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201∼300 회

제 291 화. 숙첨, 팽살 형으로 죽는가.

서 휴 2022. 12. 30. 12:42

291 . 숙첨, 팽살 형으로 죽는가.

 

       주군께서 이 숙첨淑詹을 용납하지 못한다면

       수많은 백성이 위험한 곤경에 빠지게 되고,

       사직이 끊어지는 일은 어찌 용납하시렵니까?

 

       한 사람의 신하 목숨으로 만백성을 구하고

       사직을 안정시키려 하는 일이옵는데,

       주군께서는 어찌 이토록 애타 하십니까?

 

정문공鄭文公은 눈물을 흘리며 숙첨淑詹을 떠나보냈으며, 이에

석신보石申父는 후선다侯宣多와 함께 숙첨淑詹을 데리고 갔다.

 

       진후晉侯께 접견을 청하나이다.

       진후晉侯께서 진노하시니 정백鄭伯은 크게

       두려워하여, 말씀하신 일을 모두 들어주었습니다.

 

       오늘 정나라의 죄를 고하기 위해

       숙첨淑詹을 군후의 안전에 대령시켰사오니

       아무쪼록 군후의 관대한 처분만을 바라나이다.

 

       또한, 공자 란을 정나라로 환국시켜주시면

       세자로 책봉하여 정의 군위를 잇도록 하면서

       군주님이 명하신 바를 모두 이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에 진문공은 크게 기뻐하였으며, 즉시 호언狐偃에게 명하여

의 동쪽 변경에 머물고 있던 공자 란을 불러오게 하였다.

 

       정문공은 여러 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세자 화

       제환공齊桓公에게 참소하여 자기를 죽이려 하였다.

 

       이를 자화子華의 난이라고 부르며, 이때 세자

       자화子華와 동생 자장子臧은 살해하였으며,

 

       다른 한 아들은 사신으로 초나라에 갔다가

       짐독鴆毒을 마시고 죽었다.

 

       그 밖의 여러 공자는 모두 나라 밖으로 도망갈 때

       그때 공자 란도 진나라로 망명해 왔었다.

 

       이후로 정문공鄭文公은 아들을 얻지 못하여

       후사를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진문공晉文公은 정의 석신보石申父와 후선다侯宣多를 진

군영에 머물게 하면서 다음 지시를 기다리게 했다. 그리고는

눈앞에 대령하고 있던 숙첨淑詹을 쳐다보더니 큰소리로 질책했다.

 

       너는 정나라의 정사를 한 손에 쥐고 흔들더니

       정백鄭伯으로 하여금 정나라를 지나가는 손님에게

       실례를 하게 했으니 그 죄가 하나이다.

 

       회맹에 참석하고서도 다시 두 마음을 품게 만들어

       허위 사실을 핑개로 돌아갔으니 그 두 번째 죄이다.

 

진문공은 즉시 좌, 우에게 명하여 속히 가마솥을 준비하게 명하여

숙첨淑詹을 삶아 죽이도록 팽살형 烹殺刑을 집행하게 하였다.

 

이때 숙첨淑詹은 진문공이 명하는 말을 들었으나 얼굴빛을 하나도

바꾸지 않으면서 얼굴을 들어 똑바로 바라보며 진문공에게 말했다.

 

       신이 죽기 전에 드릴 말씀이 있나이다.

       좋다, 마지막으로 해보아라!

 

       옛날 군주님이 천하를 유랑하며 우리나라를

       찾으셨을 때 신은 우리 주군께 아뢨나이다.

 

       진의 공자는 어질고 사리에 밝으신 분이며

       그 좌우에 따라다니고 있는 가신들도 모두가

       재상의 재목이라, 만약 환국하게 된다면 반드시

       방백의 자리에 오르실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온땅에서 열린 회맹에서는 신이 우리

       군주께 권하기를, 반드시 진후晉侯를 섬겨야만

       옛날에 저지른 실례에 대한 죄를 추궁받지 않고

       사직을 지킬 수 있지만

 

       이번에 다시 회맹에 반하여 두 마음을 품고

       초나라를 섬기다가는, 주군께서는

       그 죄를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정에게 재앙을 내리기 위해

       신의 간언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군후께서 정나라의 정사를 맡아보는 신에게

       죄를 묻기 위해 소환할 때, 자신의 허물을 깊이

       깨달으신 정백鄭伯께서도 이곳에 오겠다는

       신의 청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신은 단지 그 주군을 욕되게 하는 자는 마땅히

       죽음으로서 사죄를 해야 한다는 말에 따라

       스스로 죽음의 길로 자청自請 하여 왔습니다.

 

       신은 한 사람의 목숨으로 위난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자청自請 한 것입니다.

 

       무릇 사리를 능히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을 지라하고

       나라를 위하여 온 힘을 다하는 마음을 충이라 하며,

       위난에 처하여 피하지 않는 것을 용이라 하고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을 인이라 합니다.

 

       지충용인智忠勇仁, 이 모두를 갖춘 이러한 신하를

       가마솥에 삶아 죽이는 것이 진나라 법입니까?

       진나라의 법이 그렇다면 삶아 죽이십시오!

 

숙첨淑詹은 말을 마치자 곧바로 가마솥 곁으로 힘차게 걸어갔다.

그리고 가마솥 가까이 가더니 모인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지금 이후로 자기의 군주를 모시는 자는

       이 숙첨淑詹이 당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경계하여 올바로 처신하기 바라 노라!

 

진문공은 숙첨淑詹의 말을 듣자, 진晉의 대부들과 신료들이 숙첨과

같은 자세로 자신을 대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깜짝 놀라게 되며

몰골이 송연해져 삶아 죽이라는 명령을 거둬들이면서 말했다.

 

       팽살형 烹殺刑의 집행을 멈추어라!

       숙첨淑詹, 과인이 한 번 경을 시험해 봤노라!

       경이야말로 진실로 충성스럽고 어진 신하로다!

 

그 일로 진문공은 숙첨淑詹을 예를 갖추어 극진하게 대했다. 그리고

하루가 미처 지나기 전에 공자 란이 진의 군영에 당도하였다.

 

       정나라 대부들을 모두 부르라.

       공자 란은 어서 오시 오.

       숙첨, 석신보, 후선다 등은 세자에 대한 예를 갖추어 

       상견하고, 동행하여 신정으로 돌아가 세자로 세우라.

 

정문공이 공자 란을 세자로 세웠다. 결국, 진문공은 숙첨叔詹

촉무燭武로 인하여 정나라를 점령치 못하고 돌아오게 된다.

 

       이로써 중원의 제후국은 모두 진문공晉文公

       영향권에 들게 되고, 단지 초나라만 남았다.

 

이때 진과 진은 서로 틈이생기고, 서로 화해하지 않음으로써

또다시 정나라 일로 결국, 피바람이 불게 되는 일이 생겨난다.

이를 두고 염옹髥翁이 시를 지어 밝히고 있다.

 

       甥舅同兵意不欺 (생구동병의불사)

       사위와 장인이 함께 용병한 뜻은

       서로 속이지 않기 때문인데

 

       卻因燭武片言移 (각인촉무편언이)

       단지 촉무의 몇 마디 말로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 버리고 말았구나.

 

       爲貪東道蠅頭利 (위식동도승두리)

       동쪽으로 통하는 길을 얻고자 탐한 일이

 

       數世兵連那得知 (수세병련나득지)

       수년 안에 병화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진군晉軍이 정나라에서 돌아오자, 나라는 오랜만에 평온을

맞게 되며, 이제는 전쟁을 일으킬 사연이 없기도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파란만장했던 세월은 흘러가고

       진문공晉文公도 어느 사이에 70을 바라보게 되며

       평생을 동고동락했던 가신들도 모두 백발이 되었다.
       가는 세월은 막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그다음 해에 위주魏犨가 술에 취해 수레에서 떨어져 다쳤는데,

옛날 희부기僖負羈의 집에 불을 질렀을 때, 대들보에 깔려 골병든

내상이 다시 도져나, 한 말이나 피를 토하고는 끝내 죽고 말았다.

 

       진문공晉文公은 위주魏犨의 아들 위과魏顆에게

       위주魏犨의 벼슬을 잇게 해줬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호모狐毛와 호언狐偃

       형제가 연이어 노병老病으로 죽었다.

 

진문공晉文公은 호모狐毛, 호언狐偃 형제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게 되었으며, 부음을 듣자마자 목을 놓아 울면서 말했다.

 

       두 형제는 나의 외숙으로서

       어릴 적부터 나의 스승이었으며
       한시도 나의 곁을 떠난 적이 없었노라.

 

       과인을 환난에서 몸을 빼내 오늘이 있게

       한 것은 모두가 외숙들의 도움에서였노라.

 

       뜻밖에 나를 버리고 곁을 떠나 버리다니

       실로 오른팔 한 짝이 떨어져 나갔도다!

       참으로 너무나 슬픈 일이로다!

 

진문공晉文公이 울면서 지내며 실의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다 못한

대부 서신胥臣이 어느 날 진문공 곁에 다가갔다.

 

서신胥臣은 망명을 같이 다니던 공신으로, 선진先軫, 위주魏犨

더불어 소장파에 속해 있으면서도, 그중에서 학문이 깊고 성품이

활달하여 외교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주공께서는 두 형제분을 애석해하시며,

       너무나 슬퍼하고 계시옵니다.

       주공, 너무 상심하지 마시옵소서.

 

       주공, 신이 두 분을 대신할 만한 인물을

       천거하고자 하옵는데 괜찮으시겠는지요?

 

       이 사람을 불러 쓰신다면 돌아가신 호언의

       뒤를 이을, 가히 재상감으로 인정하실 겁니다.

 

       주공께서 판단하여 임용하시기 바라나이다.

       경이 천거하려는 사람은 어떤 인품인가?

 

       신이 옛날에 사자의 임무를 띠고 길을 가다가

       기땅의 들판에서 묵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밭에서 김을 매고 있었나이다.

       그때 마침 점심때가 되어 그 처가 음식을 가져와

       두 손으로 공손히 그 농부에게 바쳤습니다.

 

       그 남편 되는 농부도 역시 몸가짐을 바로 하고

       공손한 태도로 그 부인에게서 음식을 받아 놓고는

       하늘과 땅에 간단한 제사를 지낸 후에

       천천히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그의 처는 농부 곁에서 식사가 다 끝날 때까지

       서서 기다리며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농부가 이윽고 식사를 다 끝내자

       그 처가 그릇을 챙겨서 돌아갔습니다.

 

       식사를 끝낸 그 농부는 다시 곰방메를 잡고서

       김매기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농부는 시종일관 얼굴에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부지런히 농사를 지었습니다.

 

       남편과 부인 사이에 서로 존경하기를 마치

       손님을 대하듯이 하니, 하물며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신은 능히 손님에게 예를 행할 줄 아는 자는

       반드시 덕을 갖추고 있다는 말을 들었나이다.

 

       제가 그 농부에게 다가가 그 성과 이름을 묻자

       그는 곧 극예郤芮의 아들 극결郤缺 이었습니다.

 

       허 어, 그 아비가 대역죄인 인데 어찌

       그 자식을 불러 쓸 수 있단 말인가?

 

       주공, 와 순임금은 각기 단주丹朱

       상균商均 이라는 변변치 못한 아들을 두었고

 

       곤과 같은 악인에게도 우임금 같은

       성인인 아들이 있었나이다.

 

       어진 것과 불초한 것은 부자지간이라 해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옵니다.

 

       주군께서는 어찌하여 그 아비가 저질은 죄를

       허물하여, 유용한 인재를 버리시려 하십니까?

 

       으 흠, 경의 말이 옳도다!

       경이 나를 대신하여 그를 불러오기 바라노라.

 

       주공, 신은 그가 만약 타국으로 도망가서

       그 나라에 임용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신은 그를 데려와 제 집에 머물도록 했습니다.

 

       주공, 극결郤缺을 쓰시려면 사자를 보내시옵소서.

       주공, 현자를 대하는 예를 행하시옵소서.

 

서신의 말을 따라, 내관을 시켜 높은 관리가 입는 도포와 비녀와

관과 갓끈을 가지고 극결郤缺에게 가서 진문공의 부름을 알렸다.

 

극결郤缺이 군주의 명을 받들어 사자로 온 내관 앞에 엎드렸으며

머리를 조아리며 사양의 말을 하였다.

 

       신은 기땅에서 밭을 갈던 한낱 농부요!

       주군께서 선친이 지은 죄를 물어 죽이지

       않으신 것만으로도 하해와 같은 은혜를

       입었는데 하물며 어찌 감히 은총에 기대어

       벼슬에 나아가 조당을 더럽힐 수가 있겠습니까?

 

사자로 간 내관은 재삼 사양하는 극결郤缺에게 진문공의 명을

권하며, 간신히 어가에 태워 입궁했다.

 

       극결은 문공이 보낸 비녀 위에 관을 쓰고,

       다시 도포를 단정하게 차려입고는

       조당에 들어가 진문공을 알현했다.

 

극결郤缺은 신장이 아홉 척에 달했으며, 콧날은 우뚝 솟았으며

턱은 넓고 목소리는 마치 큰 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이 우렁찼다.

 

292 . 진목공, 중원에 진출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