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열국지( 201∼300회)

제 281 화. 한 가지 목표만 생각하다니

서 휴 2023. 10. 5. 20:39

 281 . 한 가지 목표만 생각하다니  

 

(나라는 황하(黃河) 서쪽에서 일어났으며, () 나라는

한수(漢水)와 장강(長江)에서 일어났으므로, 남방계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며, 축융(祝融이라는 불의 신을 믿고 있었다.

 

      특히 초(나라는 한수(漢水)와 장강(長江) 일대의

      가시나무() 숲이 밀림을 이루는 나라라 하여

      (또는 형초(荆楚라 불리기도 하였다.

 

      (나라는 주(나라의 자작(子爵) 칭호를 받은

      제후국 임에도, 중원과 동떨어진 남방계 쪽에

      있게 되면서, 주변 부족들을 통합해 나가며

      기원전 704년부터 스스로 왕이라고 칭하였다.

 

그 후 현명한 투곡어토(鬪穀於菟)가 재상이 되면서(나라의

국정을 바로 세우며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면서이제는 중원의

() 나라와 패권을 다투는 위력까지 갖추게 되었다. 이때

()의 공자 탕()이 사신으로 찾아와 초성왕(楚成王)을 만난다

 

       초성왕(楚成王이여 

       저희 송(宋)나라는 다음 해 가을에 우(땅에서

       천하 제후들과 대규모 회맹을 갖고자 합니다.

 

        내년 초에 제(齊)의 녹상(鹿常땅에서 먼저 만나

        회맹 준비를 위한 회담에 참여하여주십시오

        좋도다. 제(齊)의 녹상(鹿常땅에 가도록 하겠노라

 

초성왕(楚成王)이 많은 뇌물을 받고, 녹상(鹿常)에 가겠다고 승낙하자,

송양공(宋襄公)은 너무나 크게 기뻐하면서, 이제는 공자 탕()

() 나라에 보내 초성왕(楚成王)과 약속한 회맹을 설명하게 했다,

이에 제효공(齊孝公)도 옛날 은혜를 생각해 흔쾌히 허락했다.

 

송양공(宋襄公)은 다음 해가 시작되자 신년 제사를 올리고곧바로

녹상(鹿上)의 땅에 당도하여 제()와 초()의 군주를 20일씩이나

기다리게 되었다.

 

       제공(齊公), 어서 오시 오.

       먼 곳에서 오느라 20일이나 늦어 죄송합니다.

     

제양공(齊孝公)은 녹상(鹿上땅의 주인인 자기에게, 아무런 승낙도 

없이 사용하는 송양공(宋襄公)에 대해 괘씸하게 생각했으나,

옛날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양해하였다.

 

그러나 송양공(宋襄公)의 말투는 하루가 다르게 아랫사람을 대하듯

무시하며 건방진 태도를 보이자 마음속으로 몹시 분하게 생각했다.

 20일이 지나는데도 초성왕(楚成王)은 오지 않고 있었다.

 

       허허초성왕(楚成王)은 왜 오지 않는 것인가

       주공내일 도착한다고 파발이 왔습니다.

 

       제공(齊公), 초왕이 오면 주() 왕실의 작위 순서로 섭시다.

       초성왕(楚成王)이 괜찮다고 하겠습니까

 

       뭐가 어떻겠소 관례가 그렇지 않소이까

       그래도 초성왕(楚成王)의 양해를 구해야 하지요

 

       초왕(楚王)이란 자기들끼리만 부르는 왕이지

       () 왕실의 작위(爵位)는 자작(子爵)이잖소

 

회맹을 열기로 한 날의 아침이 밝아오자모두 일찍 일어나 다 같이

제단에 올라가게 되었다.

 

       송양공은 공작(公爵)이므로 맨 앞에 서고

       다음으로 후작(侯爵)인 제효공을 서게 했으며,

       초성왕은 자작(子爵)이므로 마지막에 서게 했다.

 

송양공(宋襄公)은 당당히 회맹을 주재하면서 삽혈(歃血) 의식을

시작하면서도 전혀 겸양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허허나 초성왕(楚成王)을 아주 무시하는구나

       어쩔 수 없구나일단 삽혈(歃血) 의식을 치르고 보자

 

초성왕(楚成王)은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으나어쩔 수 없이 희생의

피를 얼굴과 입술에 바르고 삽혈(歃血) 의식을 치르기 시작하였다.

 

       왕실을 향하여 맹세를 말하겠소이다.

       두 군주는 과인의 손을 잡고 하늘 높이 올립시다.

 

       황공하게도 () 왕실의 과분한 예우(禮遇)를 받아

       높은 작위에 봉해진 후예들이옵니다.

 

       신이 비록 공작(公爵)이오나 

       베푼 덕은 적고 힘은 미약하옵니다.

 

       앞으로 왕실을 공경하며 받들려는 뜻으로

       천하를 위하여 맹회를 크게 열고자 하나이다.

       하늘의 신이여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송양공은 3개국 회맹(會盟) 의식이 끝나자마자곧바로 두 군주를

연회장에 안내하고는 가슴속에 품고 있던 말을 하게 된다.

 

       우리 선조께서 세우신 은(나라가 망하게 된바,

       주왕(周王)으로부터 제후에 봉해지는 은혜를 입은 것은

       어찌 과인의 송()나라에만 해당하는 일이겠소 

 

       패공이신 제환공이 아쉽게 떠나신 바이나

       변함없이 천하의 안녕질서를 유지해야 하므로

 

       천하의 제후들을 올가을 8월에 우리 송()나라의

       우(땅에 불러 성대한 회맹을 갖고자 하오! 

 

       두 분 군주께서는 앞장서서 제후들을 이끌어

       (땅의 회맹에 참여시켜 주신다면

       과인과 돈독한 우호 관계를 맺게 되오

 

       이제부터 우리는 의형제가 됩시다

       제공(齊公)은 어찌 생각하시오 

       아닙니다먼저 초왕(楚王)께 말씀하십시오.

 

       허허아니요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초() 나라는 자작(子爵) 밖에 안 되는바

       후작(侯爵)인 제공(齊公)께서 먼저 답해야 하오.

 

초성왕과 제효공이 서로 사양하자성질 급한 송양공은 못내 참지

못하고미리 준비하여 두었던 다른 제안을 하게 된다.

 

       좋습니다두 분 군주께서 사양만 하시니

       청컨대 미리 준비한 목간(木簡)에 서명토록 합시다.

 

       여봐라. 어서 목간(木簡)을 가져오도록 하라

       이 목간(木簡)을 초() 군주께서

       먼저 읽어 보시고 서명해주시오

 

목간(木簡)에는 여기 참석한 세 군주가 여러 제후를 규합하여

회맹을 열기로 하며그 방법은 제환공이 하였던 바와 같이 일체의

군사를 동원하지 않고, 문관들만 대동하는 의상지회(衣裳之會)

치르자는 글귀가 촘촘히 적혀 있었다.

 

       () 군주께선 무얼 망설이시오

       허허, 송후(宋侯)께서 직접 제후들을 부르면 될 일을

       왜 과인 보고 서명을 먼저 하라는 것이오  

 

       ()과 허(두 나라는 초() 군주의 휘하에

       있게 된 지가 오래되지 않았소이까

 

       그리고 진()과 채(), 두 나라는 근자에 이르러

       다시 제() 나라와 동맹을 맺은 바가 아니오

 

       이에 두 분 군주의 보살핌을 받지 않고는

       천하의 제후들이 회맹의 자리에 임하지 않을까

       걱정되어 이렇게 도움을 청하는 바이오 

 

       사정이 그렇다면 후작(侯爵)인 제후(齊侯)께서

       먼저 서명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과인도 서명토록 하겠소이다

 

송양공(宋襄公)이 순서를 지키지 않고 초성왕(楚成王)에게 먼저

내밀자, 제효공(齊孝公)은 또다시 매우 불쾌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과인도 송후(宋侯)의 휘하에 있는 바이므로

       다른 제후들과 그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회맹에 참석하는 일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제후들은

       공작(公爵)인 송후(宋侯)의 위엄만으로도 영을 세울 수가

       있는바, 구태여 과인의 서명이 무에 필요하겠습니까 

 

이때 송양공(宋襄公)과 제효공(齊孝公)의 언행을 계속 지켜보던

초성왕(楚成王)이 웃으면서 붓을 건네받아 먼저 서명하고 나서

그 붓을 건네려 하자, 제효공(齊孝公)이 한사코 사양하며 말한다.  

 

       초왕(楚王)의 서명만으로 끝내셔도 되겠습니다.

       과인은 많은 풍파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사직을 끊어지게 하지 않고 지킬 수 있게 된바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만 하고 있소이다.

 

       과인은 이 자리에 참석한 것만으로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는바이온데

       어찌 목간(木簡)을 더럽힐 수 있겠습니까

 

제효공(齊孝公)은 송양공(宋襄公)이 순서를 어겨가며 목간을 내밀자

이는 제() 나라를 가볍게 보는 것이라면서 끝내 서명하지 않았다.

 

       제효공(齊孝公)은 군위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어,

       자신의 은인이라 할 수 있는 송양공(宋襄公) 

       작은 기분으로 마치 원수를 대하듯 하였으며

 

       초()에 굴복하여조공을 바치는 일까지 서슴지!

       않게 되며, 제환공(齊桓公)의 패업을 이어받을 만큼

       자질이 뛰어나질 못하고, 속이 좁은 사람이었다.

 

그에 반해 송양공(宋襄公)은 제효공(齊孝公)이 자기가 베푼 바 있는

은혜에 그저 감사하면서 겸양하는 것으로만 좋게 생각하였으며

자신이 마치 맹주가 다 된 것처럼 거만하게 굴었다.

 

녹상(鹿常)의 회담이 끝나고 모두 헤어지자송양공(宋襄公) 

희색이 만면해져 도성인 상구(商丘)에 돌아와 자랑하였다.

 

      초성왕(楚成王)은 과인을 맹주로 천거해줄 것이오

      이제부터 과인이 천하를 호령하게 될 것이오.

   

      주공상경 목이(目夷이옵니다.

      주공(나라는 믿어선 안 되는 나라입니다.

 

      오죽하면 날카롭게 가시가 돋친 오랑캐라 하며

      형만(荆蠻이라 부르겠습니까

 

      초성왕(楚成王)은 분명 딴생각을 품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쉽게 서명에 응했습니다.

 

      반면에 제효공(齊孝公)은 자신을 무시한다며

      불쾌히 여겨 끝까지 서명하지 않은 것입니다.

 

송양공(宋襄公)은 상경 목이(目夷)의 만류하는 말에도, 그 말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 자신이 마치 제환공의 뒤를 이어 맹주가

다 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섣불리 판단하면서자신만만해졌다.

 

       이때가 기원전 639년 봄이며송양공(宋襄公) 12년으로

       제효공(齊孝公) 4년이 되며초성왕(楚成王) 33년에

       해당하는 해이기도 하였다.

 

 282 꾀가 없으면 고지식하다고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