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201∼300 회

제 293 화. 현고, 정 나라를 구하는가.

서 휴 2023. 1. 2. 15:19

293 . 현고, 정 나라를 구하는가.

 

정목공鄭穆公이 진의 세 장수를 냉대한다는 것은 곧 진나라를

무시하는 것으로 생각한 진목공秦穆公은 크게 분노하게 되었다.

 

세 장수로부터 정나라를 기습하자는 제안이 두 번이나 들어오자,

건숙蹇叔과 백리해百里奚를 불러 정나라 침공을 의논하였다.

 

       주공, 그 나라를 지켜주겠다고 군사를 남겨 놓고는

       그 군사를 이용하여 점령하는 일은 신이 아니며,

 

       또한, 그 나라의 슬픈 상을 당한 틈을 이용해

       그 나라를 공격하는 일은 결코 인이 아닙니다.

 

       설사 우리의 계획이 성공한다 할지라도 들어간

       노력보다 그 이익은 적으니 이는 지가 아닙니다.

 

       주군께서는 신, , 智, 이 세 가지를

       모두 왜 잃으려 하시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말을 그리 하는 것이오!

       과인이 진나라의 군주를 세 번 세워 줬으며

       진나라의 난리를 두 번이나 평정해 줬으므로

       이제 과인의 이름은 중원 천지에 드높아졌소.

 

       단지, 진문공晉文公이 성복城濮 전투에서

       초군楚軍을 대파大破 하는 바람에,

       백업伯業 자리를 양보하게 되었을 뿐이오.

 

       이제 진문공晉文公이 세상을 떠난 이 마당에

       천하에 누가 우리 진과 다툴 수 있단 말이오?

 

       이제 정나라는 외로운 처지가 되어, 우리가

       아니라도 다른 나라가 점령하고 말 것이오.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정나라를 멸한 후에

       그 땅과 진의 하동河東 땅과 바꾸자 한다면

 

       진나라도 필시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데

       어찌 유리한 점이 없다고만 하시오?

 

       주공, 전쟁을 벌이는 일은 국가 대사이온데

       정에 나가 있는 세 장수의 허언虛言 만에

       현혹되어 크게 일을 그르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공, 신 건숙蹇叔 이옵니다.

       주공, 정녕 그리 하시겠다면 먼저 진과 정

       조문 사절을 보내시고, 충분히 살펴본 후에

       정나라를 공격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허 어, 그렇게 할 시간이 없소이다.

       만약 조문 사절이 떠나고 돌아오는 시간은

       족히 일 년이나 걸리고 말 것이요.

 

       그때 군사를 출동시켜서는 너무나 늦소!

       둘도 없는 좋은 기회를 하늘이 내린 것인데

       어찌 아무 일도 해보지 못하고 놓치란 말이오!

 

       무릇 군사를 움직일 때는 벼락 치듯이 하여

       적군에게 귀를 막을 틈도 주지 말아야 하오.

 

       이번 정벌만 성공하면 제환공과 진문공에 이어

       과인도 패공의 지위에 오를 수 있지 않겠소?

 

       과인이 천하의 패공이 되려면, 우선으로 먼저

       정나라부터 손에 넣어야 하지 않겠소?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가 아니겠소

 

       그대들은 너무 편안히 늙어버린 게 아니오!

       이제는 이런 이치도 모른단 말이오!

 

진목공秦穆公은 두 노신의 말에 벌컥 화를 내면서 더구나 무시하는

말을 하자, 건숙蹇叔과 백리해百里奚는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본래 진목공은 덕과 인과 의와 지

       두루 갖춘 명군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평상시 같았으면 두 재상의 말에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진목공秦穆公

       확실히 정상적이지 못하고 조급해하고 있었다.

 

어쩌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진나라를 한번 누르고 말겠다는

조급증과 진문공晉文公에 대한 열등의식이 한데 어우러져

평상시의 냉철함을 잃어버린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진목공은 즉시 신정新鄭의 세 장수가 보낸 밀사를 불러들여, 다음

해인 이월 상순에 군사를 신정新鄭에 당도시키겠으니, 성내에서

내응內應 하는데 절대로 착오가 생기지 않도록 하라고 엄명했다.

 

       백리시百里視를 대장으로 임명하고

       건병蹇丙과 서걸술西乞術을 부장으로 삼노라.

 

       진군秦軍 중에서 정예병으로 갑사 3천 명을 선발하고

       병거兵車 3백 승을 옹성雍城의 동문밖에 대기시켜라.

 

백리시百里視는 백리해百里奚의 아들이고, 건병蹇丙은 건숙蹇叔

아들이다. 드디어 출병하는 날이 되었다.

 

대장 백리시百里視와 부장인 건병蹇丙과 서걸술西乞術은 조당朝堂

들어가 진목공秦穆公에게 출전 준비가 끝났음을 고하였다.

이때 건숙蹇叔과 백리해百里奚는 흐느끼며 아들들을 바라보았다.

 

       아아, 참으로 슬픈 일이로다!

       오늘은 너희들의 출병하는 모습을 보고 있지만

       다시 돌아오는 모습은 보지 못할지 모르겠구나!

 

       아니, 두 서장庶長께선 왜 그러시오?

       군사가 출진하는 마당에 어찌 곡을 하여

       군심軍心을 심히 어지럽힌단 말이오?

 

       주공, 신들이 어찌하여 출진하려는

       우리 군사들을 향해 곡을 하겠습니까?

 

       신들은 오직 저희 자식 놈을 위해서

       돌아오지 못할까 걱정되어 곡을 했사옵니다.

 

진목공秦穆公이 좌우 서장庶長에게 타박을 주자, 이때 부친이 슬퍼

흐느끼는 모습을 본 건병蹇丙이 아버지 건숙蹇叔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버님, 그리 슬퍼하시면 출전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아니 된다! 우리 부자가 진나라의

       록을 후하게 받으며 넉넉하게 살아왔노라!

 

       네가 출전하여 전쟁터에서 죽는다면, 스스로

       직분을 다하여 군주에게 충성을 바치는 일이다.

 

건병蹇丙의 인사가 끝나자, 건숙蹇叔은 아무도 몰래 봉지封紙에 싼

목간木簡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 봉지에 봉함된 것이 심히 견고했다.

 

       건병蹇丙 , 네가 어려운 지경에 빠지게 되면

       이 목간에 쓰여 있는 대로 조심해서 행하여라.

 

건병蹇丙은 부친의 허락을 받고 출전을 하였으나, 막상 그 마음은

매우 황당하고 처량하였다.

 

그러나 백리시百里視는 자기의 재주와 용기를 믿은 나머지 용감하게

자신만만하여 반드시 공을 세우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태연하였다.

 

       진군秦軍이 출병을 시작하여 옹성雍城을 떠나자

       건숙蹇叔은 병을 칭하고 조당에 나오지 않았다.

 

       이어서 진목공에게 표장을 써서 올리며

       정사의 일에서 손을 떼겠다고 청해 왔다.

 

       진목공이 허락하지 않자, 건숙은 다시 병이

       매우 깊다면서, 자기의 고향인 명록촌鳴綠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했다.

 

백리해百里奚는 어떻게 하던 건숙蹇叔이 떠나지 않도록 만류할

마음을 가지고, 문병을 겸하여 건숙蹇叔의 집을 찾아가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하게 된다.

 

       이 동생은 어느 길로 가야 옳은지 알고 있지만

       이렇게 구차스럽게 머물고자 하는 것은

       내 자식이 생환하는 모습이나마 보고 싶어서입니다.

 

       형께서는 이 동생에게 한마디 가르침도 없이

       어찌하여 명록촌鳴綠村으로 떠나려고만 하십니까?

 

       동생, 그렇지 않아도 말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네.

       이번에 우리 진군秦軍은 틀림없이 패할 것이네.

 

       동생은 이번 일에 대해 공손지公孫枝에게 몰래 알려줘

       하하河下에 배들을 모아 놓고 기다리라고 하시오.

 

       만일 우리 장수들이 진에서 몸을 빼내 도망쳐 온다면

       재빨리 배에 싣고 진으로 귀환시키라고 하시오!

       형님, 알겠습니다. 절대로 잊지 않고 전하겠습니다.

 

이야기를 나눈 결과 초야로 돌아가겠다는 건숙蹇叔의 결심을 바꿀

수가 없다고 생각한 백리해百里奚는 이에 대해 진목공秦穆公에게

고하였다. 이에 진목공秦穆公은 몹시 섭섭했지만 어쩌지 못하고,

황금 20근과 귀한 채색彩色 비단緋緞 백 필을 하사했다.

 

나라의 모든 신료는 교외에 있는 관문關門까지 나아가, 그간

정이 들었던 건숙蹇叔을 몹시 아쉽게 전송하고 돌아오게 된다.

 

       공손지公孫枝 장수, 잠깐 좀 봅시다.

       건숙蹇叔 형이 떠나기 전이었소.

       다른 사람에게 절대 말하지 말고 꼭

       공손지公孫枝 장수에게 부탁하라 당부했소.

 

       이는 장군께서 충성심과 용기를 갖춘 분이라 생각하여

       나라의 우환憂患을 같이 나눌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발설하지

       마시고, 비밀리에 혼자서 준비해야 하겠소.

       예에, 좌서장左庶長 임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건숙蹇叔이 떠나가자, 백리해百里奚는 공손지公孫枝의 손을 붙잡고

건숙蹇叔이 한 말을 다짐을 받으며 전했다.

 

       공손지公孫枝는 백리해百里奚의 부탁을 받자,

       난진欒軫을 앞세워 하수河水 밑의 하하河下

       일부 군사와 함께 주둔시키며, 배를 모으게 하면서,

       비밀리에 진나라의 정보도 수집하게 했다.

 

하하河下는 황하의 본류인 위수渭水와 지류인 하수河水가 합해지는

곳으로 그곳에서 섬서성에서 산서성으로 건너가는 유명한 옛날의

나루터이었으며, 또한 진과 진의 경계이기도 하였다.

 

한편 진군秦軍은 옹성雍城을 떠나 보름 동안을 강행군하였다.

한곳에 이르자 대장 백리시百里視는 야영野營을 하도록 명령했다.

 

       장수들과 식사를 같이 하도록 준비하라.

       오랜만에 장수들이 다 모였군요.

       그동안 강행군 만을 하느라 고생이 많았소.

 

       아 참, 건병蹇丙 장수는 목간木簡을 열어보았소.

       아니 오, 밀봉密封 된 것이라 아직 열어보지 못했소.

 

       한번 열어봅시다. 아마, 나라를 파할 수 있는

       신비한 기계奇計가 적혀 있을 것이 분명하오.

 

백리시百里視의 말에 건병蹇丙은 잘 간직하고 있던 목간木簡

가져와 모두가 보는 앞에 내놓았다.

 

       한번 목간을 뜯어 읽어봅시다.

       알겠소이다. 큰소리로 읽어보겠소이다.

 

       잘 들어라! 이번의 출정에서 염려할 나라는

       정나라가 아니라 바로 진나라이다.

       진나라를 아주 조심해야 한다.

 

       행군하여 통과할 효산殽山은 지세가 험하니

       진군秦軍은 마땅히 조심하고 조심해야 한다.

 

       너희가 방심하면, 내가 마땅히 너희들의 해골을

       찾으러 그곳에 가야 하게 될 것 같구나!

 

효산殽山은 지금의 하남성 서쪽 황하 남안의 동북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있는 산맥으로, 서쪽으로는 섬현陝縣, 동쪽으로는 민지澠池

접해 있고, 서효산西殽山과 동효산東殽山으로 나뉘어 있다.

 

       이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참으로 불길한 말이 아니겠는가!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할 판에

       어찌 이런 글을 써놨단 말인가!

 

백리시百里視의 막사에 모여 있던 장수들은 건숙蹇叔의 목간을

모두 읽어보았으나, 설마 하며 목간木簡의 내용을 믿지 않았다.

 

진군秦軍은 한겨울 12월에 옹성雍城을 출발하여 다음 해 정월에

주 왕성에 당도하였으며, 낙양성洛陽城의 북문을 통과하게 되었다.

 

       자, 모든 진군秦軍은 잘 듣도록 하라.

       천자가 계시는 곳이다. 비록 군사의 일로

       천자를 알현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어찌

       감히 존경하는 마음을 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병거에서 내려 모두 투구를 벗어들고 도보로

       왕성 앞을 통과하도록 좌우에 영을 전하라!

 

백리시百里視가 이렇게 명령을 내렸으나, 그때 행렬의 선두에서

선봉을 맡고 있던 아장牙將 포만자褒蠻子는 사납고 용맹하기가

이를 데 없는 장수였는데, 그만 명령을 무시하고 말았다.

 

이윽고 진군秦軍의 행렬이 왕성 안으로 들어가 천자가 사는 궁궐

앞에 이르게 되자, 갑자기 포만자褒蠻子가 몸을 날려 병거兵車

올라타더니, 마치 나는 새처럼 질풍처럼 앞으로 달려나가 이내

보이지 않았다. 이를 본 백리시百里視는 오히려 감탄하며 말했다.

 

       군사들 모두가 포만자褒蠻子 처럼 용맹하다면

       우리가 어떤 싸움에서인들 이기지 못하겠는가?

 

여러 장수와 군사들이 대장 백리시百里視가 하는 말을 듣고 나자

모두 다 시끄럽게 소리치며 말했다.

 

       우리가 어찌 포만자褒蠻子 보다 못하단 말인가?

       자, 우리도 앞서 달려나가자!

       달리는 병거兵車에 뛰어오르지 못하는 자들은

       모두 전후殿後로 가서 행군하도록 하라!

 

전후殿後에 세운다는 말을 들은 진의 군사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두 팔로 가슴을 두드리며 왕성의 군중들 앞에서 큰 함성을 지르며

진군秦軍의 용맹성을 과시 했다.

 

 

도보로 걷던 진군秦軍3백 승에 달하는 병거兵車를 전방을 향해

힘껏 달리게 하고는 모두가 땅에서 뛰어 올라타 버리고 질풍처럼

앞으로 내달아 삽시간에 진군秦軍의 행렬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전후殿後 , 말은 겁이 많고 허약한 군사나,

       패하고 돌아온 군사들을 행군의 맨 뒷줄에

       세운다는 말이며, 이는 곧 모욕을 주는 말이다.

 

294 . 천리 밖의 원정이 헛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