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오천축국전
서 휴
통일신라統一新羅 경주慶州
차가운 앞바다. 719년
16세의 혜초慧超 스님은
어린 나이에 뱃길로
중국 광저우廣州에 도착하여
남南 인도印度의 밀교승密敎僧
금강지金剛智 스님에게서
불경佛經을 배운 지 5년 만에
인도印度로 건너가 육로를 걸으며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5만 리. 2만여km를 홀로 여행하며
부처님의 행적과 여행지의 풍습을
세밀하게 작성한 기행문紀行文인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완성한다.
1908년 3월
프랑스의 탐험가 펠리오Pelliot,P가
실크로드의 분기점이며 오아시스 도시인
둔황敦煌을 탐색하다가
둔황敦煌의 천불동千佛洞 석굴石窟 중에
막고굴莫高窟에서 그 유명한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발견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Venezia=Venice 의
상인商人인 마르코 폴로 Marco Polo의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 보다
500년이나 앞선 세계 4대 여행기인
기행문 중 하나로 길이 남겨 놓은 것이다.
1천300여 년 전 통일신라統一新羅 성덕왕聖德王
2년에 태어난 혜초慧超 스님(기원후 704~787)은
인도India의 밀교密敎 승려僧侶인
금강지金剛智 스님에게서
경전經典을 5년 사사師事하고
723년부터 구도求道의 길을 나서며
중국 광저우廣州에서 뱃길로 인도India에 들어가
4개의 천축국天竺國을 지나 카슈미르 지방을 거쳐
파미르고원을 넘고 현재의 위구르 지역인
신강新疆과 구자龜玆 지역을 두루 다니며
4년여의 여행을 마치고 727년에
당唐나라 장안長安으로 돌아온다.
723년부터 4년여 동안 40여의 나라를 여행한
내용을 섬세하게 기록한 두루마리로
당시의 인도印度와 서역西域의 각종 종교宗敎와
풍속風俗에 관한 기록이 많이 들어 있는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쓰게 된 것이다.
오천축국五天竺國은 4개의 천축국天竺國으로
천축국天竺國은 인도印度이며
오천축五天竺은 넓은 지역을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지방으로 구분해 한꺼번에 부른 이름이다.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8세기의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관한 세계 유일의 기록이 된다.
원래는 3권이었던 듯하나 현재 발견된 것은
제 1권으로 약본略本이며 필사본으로
총 6,000여 자이고 두루마리 형태인데
그나마 앞뒤 부분이 떨어져 나가 없다.
1908년 3월 프랑스의 탐험가 펠리오Pelliot,P가
중국 둔황敦煌의 천불동千佛洞 석굴石窟 중에
막고굴莫高窟에서 발견하였는 데
중국 청淸나라 말기末期의 고증학자이며 역사가인
뤄전위羅振玉가 1909년 둔황석실유서敦煌石室遺書
제1집에 수록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며
1915년 일본의 종교학자인
다카쿠스 준지로高楠順次郎와 오타니大谷가
신라인 혜초慧超 스님이 쓴 것임을 밝혀냈다
1928년 독일학자 푹스Fuchs,W.에 의하여
독일어獨逸語 번역飜譯 책자가 나오게 되며
1943년 최남선崔南善이 원문原文과 해제解除를
붙임으로써 국내외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현재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所藏되어 있으며
프랑스 파리Paris 국립도서관國立圖書館에는
엄청난 고서古書 들이 쌓여있어 앞으로
또 어떤 내용이 더 나올지 알 수가 없다.
불공不空 (705~ 774) 스님은
진언종부법眞言宗付法의 제6祖로 불리며
중국 4대 역경가譯經家 중 한 사람이다.
북北 인도印度 출신으로 719년인 15세의
어린나이로 금강지金剛智의 제자가 되어
20세에 구족계具足戒를 받으며
금강지金剛智의 역경譯經 사업을 보좌하며
밀교密敎의 깊은 뜻을 깨우치게 된다.
밀교密敎 란 불교의 어려운 경전經典의 내용을
설명이나 해석으로 서로 다듬는 종파를 말한다.
741년 금강지金剛智 스님이 입적入寂 하자
그의 유명遺命을 받들어 비밀경전의 범본範本을
가져 오려고 인도에 들어가게 된다.
불교의 능가경楞伽經과 관계가 깊은 사자국獅子國
스리랑카에서 용지아사리龍智阿闍梨를 만나
용지보살龍智菩薩의 십팔회금강정경 등을 받고
다시 비밀경전秘密經典 1200권을 받아내어
746년에 당唐나라 장안長安으로 돌아왔다.
아사리의 뜻은 불교의 모범模範이 되는 승僧으로
제자의 잘못을 바로잡는 고승高僧을 말하며
산스크리트어 ‘ācārya’의 음역어이다.
중국으로 돌아온 불공不空 스님은 인도 밀교密敎의
적손嫡孫이라는 자부심으로 화려한 활약을 하였다.
불공不空 스님은 유서遺書에서 자신의 법을
이을 6대 제자 가운데 2번째로 혜초慧超를 꼽았다.
혜초慧超 스님은 불공不空 스님이 입적入寂 한 후
수년 동안 장안長安에 머물다가 780년에
불공不空 스님이 활동하던 오대산五臺山으로 들어갔다.
오대산五臺山 건원보리사乾元菩提寺에 머물면서
대승유가금강성해만수실리천비천발대교왕경서
大乘瑜伽金剛性海曼殊室利千臂千鉢大敎王經序
의 한역漢譯과 한자漢字 음사音似를 시도하였다.
이후의 기록은 전하여 지지 않으며
신라新羅 경주慶州로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3권 가운데 일부와
대승유가금강성해만수실리천비천발대교왕경서
大乘瑜伽金剛性海曼殊室利千臂千鉢大敎王經序
및 하옥녀담기우표 賀玉女潭祈雨表가 전하여진다.
중국 산서성山西省 대주代州 오대현五臺縣의
오대산五臺山은 동東 서西 남南 북北. 중中의 5봉이
높이 솟은 산이면서 정상頂上에는 나무가 없고
흙을 모아 쌓아놓은 대臺와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며
예로부터 불교佛敎의 성지聖地로 알려져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