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이야기

소리 없는 돌

서 휴 2017. 3. 3. 17:57


소리 없는 돌

서 길 수

 

들리는 소리만이 아름다울까

들리지 않는 소리가 아름답다면 무얼 말하나

 

모습이 없는 소리가

보이지 않는 소리가

말하지 않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소리가

 

마음깊이 울려 퍼질 때가 왜 그렇게 있는지 

가슴이 아련할 때가 왜 그리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아리아의 높은음 소리는 4옥타브를

      넘나들며 시끄러운데 천상의 소리라 한다.

      나는 모르겠다.

 

      그러나

      마음속 깊이 무언가 뜻을 가져다주는 듯

      생각하게 하는 깊은 맛이 있어 좋다

 

      판소리 - 고전 창은

      5옥타브를 넘나드니 쉰 목소리가 된다 한다.

      나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쉰 목소리가 핏속에 무엇이 흐르는 듯

      마음을 요동치게 하기 도 하고

 

      왜 가슴을 여미게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그래서 더욱 좋다

 

세월의 파도소리를 아는가. 

모두를 아우르는 파도소리를 아는가.

생각지 못한 역경의 파도소리를 아는가.

 

파도를 넘을 수 있는 크나큰 소리도 있을까

있을 거야

 

인생의 파도를 넘는 사람도 있을까

있을 거야

 

    함흥 사범학교에서도 이름난 수재

    청운의 꿈을 향하여 많은 책을 섭렵하며

    좋은 선후배와 아름다운 이야기 나누던 시절

 

    꿈같던 시절이 지나자

    6,25 사변으로 고향 떠나

    포화 속에 임관된 갑종45기 소대장

 

    태극기 앞세우고 돌격 선봉에 섰던 돌격소대장

    인민군 저격병의 총탄에도 살아남은 소대장

 

    중후한 모습의 점잔은 노신사

    옛날의 소대장 홍사 범님은 소리가 없다

 

    팔다리가 날아가는 모진 포탄 속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육박전 속에서

    쓰러져 죽어가던 전우의 절규라도 있을까

    그 소리도 없다

 

    없는 것일까

    아니야, 있어도 나지 않는 소리일 거야

    아니야, 상긋한 웃음이 있을 뿐 소리는 없어

 

      파란 하늘에 구름이 가듯

      깊고 깊은 산속 맑은 물이 흐르듯

      조용히 바둑 돌을 놓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사연을 누가 소리로 알 수 있으랴 

      살아가는 죽어가는 인간사 이야기를

      영혼들의 이야기를

 

      아-하 지나온 영혼들의 풍상을

      아-하 영혼들의 풍상을 바둑 돌로 풀고 있는가.

 

북녘 고향을 향하여 고개 숙이는 마음

지나온 역경의 돌을 놓고 있는가.

 

파도를 삭히며 울분의 돌을 놓고 있는가.            

쓰라린 가슴의 사연을 돌로 놓고 있는가.

 

왜치고 싶은 그때 그 날을 향하여


왜치고 싶은 그때 그 임을 향하여

소리 나지 않는 말을 하고 있는가.

 

하고 있을 거야

아름다운 말일 꺼야

아니야, 슬픈 이야기일 거야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한 옥타브를 넘지 않으며 도 진지하다

 

돌 위에 올려놓으며 하는 말은 더욱 울림이 있다

돌의 힘찬 모습은 온갖 파도를 넘는듯하다

 

그러나 임을 향한 아름다운 소리는

따로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닐까

 

나는 모르겠다.

돌 소리라는 건 더 그렇다

 

노신사 홍사 범님의 돌은

왜 그리 돌마다 진지한지 정말 모르겠다.

 

임을 향한 마음의 돌에

임은 정말 답이 없는 것일까

 

다발 총알에 피 흘려 죽어가던 전우도

한 맺힌 선후배 -친우들도

꿈에도 그리는 두고 온 부모 형제도

 

이산가족 상봉으로

금강산에 다녀온 후 많이 울었다 한다.

 

돈과 함께 많은 선물을 주고도

며칠 몇 밤을 울었다한다

 

공산주의자도 아닌 한 인간들이

인민들을 소유물로 생각하여

이렇게 헐벗게 굶주리게 만들다니

 

자기들만의 목적을 위하여

많은 인민들을 헐벗고 굶어 죽게 만들며

개 돼지 만큼도 못살게 만들다니

  

    개성공단을 다녀온 후

    3.4.5.6 공단을 만들어 나가면

    이렇게 만들어 나가면

 

    북녘의 일가친척들

    뛰어 놀던 어릴 적 친구들

    옛날의 이웃들과 같이

    잘살 수 있는 희망을 보았다한다

 

    같이 같이 잘 살며 묘향산도 가보고

    살던 집 함흥에도 가보고

 

    다함께 백두산에 올라

    통일의 만세를 부르리라 희망을 갔었다 한다.

 

    총칼을 맞잡고

    서로 죽이고 서로죽고 하던 서로가

    같은 핏줄 한민족이라

 

    남이 아닌 나와 내 이웃이라

    나와 같은 부모형제라

 

    아름다운 희망을 보았다한다

    아름다운 희망을 보았다한다

 

    산에 올라서도

    길을 걸으며 도

    소주를 마시며 도

 

    바라고 바라던 희망이 가슴 벅차게 하며

    6.25의 참상을 넘어

    즐거운 노래가 절로 나왔다고한다

 

    소리가 났다고 한다.

    소리가 났다고 한다.

 

    아름다운 돌 소리도 났다고 한다.

    소리 나는 돌을 하나씩 놓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해상에서

 

해군 제2함대의 초계함 천안함이

어뢰 맞아 박살이나고

우리의 자식들인 장병 46명이 죽어나갔을 때

 

그리고 또

2010년 11월 23일

예고 없이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져

 

갯벌에 나가 조개 줍는 아낙에게

바다에 나가 고기 잡던 어민에게

 

밭일하며 살아가는 섬마을에 포탄이 떨어져  

한마을 내 이웃이 죽어 나갈 때

 

평생 장만한 집과 마을이

그네들의 말대로 불바다가 되었을 때 

6.25처럼 섬마을 사람들이 피난을 나왔을 때

 

역전의 소대장 홍사 범님은 말을 잃었다 한다.

소리를 잃었다 한다.

 

     6.25의 참상을 일으킨 그 인간들이

     이제는 3대세 습으로 왕조를 끌고 가겠다며

 

     총을 쏘고

     어뢰를 쏘고

     무수한 포를 쏴

     무고한 동족을 죽이고 또 죽이고

 

     말을 잃게 하였다한다

     소리를 잃게 하였다한다

 

그래도

북녘의 가녀린 소식이 들릴 만한데

반가운 여인이 불현듯 찾아올 만도 한데

 

왜 소리가 없나

왜 들리지 않나

 

그렇게 기다리는 그님은

은은한 돌 소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힘차게 울리는 돌 소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다 알면 안 된다

혼자면 된다.

혼자 내는 소리 혼자 듣는다.

 

천상의 아름다운 소리나

쉰 목소리의 애틋함이나

 

아련하면서도 피맺힌 사연들을

돌 소리로 삭히는

 

어찌 기나긴 세월의 말을

어찌 지나온 역경의 말을

 

어찌 남의 가슴에 남는 소리로 다 표현이 되랴

어찌 돌 소리로 다 표현이 되랴

 

 혼자 내는 소리 혼자 듣는다.

 아니다

 혼자 내는 소리 남의 가슴을 울린다. 

 

 나는 모르겠다.

 돌 소리를 모르는 나는 정말 모르겠다.

 

홍사 범님은 소리 없는 돌을 놓고 있다

하얀 돌 까만 돌을 

 

홍사 범님은 소리 없는 돌을 놓고 있다

홍사 범님은 소리 없는 돌을 놓고 있다가

 

돌을 던졌다

하얀 돌 까만 돌을 던졌다

 

이깟 돌을

이깟 돌이라니

 

수십 년 소리 없는 돌을 모아 던졌다

소리 없는 돌에 매달려 살지도 못하게 하다니

 

거리로 나섰다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고

또 그리고 만세를 불렀다

 

6.25 총상의 월 18만원을

나라를 위하여 써야 된다며

 

넉넉지 못한 살림에

부인도 나라위해 쓰라며 내보낸다.

 

나라에서 주는 돈

나라를 위하여 쓰겠다며

 

엄동설한의 추운 겨울

만세를 부르겠다며 홍사 범님은 거리로 나섰다

 

소리를 듣는다.

김일성 장학금을 받는 놈들이 많다니

나라를 엎으려는 종 북 세력들이 많다니

 

어떻게 지킨 이 나라인데

그는 함께 고함지르며 만세를 부른다.

 

그러나 외쳐도 아무리 외쳐도

크게 외쳐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의 목소리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군중에 묻혀 메아리 칠뿐이다.

 

그래도 좋다 한다.

구십이 다되어가는 개미 목소리

소리가 난들 얼마나 크랴

 

그래도 외친다.

추운겨울 나라를 지키려는 마음으로

함께 외친다.

 

 총알이 뚫고 간 자리가 시려도 함께 외친다.

 대한민국 만세를 부른다.

 

 다발 총알에 피 흘려 죽어가던 전우들의

 한 맺힌 선후배 -친우들의

 꿈에도 그리는 두고 온 부모 형제들의

 목소리를 모아 힘차게 외친다.

 

 구십이 다되어 가는 목소리

 소리가 난들 얼마나 크랴

 

 그래도 외친다.

 함께 외친다.

 

 총알이 뚫고 간자리가 시려도

 구십이 다되어 작은 목소리라도 외친다.

 함께 따라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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