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5 화. 망상이 백성들만 죽이는가.
초성왕(楚成王)은 맹주가 되겠다며 천지신명께 삽혈의 의식을
행하기로 결심하고 회맹 일자를 12월 계축일(癸丑日)로 정하면서,
급히 박(亳) 땅에 맹단(盟壇)을 쌓도록 명령했다.
초성왕(楚成王)은 회맹을 행하기로 한, 하루 전날에
송후(宋侯)을 석방하여 여러 제후와 상견하게 했다.
송양공(宋襄公)은 가슴 속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며
몹시 부끄럽고 화가 나기도 하였으나, 겉으로는
여러 제후에게 감사의 말을 올리었다.
이윽고 회맹일이 되어 제후들이 모두 맹단에 올라가자,
정문공(鄭文公)이 맹회를 주관해달라며
초성왕(楚成王)에게 간청했다.
초성왕이 희생(懷生)할 소의 귀를 잡자, 제후들은 모두 송양공 뒤를
이어 작위의 순서에 따라 차례로 소의 피를 얼굴과 입술에
바르며 삽혈 의식을 행하게 되었다.
그게 정말이더냐? 공자 목이(目夷)가
나 대신에 군위에 올랐다는 것이 참말이더냐?
주공, 그렇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송후(宋侯)가 아니로다.
회맹을 끝낸 각국의 제후들은 모두 흩어져
자기들 나라로 돌아가는데, 나는
상구(商丘)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구나!
아. 어찌하면 좋겠는가?
주공, 위(衛) 나라로 망명을 가시옵소서.
마침내 초(楚)나라 군영에서 석방된 송양공(宋襄公)은 목이(目夷)가
귀국하여 이미 군위에 올랐다는 소문을 듣게 되자, 할 수 없이
모든 걸 포기하면서, 위(衛) 나라로 망명을 떠나게 되었다.
위(衛)에 머문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본국에서 사자가 찾아와
눈물을 흘리면서, 상경 목이(目夷)의 말을 간곡하게 전하였다.
신이 그동안 군위에 올라 섭정한 것은
주공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나라를 지키며
주공을 살리고자 함이었습니다.
이제 안정이 된바, 우리 송(宋) 나라는
주공의 나라인데, 어찌하여 돌아오지 않고
위(衛) 나라에 머물고 계십니까?
이에 법가(法駕)를 보내오니, 속히 환국하시어
예전처럼 우리 송(宋) 나라를 다스려주십시오.
송양공(宋襄公)은 너무나 감격하며 상구(商丘)로 돌아갔으며
상경 목이(目夷)와 사마 공손 고(固)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상구성(商丘城)에서 멀리까지 나와 뜨겁게 영접해주었다.
상구성(商丘城)에 입성한 송양공(宋襄公)이 다시 보위에 앉게
되자, 목이(目夷)는 전과 다름없이 신하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이에 송양공(宋襄公)은 감사의 말을 하게 된다.
고맙도다. 목이(目夷) 여. 목이(目夷)의 어짊이
나를 또다시 감격하게 만드는구나!
또한, 신료들도 그동안 너무나 고생하였소!
후세의 사가(史家) 들은 공자 목이(目夷)가 현명하게 대처한 이 일을
그냥 지나칠 리 없었으며, 어느 한 사가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목이(目夷)가 만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둥대면서
초성왕(楚成王)에게 송양공(宋襄公)을 돌려달라고
애걸했다면 어찌 되었겠는가?
초성왕(楚成王)은 송(宋) 나라가 당황하는 것을
이용해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 모른다.
또한, 그리 쉽게 풀려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송양공(宋襄公)이 석방된 것은 오로지
공자 목이(目夷)의 계책 덕분일 것이다.
송양공(宋襄公)은 우(盂) 땅의 회맹(會盟)에서 맹주(盟主)가 되려다,
오히려 초성왕(楚成王)에게 사로잡혀 온갖 수모와 곤욕을 치르다가,
노희공(魯僖公)의 지혜로운 용단으로 겨우 풀려났었다.
맹단에 오른 그때 정문공(鄭文公)이 앞장서서 초성왕(楚成王)을
맹주로 세우자고 주장하니, 이를 지켜보고 있던 송양공(宋襄公)은
분함을 참지 못하며, 정문공(鄭文公)을 원수로 생각하게 되었다.
어휴 분해. 이 원한을 어떻게 갚아야 하겠는가.
저 간악한 정문공(鄭文公)을 그냥 놔둘 수 없도다.
내 기어이 이 굴욕을 되돌려 주고 말리라.
송양공(宋襄公)은 위(衛) 나라 망명에서 귀국하여 안정을 취하게
되었으나, 사무친 원한에 대해 어떻게 복수할까만을 생각하였다.
초성왕(楚成王) 보다 그를 맹주로 추대한
제후들이 더 못된 놈들이로다.
더욱이 초성왕(楚成王)을 맹주로 받들자며,
계속 발의한 정문공(鄭文公)을 더 용서할 수 없다.
나는 정(鄭) 나라의 동태를 계속 살피다가
내 반드시 보복할 기회를 찾고 말리라!
주양왕(周襄王) 14년이며 기원전 637년의 봄, 3월이었다.
송양공(宋襄公)은 이때 정문공(鄭文公)이 초(楚)의 영성(郢城)까지
찾아가 초성왕(楚成王)에게 조공을 올렸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초(楚) 나라는 그 당시까지만 해도 형만(荊蠻) 이라는 야만족으로
취급하고 있었으며, 더구나 왕이라 자처하는 초성왕(楚成王)에게
조례를 올린다는 것은, 주(周) 왕실을 섬기는 중원의 제후들에게는
감히 생각지도 못할 몹시 치욕적인 행동이었다.
허허, 정문공(鄭文公)이 중원(中原)까지 배신하는구나.
이제 제후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명분이 뚜렷해졌도다.
좋다. 이 간악한 놈을 그냥 둘 수 없도다.
대군을 일으켜 정문공鄭文公을 응징하고 말리라.
주공, 신 목이(目夷)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나이다.
아직도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셨나이까?
주공, 패공(霸公)이 되겠다는 망상을 버리십시오!
아니요. 정문공(鄭文公) 만큼은 혼을 내줘야 하오!
주공, 우리는 군사력도 약하여 이길 힘이 없습니다.
잘못하면 우리 송(宋) 나라가 망할 수도 있습니다.
정(鄭) 나라는 초(楚) 나라를 섬기는 나라입니다.
정(鄭)을 치면 초(楚)는 반드시 도울 겁니다!
그리되면 우리는 정(鄭) 나라와 싸우다가
결국, 초(楚) 나라와 싸우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초(楚) 나라는 대국이며 강국입니다.
우리가 어찌 강국인 초(楚)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목이(目夷)는 필사적으로 간청했으나, 송양공(宋襄公)은 초(楚)와
정문공(鄭文公)에 대한 사무친 원한을 막을 수가 없었다.
나는 정(鄭) 나라만 치고 곧바로 돌아올 것이오.
위(衛), 허(許), 등(謄) 나라와 연합군을 만들 것이오.
초(楚) 나라의 맹방이라고 자처하는
저, 정(鄭) 나라를 쳐부숴 없애버리고 말 것이오!
주공, 신 사마(司馬) 공손 고(固) 입니다.
주공, 좀 더 실력을 갖추면서 때를 기다리다가
기회를 봐서 정(鄭) 나라를 정벌하면 어떻겠나이까?
사마(司馬)도 짐과 함께 가기를 원치 않는다면
과인 혼자라도 정(鄭) 나라를 꼭 정벌하고 말겠소!
그해 여름이 되자, 송양공(宋襄公)은 끝내 위(衛), 허(許), 등(謄)과
4개국 연합군을 결성하여, 스스로 중군장(中軍將)이 되었으며,
사마(司馬) 공손 고(固)를 부장으로 삼고, 대부 약보이(藥僕伊)와
화수로(華秀老), 공자 탕(蕩) 과 함께, 신정(新鄭)으로 출정했다.
상경 목이(目夷) 역시 송양공의 보좌역이 되어
병거를 몰고 상구성(商丘城)을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정문공(鄭文公)은 갑자기 송(宋)과 연합군이 쳐들어온다는 보고를
받게 되자, 기겁할 듯 놀랐으며, 긴급히 초(楚)에 구원을 요청하게
되었다. 이에 초(楚) 나라는 대책 회의를 열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정문공(鄭文公)은 과인을 아비처럼 섬겨온 제후로다.
누가 가서 정(鄭) 나라를 구원할 것인가?
왕이시여, 신 성득신(成得臣) 이옵니다.
정(鄭) 나라를 구원하려면, 송(宋) 나라의
상구성(商丘城)을 먼저 쳐야 합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는가?
지난날 송양공(宋襄公)을 사로잡아 욕보인 일로
송(宋) 나라는 그 원한에 사무쳐 있습니다.
송양공(宋襄公)이 그 보복을 하겠다며
연합군을 만들어 정(鄭) 나라를 침공하였습니다.
그러나, 큰 나라와 연합하지 못하고 작은 나라들과
성급하게 어울려 경솔히 정(鄭) 나라를 침공하다 보니,
지금쯤 상구성(商丘城)은 텅텅 비어있을 겁니다.
이 기회를 이용해 송(宋) 나라를 급습하면
송양공은 질겁하여 군사를 되돌릴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먼 거리를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지칠 대로 지치게 될 것이며, 그때 우리는
지친 송군(宋軍)을 쉽게 격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가. 좋은 계책이다. 그대의 말대로
초군(楚軍)을 이끌고 송(宋) 나라를 쳐부숴 버려라!
성득신(成得臣)을 대장으로, 투발(鬪勃)은 부장이 되어, 초군(楚軍)의
대군(大軍)이 송(宋) 나라 상구성(商丘城)으로 쳐들어가게 되었다.
송양공(宋襄公)은 신정(新鄭) 성 앞에 진채(陣寨)를 세우고, 다음날
꼭두 새벽에 공격할 준비를 다 마치고 막 잠이 들려고 하던 때였다.
주공, 파발(擺撥)이옵니다.
초군(楚軍)이 지금 막 출발하였답니다!
아니 초군(楚軍)이 그리 빨리 움직인단 말이냐?
어디에서 출발하였다, 하더냐?
완성(宛城) 이라고 합니다.
영성(郢城) 이라면 시간 여유가 있으나
완성(宛城)은 아주 가까운 곳이다.
주공, 어서 빨리 돌아가야 합니다.
이 들판에서 초군(楚軍)과 부딪치면 아주 불리합니다.
초군(楚軍) 보다 우리가 먼저 홍수(泓水)를 건너가야 합니다.
홍수(泓水)를 건너가 북쪽에서 진을 치고 있다가
홍수(泓水)를 건너오는 초군(楚軍)과 싸우면 유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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