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사를 찾아

길상사를 찾아12. 명월관

서 휴 2013. 5. 13. 02:35

길상사 吉祥寺를 찾아

서길수

 

12. 명월관 明月館

 

 

백두산白頭山 평안남북도와 함경남북도 양강도兩江道

자강도慈江道 그리고 지린성吉林省 안투현安圖縣

얼다오바이허 진二道白河鎭과 더불어 솟아있으며

높이는 2,750미터에 달한다.

 

백두산白頭山의 개마고원蓋馬高原

함경남북도와 평안남북도와 양강도兩江道, 자강도慈江道 일대에 걸쳐

 

해발海拔 1,200~1,600미터 사이로

아주 넓은 고원지대高原地帶를 이루며

 

이 개마고원蓋馬高原에서 흐르는 물을 모아

부전강수력발전소赴戰江水力發電所,

장진강 수력발전소長津江水力發電所,

허천강 수력발전소虛川江水力發電所를 만들었다

 

이 개마고원蓋馬高原에는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빽빽한 삼림지대森林地帶이며

 

이 울창鬱鬯한 원목原木을 벌채伐採하여

소발귀 라는 썰매로 함경북도 북서부에 있는

무산고원茂山高原 하구河口인 삼장三藏까지 운반運搬합니다.

 

삼장三藏에서는 뗏목으로 묶어 두만강豆滿江에 띄워

동해東海에 다의면 배로 또는 동해안東海岸 철로를 따라

부산釜山에서 일본日本으로 자꾸자꾸 실려 나갔지요.

 

일본日本은 개마고원蓋馬高原뿐만 아니라

압록강鴨綠江 쪽, 만주滿洲의 쑹화강松花江 쪽,

우리의 간도間島인 연변延邊쪽 에서도

백두산白頭山의 그 울창鬱鬯한 나무들을 벌채伐採 었으며

 

뿐만 아니라 국내國內에서도

특히 경북慶北 봉화군奉化郡한 아름이 넘으며 올 곧게 뻗어있는

품질品質이 우수優秀금강송金剛松 소나무 춘양목春陽木 들도

 

강원도江原道 태백太白. 삼척三陟금강송金剛松 

그 좋은 적송赤松들도 베어져 일본日本으로 실려 나갔지요.

 

이번 5년 3개월 만에 복구復舊

숭례문崇禮門의 굵은 기둥으로도 사용하였으며

궁궐宮闕이나 을 지을 때 사용하는 그 좋은 적송赤松들이지요.

 

한 아름이 넘는 원목벌채原木伐採와 운반運搬

힘도 들고 목숨을 걸만큼 위험危險 하기도 하니

 

우리 노동자勞動者들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두만강 뗏목놀이소리만들어

애환哀歡에 섞인 목소리로 애절하게 불렀다고 합니다.

 

일본日本이 우리나라를 점령占領하면서

환경環境이 바뀌고 더욱 살기가 어려워져

함경도咸鏡道의 민요民謠는 더 애절함이 많이 배어나게 되지요.

 

원목原木을 벌채伐採하고 운반運搬하며

애달피 부르는 두만강 뗏목놀이소리

 

먹고살기가 어려워 고향故鄕을 떠난

우리의 유랑민流浪民들이 구슬피 부르는 애원성

 

우리의 젊은이들이 일제日帝 감시監視나 통제統制에서 벗어나고자

또한 먹고살기 위하여 북만주北滿洲로 떠나며

서글피 부르던 처량한 유행가 방랑가

 

아리랑과 쓰리 랑이 합쳐져

세월歲月의 무상無常함과 슬픈 한을 노래하는 아스랑가

 

함경남도咸鏡南道 고산군高山郡에 철로鐵路를 놓게 되자

고산읍내高山邑內에서 좀 떨어진 곳에 역이 생기니

 

새로생긴 앞의 마을을 신고산新高山이라 부르며

새로운 철길이 생겨 시골 처녀處女의 마음이 들뜬다는 신고산 타령

 

예전부터 우리나라의 처녀處女들은

기다란 뒷머리 묶음에 색깔이 고운 댕기를 다는데

 

궁초宮綃는 엷고 둥근 무늬가 있는 비단緋緞으로 만든 값비싼 댕기이며

이 아름다운 댕기를 달고 떠나간 임을 그리워 한다는 궁초댕기

 

궁초댕기신고산타령

1933년 경에 유행하던 비슷한 내용의 노래라 합니다.

 

북청北靑양전 전촌에 사는

전갑섬 이라는 혼기婚期가 다된 처녀處女

재미있는 사설社說로 혼담婚談을 거절拒絶하는

전갑섬이 타령이 있으며

 

좋은날 마을에서 여성들이 강강술래처럼

둥글게 서로서로 손을 잡고 원무圓舞를 추며 부르는 돈돌날이

전래傳來되어오는 민요民謠라 합니다.

 

행사行事 놀이문화文化에는 북청의 관원놀이가 있지요 

음력 정월正月 대보름날 행사行事하는 북청의 관원놀이

관원官員과 일반 백성百姓 사이의 화합和合

조성造成하고자 만든 놀이인데

 

새로 부임赴任한 사또使道가 행차行次하는

의식儀式으로부터 시작始作하며

 

신임新任 사또使道가 동내마다 죄지은 자를 골라

여러 가지 을 하나씩 주는 놀이 문화文化

 

동내사람들의 눈 밖에 나면 죄를 받게 됨으로

평상시平常時서로 협력協力하고 합심合心하여

미움을 사지 않고자 노력努力하였다합니다

 

관원官員놀이에 관한 문헌文獻신성성야주건기에 따르면

한 달 전부터 준비하여 고제당 이라는 곳에서

제사祭祀를 지낸 후에 시작始作하는데

음력陰曆 정월正月 대보름날부터 3일간 행사行事가 계속繼續되며

 

행사行事 인원만 300여 명이며

이에 합세合勢하는 인원까지 합치면 800여명 이상으로

북청北靑郡의 온 군민郡民들이 참여參與하는

정말 큰 규모의 놀이 행사行事였다고 합니다.

 

밤에는 횃불 행군行軍이 벌어지는데

칼을 빼어 휘두르며 행군나팔 行軍喇叭 소리가 울리면

 

군악軍樂 소리에 맞추어

성곽城郭을 도는 행군行軍이 시작始作됩니다.

 

동내마다 봉화烽火꾼들이 횃불을 들고 나와

서로의 기세氣勢를 내뿜으며

서로 함성喊聲을 지르며

횃불 행진行進을 하며

온 성안이 대낮처럼 밝은 장관壯觀을 이루었다고 하는데

 

이 거대한 놀이문화도

일본日本의 우리문화文化 말살정책抹殺政策에 의하여

중단中斷되며

 

특히 집회集會를 못하게 하니

애달프고 서러운 민요民謠 노래만 남게 되었다합니다

 

그래도 우리의 민족성民族性

서글픈 노래 속에도 힘이 들어가 있습니다.

 

깊게 배어 있는 이 서글픔과 애달 품을

언젠가는 꼭 벗어나겠다는

빠르며 도 경쾌輕快하고 힘이 들어가 있는

음률音律을 바탕으로 하지요

 

어랑 타령이라고도 하는 신고산타령을 들어보시지요.

 

         신고산타령

         명창 김점순

 

         어랑어랑 어야 어허더야 내 사랑아

         신고산이 우루루 함흥차 가는 소리에

         구고산 큰 애기 단봇짐만 싸누나

         어랑어랑 어야 어허더야 내 사랑아

 

         가을바람 소슬하니 낙옆이 우수수 지고요

         귀뜨라미 슬피 울어 남은 간장을 다 썩이네

         어랑어랑 어야 어허더야 내 사랑아

 

         어랑어랑 어야 어허더야 내 사랑아

         구부러진 노송 남근 바람에 건들 거리고

         허공중천 뜬 달은 사해를 비쳐 주노라

         어랑어랑 어야 어허더야 내 사랑아

 

         삼수 갑산 머루대래는 얼크러 설크러 졌는데

         나는 언제 님을 만나 얼크러 설크러 지느냐

         어랑어랑 어야 어허더야 내 사랑아

 

지난 날 우리 조상들은 사랑이 넘치는 평화로운 생활을 바라며

나무하며 지게목발을 두드리는 것을 비롯해서

논밭에서 일하며 농기구를 가지고

아낙들의 다듬이질이 소리와 더불어 부르는 것이 민요라 합니다.

 

세상이 평화로우면 태평가가

어지러우면 변란이나 불행을 예고하는 참요가

견디기 어려운 학정에는 수심가

외세의 억압 시에는 사발가나 아리랑 같은 노래가 많이 불리었지요.

 

민요는 민중들이 겪는 생활 감정을 간직하였다가 표현하는

우리의 핏 속에 전해 오는 민족의 가락이라고 할 수 있지요.

 

 

성천강城川江

백두대간白頭大幹인 신흥군新興郡의 금패령禁牌嶺 옆의 

1,941m의 기린산麒麟山에서 발원發源하여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영광군榮光郡에 이르러 유로流路를 남쪽으로 바꾸어

함주군咸州郡과 함흥시咸興市의 경계境界를 따라 흐르며

 

지류支流호련천· 동덕천· 동흥천· 경흥천· 서곡천· 천불산천· 풍산천 등이

흘러오면서 서로 만나며 반용산盤龍山 밑 함흥시咸興市에서 다모여

동해의 함흥만咸興灣으로 흘러들어갑니다.

 

함흥시咸興市 시내중심市內中心에는

공회당公會堂, 히라다백화점, 명보극장名寶劇場, 상점가商店街,

식당가食堂街, 등으로 함흥시咸興市의 번화가繁華街가 있으며

 

좀 떨어진 반용산盤龍山 자락에는 학교學校들이 자리를 잡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주거지역住居地域이 되었습니다.

 

한옥韓屋으로 잘 꾸며진 명월관明月館

함흥咸興 시내의 번화繁華한 거리에 있었습니다.

 

眞香은 몸매나 얼굴도 예쁘면서

금하琴下 하규일河圭一 선생님 문하에서

정악正樂을 체계적으로 배웠으며

 

삼천리三千里 잡지雜誌에 수필隨筆까지 쓴 바이며

유학留學까지 다녀와 유학생留學生 기생妓生으로

곧 소문所聞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眞香이 기생妓生들과 같이 명월관明月館에 나가는 날

함흥咸興 영생고보의 어느 선생님 송별연送別宴 이 있었으며

그 자리에서 노래와 춤을 추게 됩니다.

 

그 당시當時에는 춤과 노래가 어느 정도 흥을 돋우면

커다란 음식상飮食床이 들어오면서

아름다운 술이 더욱 분위기雰圍氣를 무르익게 하며

연회宴會를 즐기게 됩니다.

 

이날 眞香을 비롯한 기생妓生들은

어떤 노래들을 부르며 춤을 췄을까

 

궁초댕기를 불렀을까

신고산 타령을 불렀을까

전갑섬이 타령을 불렀을까

처량한 방랑가는 부르지 않았겠지요.

 

아니면 정악正樂 중에 한곡을 뽑아 정성精誠들여 춤을 추며

목청木靑 돋우어 흐드러지게 노래를 불렀을까

 

사랑하던 통영統營의 여인女人

白石의 친구親舊에게 마음에 없는 시집을 가자

 

실의失意에 차 방황彷徨하다가

서울을 떠나 함흥咸興에 와 있던 白石

 

모든 걸 다 잊으려하던 차에

眞香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눈빛이 빛나며

온몸에 전율戰慄이 감돈다.

 

음식상飮食床이 들어오자

마치 오래전에 이미 아는 사람을 반가이 맞이하는 양

 

眞香을 자기 옆에 앉히며

마신술잔을 꼭 眞香에게 만 권한다.

 

덩치도 키도 큰 白石은 말없이 술잔을 여러 잔 기울이다가

순간적瞬間的으로 뚫어지게 쳐다보며

眞香의 손을 덥석 꽉 잡아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엔 우리사이에 이별은 없어요.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은 眞香

꽉 잡힌 손안에 들어온 전류電流가 몸속에 파고들어

깊은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양

가물가물 몽롱朦朧하여져 아무생각을 못한다.

 

술기운이 더 하여가자

白石眞香의 손을 더 움켜잡으며

 

이미 오래전부터 불러온 이름인양

마누라 마누라 하고 부르기 시작한다.

 

연회宴會가 끝나자 두 사람은 늦은 밤을 걸으며

白石眞香을 놓칠세라

육중한 몸을 기대며 眞香에게 말을 한다.

 

오늘부터 마누라 뜻대로

내 몸을 맡아 주어 야해요

 

白石眞香은 명월관明月館에서 만나

운명적運命的인 동거同居를 승락承諾하며

서로서로 뜨거운 사랑에 빠져들어 갑니다.

 

1936년 늦가을

그 때 眞香이 22세 白石은 26세 때였습니다.

 

眞香이 1995년에 펴낸 <내사랑 白石>에서

세월이 한참 지난 후 아래와 같이 이야기합니다.

 

       어쩌다 우리 두 사람은

       첫눈에 서로

       그렇게도 어이없이 사로잡히고 말았는지

 

        단 한번 부딪힌 한순간의 섬광이

        바로 두 사람의 영원한 사랑의 시작이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가도

        매듭이 없는 슬픈 사랑의 실타래는

        이미 그때부터 풀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청춘남녀의 정열에

        한번 당기어진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활활 타오르기만 하였

 

 

13. 강삭철도 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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