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301∼400 회

제 321 화. 적자를 죽이고 서자를 세운다.

서 휴 2023. 2. 14. 13:55

321 . 적자를 죽이고 서자를 세운다.

 

맹손곡(孟孫穀)은 자기 부친인 공손 오()의 말을 중수(仲遂)에게

간곡히 말하여, 부친이 돌아올 수 있도록 허락을 부탁했다.

 

       맹손곡(孟孫穀) , 아버지에 대한 네 마음이 갸륵하구나.

       다만 네 아버지가 노() 나라에 꼭 돌아오고 싶다면,

       반드시 내가 말하는 세 가지를 지켜야 한다고 전하라!

 

       첫째, 조당에 나오지 말 것이며,

       둘째, 국정에 관여하지 말 것이며,

       셋째, 그 기생(妓生)을 데려오지 말아야 한다.

맹손곡(孟孫穀)은 가복(家僕)을 거() 나라에 급히 보냈으며,

아버지 공손 오()에게 중수(仲遂)의 말을 전했다.

 

       공손 오()는 아들 맹손곡(孟孫穀)으로부터

       연락이 오자, 주저하지 않고 노나라로 갔다.

 

       노() 나라에 다시 돌아온 지 3년이 지나도록

       문을 걸어 잠그고 일절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있던 모든 금은보화를

       챙기더니 다시 거() 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맹손곡孟孫穀은 그 부친의 행동에 너무 섭섭한 나머지, 원망하며

잠을 설치다가 갑자기 복통에 몸부림치다가 죽고 말았다.

 

       맹손곡(孟孫穀)의 아들 중손멸(仲孫蔑)이 아직 나이가

       어렸기에, 맹손곡(孟孫穀)의 동생 맹손난(仲孫爛)

       맹손씨 집안의 뒤를 이어나가게 했다.

 

       맹손난(仲孫爛)은 조정에 출사하여 경()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거() 나라의 기생도 죽었다.

 

그 기생妓生이 죽자 공손 오()는 다시 노나라에 돌아오고 싶어

그의 가재를 모두 거두어 노문공(魯文公)과 중수(仲遂)에게 바치고,

그의 둘째 아들 맹손난(仲孫爛)을 시켜 자기의 귀국을 청하게 했다.

 

       노문공(魯文公)이 허락하자, 공손 오()는 다시 노나라에

       돌아가기 위해 길을 떠나 제() 나라의 경계에 이르자,

       병이 생겨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당부(堂阜)에서 죽었다.

 

       당부(堂阜)는 지금의 산동성 몽음현(蒙陰縣) 경내에

       이오정(夷吾亭)이라고 있는데, 옛날 노나라에서

       함거(轞車)에 실려 포로로 잡혀 온 관중(管仲)

       포숙(鮑叔)이 석방시켜 데려간 곳이다.

 

공손 오()가 중수(仲遂)에게 죄를 얻어 외국에서 객사하여 실권을

하게 되자, 이후로는 중손씨(仲孫氏), 숙손씨(叔孫氏), 계손씨(季孫氏)

등 세 집안이 노() 나라의 국정을 나누어 맡았다.

 

       맹손난(仲孫爛)은 노문공에게 간곡하게 청하여

       허락을 받게 되자, 부친인 공손 오의 시신을

       노나라로 가져와 상을 치르고 난 후에

 

       죄인의 자식이라고 근신하면서, 형님 맹손곡(孟孫穀)

       아들 중손멸(仲孫蔑)이 장성하기 만을 기다리면서

       종족의 일을 넘기려고만 할 뿐이며, 집에만 있으면서

 

       종족의 제사 만을 관장할 뿐,  정사에는 관여 하지 않았다.

       

계손행보(季孫行父)는 중수(仲遂)와 팽생(彭生) 및 득신(得臣)

등의 세 사람이 모두 자기에게는 숙부의 항렬(行列)이 되었기에

감히 나서지 못하고 세 사람에게 양보했다.

       세 사람 중 팽생(彭生)은 사람됨이 가장 후덕하였으며

       또한, 세자의 태부(太傅) 직까지 맡고 있었기에

       노나라 정사는 중수(仲遂)와 득신(得臣)에게 맡기며

       깊이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형제간이라 하지만 팽생(彭生)의 친동생인

       득신(得臣)은 형과 상반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득신(得臣)은 여러 번 노() 나라 정권을 손에

       쥘 때마다 멋대로 하여, 비난을 사기도 했다.

 

한편 진() 나라에서 시집온 경영(敬嬴)은 노문공(魯文公)

총애를 많이 받고 있음에도, 그녀의 소생인 공자 왜()

세자가 되지 못한 일을 항상 한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 아들 외()가 큰아들이 아닌가?

       어찌해 형을 놔두고 동생이 세자가 된단 말인가?

       이 일을 도울 사람은 중수(仲遂)밖에 없도다!

 

이에 경영(敬嬴)은 자기의 아들 왜()를 세자로 만들기 위해 많은

뇌물을 중수(仲遂)에게 주면서 환심을 사 목적을 달성하려 했다.

 

       중수(仲遂), ()을 군주로 만들어 해주세요.

       왜()가 군주의 자리에 오르게 해주신다면

       노()의 국정을 중수(仲遂) 임에게 맡기겠소이다!

중수(仲遂)는 공자 왜()를 부탁하는 경영(敬嬴)의 정성에 감격한

나머지, 이윽고 공자 왜()를 노나라 군주의 자리에 올리려는

마음을 품게 되며, 혼자서 골똘히 생각하면서 계획을 세우게 된다.

 

       세자 오()의 태부인 팽생(彭生)은 성질이 곧아

       내 편으로 끌어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의 동생 득신(得臣)은 탐욕스러워

       뇌물을 좋아하니 잘만 설득시킨다면

       내 편으로 부릴 수 있을 것이다.

중수(仲遂)는 경영(敬嬴)이 내려 준 재물을 받을 때마다 둘로

나누어 반을 득신(得臣)에게 보내면서 꼭 아래와 같은 말을 했다.

 

       이것은 경영(敬嬴) 부인이 나에게 보내면서

       그대에게 꼭 전해주라는 하사품이요!

그리고 중수(仲遂)는 공자 왜()를 때때로 득신(得臣)의 집으로

가게 하여, 공손한 태도로 가르침을 청하게 하면서, 이를 반복적으로

시키자, 득신(得臣)의 마음도 역시 공자 왜()에게 관심을 가졌다.

 

       주광왕(周匡王) 4년이면서 기원전 609년 봄이 되자

       노문공(魯文公)은 재위 18년 만에 죽었다.

 

       세자 오()가 장례를 주제(主祭)하고 난 후에

       노후(魯侯)의 자리에 즉위하게 되자, 중원 나라의

       제후들이 모두 사자를 보내와 조문하였다.

 

그때 제()의 공자 원()이 새로이 군위에 올라 제혜공(齊惠公)

된 그 무렵이었으며,제(齊)는 신속히 조문 사절을 노나라에 보내

옛날 제의공(齊懿公)이 행한 무도한 짓을 바로 잡고자 하였다.

 

​       득신(得臣)은 나 중수(仲遂)와 의논 좀 합시다.

       무슨 일인데 이리 신중하게 말합니까?

 

       제()와 노(), 두 나라는 대를 이어 우호를 맺어 왔소.

       특히 제환공(齊桓公)(제희공齊僖公), 두 군주 때는

       마치 형제처럼 좋은 사이로 지냈었잖소?

 

       제효공(齊孝公)이 들어서고부터 원한이 생기더니

       제의공(齊懿公) 때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소.

 

       근자에 제() 나라는 공자 원()이 즉위하여

       제혜공(齊惠公)이 되면서 달라졌소이다.

 

       우리는 제() 나라에 경축의 사절을 보내지 않았는데도

       제() 나라가 먼저 우리나라에 조문 사절을 보냈소이다.

 

       이것은 우호 관계를 맺고자 하는 좋은 뜻이 아니겠소?

       우리도 사자를 보내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 것이오.

 

       이번 기회에 제() 나라와 우호의 수교를 맺으면서

       제()의 도움을 받아 공자 왜()를 군위에 앉히는 것도

       한 가지 계책이라고 할 수 있소이다.

       좋소. 그대가 한다면 나도 도울 것이오.

       좋소. () 나라에 가서 계획을 짜봅시다.

 

() 나라의 중수(仲遂)와 득신(得臣)은 노문공(魯文公)의 장례식이

모두 끝나자, 두 사람은 동행하여 새로 즉위한 제혜공(齊惠公)

대한 축하사절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제() 나라에 갔다.

 

       노() 나라의 축하사절은 어서 오시오.

       먼저 조문 사절을 보내준 배려에 감사드리옵니다.

 

두 사람으로부터 배례를 받은 제혜공(齊惠公)은 연회(宴會)

베풀어주며, () 나라의 사신을 접대하면서 분위기가 오르자,

새로 군위에 오른 공자 오()에 관해 물었다.

 

       어찌하여 노후(魯侯)의 이름을 오()라 짓게 되었소?

       세상에는 좋은 이름들이 파다하게 많은데 하필이면

       이런 좋지 않은 글자를 이름으로 쓰게 되었소이까?

 

       제후(齊侯)께 대부 중수(仲遂)가 대답하겠나이다.

       저희의 선군께서 신군(新君)을 낳으셨을 그때

       태사(太卸)에게 점을 치게 했습니다.

 

       태사(太卸)의 말이, 장차 이 아이는 횡사할 운명이라

       군주의 자리에 올라 나라를 다스릴 수 없을 것이다.

       라는 점괘를 얻었나이다.

 

       그런 연유로 선군께서 오()라고 이름을 지어 불길한

       점괘가 현실로 나타나지 않도록 기원하였나이다.

 

       그러나 이 아이는 결국 선군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선군이 사랑한 공자는 제일 나이가 많은 왜()였나이다.

 

       공자 왜()는 사람됨이 어질고 효자입니다.

       능히 대신들을 높이며 존경할 줄도 알았습니다.

 

       성안의 백성들이 항상 공자 왜()를 군주로 받들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단지 그가 적자의 신분이

       아니라 이를 행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허허, 그렇소? 그러나 옛날부터 장자로 세자를

       세우는 것이 법도인데, 더욱이 선군의 사랑까지

       받았다면서 군주로 세우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소?

 

       제후(齊侯)께 신 득신(得臣)이 말씀 올리겠나이다.

       저희 노() 나라는 옛날부터 적서를 따져 세자로

       정했지, 나이를 따져 적자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우리 선군께선 노() 나라의 관례에 따라

       공자 왜()를 제치고 세자 오()를 세우셨으나

       나라 안의 백성들은 모두 따르지 않고 있나이다.

 

       만약 제후(齊侯)께서 저희 노() 나라를 위하여

       어진 사람으로 군주를 바꾸는 데 도우시겠다면,

       우리 노나라 신료들과 백성들은 기뻐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 노() 나라와 혼인으로 우호를 맺으신다면

       우리는 제() 나라를 상국(上國)으로 모시면서

       매년 조빙(朝聘) 하는 사절을 빠트리지 않겠나이다.

 

       허허, 그렇소이까?

       대부들께서 돌아가 능히 나라 안에서 일을

       도모하신다면, 과인은 그 뜻을 좇겠소이다!

 

       고맙사옵니다. 다만 두 나라 간에 혼인을 맺어

       우호를 다진다는 약속을 하여 주시옵소서!

 

중수(仲遂)와 득신(得臣)은 자기들의 계획대로 제혜공(齊惠公)

승낙하여주자, 혼인을 맺으면서 우호를 다지는 맹세를 위해,

삽혈(歃血) 의식도 청하여 허락되자 곧바로 시행하고 돌아왔다.

 

       중수(仲遂)와 득신(得臣)께선 고생하셨습니다.

       행보(行父)는 그간 노성(魯城)을 지키느라 고생했소!

 

       제() 나라 사정은 어떠했습니까?

       이미 진()나라는 패자의 지위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바야흐로 제() 나라가 다시 강해지기 시작했소이다.

 

       제후(齊侯)가 그의 정부인 소생의 딸을 공자 왜()

       부인으로 보내어 혼인을 맺자고 제안했소이다.

 

       이것은 제나라가 우리를 매우 후하게 대접하는

       일이라 결코 거절해선 안 될 것이오.

 

       이제 겨우 군위(君位)을 이어받은 세자 오()

       이미 제나라 선군(先君)의 사위가 되어있소이다.

 

       제후가 딸이 있어 우리와 혼인 관계를 맺고자 한다면

       어찌하여 세자 오()의 부인으로 하지 않고,

       공자 왜()의 부인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오?

 

       제후가 공자 왜()를 사위로 삼으려고 하는 것은

       왜()가 어질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오.

 

제환공齊桓公의 다섯 아들은 서로 제후(齊侯)가 되기 위해, 서로

싸우고 죽이면서, 4대에 이르도록 모두 형제간에 군주 자리를

서로 이어받고 있다가 이제 제혜공(齊惠公)이 즉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세자 오()의 부인 강씨는 제나라 제소공(齊昭公)

딸이며 제소공(齊昭公)과 제혜공(齊惠公)은 이복형제간이다.

 

       저들은 형제간의 정도 안중에 두지 않는데

       그까짓 사위쯤이야 눈 하나 깜짝하겠는가?

 

계손행보(季孫行父)는 중수(仲遂)의 그 말에 대답도 할 수 없어

집으로 돌아와서는 혼자 한탄하면서 말했다.

 

       중수(仲遂)가 장차 반역을 일으키려 하는구나!

       이를 어찌해야 막을 수 있더란 말인가?

 

행보(行父)는 아무도 몰래, 세자 오()의 태부 숙중팽생(叔仲彭生)

찾아가 중수(仲遂)의 말을 고하며 의논을 청했다.

 

       팽생(彭生) 아저씨, 중수(仲遂) 아저씨가

       득신(得臣) 아저씨와 함께 반역을 일으키려 합니다.

 

       이미 군위가 정해져 즉위까지 했는데

       누가 감히 두 마음을 품을 수 있더란 말이냐?

 

팽생(彭生)이 그다지 크게 마음을 쓰지 않는 걸 본 행보(行父)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오며 몹시 실망했다.

 

 

322 . 등불 밑에서 신발을 엮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