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색조

팔색조 5. 운명

서 휴 2018. 7. 11. 12:29


팔색조

八色鳥 Pitta nympha

서 휴

 

5. 운명

 

무대 뒤에서 굵은 목소리가 흘러나오며

스크린 자막에 높은 산들이 글과 함께 흐른다.

 

하늘까지 치솟은 바위산은 굽이치며

작은 산들을 앞세워 내려오다 능선을 이루고

 

능선 따라 울창한 숲이 생겨나

비탈은 차츰 늘어지며

아름다운 바닷가에 닿습니다.

 

점점이 떠있는 섬들은

아름다운 바다 빛깔에 모습이 바뀌며


바닷가 따라 펼쳐진 양지바른 꽃밭에는

어린 아들과 착한 부부가 살고 있었지요.

 

선녀가 무대 앞으로 나와 이마에 손을 얹고

휘돌아보며 관중을 향하여 춤을 추며 노래를 한다.

 

색깔별로 나눠진 꽃밭은 넓기도 하고

꽃들이 많이도 피어 참으로 아름답네요.

 

이처럼 아름다운 꽃들로 물감을 만들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겠지요

 

높은 산을 따라 내려오는 모습을

화폭에 담을 수 있고

 

울창한 숲과 어우러진 꽃밭을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겠네요.

 

나의 그림실력을 마음껏 뽐내 봐도 될까요.

여러분.

 

그때 어린아이가 걷다가 뛰다가 넘어지다

울면서 아장아장 걸어 나온다.

선녀는 아이를 덥석 앉으며

 

그렇지요. 사랑스런 우리아들 모습도

아름다운 물감으로 그려야지요.

 

아들의 방긋 웃는 모습에서

우리의 즐거움을 담아내고

 

때로는 어린 아들과 더불어

사랑스런 가족의 모습도 그려야지요.

 

정원사가 무대에 나와 꽃밭을 둘러보며

벌통을 들여다보다가 노래를 부른다.

 

꿀이 잘 영근 것 같아요

꽃을 보려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꿀 차를 대접해도 충분할 것 같아요

 

꽃들도 잘 피어나고

벌통에 꿀도 가득하니

금년에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요

 

선녀가 노래를 이어받는다.

 

아무렴요. 꽃밭도 잘 가꾸어졌고

우리 어린 아들도 무럭무럭 잘 자라니

이만한 행복이 어디 있겠어요.

 

여보. 이리 와보세요

색색의 예쁜 나비들이 모여들어

아름답게 날며 꽃밭을 수놓고 있네요.

 

정원사가 노래를 이어받는다.

 

아름다운 부인은 물감을 만들어

그림 그리기를 좋아합니다.

 

걷다가 뛰다가 넘어지다 울다가

아들의 모습에서 사랑을 담아내고

사랑스런 가족의 모습도 그려내니

 

우리는 아름다운 꽃밭에서

너무나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귀신 가면을 쓴 사람들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무겁고 음산한 분위기를 만들며 춤을 춥니다.

 

큰 귀신가면을 쓴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정원사를 향하여 노래 부른다.


아름다움을 다 가지고 있으면

바라보며 감탄하며 탐을 내게 되지요

 

아름다움에는 시샘이 따르는 법

좋은 것은 탐욕을 불러일으키는 법

좋은 일에는 안 좋은 일도 생기는 법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세상살이는 모르는 일도 많아

 

우리 귀신들도 그렇게 겪고 오며

살아가다 귀신이 되었으니

 

사람의 행복과 불행이란

언제 오고갈지 알 수가 없네요.

 

정원사님.

행복을 나눠가지면 안 될까요

 

우리귀신들 무덤주변에

일만 송이의 꽃을 옮겨 심어주시지요.

 

말을 듣지 않으면

모월 모시에 어린 아들이 죽을 것이요

미안하오.

 

귀신가면을 쓴 사람들이 퇴장하며 깜짝 놀란 부인은

어쩌면 좋으냐며 남편 정원사에 매달립니다.

 

어떡하면 좋지요

행복한 우리에게

어째 이런 일이 찾아올까요.

 

귀신들의 말을 믿어야할까요

어찌하면 좋을까요


정원사가 노래를 이어받는다.

 

인간사에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같이 따른다 하지만

 

설마. 건강한 우리아들에게

불행이 찾아올 리가 있겠어요.

 

귀신들의 무덤을 일단 가봅시다

보고나서 생각합시다.

 

선녀와 정원사는 한참을 걸어

귀신들이 말한 무덤을 찾아갑니다.

 

무덤들을 둘러보고 난후

정원사는 노래를 부르며 선녀는 슬픈 춤을 춥니다.

 

이곳이 귀신들의 무덤인가 봐요

무덤을 왜 이런 곳에 세웠을까요.

 

무덤들을 양지에만 세우라는 법은 없지만

무덤들을 응달에 모아놓다니요

 

음침한 골짜기는

꽃들도 자라기 힘든 응달이네요

 

아름다운 분위기를 만들 수도 없고

꽃구경 올 손님들이 찾아올 곳이 못되네요.

 

이 무덤들을 양지쪽으로 다 옮길 수도 없고

짧은 시간에 꽃을 옮기기도 어렵네요.

 

귀신들은 왜 이런 말을 할까요.

귀신들은 왜 이런 시련을 가져올까요.

 

안 되는 줄 알면서 하는 말일까요

무슨 뜻을 담고 하는 말일까요

 

무대는 갑작스레 어두워지며 하늘에서 번개가 치며

선녀는 어린 아들을 끌어 앉고 울부짖는다.

 

귀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사랑스런 우리아들이 죽는다니

이럴 수는 없지요

 

인명은 재천이라 하는데

귀신들이 아이를 죽게 하다니요

이럴 수는 없지요

 

좋은 귀신도 많다는 데

어찌 나쁜 귀신들이 우리를 찾아와

 

착하게만 살아온 우리에게

이런 불행을 가져올 수 있나요.

이럴 수는 없지요

 

정원사가 노래를 이어받는다.

 

울기만하면 어떡하오.

울고 불며 슬픔에 잠겨만 있지 말아요.

 

어린 아들의 운명이 그뿐인가

사람의 운명은 사람이 어찌할 수 없으니

 

무언가 하늘의 좋은 뜻이 있겠지요.

무언가 새로운 좋은 일도 찾아오겠지요.

 

온 꽃밭에 꽃들이 만발하여

한창 손님들이 찾아오는 봄날이니

 

슬픈 얼굴을 거두고 하던 일을 열심히 하며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해야지요.

 

. 일을 합시다.

. 손님 맞을 준비를 합시다.

 

경쾌한 음악이 흐르며 방문객들이 모여들어

아름다운 꽃들을 보며 탄성을 지르며 감탄한다.

모두다 무대에서 퇴장하며 커튼이 내려진다.

 

커튼 앞으로 선녀와 정원사가 나와 즐거운 표정으로

찾아온 손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데

 

큰 귀신가면을 쓴 사람이 앞으로 뛰어들며

정원사를 향하여 빈정거리며 또 말을 겁니다.

 

가지각색의 꽃이 만발한 꽃밭은

참으로 아름답네요.

 

이렇게 많은 꽃들이 질서 정연하니

이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 어디 있으리오.

 

아름다움은 혼자서 독차지 하지 말고

서로 나누어 주면 얼마나 좋겠어요.

 

정원사님.

일 만송이 꽃들을 옮겨 주시면 안 되나요.

 

일 만송이 꽃들을 옮길 거요.

안 옮길 거요.

 

그렇게 말을 듣지 않으면

모월 모시에 부인이 죽을 것이요.

미안하오.

 

귀신가면은 퇴장하고 무대 커튼이 열리며

정원사는 노래를 부르며 선녀는 슬픈 춤을 춥니다.

 

생각지 못한 일이 생겨나니

이를 어쩌면 좋을 까요

 

알지 못하는 일에 말려들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 까요

 

가족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왜 이런 어려움이 다가왔을까요.

 

나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아내의 죽음을

어떻게 모면하면 좋을까요.

 

안타깝게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나요.

 

하늘을 봐도 땅을 봐도

도와 줄이 아무도 없으니 너무나 슬픕니다.

 

어떠한 힘을 찾아 도움을 받아야

내 아내를 살려낼 수 있나요

 

선녀가 노래를 이어받는다.

 

사랑하는 아들이 떠나고

나또한 떠나야 한다니

 

여보. 우리의 사랑은 이렇게 끝나야 하나요.

사랑하는 당신과는 죽어도 헤어질 수 없어요.

 

진정으로 나를 사랑한다면

일만 송이 꽃을 옮기던가.

좋은 묘안을 찾아야지요.

 

여보. 옮깁시다.

밤낮으로 옮기면 안 될까요. 여보.

 

커다란 포클레인을 불러

밤낮으로 옮기면 안 될까요. 여보.

 

정원사가 노래를 이어받는다.

 

일만 송이의 꽃을 옮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옮겨도 꽃들이 살 수 있는 곳이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열심히 꽃밭을 가꾸며 착하게 살아왔는데

무슨 죄가 있어 죽어야 하나요.

 

아니지요. 인명은 재천 이예요.

사람의 운명은 사람도 귀신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거지요

 

죽음을 미리 알려주면서 괴롭히면 안 되지요

귀신의 말은 옳다고 볼 수 없어요.

 

선녀가 노래를 이어받는다.

 

착하게 열심히 살아가는데

나쁘고도 못된 귀신이 왜 찾아왔을까요.

 

우리의 행복이

이렇게 일순간에 끝날 수는 없지요.

 

우리가 만나던 처음처럼 사랑을 하고

사랑을 가지고 믿어야지요.


나는 사랑하는 남편의 말을 따라야지 요

남편은 착한 사람이예요


여 보. 당신은 열심히 꽃을 가꾸고

나는 물감을 만들어 열심히 그림을 그릴게요.

 

모월 모시가 되어 무대는 어두워지며

정원사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납니다.

 

큰 귀신가면이 들어와 둘러보며

정원사 곁으로 다가갑니다.

 

당신의 고집으로

행복한 집안이 결딴나고 있네요.

 

왜 말을 안 들어요.

사랑하는 가족보다 꽃이 그리 중요합니까.

 

일만 송이 꽃을 안 옮기실 거요.

이래도 안 옮긴다면

모월 모시에 당신도 죽을 것이요

 

그러나 모월모시에 정원사는 죽지 않고

꽃밭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귀신가면들이 들어와 춤을 추며

큰 가면의 귀신이 노래를 부릅니다.

 

나는 저승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일을

기록하는 기록관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는 일에 충실하여야함에도

아들과 부인의 죽는 날을 알게 되어

꽃을 빙자하여 그대를 속였습니다.

 

올바르고 착하게 사는 그대에게

넓고 깊은 용서를 비는 뜻에서

 

바라는 소원을 말씀하신다면

제 능력껏 이루도록 돕겠습니다.

 

정원사가 노래를 이어받는다.

 

고마워요. 아들과 부인이 무척 보고 싶어요.

 

큰 가면귀신이 노래를 이어받는다.

 

어린 아들은 환생중이라

다른 집에 다시 태어나므로

 

저는 죽음의 모습을 기록하다보니

태어남의 기록은 제 소관이 아니라

답변을 드리지 못합니다.

 

부인은 사십구재가 끝나야 되기에

잠시 기다리면

 

칠월칠석날은 사랑의 만남을 주선하는 날로

오작교의 다리가 이어지며

하늘 문을 여니 만나실 수 있습니다.

 

그대에게 귀띔하여 드리건대

그대는 앞으로 칠십년은 더 살 수 있으니

백세를 훨씬넘겨 장수하실 겁니다.

 

정원사가 노래를 이어받으며

귀신 가면들과 슬픈 춤을 춥니다.

 

둘이서 만나 사랑을 하며

사랑하는 아들을 보았으니

행복은 이에서 더하리오.

 

햇볕 쨍쨍한 바닷가에서

꽃밭을 일구며 꽃과 함께 행복하였건만

우리의 사랑은 여기까지 이었나 요

 

피어나는 저 꽃들은 나를 반기지만

슬픔 속에 바라보는 내 마음

당신 얼굴로 아들 얼굴로 보이니

 

반가워 다가가다 눈물 흘리며

저미는 가슴에 다시 눈물 고이네요.

 

당신의 웃는 얼굴

방그레 웃는 아들의 모습

 

우리의 사랑은 지나간 한갓 꿈이었나요.

우리의 기쁨도 한갓 꿈이었나요.

 

울다 지친 정원사는 삽과 곡괭이를 들고

귀신의 묘지를 파헤치려 찾아갑니다.

 

한참을 서서 쳐다보다 착한 정원사는

묘지주변에 조금씩 꽃들을 심어주기 시작합니다.

 

꽃을 좋아하는 귀신들의 마음을 몰라줘 미안하다며

정성스레 물을 뿌려줍니다.

 

정원사는 모든 걸 운명으로 생각하며

슬픔을 참아내며 더욱 열심히 꽃밭을 가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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