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사를 찾아

길상사를 찾아15.부전호반에서

서 휴 2013. 6. 7. 00:29

 

길상사 吉祥寺를 찾아

서길수

 

15. 부전호반赴戰湖畔에서

 

 

1,075m의 천구암역 千狗菴驛에서 강삭철도綱索鐵道를 타고

1,445m의 백암산역 白巖山驛부전령 고개에 올라서서 잠시 쉬더니

1,362m의 부전령역 赴戰嶺驛이제는 체인에 매달린 채 내려왔다.

 

부전령역 赴戰嶺驛에서 감았던 체인을 모두 풀고 이제는 훌훌 내달린다.

신동新洞을 지나 함지원역咸地院驛에 도착到着 한다.

 

함지원 咸地院

부전령赴戰嶺을 내려가며 처음으로 만나는 큰 마을이며

자가 붙은걸 봐 옛날 원님이 계셨던 곳이라

마을이 크며 면사무소도 보인다.

 

함지원역咸地院驛을 지나

부전역赴戰驛 왼편의 만간령1,529m 밑으로

완만한 비탈이 끝없이 펼쳐지며

 

소별우, 흑수구비, 참촌, 문암리,

호반, 달아리, 원골에서 도안역道安驛 주변을 지나서까지

 

들쭉나무 열매가 온 산기슭에 지천으로 널려있으면서

듬성듬성 돌배 밭도 보이며

고사리 밭도, 산파 밭도, 산마늘 밭도 여기저기 드넓게 펼쳐져있다.

 

온 산기슭에 자연적으로 자생하며 살아온 부전赴戰 들쭉은

같은 들쭉나무과인 불루베리 열매와 모양이 같으나

 

거봉 巨峰포도알 처럼

유난히 굵으면서 단맛과 향기가

같은 종류인 불루베리 열매보다 훨씬 크며 맛이 있다.

 

부전역赴戰驛을 지나 드디어 종점終點인 도안역道安驛에 도착한다.

白石眞香은 역전을 나오며 이리저리 살펴본다.

 

도안역道安驛은 참 한적 閑的하나 집들은 제법 있는 편이다

그러나 우선 보이는 건 주막酒幕집 뿐

 

어떻게 자고가지

함지원 咸地院에서 내릴 걸 하는 걱정이 앞선다.

돌아가기엔 아쉬움이 많을 것 같다

 

지붕 끝 처마가 안보일정도로 장작더미가 쌓인

오래되고 큰 식당 같은 부전주막 赴戰酒幕으로

천천히 다가가 걸어 안으로 들어간다.

 

집 내부는 오래되었으나 깔끔하며 방들이 여러 개 보이고,

커다란 국수틀도,

콩을 가는 커다란 맷돌도 보이는 것으로 보아 

국수나 두부를 직접 만들어 해먹는 것 같다

 

님재(주인) 인 듯한 아마이어마이가 두 사람의 용모容貌

아래위로 훑어보며 식탁食卓에 앉으라는 듯 말을 걸어온다.

 

안녕 하슴메                           안녕하세요?

안녕 하슴                              안녕하세요.

욜로 오셔                              이리로 오십시오.

 

어디서 옵데가                        어디서 오셨습니까?

하믕에서 왔슴                        함흥에서 왔습니다.

뭐하르 왔슴메                        무엇하러 왔습니까?

귀경왔슴                               구경하러 왔습니다.

 

쉬영갑서                               쉬어서 가세요?

자그 갈수 있슴메                    자고 갈 수 있습니까?

방 있수다                              방 있습니다.

좋쑤과                                  좋습니다.

알았수다                               알았습니다.

 

밥으 먹어야 하잰소?               밥은 먹어야 하지요?

먹어야디오                             먹어야지요.

 

이따가 베는 탈스 있슴메          나중에 배는 탈 수 있습니까?

아재비끼 말하무 된다이           아저씨에게 말하면 됩니다.

 

좀 떨어진 곳에 건장健壯한 청장년靑壯年들

힘든 일을 하고 들어온 것 마냥

적삼(저고리)을 입은 사람들 속에 웃통을 벗은 사람도 있다.

 

주잰자(주전자)를 옆에 놓고 찬새(반찬)와 함께

갱기(감자) 개피떡(씀바람떡) 창란식혜도 있고 달알(계란)도 보인다.

그들은 갓지 국물에 농마국시(국수)를 말아 열심히 먹으며 별말이 없다.

 

           함경도는 해안지방의 음식과 산간지방의 음식이 많이 차이가 난다

           산간지방 山間地方에서는 대부분 산세가 험하고

           높은 산간지대로 이루어져 밭농사만 겨우 지으며

           조. 기장. 귀리. 콩. 감자 등을 많이 심어 주식으로 한다.

 

           감자 농사가 잘되는 곳이라

           큰 감자는 어린아이 머리통만큼 크고 단단하며

           맛도 좋아 감자음식이 많이 발전하였다

           감자를 가지고 밥 떡 농마국수 엿 술 등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었다

 

           감자밥

           감자에 기장이나 귀리보리쌀땅콩을 약간 섞어 만들며

           기장이나 귀리로 밥을 하면

           현미로 밥을 한 것 마냥 거칠다

 

           주로 을 넣어 밥을 하며

           아침 점심 두 끼는 조밥을 먹고 저녁에는 감자로 때우거나

           좁쌀로 또는 귀리로 쑨 으로 먹었다.

 

           모두다 생활이 어렵다보니

           을 많이 먹는데

           죽에 얼마나 질렸으면

           죽 먹기가 하도 싫어 십리를 도망갔더니

           죽 그릇이 먼저 와 있더라는 말이 있다.

 

           그 당시에는 으로도 세끼를 다 먹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만큼 가난했던 시절들

           우리 민족은 과 함께 살아온 시절이 너무나 모질고 길었던 것 같다.

 

 

젊은 어마이

갓지(갓김치) 떼장끄럭(된장그릇) 드비히(양념한 생 두부를 두부회라 부른다)

찬노물(참나물) 녹디질금노물(녹두나물) 고사리노물(고사리나물) 지렁(간장)

붕애조림(붕어조림) 무꾸국(무우국) 등 찬새(반찬)를 많이 가지고 나온다.

 

토가매(가마솥)에서 바끄럭(밥그릇)에 담아온 조이팝(조가 있는 쌀밥)

그리고 수꾸락(숟가락)과 저가락

쥐전재(주전자)를 가져와 상을 차려준다

 

             산간지대 사람들은 배추 대신

             낮은 온도에서도 잘 자라는 을 많이 심어

             김장김치로 담가 봄나물이 나올 때까지 반찬으로 하며

 

             갓김치 국물로는 언 감자국수귀리국수를 말아 먹기도 하고

             시원한 소화재 消化劑 로 마시기도 한다.

 

             주인 쪽의 작은 방에서는

             젊은 어마이가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늦은 점심을 먹는 듯

             감자만 먹으면 목이 멘다고 갓지 국물을 떠와

             마시게 하며 어린 자식의 등을 두들겨 주고 있다.

 

             갓김치는 국물이 발그스름한 고운 색을 내며 향긋한 향기와

             약간 매울 싸 하며 도 시원한 맛을 내는 것이

             잘 익은 좀 매운 열무김치 맛과 비슷한 것 같다

 

벌써 늦은 오후 점심시간이 훨씬 지났다

白石바끄럭 眞香앞으로 땡겨주며 수꾸락을 들어준다.

白石은 식성이 좋은 터라 허기진 듯 퍽퍽 먹는데

眞香은 강삭철도에 시달려서인지 음식이 거칠어서인지 께죽거린다.

 

하기사 眞香은 서울에서 곱게 자라났으며

사교계社交界 생활을 하며 좋은 음식 맛을 잘 아는지라

거친 음식에 단련이 안 되어 숟까락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나가던 아마이가 서운하다는 듯

먹어 아니 바쏘              먹어 보지 않았소.

말 알아 못 듣소             말을 알아듣지 못하오.

 

                                  오해誤解를 하고 들으면 완전히 시비조是非調의 말투다

                                  그러나 이곳사람들은 항상 쓰는 말투임으로

                                  정감情感이 가는 말이 된다.

 

때늦은 식사를 마치고 정해준 방에다 가방을 넣어두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부전호반 쪽으로 걸어간다.

白石은 도안역道安驛에 도착하여 이곳 풍경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咸南 道安

 

                 高原線 終點인 이적은 停車場

                 그렇게도 우쭐대며 달가불시며 뛰어오던 뽕뽕

                 가이없이 쓸쓸하니도 우두머니 서있다

 

                 해빛이 초롱불 같이 히맑은데

                 해정한 모래부리 플랱폼에선

                 모두들 쩔쩔끊는 구수한 귀이리를 마신다

 

                 七星고기라는 고기의 쩜벙쩜벙 뛰노는 소리가

                 쨋쨋하니 들려오는 湖水까지는

                 들죽이 한불 새까마니 익어가는 망연한 벌판을 지나가야 한다.

 

열차가 전기를 이용한 강삭철도로 부전령을 넘다보니

전기열차로 생각하기 쉬우나

석탄石炭을 때고 가는 기차汽車이다 보니

떠날 때나 가까이 올 때는 꼭 뽕뽕 소리가 난다

 

신흥선新興線 이전의 처음 이름은 고원선 이었던 것 같다

1936년 이후에 도안역道安驛에서 부전호반에 가까운

부전호반역 赴戰湖畔驛이 생기며

 

이 철로는 부전호반赴戰湖畔의 남쪽을 가볍게 돌아가며

유린동에서 서쪽으로 향하여 수점산1,938m 밑의 유린령을 넘으며

풍유리를 지나 신흥리新興里에 도착한다

그리고 장진역長津驛에 간다.

 

이렇게 장진선長津線과 연결하게 되는데

이렇게 열차가 이어지니

고원선 高原線이 신흥선 新興線이 된 것으로 본다.

 

열차는 수점산1,938m 밑의 유린령을 넘으며

총진령 1,993m蓮花山 2,355m을 바라보는 그 아름다움과

장진호반長津湖畔의 그 유명한 갈대숲의 경치 또한 아름답다.

                 

고기를 함경도 방언으로 괴기라 부르는데

민물장어인 七星괴기는 아가미구멍이 일곱 쌍이나 있어

칠성장어七星長魚 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맛과 정력에 좋다고 소문이나

옛날부터 인기 있는 식재료로 대접을 받아온다.

 

七星長魚가 정력에 좋다는 것은

동서양東西洋을 막론하고 다 인정하는 바이나

그러나 칠성장어의 징그러운 부분도 이야기하며 넘어가 보자

 

七星長魚일반장어처럼 먹이를 으로 씹어 먹는 물고기가 아니라

턱이 없이 빨대만 있는 거머리처럼 힘차게 빨아먹거나

둥그런 입안의 이빨로 둥그렇게 갉아먹으며 살아간다.

 

동그란 입속의 수많은 이빨들이 자잘한 바늘 같이 생겨

빨아먹는 갉아먹는 힘이 너무 강하여

빨다가 보면 큰 물고기의 몸통을 뚫고 나온단다.

 

칠성자어七星長魚가 우리 몸이나 다리를 콱 물어

수많은 이빨들이 박히면

겁이나 흔들거나 잡아떼려 하면

살갗이 찢겨지고 더 벌어져 상처가 커지는 일이 많다

 

한 10분만 참고 가만 놔두면 발목의 뼈가 보일 때 까지

실컷 빨아먹고 스르륵 도망가는데

 

억울하고 얄미우면 작대기로 때려죽이거나

대가리 부분을 옷으로 감싸 뻰찌로 조이듯 힘껏 조르면 떨어진다.

 

 칠성장어는 조용히 접근하여 거머리처럼 착 달라붙는 습성이 있는데

七星長魚가 큰 고기를 물게 되니 둘이서 혈투血鬪를 벌이는 장면을

쩜벙쩜벙 뛰노는 칠성괴기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진 것 같다.

 

부전호반赴戰湖畔은 드넓으며

깊고 맑으며도 어름처럼 차가운 물이 파도마냥 넘실댄다.  

부전령 고갯마루마냥 바람이 세게 불지도 않고 물결 또한 잔잔하다

 

포구에는 나무를 가득 실은 배가 메어져있고

한배는 내리다만 듯 반쯤 실려 있다

거의 다 겨울 준비용 땔감나무인 것 같다

 

더구나 함흥 咸興에서는 느낄 수 없는 한적함과 적막감 寂寞感

넓고 푸른 호수湖水와 그 높은 산들의 운치韻致를 가져오며

조용한 마음속으로 아름다움을 가져온다.

 

먼 곳을 바라보며 眞香白石에게 기댄다.

벌써 해는 낭림산맥을 찾아가는 양

 

노을 지는 햇빛이 부전호반의 건너편

수점산 1,938m총진령 1,993m 에 걸터앉으며

 

까마득히 높은 蓮花山연화봉 2,355m을 빨갛게 물들이어

붉은 듯 누런 듯 연꽃을 피우게 한다.

 

그 노을은 오른쪽을 바라보면서

蓮花峰을 지나 大巖山 2,205m 과 손을 잡고

백두산 白頭山 쪽으로 쫒아가며 두문봉 頭門峰 거쳐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제일 높은

북수백산 北水白山 2,522m에 인사 올린다

 

北水白山 2,522m차일봉遮日峰 2,505m 을 끌어안고 있으면서

왼쪽의 頭門峰 2,476m오른쪽의 白山2,379m을 어께동무하며

벌써 하얀 눈이 하얗게 쌓여 장관壯觀을 이루고 있는데

 

그 위에 더욱이 석양夕陽의 붉은 색깔이 묻어나

서서히 황금빛으로 반사되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움을 넘어 황홀경 恍惚境 에 들어가게 한다.

 

赴戰湖畔에 담겨진 저 먼 노을빛도

높은 산들을 끌어 앉고 놓을 줄 모르는 듯

출렁거리는 물그림자 속에서 떠나지 않으려 애를 쓴다.

 

이곳의 해는 짧아 점점 어두워지고

벌써 겨울이라는 듯 찬바람이 분다.

 

주막집에 돌아와 간단히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으니

금불(군불)을 땐 방은 따끈하며 마음과 몸이 편안해진다

 

眞香이 저녁을 먹지 않는다 하니

한참 후에 감자언감자떡과 미리 준비가 되어있었는지

감자오그랑죽갓김치를 곁들여 한상 가득차려 가져온다.

갱기술 이라며 작은 주잰자도 놓고 간다.

 

언감자떡은 추운 지방이라 언 감자를 으깨어 감자녹말가루

찬물에 되게 반죽하여 안에 삶은 콩을 넣고 손으로 꽉 쥐어

송편처럼 예쁘지 않으나 참기름이나 을 발라먹는다.

쑥떡보다 까맣기도 하나 투명하며 더 쫄깃쫄깃 하며 감치는 맛이 아주 좋다

 

감자 오그랑죽

기장쌀감자녹말을 가지고 새알심을 만들고

강낭콩을 푹 삶은 물에 새알심을 넣고 다시 삶은 강낭콩을 넣어 으로 잘 끓인다.

 

감자 오그랑죽은 감자의 구수함과 쫄깃쫄깃한 맛이 곁들여져 별미인데

맛도 좋고 식이섬유도 많아 건강에도 아주 좋다고 한다.

 

그러나 정성이 많이 들어가므로

특별히 귀한 음식으로 좋은 손님을 대접하거나 명절날에 해먹는다.

 

眞香 갱기술(감자술) 한잔을 가득히 따라 白石에게 권하며

어떻게 이리 빨리 이 귀한 감자 오그랑죽을 만들 수 있는지

궁금해 하며 맛있게 먹기 시작한다.

 

감자 오그랑죽과 감자

오늘 여기 오기까지의 마음의 결심決心

 

赴戰嶺 고개를 넘던 강삭철도의 어려움과

부전령 고갯마루에서 부전호를 바라보던 아름다운 감격感激

 

두 사람만의 오붓한 여행旅行의 감미로움을 맛보며

깊은 잠에 빠져 든다.

 

 

16. 호반선 湖畔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