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201∼300 회

제 292 화. 진목공, 중원에 진출하는가.

서 휴 2022. 12. 31. 14:26

292 . 진목공, 중원에 진출하는가.

 

진문공晉文公은 극결郤缺을 보는 순간 첫눈에 그의 인품人品

알아보고, 마음 들어 하며 매우 기쁘게 맞이했다.

 

       그러나 극결郤缺의 능력을 아직 모르는바

       하군 대장인 서신胥臣을 돕도록 하군 부장으로 삼았다.

 

진문공은 재위 8년 차인 기원전 629년에, 당시의 진군의 군제였던

삼행三行을 신이군新二軍으로 개편하여 모두 5군으로 만들었다.

이에 군별 주장과 부장을 임명하게 된다.

군별(軍別) 주장(主將) 부장(副將)
삼군(三軍) 중군(中軍) 선진(先軫) 극진(郤溱)
상군(上軍) 란지(欒枝) 선멸(先蔑)
하군(下軍) 서신(胥臣) 극결(郤缺)
신이군
(新二軍)
신상군(新上軍) 조쇠(趙衰) 기정(箕鄭)
신하군(新下軍) 서영(胥嬰) 선도(先都)

 

       신상군의 원수를 대사마 였던 조쇠趙衰로 삼았으며

       그 밑의 부장으로 기정箕鄭을 삼았다.

 

       신하군의 대장에는 서신胥臣의 아들인 서앵胥嬰삼고,

       그 부장에는 선도先都를 임명했다.

 

       진나라는 기존의 3군과 새로운 2군을 더하여 모두 5군을

       두게 되면서, 천자국에 버금가는 군제를 갖게 되었다.

 

       이때 나라 안의 수많은 호걸을 불러, 기정箕鄭과 선도先都

       등을 장수로 삼는 등으로 군 조직의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또한, 군기도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훈련 시켜 나갔다.

 

나라는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초강대국의 면모를 유지하게

되면서, 이러한 소문은 금방 퍼져나갔다.

 

무법자 행세를 하던 초성왕楚成王도 진군晉軍의 편제를 5군으로

개편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이에 매우 두려움을 느끼게 되어

곧바로 장수 투장鬪章을 사자로 보내면서 수호를 맺자고 청했다.

 

       이에 진문공은 옛날에 초성왕이 베풀어준

       은혜에 감사하며 초성왕의 청을 허락하고,

       대부 양처보陽處父를 답례 사절로 보냈다.

 

과 초, 두 나라는 오랜만에 우호 관계를 맺게 됨으로써,

진문공晉文公의 마지막 업적이 달성되는 것이며, 이는 곧 그의

생애에서 패업覇業이 완료되는 순간으로 봐야 할 것이다.

 

       다음 해에 정문공鄭文公이 재위 45만에 죽었다.

       그때가 주양왕 25년이며 기원전 628년의 일이다.

 

나라 군신들은 모두 합심하여 세자인 공자 란을 옹립하여

정백鄭伯으로 세웠다. 이가 곧 정목공鄭穆公이 된다.

 

       옛날에 정문공鄭文公의 비첩이었던 연길燕姞

       란을 품는 꿈을 꾸고 난 후 공자 란을 낳았다.

       이로써 태몽이 현실로 나타난 바가 되었다.

 

이제 진문공晉文公도 생을 마감하여 떠날 때가 온 것인가

진문공晉文公의 재위 기간은 총 9년밖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해 늦겨울 12월이 되자, 병석에 누워 중신들을 불러 들였다.

 

조쇠趙衰를 비롯한 선진先軫, 서신胥臣, 란지欒枝, 호국거狐鞫居,

양처보陽處父 등의 신하들이 들어오자, 마지막 유언을 내렸다.

 

       세자 환에게 국통을 잇게 하고 모두가 잘 보좌하여

       절대 백업이 다른 나라로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하라.

 

       나이 어린 아들 흑둔黑臀은 왕실과 친분을

       유지하도록 주왕실에 가서 살게 하라.

 

       공자 옹은 진나라로 가게 할 것이며

       공자 락은 진나라로 보내어 그곳에서

       각각 벼슬을 얻어 살도록 하라.

 

공자 옹은 두기杜祁의 소생이며, 공자 락은 진영辰嬴

소생이었다. 진목공秦穆公의 딸 회영懷贏이 진문공晉文公에게

시집오게 되면서 불리는 이름이 진영辰贏으로 바뀐 것이다.

 

       진문공은 아버지 진헌공晉獻公이 뒤늦게 여희驪姬

       총애함으로써, 형님 되는 세자 신생申生이 죽었으며

 

       형제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라가 파탄 났던 어려운

       고생을 많이 하였던바, 더는 공실에서 난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 조처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진문공晉文公은 향년 70세를 지날 무렵에 끝내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그해 12월 말경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진문공晉文公은 성은 희이며

       휘는 중이重耳이고 시호는 문공文公이 된 것이다.

 

       그는 기원전 697년에 진헌공晉獻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기원전 628년인 향년 70에 죽었다.

 

       진문공晉文公의 어머니는 책족翟族의 호희狐姬이며

       외조부 호돌狐突과 외숙인 호모狐毛, 호언狐偃

       영향을 많이 받아 올바른 인성을 갖추게 된다.

 

       여희驪姬가 자기 아들 백복伯服을 세자로 세우기 위해

       신생申生을 자살시키고, 공자들을 모두 쫓아냈다.

 

       이로 인해 19년간 유랑을 하게 되며, 조쇠趙衰

       비롯한 호모狐毛 호언狐偃, 선진先軫, 위주魏犨

       서신胥臣 70여 명의 가신이 따랐다.

 

       1만여 리에 달하는 긴 유랑 생활 끝에 돌아오며

       기원전 636년인 41세에 즉위하여 기원전 628년까지

       9년을 집권하며, 내내 각종 개혁정책을 펼쳤다.

 

       국내 질서가 잡힐 무렵에 전쟁을 벌이면서 방백으로

       인정받게 되고, 춘추오패의 한 사람으로 꼽히게 된다.

       어쩌면 진문공晉文公은 잡초보다 더 끈질기게

       위험한 역경을 이겨낸 사람으로 볼 수 있다.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각오하에 가신들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하며, 하늘이 내려준 복을 받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

진문공晉文公의 참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사관이 시를 지어 진문공의 업적을 찬양했다.

 

     1. 道路奔馳十九年 (도로분치십구년)

         이곳저곳 천하를 떠돌아다니기를 장장 19

 

         神龍返穴遂乘權 (신룡반혈수승권)

         새로운 용이 집으로 돌아와 군위에 올랐구나.

 

         河陽再覲忠心顯 (하양재근충심현)

         하양에서 조현을 다시 하여 충성심을 알렸으며

 

         城濮三軍義門宣 (성복삼군의문선)

         성복의 싸움에서는 삼군의 의기를 드높였구나.

 

     2. 雪恥酬恩中始快 (설치수은중시쾌)

         치욕을 설욕하고 입은 은혜 갚기를 분명히 하니

 

         賞功罰罪政無偏 (상공벌죄정무편)

         신상필벌을 행하여 정실에 치우치지 않았다.

 

         雖然廣儉由天授 (수연광검유천수)

         넒은 도량과 근검한 품성은 하늘이 내린 것이지만

 

         左右匡扶賴衆賢 (좌우광부뢰중현)

         좌우의 많은 현인의 도움에 힘입은 바도 컸도다.

 

진문공晉文公이 죽자, 세자 환이 상례를 주재하고 진의 군위에

올랐다. 이가 곧 진양공襄公이 되는 것이다.

진양공襄公은 진문공晉文公의 장지를 곡옥曲沃으로 정했다.

 

       발인發靷 날이 되어 진문공의 영구靈柩가 강성絳成에서

       노제路祭를 지낼 때 수많은 백성이 울면서 뒤따랐으며

       영구靈柩가 강성絳成의 북문을 나가려는 그 찰나에

       영구靈柩에서 갑자기 소 울음소리 같은 괴성이 울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영구靈柩의 무게가 태산처럼

       무거워지며 수레가 앞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백성뿐만 아니라, 군신들도 모두 놀라자, 태복太卜 곽언郭偃

쫓아와 점을 치게 되니 다음과 같은 점괘가 나온다.

 

       有鼠西來 (유서서래서쪽에서 쥐새끼가 와서

       越我垣墻 (월아원장내 집 담장을 넘는 도다

       我有巨梃 (아유거정내가 몽둥이를 집어 들고

       一擊三傷 (일격삼상한번 내리치니 세 번 상하도다!

 

       아니, 이게 무슨 뜻입니까

       이 곽언郭偃이 푸는 점사占辭를 들어보시오

 

       조만간에 틀림없이 서쪽 변경에서

       병사에 관한 소식이 들려오고 우리 군사가

       그들을 물리쳐 크게 이길 괘입니다.

 

       선군의 영령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자, 제를 올리며 모두 절을 합시다!

 

군신들이 모두 진문공의 영구靈柩가 실린 수레에 절을 올리자

영구靈柩에서 나던 소리가 곧이어 멈추었다. 또한, 의 무게도

어느덧 가벼워져 평상시와 같이 행차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선진先軫이 말하겠소이다.

       서방西方은 곧 서쪽의 진나라입니다.

 

       선군께서 새로운 군주에게 영을 내리시는 겁니다.

       앞날에 대한 근심을 염려하신 겁니다.

       세작을 보내 진나라 소식을 알아보겠소이다!

 

한편 황하黃河 서쪽의 진목공秦穆公은 일찍부터 패업에 대한

야심을 품고 있으면서, 명재상 백리해百里奚를 등용하여 부강한

나라로 만들어 나갔다.

 

       또한, 진문공晉文公의 장인이었기에 진문공晉文公에게

       협조하고 따라주면서 중원 진출의 꿈을 펼치지 못했다.

 

진문공의 상례에 대해 진晉에서 사절이 오자, 자기도 모르게

패공에 대한 야망이 다시 살아나며 조급한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2년 전이었다. 진목공秦穆公은 진문공晉文公

       요청으로 정나라의 신정新鄭 성을 포위하였다가,

 

       정나라 촉무燭武의 말에 현혹되어 진과 진

       동맹을 깨게 되었으며, 대신에 진과 정의 동맹을

       맺게 되며, 한밤중에 진에게는 아무 통고도 없이

       진군秦軍을 철수시킨 일이 있었다.

 

       그때 정나라에 남겨 둔 진의 세 장수 기자杞子,

       봉손蓬孫, 양손楊孫2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신정新鄭 성의 북문 안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들은 공자 란이 진나라에서 귀국하여 세자에 책봉冊封

되는 광경을 바라보고는 몹시 화가 나고 말았다.

 

       우리는 정나라를 위해 진의 공격으로부터

       신정新鄭 성을 지켜주고 있는데, 우리에겐 아무

       연락도 없이 진나라에 항복하고 말았소.

 

       그동안 우리가 지켜주려고 행한 일은 이제

       모두 헛수고가 되어 버린 것이 아니겠소?

 

의 세 장수는 즉시 이러한 사실을 재빨리 본국에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진목공秦穆公도 화가 났으나, 단지 진문공晉文公

위세에 눌려 감히, 항의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정문공鄭文公이 죽고 공자 란

       정백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곧 정목공鄭穆公이다.

 

새로운 군주가 된 정목공鄭穆公은 진나라의 세 장수에게

자신의 즉위에 대해 통고하지 않고 아무런 예도 취하지 않았다.

이에 기자杞子, 봉손蓬孫, 양손楊孫은 모여서 상의하게 되었다.

 

       우리가 원정 나와 정나라를 위하여

       신정新鄭에 주둔한 지 벌써 2년이나 되었소

       언제 본국으로 돌아갈지 알 수가 없소이다.

 

       만약 우리가 본국의 주군에게 군사 출동을 권하여

       아무도 몰래 정鄭 나라를 습격하여 점령해 버린다면

 

       우리는 모두 전공을 세우게 되는 것이 되며

       동시에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오.

 

나라의 세 장수가 신정新鄭의 궁실을 습격할 계획을 세우고

있을 그 무렵에, 진문공晉文公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진문공이 죽다니 이제 기회가 온 것 같소이다.

       하늘이 우리의 계획을 성사시켜 주려는 것이오!

 

세 장수는 기회가 왔다고 기뻐하며, 즉시 편지를 써서 심복에게

주며, 본국의 진목공秦穆公에게 바치게 했다.

 

       주군의 명에 의하여 저희는 정 나라를 지키며

       신정新鄭 성의 북문 안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진문공도 죽었으며 신정新鄭의 경비도 허술한바

       만약에 아무도 몰래 군사를 보내 신정新鄭 성을

       습격하신다면 우리가 안에서 내응內應 하면

       정나라를 멸하여 우리가 차지할 수 있습니다.

 

       진나라는 진문공이 죽어 상중이 되었으므로

       군사를 내어, 나라를 구원할 경황이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지금의 정백鄭伯도 새로 군주의 자리에 오른바

       외적의 침입에 대한 대비가 아직 되어있지 않습니다.

       이번은 절호의 기회이므로 절대로 놓쳐선 안 될 것입니다.

 

진목공이 비밀리에 세 장수의 보고를 받자, 건숙과 백리해를 불러

상의했다. 두 사람의 노신이 이구동성으로 간하며 말렸다.

 

       진과 정나라는 천 리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싸움에서 이겨 정나라 사람을

       포로로 잡아 올 수는 있겠으나

       정나라의 땅은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무릇 병사들을 이끌고 천릿길을 행군하는 일은

       높은 산을 넘고 큰 강을 건너야 할 뿐 아니라

 

       그 소요 되는 시간이 한두 달이 아닐 진데

       어찌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가며

       비밀리에 그 먼 거리를 행군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정나라가 알게 되면 미리 대비하게 되고

       그리되면 우리의 노력은 허사가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 군사들도 행군 도중 필시 뜻밖의

       봉변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 생길 수도 있나이다.

 

293 . 현고, 정 나라를 구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