈들을 무찔러 버려라!
한편 진강공(秦康公)은 하수(河水)를 건너간 두 사람을 감시하기
위해 정탐 병을 보냈다가, 돌아와 보고하는 말을 듣고는 몹시
화가 나 침공하려 했다. 그때 또 다른 보고가 올라온다.
주공, 하수(河水) 건너 동쪽 편에 또 다른
진군(晉軍)이 당도하고 있사온데 대군(大軍) 입니다.
대군(大軍) 이라니? 그 장수들은 누구인가?
그 대장은 순림보(荀林父)와 극결(郤缺) 이라 합니다.
주공, 대장 서걸술(西乞術) 이옵니다.
저 진군(晉軍)은 우리가 하수(河水)를 건너지
못하도록 방어하기 위해 온 것이 분명합니다.
주공, 우리 진군(秦軍)은 위읍(魏邑) 만을 점령하기 위해
가볍게 왔사오니, 여기서 회군(回軍) 함이 좋겠나이다.
진강공(秦康公)이 진군(秦軍)과 함께 돌아가자, 순림보(荀林父)와
극결(郤缺)도 진군(晉軍)을 이끌고 강성(絳城)으로 돌아갔다.
진(秦)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6년 만에 다시 강성(絳城)으로
돌아오게 된 사회(士會)의 마음은 감개무량(感慨無量) 하였다.
사회(士會)는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오?
주공께 육단(肉袒)으로 죄를 빌려는 것이오!
주공께 이 사회(士會)의 죄를 전해주시오!
사회(士會)는 조당(朝堂) 앞에서 윗옷을 벗어 맨몸을 드러내었으며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육단(肉袒)으로 죄를 청했다.
주공께서 조당(朝堂) 안으로 들라 하십니다.
사회(士會)! 경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도다!
어서 옷을 갖추고 육경의 반열에 서도록 하라!
사회(士會)는 다시 육경의 반열에 서게 되었으며, 이때 조돈(趙盾)은
위수여(魏壽餘)의 공로를 몹시 칭찬하고, 진영공(晉靈公)에게
천거하자, 그에게 병거 10승을 하사하며 대부의 벼슬을 주었다.
그 후 진강공(秦康公)은 사람을 시켜 사회(士會)의 아내와 아들을
진(晉) 나라로 돌려보내 주며, 다음의 말을 전하게 했다.
사회(士會)는 나를 속였지만?
나는 황하에 맹세한 바를 어기지 않노라!
사회(士會)는 자기를 생각해 주는 진강공(秦康公)의 각별한 신의에
감격했으며, 이에 서신을 보내어 처자를 돌려 보내준 일에 감사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진(秦)과 진(晉), 두 나라 간의 군사와 백성들을
돌보게 하자면서, 평화와 우호를 간곡히 청했다.
진강공(秦康公)은 사회(士會)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서로 십수 년
동안 대규모로 국경을 침범하던 전쟁을 모두 종식 시키기로 했다.
이는 사회(士會)가 진강공(秦康公)을 속이고
귀국한 지 일 년이 지난 기원전 613년의 일이었다.
이때 주경왕(周頃王)이 재위 6년 만에 죽었으며
태자 반(班)이 즉위하여 주광왕(周匡王)이 되었다.
그때 정(鄭), 송(宋), 진(陳), 채(蔡)를 억압하여 궐맥(厥貉) 땅에서
회맹을 맺게 했던 초목왕(楚穆王)도 재위 12년 만에 병사하여,
세자 여(旅)가 초장왕(楚庄王)이 되었다.
초(楚)에게 싸움에서 이기고도, 그 후환이 두려워
스스로 항복했던 진공공(陳共公)도 세상을 떠났다.
그의 뒤를 이어 진영공(陳靈公)이 즉위했다.
제(齊) 나라에서는 제소공(齊昭公)도 죽었다.
이처럼 그해에는 유독 많은 사람이 죽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많이 이루어졌다.
그때 진(晉) 나라의 조돈(趙盾)은 초목왕(楚穆王)이 죽어 상을 당한
틈을 이용해서, 선대 때의 맹주 자리를 되찾기 위해, 중원의
제후들을 신성(新城)으로 불러 모이게 했다.
신성(新城)은 진(晉)의 부도(副都)인 곡옥성(曲沃城)을 말한다.
송소공(宋昭公) 저구(杵臼), 노문공(魯文公) 흥(興),
진영공(陳靈公) 평국(平國), 위성공(衛成公) 정(鄭),
허소공(許昭公) 석아(錫我), 정목공(鄭穆公) 란(蘭),
약속한 날이 가까워져 오자, 여섯 제후가 줄을 이어
속속 신성(新城)에 당도했다.
송(宋), 진(陳), 정(鄭), 삼국의 제후는 옛날 초목왕(楚穆王)의 부름을
받아, 궐맥(厥貉)의 회맹에 참석했던 일에 관해, 초(楚)와의 옛정에
의해 어쩔 수 없었다고 서로 변명하며 사과했다.
이에 조돈(趙盾)은 세 나라의 군주들을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위로하며 넘어갔다.
이로써 여섯 제후는 다시 진(晉) 나라 편에 서기 시작했으나, 다만
채(蔡)의 채후(蔡侯) 만은 초(楚)의 분노를 두려워하여 회맹에
참석하지 않았고, 여전히 진(晉) 나라 편에 서는 걸 꺼렸다.
이에 조돈(趙盾)은 극결(郤缺)을 시켜 진군(晉軍)을 이끌고
정벌하려고 하자, 이에 놀란 채후(蔡侯)는 재빨리 쫓아 나와
화의를 청했다. 이에 극결(郤缺)은 화의를 받아들이고
진군(晉軍)은 방향을 돌려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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