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사를 찾아

길상사를 찾아 20.사랑은 흔들리고

서 휴 2013. 8. 6. 08:24

 

길상사 吉祥寺를 찾아

서길수

 

20. 사랑은 흔들리고

 

 

누구나 평탄한 길을 가며 여유롭게 살아가고자하나

현실을 넘어설 수없는 우리의 마음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 덕숭산德崇山 자락에 있는 수덕사修德寺

절을 찾아가면

일주문一柱門에 들어서자마자 먼저 수덕여관修德旅館 안내판이 보인다.

 

고암顧庵 이응로李應魯 화백畵伯

1967년 되던 해에 고국에 돌아와

동백림 사건에 휘말려 2년간 교도소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그의 본부인 박귀희 여사는 옛 남편을 정성을 다하여 뒷바라지하며

이응로 화백은 이에 힘입어 오랜만에 살던 집 수덕여관에 돌아와

 

수덕여관의 집 앞에 있던 바위에 한글로 수덕여관이라 새기고

뒤뜰의 우물가 바위에 글씨체를 추상화하여 암각화巖刻畵를 새기게 되며

다시 프랑스 파리로 떠난다.

 

바위에 새긴 암각화巖刻畵는 이응로 화백의 어떤 마음이 담겨있을까

이를 보고 있노라면

한 많은 사연을 품고 살았던 두 女人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한 여인은 김일엽金一葉으로 더 많이 알려진 一葉스님 김원주 金元周이며

또 한 여인은 一葉스님의 친한 친구인 여류화가女流畵家 나혜석羅蕙錫이다

 

1896년에 평안남도 용강에서 목사의 첫째 딸로 태어난 김원주金元周

23세에 이화여전을 졸업하고

일본의 동경영화학교를 나와 귀국하여

新女子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나혜석 김명순 등과 여성해방 운동을 하였다.

 

一葉스님은 첫 남자에게서 또한 스님이 되는 한 아들을 낳았으며

두 번째 남자와는 조금 살다가 헤어진다.

 

활발하게 사회운동을 전개하다가

1928년 당시33세의 꽃다운 나이에

수덕사修德寺에 출가하였다는 소식이 알려져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한다.

1933년 38세에 견성 암에서 만공스님을 계사로 머리를 깎았다.

 

또 한명인 나혜석羅蕙錫一葉스님과 같이 이화 여전을 졸업하고

일본 도쿄 여자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후에

 

1918년 귀국하여 서울 정신여학교 미술교사를 지내며

1918년 12월부터 박인덕 등과 함께 1919년 3·1 만세 운동에 참가하여

5개월간 투옥되었다가 풀려나기도 한다.

 

1920년 나혜석羅蕙錫

나만을 사랑하여야 한다 조건을 내걸고 김우영과 결혼하였으며

 

1927년 유학길에 올라 프랑스에 체류하게 되며

남편 김우영은 독일 베를린으로 법률 공부 차 떠난다.

 

파리에 남은 나혜석羅蕙錫

야수파 비시에르에게 사사받으며

야수파 인상주의 표현파 등의 영향을 받는다.

 

어느 날 나혜석은 한국 유학생들이 주최하는

3.1운동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하나며 천도교 교령이던 최린崔隣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환영회에 참석하였다가

 

최린을 처음 본 순간 첫눈에 반하여 정열적인 사랑에 빠진다.

이때의 최린崔隣은 같은 이름의 다른 사람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 염문은 베를린에 있던 남편 김우영에게 까지 알려지게 되며

귀국하여 결혼생활을 청산하는 이혼의 사유가 되었다.

 

세 아이를 낳았지만

다른 여자와 신접살림을 차린 남편

애정 없는 생활은 1930년 가을에 이혼하고 만다. 그리고

 

이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시험 결혼이 필요하다

삼천리 잡지에 -이혼 고백장- 이라는을 실어 장안을 뒤집어놓는다.

나혜석羅蕙錫 그만큼 자유분방한 신여성이었다.

 

뛰어난 미모와 함께 발가벗은 나부裸婦를 그리는 등

그림, 글, 시 등으로 파격적인 활동을 하며

 

1935년 정조론貞操論을 발표하며 남성들의 정조관貞操觀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남성들은 처나 딸이나 다른 여자에게도 정조를 지킬 것을 강조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다른 여자의 정조를 차지하려 한다고 주장하였다.

 

유교儒敎의 공자孔子님도 남녀 다 같이 도덕道德을 지키라는 것이었지.

혼외婚外 사랑에 대한 책임에 대하여

여자만이 가혹한 냉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며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며

구시대舊時代의 낡은 관습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남자들의 위선적인 행동에 대한 비판과 자유 연애론을 주장하면서

 

결혼이란 부모님의 주장보다는

당사자들의 의견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혼離婚 후에 사회활동을 하다가 스님이 되겠다며

친구인 一葉스님을 修德寺로 찾아가

일주문 옆 수덕여관修德旅館에 머무르게 되는 어느 날

 

중학교에 들어간 어린 아들이

일엽스님을 찾아와 어머님하고 부르자

어머니라 부르지 말라 스님이라 부르라 냉정하게 대한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나혜석은

독한 년 어떻게 천륜을 배반해 하며 수덕여관에 데려와

낳아준 어머님처럼 품어 안아 재우기도하고 정을 준다.

그 아들은 나혜석의 영향을 받아 화가가 되며 60이 넘어 스님이 된다.

 

이혼離婚과 사랑의 아픈 마음을 달래며

스님이 되고자 수덕여관에 머물던 나혜석羅蕙錫에게

청년 고암 이응로 화백이 찾아와 배움을 청하여 수년간 지도를 받는다.

 

一葉스님과 羅蕙錫 화가는 같은 1896년생이며

이응로는 1904년생으로 나혜석과의 사이에는 사랑이야기가 없다 

 

一葉스님은 수도 생활에 대한 수상록隨想錄과 선시禪詩를 썼으며

열정적인 羅蕙錫은 스님이 되지못하고 수덕사修德寺를 떠나며

 

이응로 화백은 부인 박귀희 여사에게

수덕여관을 1944년에 구입하여 주며

이곳에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59년에 21세 연하의 박인경 화가와 같이

파리로 유학을 떠나버린다.

 

一葉스님이나 나혜석 이응로 이광수 등과 윤심덕 화가 시인 소설가 사회운동가 등

같은 시대 묵객들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眞香

예절禮節 바르게 白石에게 이야기한다.

 

                 편지가 아니 왔어도

                 부모님을 당연히 뵙고 와야지요.

 

                 당신을 두고 나 혼자 가자니 발이 안 떨어져

                 그래도 부모님은 찾아뵈어야하지요

 

                 자꾸 이러면

                 당신이 보고 싶어

                 서울역에서 되돌아올지도 몰라

 

한겨울 함흥 역

차가운 바람이 휘몰며

시린 발을 동동 구르게 한다.

 

잘 다녀오세요.

眞香白石에게 인사를 한다.

 

서울 집에 가는 白石을 배웅하며 돌아서는 眞香

차가운 밤하늘에 별은 총총히 떠 쓸쓸한 마음이 다가온다.

 

같이 가 떳떳이 인사 올리며

찾아뵈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부모님의 승낙을 받아

오붓하게 살 수 있으면 너무나 좋으련만

 

부모님께서 용납을 안 하실 터이니

白石의 처분에만 마껴야 하는 입장이 처량해져 온다.

 

앞길이 유망한 白石

뛰어난 뭇 처녀들이 선망하는 白石

기생妓生으로써 총각을 붙들고 있는 죄책감도 따른다.

 

어떻게 이 난관을 극복하지

좋은 방법은 없을까 깊은 생각을 하며 걸어가고 있다.

 

어찌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며 살고 싶은데

기생妓生이라는 신분이 이토록 걸림돌이 될까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다.

 

子夜 부르는 소리에

眞香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돌아본다.

白石이 다가와 감싸 안는다

 

               아니 어찌된 일이예요

               기차 안타셨어요.

 

               휘영청 달은 밝은데

               바람은 쌩쌩 불어 데는데

               기다리는 기차는 아니 오는데

 

               종종 걸음으로 돌아가는 당신

               당신의 뒷모습 바라보니

 

               발은 시리고

               내 마음이 당신에게 달려만 가니

 

               내 마음은

               서울역에 갔다가 이렇게 되돌아 왔으니

 

               오늘밤은 서울 왕복 이 천리 길을 벌고서

               당신을 만나고 있지 않소. 허 허

 

그토록 말 수가 적은 白石

무성영화無聲映畵의 변사辯士처럼 목소리를 가다듬어 대사臺辭를 엮어나가니

 

이토록 나를 사랑하는 白石

眞香白石의 티 끝없이 맑은 사랑에

행복한 마음이 온몸에 차오르며 저며 온다.

 

眞香은 다음날 이른 아침

白石을 기차를 타게 하며 서울 부모님에게로 떠나보낸다.

 

眞香白石이 집에가 혹여 좋은 소식이라도 만들어올까

기대를 하지 않지만 서도 잘 다녀오기만을 기다린다.

 

매일매일 편지가 오다가 뚝 끊어진다.

무슨 일일까

眞香은 여자로써 예감이 온다.

 

이대로 영영 떠나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는 않겠지

하루하루 오지 않는 편지에 眞香은 몸져누워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白石이 뛰어 들어와 와락 껴안으며

내 이럴 줄 알았어.

축 늘어진 眞香을 안고서 자기의 가슴속으로 쓸어안는다.

 

白石은 부모의 강압적인 권유로 장가를 간다.

그리고 신부의 얼굴도 보지 않고 眞香에게 달려왔노라 이야기한다.

眞香白石의 마음을 믿는다.

 

白石은 진지하게 이야기하며 의논을 한다.

우리가 같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山谷

 

 

              돌각담에 머루송이 깜하니 익고

              자갈밭에 아즈까리알이 쏟아지는

              잠풍하니 볕발은 곬작이다

              나는 이곬작에서 한겨울을날려고 집을한체 구하였다

 

              집이 멧집되지않는 곬안은

              모두 터앝에 김장감이 퍼지고

              뜰악에 잡곡낙가리가 쌓여서

              어니세월에 뷔일듯한집은 뵈이지않었다

              나는 작고 곬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곬이다한 산대밑에 작으마한 돌능와집이 한 채있어서

              이집 남길동단 안주인은 겨울이면 집을내고

              산을돌아 거리로날여간다는말을하는데

              해발은마당에는 꿀벌이 스무나문통있었다

 

              낮기울은날을 해ㅅ볕 장글장글한 퇴ㅅ마루에 걸어앉어서

              지난여름 도락구를타고 長津땅에가서 꿀을치고

              돌아왔다는 이 벌들을 바라보며 나는

              날이 어서 추워저서 쑥국화꽃도 시들고

              이 바지런한 백성들도 다 제집으로 들은뒤에

              이곬안으로 올것을 생각하였다

 

白石은 부모님의 간섭이나 주변사람들의 눈총을 받지 않으며

眞香과 같이 사랑만 가지고 살아갈 곳을 찾기 시작하며 이 시를 쓴 것 같다

 

1992년 이응로 화백이 귀국전시회를 앞두고 파리에서 갑자기 눈을 감자

박귀옥 여사는 몸은 비록 자기를 떠났어도 영혼만큼은 자기한테 있다며

유골이나마 함께 묻히고 싶어 하였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보면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한평생을 살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을 알게 된다.

 

아옹다옹 싸우면서

때로는 보따리를 쌌다가도 다시 풀고 하였지만

이제까지 내 곁에서 같이 살아준 사람에게 감사드려야할 것 같다

 

21. 어름소리氷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