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201∼300 회

제 294 화. 천리 밖의 원정이 헛되다니.

서 휴 2023. 1. 3. 16:26

294 . 천리 밖의 원정이 헛되다니.

 

       그때 낙양성洛陽城에서는 주양왕周襄王왕자 호

       왕자 호의 아들인 왕손 만滿데리고 북문 성루에서

       진군秦軍왕성을 통과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윽고 진군秦軍의 행렬이 모두 낙양성洛陽城을 지나가 버리고

시야에서 사라지게 되자, 왕자 호가 왕손 만滿을 대리고

주양왕 앞으로 나가 진군秦軍의 용맹성에 감탄하며 말했다.

 

       아바마마, 신이 보건대 진군秦軍은 용맹스럽고

       강건하여, 대적할 수 있는 나라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정나라는 반드시 어렵게 될 것입니다.

 

당시 나이가 매우 어렸던 왕손 만滿이 아버지 왕자 호의 말에

얼굴에 미소를 띠기만 할 뿐으로 말은 하지 않았다.

 

       예야, 왕손 만滿 .

       어린 동자가 무슨 할 말이 있다고 웃고 있느냐?

 

       할바마마, 제 이야길 들어보소서.

       천자가 계시는 궁궐 앞을 지날 때의 예의란

 

       반드시 갑옷을 벗어 둘둘 말고, 병장기는 모두 

       끈으로 묶은 다음 병거에 실어 놓고

       투구를 벗어 들고 걸어서 지나가야 합니다.

 

       오늘 진군의 행군하는 모습을 보니, 단지

       투구만을 벗고 지나갔으니 이는 무례입니다.

 

       또 달리는 수레에 뛰어올라 질풍처럼 내달렸으니

       이것은 심히 경박한 행동이라 하겠나이다.

 

       군사들의 행동이 가벼우면 전술이 미치지 못하고

       예의가 없으니 군기가 쉽게 해이해질 것입니다.

 

       이번의 출전으로 진군秦軍은 틀림없이 패전의 치욕을

       당하게 될 것이며, 스스로 해를 당할 것입니다.

 

한편 정나라 상인 중에 이름이 현고弦高 라는 사람이 있었다.

현고弦高는 소를 팔고 사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었으며, 옛날

주 왕실의 왕자 퇴가 소를 좋아하여 수많은 소를 사들이게

되자, 낙양성에 들어가 소를 팔며 세상의 문물도 많이 익혔었다.

 

       왕자 퇴가 죽은 후에 소 장사꾼들은 정

       위와 진, 세 나라에 소를 팔고 있었다.

 

       현고弦高는 신분이 비록 상인에 불과하였지만

       군주에 대한 충성심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환난을 극복하고

       분쟁을 풀 수 있는 지혜도 갖추고 있었다.

 

       단지, 천거해서 이끌어 주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그저

       시정에서 몸을 굽혀 소를 팔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날의 현고弦高는 1백여 마리의 소를 내다 팔기 위해 정나라를

떠나, 나라로 가는 중에 여양진黎陽津의 나루터에 이르렀다.

 

       아니, 친구 건타蹇他가 아닌가

       오오, 현고弦高 반갑소이다.

 

       건타蹇他는 어디서 오는 길인가

       하하, 나라에서 소를 모두 팔았소이다.

 

       그 많은 소를 다 팔았다니 믿어지지 않소이다.

       그렇소, 나라로 빨리 가보시오

 

       아니 진秦나라는 그냥 소를 나눠주고 있지 않소

       그렇지요. 그러나 농지를 하도 개간하다 보니

       소가 없어 송아지도 다 사버리는 것이오.

 

       허허. 진秦 나라가 부강한 나라가 되겠소이다.

       벌써 부자나라가 되었소이다.

 

       그런데 현고弦高, 우리 정나라가 큰일 나겠소

       아니, 우리나라가 큰일이 나다니 무슨 말이오

 

       진군秦軍이 우리나라로 이미 쳐들어오고 있소

       진군秦軍의 정예군이 쳐들어오고 있으니

       우리 정나라가 망하지 않겠소이까

 

현고弦高 일행이 여양진黎陽津에 당도하자, 우연히 고향 사람인

건타蹇他를 만나, 의 내부 사정과 진군의 동향을 알게 되었다.

 

       어이 건타蹇他, 진군秦軍의 사정은 어떠하오?

       진군秦軍이 옹성雍城을 출발한 날이

       작년 12월 병술일丙戌日 이었소이다.

       이제 진군秦軍이 이곳에 당도할 때가 되었소이다.

 

       우리 정나라가 큰 위기에 놓이는 것이오

       허 어, 현고弦高, 정말 그렇소이다.

       어서 이 소 떼를 가지고 다른 곳으로 피신하시오

 

       여보게 건타蹇他, 내 소를 좀 맡아주게.

       아니, 현고弦高, 뭘 하려는 건가

 

       고국에 갑자기 병란兵亂이 생기게 되었으니

       허허, 내가 듣지 않았다면 모를까.

       들은 이상 어찌 이대로 있을 수가 있겠소

 

       우리 정나라가 망하면 내 무슨 면목으로

       고국으로 돌아가 어찌 조상을 만날 수 있겠소

 

       건타蹇他는 이 목간을 주군께 빨리 바쳐주시오!

       그대는 쉬지 말고 신정新鄭으로 달려가야 하오

       나는 이곳에 남아 진군秦軍을 저지하겠소이다

 

현고弦高는 자기의 100여 마리 소 중에서 살진 소 20마리를 고른

후에, 나머지는 건타蹇他에게 맡기며빨리 떠나게 했다.

 

       건타蹇他가 떠나자. 현고는 마음에 한 가지

       계책을 세우고 종자들에게 설명하며

       호군犒軍에 필요한 행장을 갖추게 했다.

 

호군犒軍 준비가 끝난 현고弦高20마리 소를 끌고 길을 재촉하여

진군이 오고 있을 서쪽으로 향하다가, 드디어 활국滑國의 비땅의

근처에 이르렀을 때 진군秦軍의 선발대인 전초前哨를 만나게 되었다.

 

       여보시오진군秦軍의 선발대가 맞소

       누구신데 묻는 것이오

 

       나는 정나라 군주가 보낸 사자입니다.

       바라건대, 진군秦軍의 대장을 뵙게 해주시시오

 

진군秦軍의 전초병은 중군으로 달려가 이를 급하게 보고했다. 이에

진군秦軍의 대장 백리시百里視은 매우 놀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정나라가 어떻게 우리 진군秦軍이 온다는 걸 알고

       사자를 이 먼 곳까지 영접하러 보냈단 말인가?

 

       일단 정나라 사신을 만나봐야!

       그가 온 연유를 알 수 있겠구나.

       정나라 사신을 어서 들여 보내라

 

대장 백리시百里視는 즉시 행군을 멈추게 하고, 현고弦高를 불러

서로 상견하게 하였다.

 

그때 현고弦高는 관복을 그럴듯하게 차려입고 군주의 명을 정말로

받고 온 사신처럼 행세하며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우리 정백鄭伯 께서는 세 분 장군님이 진군을 이끌고

       저희 정나라로 오신다는 소식을 들으셨습니다.

 

       이에 변변치 못하나마 하신下臣 인 이 현고에게

       소 20마리를 주시며 호군犒軍 하라 하셨습니다.

 

       장군 임, 저희 정나라는 대국 사이에 끼어

       항상 대국으로부터 모욕을 당하면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오랫동안 고생만 하고 있습니다.

 

       단 하루라도 경계를 게을리하거나, 혹은 예측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서, 상국에게 죄를 얻게 되는

       경우를 몹시 두려워하여, 밤낮으로 경비를 철저히

       하느라 감히 잠자리도 편히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진군秦軍의 장군께서 우리 정나라의

       사정을 잘 굽어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소이까? 정백鄭伯이 우리 군사를 호군犒軍

       하기 위해 사자를 보냈다면 국서國書가 있을 것인데

       어서 국서國書를 내놔보시오?

 

       장군께서 작년 동짓달 12월 병술일丙戌日

       출병하시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말을 타고

       밤낮으로 힘써 달려온 파발로부터 들으신

       저희 군주님께서는 군명君命을 글로 쓰시다가

 

       잘못 써서 다시 고쳐 쓰시다가, 혹시라도

       상국의 군사를 호군犒軍 하는 시기를

       놓치지나 않을까 걱정하셨나이다.

 

       국서國書 작성에 시간 끄시다가 신에게 구두로

       명하시면서 빨리 달려가라 하시어, 이렇게

       달려와 엎드려 장군에게 죄를 청하고 있습니다.

 

백리시百里視는 자신들이 떠나온 날짜까지 정확하게 짚어대고

있는 현고弦高의 말에 속으로 아연실색하며 골똘히 생각했다.

 

       놀라운 일이로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를

       저들은 이미 다 알고 있지 않은가?

 

백리시百里視는 겨우 마음을 진정하고 태연한 표정으로 현고

가까이 오게 하더니 귀에다 대고 엉뚱한 말을 하였다.

 

       우리 군주께서 진군秦軍을 보내신 이유는

       이곳 활나라를 토벌하기 위해서이지

       결코, 을 정벌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 각 진영에 연락하여 이곳에 주둔하도록 하고

       진채를 새우도록 하라!

     

그 날 저녁, 현고弦高는 가지고 온 소 20마리를 차례대로 3

동안을 잡아, 진秦 나라 군사들에게 배불리 먹인 후가 되어서야!

거듭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신정新鄭으로 돌아갔다.

 

백리시百里視는 한자리에서 주둔하면서 그곳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자, 부장 서걸술西乞術과 건병蹇丙은 궁금하여 그 까닭을 물었다.

 

       장군, 군사의 행렬을 이곳에 멈추도록

       명령을 내리고 떠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진군秦軍이 천릿길이나 멀리 왔는데, 뜻밖에

       정나라 사자가 이미 다 알고 나타났소이다.

 

       정나라 사자의 말을 들으니 그들은 이미

       우리가 출병한 날짜까지 훤히 알고 있소이다.

 

       그것을 보면 정나라 신정新鄭 성에서는 이미

       우리 진군屬國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소.

 

진군의 기습 사실을 정나라가 미리 알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진군은 정에 대한 기습전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머나먼 천릿길을 달려온 것은 오로지

       정나라를 기습하기 위해서였소!

 

       우리가 설사 공격하더라도 정나라가 신정新鄭 성을

       굳게 지킨다면 점령하기가 매우 힘들 것이오.

 

       그렇다고 포위하여 그들이 지치기를 기다린다면

       우리가 이끌고 온 군사들의 수는 적고 식량과

       마초도 부족하여 싸움을 오래 계속할 수 없소이다.

 

       그렇다고 이곳에 머물 수만도 없는 일 아니겠소?

       나의 고민도 바로 그것이오.

 

       이대로 그냥 돌아가면 우리 체면이 말이 아니고

       잘못하다간 문책問責을 당할 수도 있소이다!

 

       그렇다면 정鄭 나라를 정벌을 중지하고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하지 않겠소?

 

       그래서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본 것이 있소.

       활나라는 원래 정鄭 나라의 속국屬國 이오.

       활을 치는 것은 정鄭을 치는 것과 같소이다.

 

       차라리 이 기회에 활나라를 쳐서

       전리품이라도 잔뜩 챙겨가는 것이 어떻겠소?

 

       대신 활은 우리에 대해 전혀 대비하고

       있지 않으니 이 기회를 이용하여

       급습한다면 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포로와 전리품을 얻어 돌아가서

       우리 주군께 바친다면 이번의 출병이 전혀

       뜻이 없었다고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윽고 그날 밤 삼경이 되자, 진군屬國의 군사들에게 설명하고 난 후

세 방향으로 나누어 일제히 활성滑城을 습격하여 점령해 버렸다.

 

깜짝 놀란 활나라 군주는 책땅으로 도망갔다. 진秦의 군사들은

여자들과 그리고 값비싼 옥과 비단들을 대거 노략질한

한 후에 나라의 도성 안을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이 일을 두고 후세의 한 사관이 시를 지어 논했다.

 

       千裏驅兵狠似狼 (천리구병한이랑)

       이리와 같이 사나운 군사들이 천리를 달려와서

 

       豈因小滑逞鋒鋩 (개인소활령봉망)

       어찌하여 보잘것없는 활 나라에 칼을 겨누었는가?

 

       弦高不假軍前犒 (현고불가군전호)

       현고가 군명을 빌려 진군을 호군하지 않았더라면

 

       鄭國安能免滅亡 (정국안능면멸망)

       정 나라는 어찌 멸망을 피할 수 있었겠는가?

 

그 후 진군秦軍이 물러갔으나 활나라는 다시 나라를 일으키지

못했으며, 그 후 나라 땅은 모두 진나라가 차지하게 되었다.

 

한편 신정新鄭 성의 정목공鄭穆公은 상인 현고弦高의 비밀 목간을

받았으나 진군秦軍이 쳐들어온다는 사실을 전혀 믿을 수가 없었다.

 

       이제 봄 2월 상순이 아닌가?

       봄이 되면 농사준비로 바 뿔 터인데, 진군秦軍

       이 먼 곳까지 쳐들어오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구나.

 

       주공, 진秦에서 나와 있는 세 장수를 살펴보면

       알 수 있는 일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좋다, 어서 진秦의 장수들이 묶고 있는 객관과

       진의 군영軍營에 가서 그들의 눈치를 살펴보도록 하라.

 

295 . 적을 풀어주어 재앙을 부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