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열국지( 401∼500회)

제 410 화.​​ 바람기를 누가 잡을 수 있는가.

서 휴 2023. 12. 27. 17:45

 410 .​​ 바람기를 누가 잡을 수 있는가.

 

() 나라의 노문공(魯文公)이 군위에 오른 것은 주양왕(周襄王

26년이며 기원전 626년의 일이었다.

 

       노문공(魯文公)은 제소공(齊昭公)의 딸 성강(聲姜)

       혼인하여()와 시(라는 두 아들을 두었다.

 

       또한 진() 나라의 여인 경영(敬嬴)을 사랑하여

       ()와 숙힐(叔肹이라는 두 아들을 두었다.

 

       네 아들 중 공자 왜()가 가장 나이가 많았으나

       공자 오()가 성강(聲姜)의 소생이며 적자였으므로

       세자로 세우며 숙중팽손(叔仲彭生)을 태부로 삼았다.

당시 노(나라는 노문공(魯文公)에게 증조부(曾祖父) 되는

노환공(魯桓公)의 세 아들을 삼환씨(三桓氏라 불렀으며

그들은 맹손씨(孟孫氏), 숙손씨(叔孫氏), 계손씨(季孫氏)였.

 

       맹손씨(孟孫氏)는 공손 오()가 뒤를 잇고 있었으며

       이름이 곡()과 난(이라는 두 아들을 두었다.

 

       숙손씨(叔孫氏)는 숙아(叔牙)의 아들인 공손 자()

       뒤를 이어받아숙중팽생(叔仲彭生)

       숙손득신(叔孫得臣이라는 두 아들을 두었다.

 

       계손씨(季孫氏)로는 계우(季友)의 아들

       계무일(季无佚)이 행보(行父라는 아들을 두었다.

       계문자(季文子)는 행보(行父)의 시호(諡號이다.

 

삼환씨(三桓氏)는 이미 아버지 노희공(魯僖公때부터 조정에 모두

나와 나라의 정사를 맡아 보고 있었다.

 

또한, 조부(祖父되는 노장공(魯庄公)에게 수(라는 첩실 소생의

아들이 있었는데이름을 중수(仲遂라고 했으나노성(魯城) 동문

근처에 산다고 하여 동문수(東門遂라고 불렀다.

 

       공손 오(), 동문수(東門遂), 행보(行父)

       재종형제(再從兄弟)(6간이므로 같은 항렬이다.

 

원래 맹손씨(孟孫氏)의 공손 오()는 천성이 음탕하여 마음에 드는

여자는 모두 다 가지려고 하였으며, (나라 사람 기씨(己氏)

딸인 대기(戴己)를 보자마자 너무 어여쁘다면서, 한 번에 반해

버렸으므로, 정부인으로 삼으면서 아들 곡()을 낳았다.

 

       또한대기(戴己)의 동생 성기(聲己)도 어여쁘므로

       장인 기씨(己氏)에게 사정하여 집에 데려와

       아들 난()을 낳았는데그때 정부인인 

       대기(戴己)가 갑자기 병들어 죽게 되었다.

 

대기(戴己)가 죽자공손 오()는 다시 거(나라에 찾아갔으며

기씨(己氏) 장인에게 대기(戴己)의 뒤를 이어 정부인으로 삼으려

한다면서 어린이면서도 어여쁜 막내딸을 달라고 했다.

       기씨(己氏장인어른 막내딸을 제게 주십시오

       대기(戴己)를 대신하여 정부인으로 삼겠습니다.

 

       뭔 소리를 하는 건가

       동생 성기(聲己)가 아직 살아 있지 않으냐

 

       성기(聲己)를 대기(戴己)의 뒤를 잇게 하여

       마땅히 정부인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느냐

       기씨(己氏장인어른그렇다면 나의 육촌 동생인

       중수(仲遂)가 아직 부인이 없는 바이오니

       데리고 가 중수(仲遂)의 아내로 삼게 하겠습니다.

 

       믿고서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중수(仲遂)의 부인으로 삼는다면야 허락하마

       기씨(己氏장인어른,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나 공손 오()는 막내딸을 중수(仲遂)에게 보내지 않고, 자기의

부인으로 삼고 말았으므로, 이러한 일은 소문이 안 날 수가 없었다.

 

다음 해 노문공(魯文公) 7년이 되었을 때 공손 오()는 명을 받아

(나라에 사절로 갔다가 임무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저 아름다운 여인은 누구인가

       어쩜 저리 어여쁠 수가 있더란 말이더냐

       가복(家僕) , 저 여인의 뒤를 쫓아가라

 

       나리언릉(鄢陵땅에 사는 기생(妓生이옵니다.

       그래언릉(鄢陵)에서 여장을 풀도록 하라

 

언릉(鄢陵)은 지금의 산동성 기남현(沂南縣북쪽, (나라의

도성이었던 거현(莒縣동쪽으로,  30리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다.

 

그날 밤 공손 오()는 돈을 주고 기어이 기생(妓生)을 샀으며

동침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희열에 빠져들었다.

이에 기쁜 나머지 처로 삼겠다며 노(나라로 함께 돌아왔다.

 

       공손 오() 나 좀 보게

       나와 혼인시킨다고 기씨(己氏)의 막내딸을

       데려와서는 왜 자기의 부인으로 삼았는가

 

       이건 나를 농락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성안에 온통 소문이나 창피해 죽겠네

 

       그리고 그 기생(妓生)은 이미 나와 정분을

       나눈 사인데어찌 자네가 처로 삼는 것인가

 

공손 오()가 중수(仲遂)와 혼인시키기로 언약하고 기씨(己氏)

막내딸을 데려왔으면서도 자기의 부인으로 삼아버렸으므로,

이에 중수(仲遂)는 크게 분개했다.

 

더구나 자기가 사랑하던 기생(妓生)까지 차지하는 걸 보자더욱

화가나자기의 억울함을 노문공(魯文公)에게 호소했다.

 

       주공군사를 내어 주십시오

       공손 오()에게 반드시 죄를 묻겠나이다.

       주공숙중팽생(叔仲彭生)이 말씀 올리겠나이다.

       개인의 화풀이에 군사를 내는 건 불가합니다.

 

       군사가 나라 안에서 싸우면 난(이라 하고

       타국에서 쳐들어오면 도둑인 구(라 합니다.

 

       근자에 다행히 타국의 침략이 없는 이때

       어찌하여 나라 안에서 난을 일으키려 합니까

 

       당장 공손 오()를 불러들이도록 하라

       주공공손 오()를 부르셨나이까

       공손 오()  너의 행실이 왜 그러하냐

 

노문공(魯文公)이 호통을 치자, 깜짝 놀란 공손 오()는 할 수 없이

기생(妓生)을 거(나라로 돌려보내자마자, 중수(仲遂)찾아가

사과함으로써 둘 사이의 노한 감정은 풀게 되었다.

 

       둘 사이는 다시 옛날처럼 친하게 지낼 수 있었으나,

       공손 오()는 그 기생(妓生)을 잊을 수가 없었다.

 

다음 해 왕실의 주양왕(周襄王)이 죽자노문공(魯文公)은 공손

()를 조문 사절로 임명하여 왕실에 다녀오도록 명했다.

 

       공손 오()는 주양왕(周襄王)의 조문을 위해

       바치는 예물들을 모두 가지고, 왕실로 가지 않고

       (나라에 가서 기생(妓生)을 만나 돌아오지 않았다.

 

노문공(魯文公) 그 일을 추궁하지 않으면서, 공송 ()의 아들

맹손곡(孟孫穀)에게 후사를 이어받아 맹손씨의 제사를 지내게 했다.

 

그때 거(莒) 나라에서 기생과 함께 살던 공손 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가져온 물건이 떨어지게 되었으며 돈만을 밝히던

기생(妓生)은 심한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돈도 떨어지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성질이 과격한 중수(仲遂)가 겁이 나는구나

 

공손 ()는 데리고 있던 가복(家僕)을 아들 맹손곡(孟孫穀)에게

보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중수(仲遂)에게 전하게 했다.

 

맹손곡(孟孫穀)은 부친인 공손 오()의 말을 중수(仲遂)에게 간곡히

전하며부친이 돌아올 수 있도록 허락을 부탁하게 된다.

 

       중수(仲遂아저씨, 맹손곡(孟孫穀)입니다.

       부친께서 고국으로 돌아오시겠다고 하십니다.

 

       돌아오지 말라고 해라평지풍파만 일으킨다

       그래도 아버진데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맹손곡(孟孫穀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갸륵하구나

       다만 네 아버지가 노(나라에 꼭 돌아오고 싶다면,

       반드시 내가 말하는 세 가지를 지켜야 한다고 전해라

 

       첫째조당에 나오지 말 것이며,

       둘째국정에 관여하지 말 것이며,

       셋째그 기생(妓生)을 데려오지 말아야 한다

맹손곡(孟孫穀)은 가복(家僕)을 거(나라에 급히 보내면서,

아버지 공손 오()에게 아저씨 중수(仲遂)의 말을 전하게 했다.

 

공손 오()는 아들 맹손곡(孟孫穀)으로부터 연락이 오자마자

주저하지 않고 노(나라로 돌아갔으며, 다시 돌아온 지 3년이

지나도록 문을 걸어 잠그고, 일절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있던 모든 금은보화를

       챙기더니, 다시 거(나라로 달아나 버렸다.

 

맹손곡(孟孫穀)은 부친 공손 오()의 행동에 너무 섭섭하였으므로

원망하며 잠을 설치다가 갑자기 복통에 몸부림치더니 죽고 말았다.

 

       이때 맹손곡(孟孫穀)의 아들 중손멸(仲孫蔑)이 나이가

       너무 어렸으므로맹손곡(孟孫穀)의 동생 되는

       맹손난(仲孫爛)이 맹손씨 집안의 일을 이어가게 됐다.

 

       맹손난(仲孫爛)은 조정에 출사하여 경()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거(나라의 기생도 죽었다.

 

공손 오()는 기생(妓生)이 죽자, 노나라에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는 가지고 있던 가재를 모두 노문공(魯文公)과 중수(仲遂)에게

바치는 조건으로, 둘째 아들 맹손난(仲孫爛)에게 귀국을 청하게 했다.

 

       노문공(魯文公)이 허락하자공손 오()는 다시 노나라에

       돌아가기 위해 길을 떠났으며, ()의 경계에 이르자,

       갑자기 병이 생겨 돌아가지 못하고 당부(堂阜)에서 죽었다.

 

당부(堂阜)는 지금의 산동성 몽음현(蒙陰縣경내이다. 그곳에는

이오정(夷吾亭)있는데, 옛날 노()나라에서 포로가 되어

함거에 실려 온 관중(管仲)을 포숙(鮑叔)이 석방해 데려간 곳이다.

 

       맹손난(仲孫爛) 노문공에게 간곡하게 청하여

       허락을 받게 되자부친인 공손 오()의 시신을

       (나라로 가져와 상을 치르고 난 후에

 

       죄인의 자식이라고 근신하면서형님 맹손곡(孟孫穀)

       아들 중손멸(仲孫蔑)이 장성하기 만을 기다리면서

       종족의 일을 넘기려고만 할 뿐이었으며, 종족의

       제사만 관장할 뿐으로 정사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공손 오()가 노()나라로 돌아오다가 객사하여 실권하게 되었으나,

그 후 중손씨(仲孫氏), 숙손씨(叔孫氏), 계손씨(季孫氏), 세 집안은

다시 노(나라의 국정을 서로 나누어 맡았다.

 

 411 ​​반역의 조짐은 어떻게 생기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