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사를 찾아

길상사를 찾아22.떠나는 여자의 마음

서 휴 2013. 9. 10. 13:23

길상사 吉祥寺를 찾아

서길수

 

22. 떠나는 女子의 마음

 

흥남부두興南埠頭가 있는 함흥만咸興灣

동해안을 따라 오른 켠 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흥남공업단지를 벗어나며 낙원군의 낙원만樂園灣을 만나게 되고

홍원군洪原郡의 신포新浦 앞 작은 섬들이 많은 양화만楊花灣을 지나며

 

사람들의 기질이 굳건하며 도 민속전통을 잘 지켜나가는 북청北靑을 지나

이원군의 아름다운 학사대 學士臺가 있는 이원만利原灣을 지나

지하자원이 풍부하게 많아 이권의 각축이 자주 벌어지는 단천端川을 지나

 

함경북도의 유서 깊은 길주吉州를 찾아 함경산맥 산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성진시의 성진만城津灣을 지나며

점차적으로 나진羅津 선봉先鋒으로 가게 되어 두만강豆滿江과 만난다.

 

남쪽에서 보면

강원도 북쪽으로 금강산金剛山을 지나 통천通川을 지나 안변安邊을 지나며

원산元山과 문천文川에서 영흥만永興灣을 만나게 된다.

 

영흥만永興灣은 아주 드넓으면서도 아기자기한 호수와 같으며

저편에 떠있는 호랑이처럼 생긴 호도반도虎島半島를 바라보다가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어 주저앉을 수도 있다.

 

영흥만永興灣의 내륙 서쪽으로 백두대간의 마식령산맥馬息嶺山脈

1,323m가 되는 높은 두류산頭流山에서 시작하며

 

지금 북한에서는 드높은 두류산頭流山과 아름다운 영흥만永興灣을 끼고

스키장과 골프장 호텔 등 리조트를

김정은의 지시에 충성하고자 금년 말까지 완공하겠다며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수많은 군인들이 밤낮으로 고생하고 있다

 

영흥만永興灣에서 잠시 쉬고 일어서서 해변을 따라 걸으면

천내川內 고원高原 금야金野를 지나면서부터

정평군定平郡 길주군吉州郡 함주군咸州郡

이일대의 평야지대는 동해안에서 제일 넓은 곡창지대이며

 

이곳을 서로 차지하기 위하여 고구려도 신라도 발해도 원나라도 여진도

각축을 벌이던 곳이다

 

또한 그 밑의 바다인 동한만東韓灣은 광활하게 탁 트여있다

동한만東韓灣 옆에 화물선이 많이 드나드는 함흥만咸興灣이 있다

지도에서 보면 잘록하게 동해안이 내륙으로 가장 많이 쑥 들어간 곳이다.

 

영흥만永興灣을 시작으로

동한만東韓灣 함흥만咸興灣 이원만利原灣 양화만楊花灣 성진만城津灣등은

 

바다 밑이 그리 깊지 않고 풍요로워

해산물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으며

 

물고기들도 차례대로 많이 찾아오는

세계의 3대 어장漁場이라고 부르던 곳이다.

 

白石도 좋아하며 함경도 사람들이 즐겨 밥상에 올리는 가자미

구워먹거나 조림으로 또는 가자미식해를 만들어

비빔밥이나 국수나 냉면에 올려놓아 맛있게 먹는 반찬이 된다.

 

          膳友辭

 

          낡은 나조반에 힌밥도 가재미도 나도나와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힌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무슨이야기라도 다할것같다

          우리들은 서로 믿없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긴날을 모래알만 혜이며 잔뼈가 굵은탓이다

          바람좋은 한 벌판에서 물닭이소리를들으며 단이슬먹고 나이들은탓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게소리배으며 다람쥐동무하고 자라난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없어 히여졌다

          착하디 착해서 세괏은 가시하나 손아귀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없다

          그리고 누구하나 부럽지도않다

 

          힌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같은건 밖에나도 좋을것같다

 

가을이 되어 곡식이 영글고 과일이 빨갛게 익어갈 때면

이삼십 마리씩 떼를 지어 참새 떼들이 곡식을 먹으려 날아들면

이를 쫒으려 허수아비도 만들어 세우고

깡통을 메달아 흔들고 훠이훠이 내쫒기 바빴다.

 

우리주변에는 참새 떼나 날짐승들 도

또한 여기저기서 뛰놀던 두꺼비나 개구리들의 모습이

옛날처럼 보이질 않는다.

 

산으로 가면 또한 꿩들이 많았다

꿩은 덤불숲 가까이 있는 밭에 들어가 곡식들을 잘 먹는다.

 

전국 어느 곳이나 꿩들이 많아

어린 마음에는 요렇게 숲속에 숨어 있다가

꿩이 지나갈 때 콱 잡으면 된다는 생각도 하였을 거 같다

 

어른들은 사냥도 많이 하여

설날에는 떡국에 넣어 맛있게 먹기도 하고

 

특히 함경도 지역에서 잘 만드는

만두를 빚을 때 만두소에 꿩고기를 넣어야

제 맛이 난다고 하며

비빔밥이나 국수나 냉면에도 올려놓아 맛있게 먹었다.

 

꿩은 닭목의 꿩과에 속하는 흔한 텃새로

수컷의 몸길이는 약 90㎝, 암컷은 60㎝가 조금 넘는다.

 

꿩들은 작은 무리를 이루며

여름에는 산골과 야산의 숲에 살지만

가을과 겨울에는 낮은 곳으로 내려와 살아간다.

 

모두 쉰 목소리로 울음소리를 내면서

긴 꼬리와 화려한 색깔을 가진 수컷은

 

짧은 꼬리를 가진 갈색의 암컷을 3마리 정도 거느리기 위하여

다른 수컷과 죽을 때까지 싸우는데

암컷은 본체만체하며 모이 쪼아 먹기에 바쁘다.

 

온갖 짐승들도 암컷은 새끼를 거느리며 먹고살기에 바뿐 모양이다

수컷이 싸우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상당히 현실적이다

 

사람들도

남자들 보다는 여자 분들이 현실적인 판단에 강한 것 같다

 

眞香은 누군가 문 두드리는 소리에 비몽사몽간에 놀라 잠에서 깨어납니다.

당신인가요.

그러나 白石은 없었다.

 

문밖에는 겨울이 지나가며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고 있는 사이로

白石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 보 기뿐 소식이 있어

          우리 드디어 신경新京으로 가게 되었어.

 

          사랑하는 子夜

          이제 눈물을 닦아요.

 

          이제 아무도 모르는 신경新京에 가서

          이제 우리 둘만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어요.

 

          만주벌판 그토록 추운 만주 땅에 가서

          이 연약한 손으로 나의 와이셔츠를 빨며

          어떻게 고생을 하지

 

          그러나 사랑하는 子夜

          우리 한번 새롭게 출발해보자

 

          내가 네가 있잖아

          우리의 사랑이 있잖아

 

부모가 자식의 의견을 이해하여 주기보다는

결혼 당사자의 의견보다는

부모의 결정에 무조건 따라야한다는

 

부모자식 간에 깊은 논의가 잘 안되던

봉건적인 그 당시 1937년 초봄

 

白石은 부모님의 결정에 따라 결혼식을 올리기 만하고

곧바로 돌아와 眞香의 마음을 달래기에 애를 쓴다.

 

眞香은 조용히 내리는 봄비를 보며 생각합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쫓겨 가는 듯

도피하여 떠나가는 듯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된 白石과 자신을 보며

또 한 번 주르륵 눈물을 흘립니다.

 

白石의 집안에서

유학을 다녀온 젊고 유망한 잘생긴 청년 白石

비록 유학은 갔다 왔다하나 기생이라는 신분인 眞香

 

眞香이 어여쁘고 단정하다고는 하나

신분이 기생인 子夜

白石의 집안에서 과연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그래 여보 신경新京에 가서 살자

            그래 우리 둘만이 행복하게 살아가자

 

            지금 보다는 마음이 편하겠지

            이제부터 운명에 맡기고

            다시는 다른 생각은 하지 않는 거야

            그래 여보 신경新京에 가서 살자

 

白石이 입는 내복과 眞香의 옷가지들과 간단한 화장품들

보따리 몇 개인 간단한 이삿짐

眞香은 신경新京으로 가기위한 보따리를 꽁꽁 동여맨다.

 

벌써2년이 넘은 1935년 초봄

도쿄 문화학원東京文化學院 3학년에 편입하여

일본 유학생활도 어언 2년이 지나가며 졸업시기가 다가와

 

1937년 초봄에는

하와이 대학에 유학留學 갈 준비를 하라며 후원해주시는

 

해관 신윤국님과 조선어학회 朝鮮語學會 간부님 들의 권유에 따라

하와이 대학에 유학 갈 꿈을 안고 참으로 열심히 공부하였다

 

그러나 그분들이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체포逮捕되어

함경남도咸鏡南道 홍원형무소洪原刑務所로 보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무 연고緣故도 없는 함흥咸興

함경도咸鏡道 홍원형무소洪原刑務所로 가는 길은 얼마나 멀까

 

가까운 졸업을 앞두고 고생하시는 은인恩人들을 찾아

한번쯤은 면회라도 하여야 된다는 마음에

먼 바닷길을 넘어 물어물어 찾아온 함흥咸興

 

면회는 한 번도 못하고

하와이로 갈 유학의 꿈도 접어야하는 사이

어쩌다 白石을 만나

 

이토록 마음고생을 하게 되나

내리는 봄비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가야되나

가야겠지

眞香은 마음의 갈등을 겪는다.

 

              나와 白石은 잘 어울리는 상대일까

              이렇게 살아가면 서로 상처만 받는 것은 아닐까

 

              나는 괜찮다 하더라도 白石의 앞길을 막는 것은 아닐까

              서로를 위하여 지금 헤어지는 것이 白石을 위하는 길이 아닐까

 

              아무도 아는 사람도 없는 신경新京으로 떠나면 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환경과 단절이 될 것이며

              또한 白石의 앞길도 막힐 것이다

 

眞香은 기생신분인 子夜

白石의 앞길을 혹여 막아서는 건 아닌지 깊은 생각도 하게 됩니다.

 

봄비는 그치고 있었다.

眞香은 싸 노은 보따리를 들고 나온다

 

여 보 안녕히 계세요

이 소리도 못 한 채 종종 걸음으로 함흥咸興 역으로 가고 있다

 

옷가지며 얼마 안 되는 이작은 보따리가

왜 이토록 무거우며 눈치가 보일까

가며 걸으며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한다.

 

白石이 쫒아오는 양

어쩌면 白石이 잡아 주기를 바라면서 뒤를 돌아보는 것 같기도 하다.

眞香은 발길을 멈추기도 한다.

 

하얀 안개를 퍼트리며 봄비는 지나가고 있다

자욱한 안개 속으로 한 여인이 함흥거리를 지나가고 있다

 

지나가는 구름 사아로

함흥에 처음 와 올랐던 반용산盤龍山을 바라보기도하고

 

眞香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쳐낸다.

 

이제 함흥을 떠나가야 하는 걸까

眞香은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쫒아와 붙잡는 사람도

손을 흔들어 주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1937년 봄

서울행 열차가 기적소리를 내며 함흥 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별離別

 

              떠나가며 말은 하지 않겠어요.

              이별이라고

 

              떠난다고

              나의 사랑을 이별이라 말은 하지 않겠어요.

 

              사랑하니까 떠난다고

              말은 하지 않겠어요.

 

              멀리에서만 바라보아야 한다는 걸

              알았기에 떠나는 거예요.

 

              사랑하니까 미치도록 울고 싶은 이 마음 소리는 내지 않겠어요.

              사랑하니까 이제 눈물은 흘리지 않겠어요.

              사랑하니까 다시 만나지 않겠다는 말은 할 수 있어요.

 

              내가 그대를 사랑하듯

              그대 또한 나를 그리겠지만

              나는 그대 곁을 떠나가고 있어요.

 

              먼 곳에서 바라보는 거예요

              먼 곳에서 그저 바라보는 거예요

 

              그대가 보듯

              내가 보고 있어요.

              나의 마음에 이별은 없어요.

 

23. 기적汽笛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