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301∼400 회

제 323 화. 노문공, 제혜공의 사위가 되다.

서 휴 2023. 2. 17. 12:33

323 . 노문공, 제혜공의 사위가 되다.

 

노선공(魯宣公)은 중수(仲遂)의 말을 따라, 제혜공(齊惠公)과의

삽혈(歃血) 맹세의 내용을 이행하기로 약속하였다.

 

이어서 중수(仲遂)와 계손행보(季孫行父)를 사신으로 임명하여

혼사를 허락해 준 제혜공(齊惠公)의 처사에 대해 감사의 말을

올리게 하고 노나라의 국서(國書)를 바치게 했다.

 

       노나라의 새로운 군주(君主) 이옵니다.

       제후(齊侯)의 보살핌으로 종묘를 지키게 되었나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혹시 제후(諸侯)들의 반열에 끼지

       못하게 되어, 제후(齊侯)의 체면에 욕보이게 되지나

       않을까, 매우 근심하고 있사옵니다.

 

       제후(齊侯)께서 만약 저를 어여삐 생각하신다면

       저와 회합을 한번 해 주시겠다고 허락하신다면

 

       변변치는 않사오나, 진() 나라의 진문공(晉文公)

       성복(城濮) 전투에서 초()나라로부터 빼앗아 우리에게

       하사한 제서(濟西)의 땅을 상국에 바치려고 하오니,

 

       제후(齊侯)에 대한 우리의 성의를 받아 주신다면

       저로서도 무한한 기쁨이 되겠나이다.

 

국서(國書)를 읽어본 제혜공(齊惠公)은 크게 기뻐하였으며, 그해

여름 5월에 노후(魯侯)와 평주(平州)에서 회합하기로 허락하였다.

 

       제서(濟西)는 제수(濟水) 서쪽의 땅이며, 제수(濟水)

       지금의 하남성 정주시 동쪽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노나라의 북쪽 경계에 있던 대야택(大野澤)으로

       흘러 들어간 다음 다시 대야택에서 북동으로 흘러나와

 

       지금의 제남시 북쪽을 통과하여 래주만(萊州灣)으로

       흘렀던 옛날의 강 이름이다.

 

       제서(濟西)는 원래 조()나라의 땅이었으나, 성복(城濮)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진문공(晉文公)이 조()나라를

       점령하고, 그 일부를 떼어 노()나라에 할양한 땅이다.

       평주(平州)는 지금의 산서성 래무시(萊蕪市) 서쪽에 있다.

 

이윽고 회합하기로 한 날이 되자, ()와 노(), 두 나라의

군주가 모두 평주(平州)에 당도했으며, 먼저 장인과 사위로서의

정의를 표한 후에, 다시 군주로써 예를 갖추어 인사를 나누었다.

 

       신 중수(仲遂), 제서(濟西) 땅의 지적부와

       지도를 제후에게 바치나이다.

       허허, 고맙소. 고맙게 받겠소이다.

 

제혜공(齊惠公)이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이자, 두 나라 군주는

일을 끝마치고 각기 자기 나라로 돌아가게 되었다.

 

       주공, 신 중수(仲遂) 한 말씀 올리고자 하옵니다.

       성강(聲姜) 마마가 제나라 별궁에 있사옵니다.

       별궁에서 옳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나라에 그냥 두면 어떤 일을 꾸밀지 모르옵니다.

       차라리 우리 노나로 모시고 감이 좋겠나이다.

 

중수(仲遂)는 노선공(魯宣公)이 허락하자, 간곡한 편지를 써서

사자를 시켜 성강(聲姜)에게 보냈다.

 

       성강(聲姜) 마마, 선군을 생각하시옵소서

       제나라가 친정이라 하는데 왜 별궁에 계십니까?

 

       성강(聲姜) 마마, 별궁은 감옥과 같은 곳이옵니다.

       그같은 열악한 곳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성강(聲姜) 마마, 노나라에 계시느니만 못하옵니다.

       지난 일을 눈물로 사죄드리오니, 조금이라도

       마음을 푸시어 어서 노나라로 돌아오소서

 

다행히 성강(聲姜)의 허락이 떨어지자, 계손행보(季孫行父)

사신으로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성강(聲姜)을 모시고 갔다.

 

       아, 나 중수(仲遂)는 이제 오늘부터 베개를

       높이 베고 편안한 잠을 잘 수 있겠구나.

 

이때부터 노나라의 군주가 직접 제나라를 방문하여 제후에게

조현을 행하고 돌아오면, 다시 뒤를 이어 조빙 사절이 출발하곤

해서 제나라를 극진히 받들기 시작했으며, 또한 진()나라에도

계속 사절을 보내며 우호를 이어나갔다.

 

       노나라의 군신들은 앞다투어 모두 제나라를

       왕래하면서 허구한 날 많은 세월을 허비하게 되었다.

 

       비록 령이 없다 하여도 따르지 않을 수 없었고,

       또한, 시키지 않는다 하여 받들지 않을 수 없었다.

 

숙힐(叔肹)은 비록 노선공(魯宣公)의 동복(同腹)동생이었으나,

그는 사람됨이 충성스럽고 정직했으며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숙힐(叔肹)은 어머니와 형인 왜()가 중수(仲遂)와 음모를 벌려

동생인 세자 오()와 시()까지 죽이고 스스로 군위에 오르는

것을 보며, 마음속으로 그 일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조당에도

나오지 않았으며 형인 노선공(魯宣公)에게 하례도 드리지 않았다.

 

       친구 숙힐(叔肹)은 무얼하고 있소?

       주군께서 중용하려 하시는데, 한사코

       부름에 응하지도 않다니 무슨 일이 있소?

 

       나는 원래 부귀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이외다.

       내가 형님을 보게 되면 죽은 동생들이 생각나게 되어

       내가 이를 참지 못하게 될까 봐서 참는 것이오!

 

       그대가 형의 일을 불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어찌하여 타국으로 망명이라도 가지 않는 것인가?

 

       나의 형이 아직 나를 잊지 못하고 있는데

       내가 어찌 감히 형과의 인연을 끊을 수 있겠는가?

 

노선공은 때때로 사람을 보내 숙힐이 사는 형편을 살펴보게 하면서

한편으로는 곡식과 비단을 가져다주어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했으나, 숙힐은 보낸 곡식과 비단을 받지 않으며 사자에게 말했다.

 

       이 동생 힐이 다행히 추위에 떨며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니니 감히 나라의 공물을 축낼 수 없다고 전하라!

 

       숙힐(叔肹) , 이는 군명이옵니다.

       받지 않으시면 신이 혼이 납니다.

 

       그렇다면 내 집에 양식이 떨어질 때 청하마.

       오늘만은 내가 감히 받을 수 없다고 전하여라!

 

사자가 재삼 군명이라고 받아 줄 것을 간청하다가 돌아가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친구가 숙힐(叔肹)에게 말했다.

 

       그대가 작록(爵祿)을 받지 않음으로써

       그대의 뜻은 충분히 세상에 밝혔다고 보네.

 

       그대의 집에 양식이 다 떨어졌다는 걸 나도 아네.

       보내온 것들을 조금이나마 받아들여 끼니라도

       삼았다 해서 그대의 청렴함을 더럽히지 않을 것일세.

 

       작록(爵祿)도 받지 않고 보내온 선물도 하나도

       들이지 않으니 그것은 너무 심한 짓이 아닌가?

 

숙힐(叔肹)이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 친구는 매우

탄식하더니, 섭섭하게 돌아가 버렸다.

 

       주공께 아뢰옵니다.

       숙힐(叔肹) 공자께서는 아무것도 받지 않나이다.

 

       내 동생이 양식이 떨어졌다고들 하는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정말 모르겠구나.

 

       내관은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어찌 살고 있는지

       몰래 살펴보고 나서 다시 말하여라

 

내관은 밤이 되기를 기다려 다시 숙힐(叔肹)의 집에 찾아갔으며

몰래몰래 자세히 살피고 난 후에 다시 돌아와 아뢰었다.

 

       주공, 숙힐 공자께서는 매일 밤 등불을 밝혀가면서

       밤새 신발을 엮어 아침이 되면 내다 팔아서

       그 돈으로 양식을 구해 생활하고 있나이다.

 

       허허, 내 동생 숙힐(叔肹) 아,  내 말 좀 들어보아라.

       너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닮으려 하느냐

       수양산首陽山에서 고사리나 먹으며 살려 하느냐?

 

       형님, 용서하십시오

       이 동생 마땅히 백이와 숙제가 되고자 하옵니다!

 

한결같이 지조를 지키던 숙힐(叔肹)은 노선공이 죽기 바로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숙힐(叔肹)은 죽을 때까지 그의 형인 노선공으로부터, 단 한 필의

비단이나, 단 한 톨의 곡식도 받지 않았으며, 더욱이 평생토록

그 형의 잘못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에 한 사관이 시를 지어 칭송했다.

 

    1. 賢者叔肹 (현자숙힐)

        현명한 사람이구나, 숙힐 이여!

 

        感時泣血 (감시읍혈)

        시역을 알았을 때 피눈물을 흘렸음이야!

 

        織屨自贍(직구자첨)

        신발을 엮어 넉넉한 마음으로 살았으니

 

        于公不肖 (우공불초)

        새로운 군주와는 닮지 않았구나.

 

    2. 頑民耻周 (완민치주)

​        주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것은 치욕이라 여긴

 

        采薇甘絶 (채미감절)

        백이와 숙제는 고사리 그마저도 떨어졌구나.

 

        惟叔嗣音(유숙사음)

        숙힐에게는 오로지 죽은 군주의 소리뿐이라

 

        入而不涅(이입불열)

        신군의 부름을 받았으나 입조도 하지 않았네.

 

    3. 一乳同枝(일유동지)

        ​한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란 형제였음에도

 

        兄頑弟洁 (형완제길)

        형은 어리석고 동생은 고결하였도다.

 

        形彼東門(형피동문)

        하물며 저 동문 밖 중수를 하물며

 

        言之汚舌(언지오설)

        입에 담으면 혀마저 더럽혀지는구나!

 

()나라 백성마다 숙힐(叔肹)의 고결함을 높이 칭송했으며 다음

해가 되자 노선공(魯宣公)도 죽었다.

 

노선공(魯宣公)은 노문공(魯文公)의 서() 장자로 태어나 기원전

608년에 세자 오()를 죽이고 즉위하여 재위 18년 만인 기원전

591년에 죽었다.

 

       노선공(魯宣公)은 즉위 과정의 그 정통성 때문에

       중수(仲遂)와 득신(得臣) 등의 삼환씨(三桓氏)

       세력에 눌려 지내며 별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노선공(魯宣公)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이

       노후(魯侯)의 자리에 올라 노성공(魯成公)되었다.

       그는 즉위하자, 숙힐(叔肹)의 아들

       공손영제(公孫嬰齊)를 대부로 삼았다.

 

324 . 초장왕은 어떤 인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