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사를 찾아

길상사를 찾아21.어름소리

서 휴 2013. 8. 23. 00:58

 

길상사 吉祥寺를 찾아

서길수

 

21. 어름소리氷聲

 

 

우리가 북쪽을 향하여 지도를 보면

제일 높은 백두산白頭山이 있고

 

白頭山 왼쪽이 북쪽인 만주 쪽으로 향할 때에 松花江이 만들어지며

이강은 만주벌판의 장춘長春 시내를 가로지르며 흘러간다.

 

長春白石眞香과 헤어지고난후

8.15 광복절 즈음까지 한동안 살게 되는 곳이 된다.

 

또한 白頭山 왼쪽이 남쪽으로 향할 때에

咸鏡道의 개마고원 蓋馬高原은 내려오며 부전고원赴戰高原을 만들고

赴戰高原 옆으로 낭림산맥까지 장진고원長津高原이 만들어졌다.

 

赴戰高原赴戰湖는 충남 예당저수지보다 크며

長津高原長津湖는 부전고원의 赴戰湖보다 배 가까이 크다

 

이 두호수의 물이 독로강禿魯江을 이루며

평안북도(현 자강도) 강계시江界市를 지나가며 압록강을 만든다.

 

함경도咸鏡道의 겨울은 빨리 찾아와

개마고원 蓋馬高原 지역은 울창한 산림으로 습기가 많은 지역이라

영하 40도 이하 50도 까지도 내려가며

 

이 두 호수는 10월부터 얼기 시작하여

한겨울에는 3메타 이상 두꺼운 얼음이 꽁꽁 얼어붙어버린다.

 

매섭도록 차가운 咸鏡道에도 봄은 온다.

입춘立春이 지나고 우수雨水 경칩驚蟄이 되면

호수 바닥이 열을 받으며 그 많은 물이 부풀기 시작하면서

 

크우 웅

한밤에 마치 천둥이 치는 양

한밤에 마치 지진이 일어난 양

 

황초령黃草嶺 넘어 長津湖

부전령赴戰嶺 넘어 赴戰湖의 그 두꺼운 얼음이 쩍쩍하고 벌어지며 부딪치고

그 소리와 진동은 함흥咸興 사람들을 놀라게 하여 잠을 설치게 한다.

 

봄이 오기 시작하나 함경도咸鏡道는 아직도 춥다

추운 걸 이겨내기 위하여 독한 소주나 매운 고춧가루를 즐겨먹는다

 

그렇게 봄이 되면서 음력 2월이 되면

사람들은 문중門中 별로 시제時祭를 지내기 시작한다.

 

이때에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다 산이나 들에 나가 을 잡는다.

그 때에는 전국 어디서나 들이 참 많았다.

 

다들 잡아온 들을 털을 벗기고 큰 가마솥에 푸욱 삶아

뚝배기 그릇에 고기 국물을 한 국자 붓고

밥 위에 데쳐낸 콩나물을 올리고 고춧가루를 뿌리며

고기 몇 잎을 언 저주면서 참기름 한 방울을 떨어트린다.

 

춥고 배가 고프니 시제時祭가 끝나기 무섭게

설설 비벼 갓김치콩나물 김치와 같이 먹으면 참 꿀맛이다

함경도咸鏡道 비빔밥에 쇠주는 반주다. 크으흐

 

많은 수의 문중門中 사람들이 모이므로

고기가 모자라면 고기를 미리 삶아 대신한다.

대신 이다

 

白石은 부모님에게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處女가 아니라도 결혼할 수 있지 않습니까.

眞香을 염두에 두고 말씀드리는 것이다

 

부모님은 크게 화를 내며 엄중히 꾸짖으니

眞香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돌아선다.

 

眞香은 애쓰는 白石의 마음을 알면서도

부모님의 승낙이 어렵다는 섭섭함이 크게 따른다.

 

부모님에게 인사도 못 드리고

부모님의 허락도 없이 이대로 살아야하나

 

이미 소문난 기생妓生으로 정상적인 결혼은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眞香은 암담해지며 슬퍼지기만 한다.

 

어떻게 하겠냐며따져 물을 수도 없는 眞香

자기도 모르게 짜증을 내며 白石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白石은 혼자서 생각이 깊어진다.

 

              노루

 

              長津땅이 지붕넘에 넘석하는거리다

              자구나무 같은것도 있다

              기장감주에 기장찻떡이 흖한데다

              이거리에 산곬사람이 노루새끼를 다리고왔다

 

              산곬사람은 막배등거리 막배잠방등에를입고

              노루새끼를 닮었다

              노루새끼등을쓸며

              터앞에 당콩순을 다먹었다하고

 

              설흔닷냥 값을불은다

              노루새끼는 다문다문 힌점이 백이고 배안의털을 너슬너슬벗고

              산곬사람을 닮었다

 

              산곬사람의손을 핥으며

              약자에쓴다는 흥정소리를 듣는듯이

              새깜안눈에 하이얀것이 가랑가랑한다

 

살다보면 새끼노루처럼 산에서 자유롭게 살지 못하고

자기가 원하지 않는 처지處地에 놓일 때가 있을 것 같다.

 

노루새끼는 허약한사람의 몸보신용으로 쓰이려니

그것이 그의 운명이었을까

 

白石眞香의 마음을 훤히 알고 있는바

달래며 끌어안으면서 새끼노루의 처량한 모습을 생각하였을까

 

부전령赴戰嶺 넘어 赴戰湖 근처 산골짜기에서

세상을 잊고 살고 싶은 생각도 해보며

白石眞香과 단둘이서 살아갈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아리랑을 한문으로 쓰면 아리랑 我離郎이라 한단다.

이는 곧 나는 임과 헤어진다는 뜻이 된다고 하며

아라리요는 아난리 我難離나는 임과 헤어지기 싫다는 뜻이 들어있다고 한다.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고개

원래 고계苦界였던 것이 고개로 되었다고 하며

苦界라는 말은 어려움을 이겨내며 한고비를 넘어가야 한다는 뜻이 될 것 같다

 

민요 아리랑의 유래는 

아주아주 옛날 우리민족이 이동하여 정착하는 과정에서의 아랏길 이야기나

신라 때 에서 깨어난 임금님 이야기에서의 에서 비롯 되었다는 말과

이조 초기에 고려 충신들이 두문동에 모여 살면서 아리랑을 만들었다는

여러 이야기가 있으나

 

민요 아리랑은 오랜 세월동안 우리들의 마음속에 깊이 정착되면서

이제는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우리민족의 개척정신을

은근하게 묻어나게 하며 나타내고 있다고 하여야 할 것 같다

 

1902년에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1937년 3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춘사春史 라운규

1919년 회령-청진간의 무산령 철도 폭파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려다가 발각되어

함흥咸興감옥에서 1년 반 동안 옥살이를 하고나와

 

연회전문학교 문과에 2년차 재학 중 병이든 친구에게 등록금을 털어 병을 고쳐주고

등록금을 내지 못하게 되자 자퇴를 강요받게 된다.

이에 같은 학교 동료들이 일어나 학교에 항의하자

학교에서는 그의 감옥 생활한 것을 들어 사상범으로 퇴학시켜버린다.

 

라운규는 먹고 살기위하여 우연히 일본인 영화회사에 들어가 보조補助를 하다가

1926년에 차곡차곡 준비하여온 아리랑이란 영화를 만들게 된다.

 

라운규는 아리랑 영화를 통하여 민족의 혼을 일깨워 저항의식을 일으키며

비판적 사실주의 영화예술의 첫 개척자로 영화사映畵史에 길이 빛나게 되며

1993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追敍 받았다.

 

아리랑의 주인공 영진은 대학을 다닐 때 독립 만세를 부르다가

순사에게 붙들려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미친 사람이 된다.

 

미친 영진은 동네 악덕 지주의 앞잡이인 오기호만 보면

이상하게 그를 알아보고 괴롭힌다.

 

         노인님, 영진이가 또 오기호를 못살게 굴었습니다.

         지주나리는 당장 집에다 가두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땅을 떼고 이 마을에서 내쫓겠다고 합니다. 

 

         하인들이 돌아가자 최 노인은 영진의 가슴을 쥐어흔든다.

         영진아 이 아비의 마음을 그만큼 태웠으면 이젠 정신을 좀 차리려무나.

 

         논밭을 팔아 아들을 공부시키자고 아득바득 애를 쓰며

         지주네 땅을 부치고 있는 터에 기둥처럼 믿던 아들이 이 모양이 되었으니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안타까우랴!

 

         그러나 아버지의 그 마음에는 아랑곳없이

         영진은 ‘아리랑’을 즐겁게 부를 뿐이다.

 

악덕 지주 千家영진을 못살게 굴뿐만 아니라,

영진의 누이동생 영희를 첩으로 삼고자 탐을 내며

오기호千家에 앞장서서 영희千家에게 시집보내라며 영진의 아버지까지 괴롭힌다.

 

어느 날 오기호영희만 있는 집안에 들어와 영희를 겁탈하려 억누르는데

영희를 사랑하는 영진의 친구 현구가 우연히 찾아왔다가 오기호와 격투를 벌인다.

 

미쳐있는 영진은 이 격투가 흥겨운 춤으로 보여

낫으로 깨어진 양푼을 두드리며 노래 부르고 박수를 친다.

 

이를 바라보며 흥겨워하며 춤을 추던 영진

친구 현구오기호에게 맥을 못 추며 얻어맞기만 하자

갑자기 오기호를 낫으로 내리친다.

 

싸운다는 소식을 듣고 동리 사람들이 달려왔을 때는 오기호는 죽어 있었다.

그 충격으로 영진은 본정신으로 돌아오게 되며

순사가 달려와 영진의 몸을 묶는다.

 

        너는 살인자니 가자 

        예 제가 사람을 죽였어요.

        동리사람 여러분

 

        나는 한동안 죽었던 몸으로 이제야 다시 살아났습니다.

        여러분은 웃음으로 나를 보내주십시오.

        여러분이 우시는 걸 보면 나는 참으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몸이 이 강산 삼천리에 태어났기 때문에 미쳤으며 사람을 죽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내가 일상 불렀다는 그 노래를 부르며 나를 보내주십시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살림살이 말도 많다.

            냉정한 이 세상 풍파도 많고

            우리네 사랑엔 장애도 많다.

            아리랑고개는 정든 님 고개.

            굽이굽이 속삭인 사랑의 고개.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나,

            날 바리고 가시는 님은 가고 싶어 가나

            풍년이 온다 풍년이 온다.

            이 강산 삼천리에 풍년이 온다.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얼을 담으면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우리 민족의 수난과 고통을 바탕으로

반일 사상을 은은히 깔고 나가면서

가난에 시달리는 농민들에 대한 사랑과 동정을 담고 있다.

 

특히 이 영화의 종결 장면에서

이 몸이 이 강산 삼천리에 태어났기 때문에 미쳤으며 사람을 죽이었습니다’라는 대사는

일본 침략자들 때문에 사람들이 피폐하여 졌다는 어려운 시대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다.

           출처 [‘아리랑’과 라운규] 김종욱 작성자 cartoon에서

 

      여보 기뿐 소식이 있어

      우리 드디어 신경新京으로 가게 되었어.

      마누라 이 연약한 손으로 그토록 추운 만주 땅에 가서

      어떻게 나의 와이셔츠를 빨며 고생하지

 

白石은 큰일을 이룬 양 眞香의 손을 높이 치켜들면서

의기양양하게 큰소리로 이야기하며 끌어안는다.

그리나 슬픈 표정이 얼굴에 나타난다.

 

眞香白石의 깊은 사랑에 감복하며

낯선 만주 신경新京으로 쫓겨 가는 듯 도피하며 떠나가는 듯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된 白石과 자신을 보며 주르륵 눈물을 흘린다.

 

眞香白石의 마음을 알면서 생각한다.

그렇게도 부모님 말씀을 하늘같이 존중하며 순종하던 白石이 조국을 떠나

그 춥고도 황막한 낯선 나라에 가서 살 생각을 다 하였을까

 

그간에 말없이 겪었던 마음의 고통과 고민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의 자유결혼을 허락하지 않는 봉건적인 사회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기가 이토록 어려운가.

 

眞香白石은 떠날 준비를 하며 많지도 않는 보따리를 싸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일이면 이제 함흥咸興을 떠나 신경新京으로 가야한다

眞香白石은 아리랑 노래를 부르며 떠나가게 될까

 

이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1931년 일본제국의 관동군은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점령하며

1932년 3월 1일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푸이를 황제로 내세워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웠다.

 

만주국満州国의 수도가 신경新京이며 지금의 장춘長春이다

만주국満州国은 일본 제국이 패망한 후 1945년 8월 18일 붕괴되었다.

 

소련군은 1945년 8월 19일 선양공항에서 일본으로 도주하려던 푸이를 체포한 뒤

만주 전역을 점령하였고, 같은 해 11월 중화인민공화국이 모두 다 넘겨받았다.

 

영화 마지막 황제(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1987년 작품)는

만주국満州国이 건국에서 멸망에 이르기 까지를 푸이의 시선에서 그려내고 있다.

 

22. 떠나는 女子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