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사를 찾아

길상사를 찾아24. 성북동의 연민

서 휴 2013. 11. 7. 12:12

 

길상사 吉祥寺를 찾아

서길수

 

24. 성북동의 연민憐憫



사랑과 이별

 

오고가는 마음을

다짐하고 다짐하면서 도

 

사랑밖에 없다던 내 마음이

왜 이별을 따라갈까

 

사랑과 이별

이리 쉽게 변할 수가 있을까

 

인사도 없이 떠나는 마음은

후회하는 모습이 되면서

내리던 봄비처럼 안개가 되어

 

하나의 꿈이었든 양

널따란 성천강城川江에 피어오르며

부전령赴戰嶺 고갯마루에 구름으로 떠돈다.

 

함흥만咸興灣의 푸른 파도가

나를 돌이켜보라는 듯

물고기의 비늘처럼 반짝거린다.

 

나의 사랑과 이별은

기적소리 울릴 때마다

함흥咸興에서

점점 멀어져만 가고 있다.

 


     원산元山을 지나며 

     경원선京元線 철길을 열심히 달리고 달려

     철원鐵原에서 잠시 눈을 감으니 

     이제는 의정부議政府를 지나고 있다.

 

     眞香은 고향인 서울에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眞香의 고향인 서울은 어떻게 하여 생겨났을까.

 

      서울인 한양도성漢陽都城이 만들어 지도록 예언豫言

     도선선사道詵禪師에 대하여 조금 알아보며 가봅시다.

 

도선선사道詵禪師는 신라新羅 말기의 승려이며

15세에 승려가 되어 23세 때 

천도사 穿道寺에서 구족계 具足戒를 받고


운봉산雲峰山 태백산太白山 등을 돌아다니면서 

수련을 하였다한다.

 

선승禪僧들은 여러 山川을 돌아다니며 수련하다가

인연이 닿는 절에 자리 잡아 선문禪門을 연다.


도선선사道詵禪師도 37세에 지금의 광양시光陽市에 있는 

백계산白鷄山 옥룡사玉龍寺에 자리 잡았다.

 

도선道詵玉龍寺에서 35년간 많은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수많은 저서 중에

 

사분율행사초四分律行事招 사분율비구함주계본소四分律比丘含注戒本疏

사분율산보수기갈마소四分律刪補隨機褐磨疏를 합한

율종律宗의 삼대부三大部를 비롯하여

 

사분율습비니의초 사분율비구니초 사분함주계본소 관중창립계단도경

계율戒律에 관한 것과

석문장복의 석문귀경의와 같은 의식에 관한 것 등으로

 

출가한 스님들이 불법을 수행함에 지켜야할 계율戒律

치러야 할 의식儀式의 내용과 절차를 마련하므로 써

우리나라에 남산율종南山律宗를 처음 세운 종조宗祖로 추앙받기에 이른다.

 

대당 내전록과 같은 경전 목록

광홍명전 집고금불도논과 같은 유. 불. 도의 삼교가

교류함으로 인하여 일어난 논쟁에 관한 것들과

 

훌륭하고 이름 있는 많은 스님들의 이야기를 분류하고

해석한 속고승전명고승전

풍부한 내용과 더불어 학문적인 가치도 높였다

 

석가보 석가방지 속고승전과 같은 불교사서 감통록

송고승전은 모두 220여권이나 된다고 하니

실로 초능력자 이상의 재능을 발휘하였다고 한다

 

서기 898년 신라 효공왕 2년에 72세의 나이로 열반涅槃하시자

효공왕이 요공선사了空禪師라는 시호를 내렸고

제자들이 징성혜등澄聖慧燈 이라는 탑을 세워 그의 공적을 기렸다.

 

     신라말기 무렵에 세상이 혼탁하여져 살기가 어려워지자

    사람들은 더 나은 미래를 바라게 되어

    어떤 예언豫言을 믿으려하며

 

    이러한 예언豫言의 이야기를

     도참설圖讖說 또는 참위설讖緯說이라고 할 수 있다.

 

    도참설圖讖說은 예언豫言을 믿게 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으며

    더 나은 미래를 바라는 민심이 도참사상圖讖思想에 빠져들게 된다.

 

도참설圖讖說은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

부서설符瑞說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 등을 혼합하여

하늘과 땅이 변하는 모습을 미묘하고 오묘하게 설명하는 내용이다.

 

도선道詵은 도참설圖讖說을 풀어가며 지리쇠왕설地理衰旺說

산천순역설山川順逆說 및 비보설裨補說 등을 주창하였다.

 

도선道詵이 남긴 비기도참서秘記圖讖書

전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그 일부만이 고려사高麗史에 실려 전하여 오고 있으며

 

궁궐宮闕을 옮길 때나 천도설遷都說이 있을 때마다

이야기되었다 하며 신라 말부터 고려에서 조선으로 내려오며

통치이념이 되기도 하고 많은 백성들도 이를 신봉하였다.

 

     지리地理는 곳에 따라 쇠왕衰旺이 있고 순역順逆이 있으므로

     왕처旺處와 순처順處를 택하여 거주할 것과

     쇠처衰處와 역처逆處는 인위적으로 비보裨補 할 것을 말하며

 

      나라나 백성은 살아갈 자리를 잘 살펴 좋은 터를 잡아야 하며

     나뿐 땅은 보호하면서 알맞게 잘 다스려야한다는 이야기로써

 

비기도참서秘記圖讖書

왕조王朝와 백성百姓 들의 융성쇠락隆盛衰落과 길흉화복吉凶禍福

예언豫言하며 미래의 세계를 암시暗示 하는 것으로

 

도선道詵은 왕건王建의 아버지에게 집터를 정하는데 도움을 줌으로써

고려태조 왕건王建의 탄생을 예측하게 하였으며

고려高麗의 건설에도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전하여 온다.

 

고려태조 왕건王建이 도선선사道詵禪師의 도참사상圖讖思想

얼마나 영향을 받고 있었는가는

왕건王建이 권좌에서 물러나기 전에 후손들에게 내린 유훈遺訓으로

훈요십조 訓要十條 의 내용을 보면 잘 알 수가 있다.

 

훈요십조는 왕실 내의 가훈家訓으로

특히 임금으로써 국정을 운영함에 지켜야할 열 가지 사항을

도선道詵의 비기도참서秘記圖讖書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고려사에서 보듯

도선선사道詵禪師의 풍수사상을 잘 지켜나가고자 하는 내용이

고려의 숙종肅宗 인종仁宗 의종毅宗에 걸쳐 많이 나온다.

 

훈요십조의 내용 중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제8조로써

 

차현車峴 이남 공주강公州江 바깥은 산형과 지세가

모두 반대 방향으로 뻗었고 따라서 인심도 그러하니

(중략)

이 지방 사람들은 비록 양민良民 일지라도

관직을 주어 국정國政에 참여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라

 

     車峴은 차령산맥車嶺山脈公州江은 금강錦江

     말한다고 하며 이는 곳 호남지역湖南地域 을 뜻한다고 한다.

 

왕건王建이 통일을 이룰 무렵 후백제後百濟에게 혼이 나며

두려운 나머지 그 당시의 후백제의 세력가들에게

경계를 늦추지 말라는 뜻으로 그 뜻을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

빗대어 유훈遺訓으로 너무 강조하였다.

 

또한 함경도咸鏡道 사람들은 높고 깊은 산들과 같이

그 기질이 강직하며 부지런하고 정이 많음에도

 

고구려高句麗와 발해渤海가 망하면서

함경도咸鏡道는 변방이 되어 국가의 소속에 변동이 많았으며


고려 후반에는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가 생겨 

백여 년간 나라를 위태롭게 하였다.

 

조선태조朝鮮太祖 이성계李成桂는 자기가 태어나 자란 곳이면서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 를 없애는데 큰 공을 세웠음에도

함경도咸鏡道를 안심 할 수 없는 곳으로 명시하였다.

 

 

이러한 내용으로 두 태조太祖전라도全羅道와 함경도咸鏡道

사람들이 괄시恝視를 받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차라리 민족을 대통합大統合하여 더욱 잘사는 나라를 만들고

또한 고구려高句麗의 옛 땅을 되찾으면서

대륙大陸으로 진출進出하자는 민족의 시대정신時代精神

큰 바탕으로 만들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크게 따른다.

 


     道詵禪師의 참뜻은 자연을 잘 이용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일진대

     두 태조太祖의 지나친 좁은 편견偏見으로

     지역을 편 가르는 폐단弊端이 아직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으며

 

     소위 배웠다 하는 명사들도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을 신봉信奉하며

     자기집안의 부귀영화富貴榮華을 위하여

     조상祖上의 묏자리를 거창巨創하게 세우는 악습惡習을 이어오고 있다.

 

     도선선사道詵禪師가 도참설圖讖說을 배우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玉龍寺에 자리 잡기 전 지리산 구령甌嶺에 머물 때 이인異人을 만나

     구례현 求禮縣의 경계인 남해변南海邊에서 전수받았다는 설이 있으나

     아마도 많은 책을 읽으며 스스로 터득한 것으로 보아야 옳을 것 같다.

 


전해 내려오는 책에는 도선비기 道詵秘記 송악명당기 松岳明堂記

삼각산 명당기 三角山明堂記 옥룡기玉龍記 도선답산가 道詵踏山歌 등과

 

1150년 고려 의종毅宗 4년에 최유청崔惟淸이 편찬한

백계산 옥룡사 증시 선각국사 비명병서 白鷄山 玉龍寺 贈諡 先覺國師 碑銘竝序

10여 편이 있다고 한다.

 

도선선사道詵禪師의 지리도참서地理圖讖書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에서

삼각산 명당기 三角山明堂記를 보면

지금의 서울을 풍수지리상 아주 좋은 명당明堂으로 풀이하였다.

 


    三角山은 북을 등지고 남을 향한 선경選境으로

    거기서 시작한 화맥花脈은 세 겹 네 겹으로 되어

    산이 산을 등지고 명당明堂을 수호하고 있으며

 

    앞의 조산朝山은 다섯 겹 여섯 겹으로 되어 있고

    방계傍系 직계의 고산姑山 숙산叔山 부산父山 모산母山

    모두 솟아나서 주인을 모셔 다른 생각이 없다.

 

    좌우에 있는 청룡靑龍과 백호白虎는 세력이 서로 비등하여

    내외의 인물과 보화는 이곳으로 모여들어 오로지 국왕을 돕고,

 

    임자년壬子年 중에 이 땅을 개척하면

    정사년丁巳年 간에 훌륭한 아들을 낳을 것이며,

 

    또 삼각산에 의지하여 제경帝京을 마련하면

    9년 되는 해에 사해四海가 모두 와서 조공하리라.

 


여기에서 화맥花脈은 북악산北嶽山의 맥을 짚으며 하는 이야기이며

조산朝山은 북한산北漢山을 말하는 것 같다.

 

北漢山은 주봉인 백운대白雲臺 836m를 중심으로

인수봉仁壽峰 노적봉露積峰 등과 함께 높은 봉우리가 많으며

 

주봉인 백운대를 중심으로 북쪽에 인수봉811m 남쪽에 만경대800m의

세 개의 봉이 삼각형으로 놓여 있어 삼각산三角山 이라 부른다.

 

북한산北漢山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기암들이 곳곳에 솟구쳐

병풍을 두른듯하면서

수많은 계곡에 나무들이 울창하여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항상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면서 서울을 소중히 보호하여 주고 있다.

 

    서울을 600년 도읍지로 가르쳐준 도선선사道詵禪師

    北漢山을 할아버지 산으로 하여

    北漢山이 아늑하게 품고 있는 북악산北嶽山에 올랐으리라

 

    北嶽山을 비롯한 인왕산 안산 관악산 청계산 낙산

    동쪽의 아차산과 수락산 그리고 멀리 있는 남한산성도 바라보며

 

    항상 따뜻하고 온화함이 피어오르는 남쪽의 목멱산木覓山

    南山에 봉수대烽燧臺를 놓으며

 

    평범하지 않은 산들이 에워싸고 있는 곳을 귀히 여겨

    한양도성漢陽都城의 터를 잡게 하였으리라

 

북악산北嶽山 서울 북쪽에서 경복궁景福宮을 품어주며

1394년 태조 4년에 도성축조도감都城築造都監을 설치하고

 

1395년 태조 5년에 짓기 시작한 한양도성漢陽都城의 성곽城郭

北嶽山을 시점으로 낙산駱山 목멱산木覓山 인왕산仁王山의 능선을 따라 쌓았다.

 

한양도성漢陽都城은 동서남북에 큰 대문을 만들었는데

           동쪽의 흥인문 興仁門 동대문

           서쪽의 돈의문 敦義門 서대문

           남쪽의 숭례문 崇禮門 남대문

           북쪽의 숙청문 肅淸門 북대문 으로

네 개의 성문을 우리는 四大門이라 부른다.

 

또한 홍화문弘化門 광희문光熙門 창의문彰義門 소덕문昭德門 으로

4소문을 만들며 합하여 여덟 개의 문을 완성하였다.

 

숙청문肅淸門은 말을 타고 의정부議政府로 가는 지름길이 되며

인조仁祖 때 그 이름이 바뀐 숙정문肅靖門으로 넘어서면

 

한양도성을 지키던 어영청御營廳이 성밖의 북쪽에 주둔하고 있어서부터

성북城北이라는 이름이 쓰이기 시작되었다는

지금의 성북구城北區 성북동城北洞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성북동城北洞 북악산北嶽山 오른쪽 산자락으로

숙정문肅靖門과 홍화문弘化門의 성곽이 부채꼴 모양으로 감싸고 있으면서

울창한 나무와 바위들이 잘 어울려 맑은 시냇물이 항상 흐르며

 

성북동城北洞은 북한산北漢山이 내려다보고 있는 양지바른 곳으로

이름 있는 風水家들이 재복財福이 쌓이는 곳이라 하여

 

옛날부터 배나무나 복숭아 과수원을 하는 부자들이 살아가더니

오래전부터 이름 있는 부호들이나 재력이 있는 유명인 들이 살고 있다.

 

眞香서울에 도착하여 삼청동三淸洞에서

다정히 지냈던 친구들을 만나 실로 오랜만에 이야기 나누며 수다를 떨다가

운명運命의 발길로 숙정문肅靖門을 넘어가게 된다.

 

眞香은 그 때부터 성북동을 자주 드나들게 되며

성북동의 아름다움을 알게된다.

그리고 白石이 찾지 못하도록 모든 인연을 끊는다 

 

             잊기 위하여

 

             나의 사랑은

             이제 이별의 아픔도 없어요.

 

             가슴에 남아있는 기억들은

             북악산 맑은 물에 씻겠어요.

 

             그대의 숨결이 들려오면

             얼른 나가 맑은 물에

             흥건히 머리 흔들어 흘려보내겠어요.

 

             그래도 보고 싶음에 울렁거리면

             먼 북한산 자락 바라보며

             마음이 조용해 질 때까지 기다리겠어요.

 

             잊으려 해도 아니 잊히면

             자귀나무 아래에 자리를 펴주고

             세월이 가져가도록 기다리겠어요.

 

             세월이 가도 남는 기억은

             성북동 맑은 물소리 따라

             언제인가는 흘러가겠지요.

 

25. 찾아오는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