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열국지( 201∼300회) 100

제 290 화. 중이, 긴 여정이 시작되는가.

제 290 화. 중이, 긴 여정이 시작되는가. 이때 제강(齊姜)의 한 시녀가 뽕잎을 따러 갔다가, 우연히 가신들의 이야기를 엿듣고는 제강(齊姜)에게 쫓아가 모든 이야기를 고하였다. 공주마마, 큰일 났사옵니다. 가신들이 공자님을 납치해 떠나려 합니다. 너는 어디서 그 이야기를 들었느냐? 상음(桑陰)에서 뽕잎 따다 확실하게 들었습니다. 큰일 날 소리를 하는구나! 조용히 해야 한다. 저 아이를 뒷골방에 가둬놓아라. 제강(齊姜)은 말이 새 나가지 않도록 단속하려 생각하다가 할 수 없이 그 시녀를 죽이고 이틀이 지나자, 호언(狐偃)과 가신 일행이 또 찾아와 제강(齊姜)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며 말하였다. 공자께서는 일어나시었는지요? 어찌 이른 새벽에 이리 많이들 오셨습니까? 공자를 모시고 사냥이나 갈까 합니다...

제 289 화. 꿈이 이뤄질 곳으로 찾아가자.

제 289 화. 꿈이 이뤄질 곳으로 찾아가자. 한편 진(晉)나라의 공자 중이(重耳)는 내시 발제(勃鞮)와 자객에게 쫓겨, 책(翟) 나라에서 도망쳐 나오게 되었으며, 몹시 어렵게 제(齊) 나라를 찾아오게 되었다. 그때가 기원전 644년이며, 주양왕(周襄王) 8년으로, 제환공(齊桓公) 재위 43년 차가 끝날 무렵이었다. 완연히 거지꼴이 되었다가, 천하의 패공(霸公)인 제환공(齊桓公)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자, 뜻밖으로 풍족한 대접을 받게 되었다. 중이(重耳) 공자. 얼마나 고생이 많았소? 나, 제환공(齊桓公)도 망명 생활을 하여 봤소! 중이(重耳) 공자. 가족들은 데리고 오시었소? 도망 다니는 사람이 어느 겨를에 가족을 데리고 다닐 수 있겠습니까? 객지의 망명 생활은 참 외로운 것이오! 중이(重耳) 공자는 잠..

제 288 화. 아무리 주어도 아깝지 않다니.

제 288 화. 아무리 주어도 아깝지 않다니. 왕이시여, 정(鄭) 나라 사자가 왔습니다. 오, 그래 들라 하라. 왕이시여, 정문공(鄭文公)이 서신을 보냈습니다. 초(楚) 왕께서 우리 정(鄭) 나라를 구해주시어 너무나 감사함을 비할 데가 없나이다. 왕의 승전을 축하드리고자 가택(柯澤)으로 찾아가 음식을 대접하고자 하오니 부족하더라도 잘 봐 주시옵소서. 초성왕(楚成王)은 정문공(鄭文公)의 서신을 받자, 이에 모든 장수를 불러 모으며, 초군(楚軍)의 용맹함을 보이도록 준비하라고 명했다. 정문공(鄭文公)이 이곳에 방문하여 우리 군사들의 노고를 위문할 예정이다. 우리 초군(楚軍)의 강맹함을 보여줄 좋은 기회로다. 이번 홍수전투(泓水戰鬪)에서 획득한 송군(宋軍)의 부괵(俘馘) 항아리와 전리품들을 잘 진열하여. 우리..

제 287 화. 송양지인은 누구를 말하는가.

제 287 화. 송양지인은 누구를 말하는가. 주공, 너무 위험합니다. 주공, 빨리 피하셔야 합니다. 큰일이다. 빠져나갈 수가 없구나! 주공, 신 공자 탕(蕩)이 앞장서겠습니다. 아악, 허벅지에 화살이 박혔도다! 아이구야 ! 어서 뽑아라. 주공, 피가 너무 많이 솟습니다. 아니, 여기서 네가 죽는단 말이냐? 아, 초군의 포위망을 빠져나갈 수가 없겠구나. 송양공(宋襄公)이 절망감에 사로잡혀 탄식하고 있는데, 저편에서 이를 본 공손 고(固)가 급하게 초군(楚軍)의 투발(鬪勃)을 따돌리고, 송양공(宋襄公)의 뒤를 쫓아 일부 군마(軍馬)를 거느리고 달려온다. 주공, 어찌 된 것이옵니까? 주공의 허벅지에서 화살을 빼냈으나 피가 분수처럼 솟아나고 있습니다. 어서 헝겊으로 꽁꽁 싸매고 주공을 말에 태워라. 주공, 저를..

제 286 화. 망설이는 자가 이길 수 있을까.

제 286 화. 망설이는 자가 이길 수 있을까. 원래 초군(楚)은 영성(郢城)이 있는 한수(漢水) 연안에 있었으나, 중원(中原)의 접경지역인 신(申) 나라를 점령하여, 완성(宛城)을 축성(築城)하여 놓고 중원의 비상사태에 대기하고 있었다. 또한, 초(楚)의 강한 힘이 이미 중원에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으므로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쉽게 중원(中原)을 지나 송(宋)나라에 갈 수 있었다. 송양공(宋襄公)은 초군(楚軍)이 쳐들어온다는 급보를 받게 되자, 재빨리 정(鄭) 나라에서 철수하여, 다행히 먼저 홍수(泓水)를 건너 북쪽에 진채(陣寨)를 세움으로써, 초군(楚軍)보다 유리하게 대치할 수 있었다. 홍수(泓水)는 지금의 하남성에 속한 강으로, 송(宋)나라와 접경을 이루는 곳으로, 송(宋)과 초(楚) 나라는 이 홍..

제 285 화. 망상이 백성들만 죽이는가.

제 285 화. 망상이 백성들만 죽이는가. 초성왕(楚成王)은 맹주가 되겠다며 천지신명께 삽혈의 의식을 행하기로 결심하고 회맹 일자를 12월 계축일(癸丑日)로 정하면서, 급히 박(亳) 땅에 맹단(盟壇)을 쌓도록 명령했다. 초성왕(楚成王)은 회맹을 행하기로 한, 하루 전날에 송후(宋侯)을 석방하여 여러 제후와 상견하게 했다. 송양공(宋襄公)은 가슴 속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며 몹시 부끄럽고 화가 나기도 하였으나, 겉으로는 여러 제후에게 감사의 말을 올리었다. 이윽고 회맹일이 되어 제후들이 모두 맹단에 올라가자, 정문공(鄭文公)이 맹회를 주관해달라며 초성왕(楚成王)에게 간청했다. 초성왕이 희생(懷生)할 소의 귀를 잡자, 제후들은 모두 송양공 뒤를 이어 작위의 순서에 따라 차례로 소의 피를 얼굴과 입술에 바르며 ..

제 284 화. 상대의 생각을 뛰어넘어라.

제 284 화. 상대의 생각을 뛰어넘어라. 송군(宋軍)은 듣도록 하라! 나는 초(楚) 나라 장수 투발(鬪勃) 이오. 너희 군주인 송양공(宋襄公)이 우리 초군(楚軍)에게 붙잡혀 욕을 보고 있다. 송양공(宋襄公)을 죽이고 살리고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오! 너희가 도성(都城)을 바치면서 항복한다면 우리는 송양공(宋襄公)을 살려 보낼 것이다. 나는 송(宋) 나라 사마(司馬) 공손 고(固) 요. 우리는 이미 새로운 군주를 모셨소! 죽이든 살리든 너희들 마음대로 하시오!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이오. 지금 너희의 군주가 버젓이 살아 있는데, 어찌 새로운 군주를 세울 수 있더란 말이냐? 군위(君位)란, 사직(社稷)을 보존하는 자리요. 전 군주는 너희의 포로가 됨으로써 우리 송(宋) 나라 ..

제 283 화. 과욕이 웃음거리가 되는가.

제 283 화. 과욕이 웃음거리가 되는가. 초성왕(楚成王)이 송양공(宋襄公)을 주재자(主宰者)로 추대해 주지 않으면서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있자, 각국 제후들도 난처한 듯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으로 먼저 입을 열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에 성질 급한 송양공(宋襄公)이 참다못해 먼저 말을 하였다. 오늘 이처럼 회맹을 갖게 된 것은 과인이 방백(方伯) 인 제환공(齊桓公)의 업적을 계승하여 주(周)나라 왕실의 권위를 높여주며, 천하를 두루 태평하게 하기 위함이오. 이에 여러 제후의 의견을 듣고 싶소? 송후(宋侯)께서 좋은 말씀을 하셨소이다. 나, 초성왕(楚成王)이 물어보겠소? 먼저 회맹을 주재할 맹주를 누구로 정하는 것이 좋겠소? 좋습니다. 본 송양공(宋襄公)이 먼저 말하겠소이다. 관례상 공이 있으면..

제 282 화. 꾀가 없으면 고지식한가.

제 282 화. 꾀가 없으면 고지식한가. 초성왕(楚成王)은 녹상(鹿常) 회담을 마치고 영성(郢城)에 돌아오자, 곧바로 조례를 열어 신료(臣僚)들에게 회담 내용을 설명하였다. 천하가 이제 겨우 안정되는가 하였더니 송(宋) 나라 송양공(宋襄公)이 설치는구려. 신 영윤 투곡어토(鬪穀於莵) 이옵니다. 송양공은 우리를 이용해 중원의 맹주 자리를 차지하려는 속셈을 품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송양공은 자기 분수를 모르는 제후입니다. 어찌하여 왕께선 8월에 있을 우(盂) 땅의 회맹(會盟)을 어찌 도와준다고 선선히 서명하셨습니까? 하하, 송양공이 맹주가 되겠다며 약은 체하지만, 어찌 과인이 그의 속셈을 알지 못하겠소! 과인은 이번 기회에 중원의 제후들을 꼼짝 못 하게 해볼 작정이오! 왕이시여, 신 성득신(成得臣) 이옵..

제 281 화. 한 가지 목표만 생각하다니

제 281 화. 한 가지 목표만 생각하다니 주(周) 나라는 황하(黃河) 서쪽에서 일어났으며, 초(楚) 나라는 한수(漢水)와 장강(長江)에서 일어났으므로, 남방계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며, 축융(祝融) 이라는 불의 신을 믿고 있었다. 특히 초(楚) 나라는 한수(漢水)와 장강(長江) 일대의 가시나무(형荆) 숲이 밀림을 이루는 나라라 하여 형(荆) 또는 형초(荆楚) 라 불리기도 하였다. 초(楚) 나라는 주(周) 나라의 자작(子爵) 칭호를 받은 제후국 임에도, 중원과 동떨어진 남방계 쪽에 있게 되면서, 주변 부족들을 통합해 나가며 기원전 704년부터 스스로 왕이라고 칭하였다. 그 후 현명한 투곡어토(鬪穀於菟)가 재상이 되면서, 초(楚) 나라의 국정을 바로 세우며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면서, 이제는 중원의 제(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