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거도 사랑

해뜰목

서 휴 2016. 2. 26. 12:04

해뜰목

서 휴

 

      이번 설에는 먼 곳으로 한번 가볼까요.

      가거도可居島라 하더니 정말 가려는 거요.

      그래요. 큰맘 먹고 한번 가봅시다.

 

      우리 거기에서 신년 해맞이를 해보면 어때요.

      유별나지만 좋은 기도가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목포에서 페리호를 타고 4시간 반이나

      가야한다니 참으로 먼 섬이긴 한가 봐요.

 

가거도는 목포에서 아침 810분에 떠나는 배가 한 번밖에

없다니 우리는 반포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한밤에 목포에 내려가

찜질방에서 간략히 눈을 붙이고 여객 부두로 빨리 가야 하였다.

 

      엉겁결에 오다 보니 피로가 겹쳤지만

      찜질방에서 짧은 밤이긴 하지만 포근하고

      아침에 끓여주는 미역국은 일품이네요.

 

서해안 목포 앞바다에 1,004개의 섬이 모여서 신안군新安郡

이루며 그 많은 섬 중에 북쪽으로 향하는 섬들은 변산반도와

산동반도를 바라보며 그와 반대로 태평양을 향하는 남녘 섬들은

쭉 내려가다 상하이上海 못 미쳐 멈춰 서게 된다.

 

마지막 멈춰선 섬을 가거도 可居島라 부르며 이 섬은 총면적이

241.4만 평으로 서울 여의도 汝矣島3배 밖에 안 되면서도

서울 관악산冠岳山 높이의 커다란 독실산犢實山 (639m)

가거도 한복판에 우뚝 서 있다고 한다.

 

제주도의 한라산漢拏山(1,950m)과 울릉도의 성인봉聖人峰(984m)

그리고 우리나라 섬 중에 세 번째로 높은 산이 독실 산이란다.

 

좁은 섬 속에 독실산犢實山이 우뚝 서 있어 해변은 온통 절벽을

이루게 되어 논과 밭도 없다니 사람 살기가 어려운 섬이긴 하다.

 

      반면에 가거도에는 후박厚朴 나무와

      귀한 약초들만이 자라고 기암절벽 따라

      청정해역에는 각종 어종 들이 풍부하여

 

      갯바위에는 1급 이상의 낚시꾼들만이 찾아와

      낚싯대로 멀리 시름을 날려버리기도 하고

      다가올 희망을 낚으려는 것 같기도 하다.

 

유일하게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대리마을은 가거도 항구를 품고

있으며 잔잔히 떠있는 배들 옆으로 왼쪽은 회룡산 자락 끝에서

떨어져 나온 녹섬이 촛대처럼 솟아있고 항구의 오른쪽으로는

장군봉과 똥개봉과 또 바위가 나란히 서 있다.

 

      그래. 이제 정초 초하룻날 아침이 아닌가.

      바닷바람과 물안개를 들이쉬며

      독실산에 오를 준비 체조를 하여보자

 

      깎아지른 절벽 우에 터져있는 길을 따라

      오르면서 처음으로 당제堂祭를 만나게 된다.

 

      멀지 않은 옛날 옛적에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 아무도 모르는 스님 한 분이

 

      긴 세월. 가거도 사람들과 애환을 같이하며

      기도를 올리던 당제堂祭를 만나게 되고

      이곳을 지나 넓은 후박厚朴 나무숲으로 들어가면

 

밤사이 달님이 독실산에 오르시며 비워 놓은 달뜬목 빈자리에

독실산 오르는 길과 해뜰목 가는 길의 표지판을 만나게 된다.

 

      그래. 새해의 초하룻날 아침녘이 아닌가.

      신연맞이 소원 빌러 해뜰목으로 가보자.

 

초록빛 이파리들이 하늘을 덮는 숲길에서 후박厚朴 나무는

진한 향기를 내뿜어 우리를 감싸주며 불어오는 바람에 싱싱한

이파리들이 모였다 흩어지는 사이사이로 멀리 바라보게 한다.

 

       우리가 오고 갈 뱃길도 길게 보여주면서

       그사이로 먼 태평양을 바라보게 만든다.

 

       우리는 후박나무 숲길을 걷는다.

       온 산은 후박나무 산이다.

 

이 많은 후박나무가 사람들에게 좋은 약이 된다니 그에서

내뿜는 향기가 우리를 감싸주며 상쾌한 마음으로 걷게 만든다.

 

       가거도의 아침 해는 먼 남해안에서 솟아오른단다.

       먼 남해안이 동쪽이 되어 있다고 한단다.

 

       그래. 해뜰목을 찾아서 가보자.

       해뜰목은 200여 메타의 높은 절벽 위에 있단다.

 

       배를 타고 가다가 커다란 거북 바윗등을

       올라타고 절벽을 기어오르면 안 될까.

 

       아니다. 조금 더 가다 고래가 물 품는 곳에서

       내뽑는 물기둥 타고 풀쩍 뛰어오르면 어떨까.

 

       아니다. 까마득히 깎아지른 높다란 절벽 위에

       후박나무도 서 있기 어려운 바람 속으로

       가거도의 해뜰목을 찾아가야만 한단다.

 

       바람이 세차 진다.

       해뜰목 쪽에서 찬바람이 휘몰아 몰려오며

       우리를 빨리 오라 손짓하면서도 거부하는 것 같다.

 

       깎아지른 절벽 위 널지 않은 공터 해뜰목은 연이어

       흔들어대는 찬바람에 후박나무도 서 있기 힘들어

       고목이 된 그 고목을 우리는 부여잡아야만 하였다.

 

가거도 사람들은 항상 물안개에 덥혀있는 200여 메타의 이 높은

절벽 위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면서 이곳을 해뜰목이라

이름을 붙여 한해의 소원을 빌러 올라간다고 한다.

 

      해뜰목 바로 앞에는 깎아지른 커다란 바위가

      해뜰목의 그 높이로 길게 늘어져 서있다.

      그사이에 커다란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이 두 바위 사이를 물둥개 절벽이라 부른다니 궁금하여 밑을

내려다보려니 한여름 날의 매미가 되어 후박나무 고목 등걸을

부둥켜안게 만들고 일어서기가 정말로 어렵기만 하였다.

 

      커다란 두 바위 사이로 거친 파도가 밀려들어 오며

      들어온 파도가 되돌아나가려 하는데

      또 새로운 파도가 들이치며 뒤따라 들어온다.

 

밀치고 들어오는 파도는 한 마리 커다란 고래 등처럼 부풀어

오르면서 들어오는 소리와 나가는 소리가 부딪치며 두 소리는

물기둥으로 높이 솟다가 수많은 포말로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저리 높고 긴 두 바위가 쌍벽을 이루며

      어떻게 직각으로 서 있게 되었을까.

 

      물둥개 절벽을 만들어 놓은 자연의 신비는

      바라보는 우리를 더 어지럽게 만든다.

 

      가거도 사람들은 솟아오르는 물기둥을 보며

      물둥개 절벽이라 이름을 지어놓은 것인가.

 

물둥개 절벽 아래에 있는 입구를 고래가 물 품는 곳이라 부른다니

이곳에서 내뿜는 소리는 고래의 그 소리보다 더 우렁찬 것 같다.

 

왼편으로 고개를 내밀어 천천히 눈동자를 옮겨가며 가파른 절벽을

따라가 보면 절벽 밑으로 까만 자갈돌들이 길게 깔려있다.

 

가거도 사람들은 이곳을 등불처럼 밝은 빛이 들어오는 곳이라 하여

소등炤燈이라 이름 지어놓고는 길이 없어 배를 타 고가야 한단다.

 

      이 까만 자갈밭은 해뜰목에 찾아온 강렬한 햇빛이

      이른 아침 붉은 햇살 줄기가 되어

 

      등불에 불을 켜듯이 수많은 자갈을 강하게 쪼아 데며

      수많은 자갈돌들을 황금빛으로 물들여 놓고 만다.

 

      황금빛으로 물든 몽돌들을 파도가 씻고 물러설 때면

      황금빛은 더욱 영롱하게 반짝이며 우리를 본다.

 

소등炤燈을 지나가자 이어지는 절벽 앞에 커다란 바위가 웅크리고

멀고 먼 고향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망향 바위를 만나게 된다.

 

      언젠가 부서진 배 조각에 얹혀

      듣기도 보지도 못한 섬에 밀려와

      후박나무와 물고기와 더불어 살며

 

      언제 어떻게 누구와 함께 어떤 배를 타고

      며칟날 떠나나 독실산을 오르내리며 연구하다

 

      어린 청년은 백발이 되었고

      알 수 없는 생각들로 고향을 바라보며

      바위만이 커져 망향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도 살아가며 풀지 못하는 일들에 아쉬움과 후회스러움이

남게 된다면 우리도 망향 바위와 같은 마음이 되는 것은 아닐까.

 

망향 바위를 지나면 수천수만 년 동안 독실산에서 흘러내려

오는 귀한 약물들이 아홉 굽이를 돌면서 절벽에 떨어지고

바다에 흘러 들어가는 이 계곡을 구절곡이라 부른단다.

 

      옛날 옛적 어느 때인가 어여쁜 선녀들이 맛있게 먹다

      버린 살구 씨앗들이 봄이 되면 앵화 꽃으로 피어난단다.

 

      앵화 꽃들이 구절곡 옆으로 흐드러지게 가득 피면서

      언젠가부터 구절곡에 앵화 골이 포개어 졌다고 한다.

 

앵화 꽃들은 절벽을 휘감아 돌며 가득 피워대다가 누런 살구로

주렁주렁 매달린다니 저 많은 살구를 힘에 겨운 어부들이 잠시

따다 먹으면 앞맨 바다에서 물고기도 많이 잡을 수 있으련만

 

      아무도 들어가 보지 못하는 구절곡이라 저 많은 살구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입맛을 다셔야 한다니 인간이 덤비지

      못하는 환경들이 가거도에는 많이도 있는 모양이다.

 

      구석기 시대에도 신석기 시대에도 지금까지도

      아무도 발을 들여놓지 못하였다는 절벽들

 

      절벽들은 서로 이어지며 울창한 후박나무숲에 덮이어

      숲속을 따라 회귀한 식물도 많이 자란다는데

      몸에 좋은 약초도 많이도 숨겨져 있다는데

      저 절벽들에는 하수 오도 있고 산삼도 있을 듯한데

 

      그 귀한 하수오는 찾았다고 하나

      수백 수천 년 된 천종산삼은 어디에 있을까.

 

저 긴 절벽은 수천수만 년 동안 사람이 드나들지 못하였다니

희귀한 천종산삼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웃는다.

 

      정월 초하루. 좋은 초하루

      긴 밧줄을 메고 타고 내려나. 가볼 거나.

      하수오도 캐보고 천종산삼도 만나볼거나.

      아서라. 정초부터 횡재를 바랄 손가.

 

해뜰목에 홀로 있을 때 내 마음도 홀로 가만히 멈춰있었을까.

그렇다. 숱한 세월의 시공을 넘어 다닌 몸과 마음은

새로운 희망을 맞이하려 이 먼 곳까지 찾아온 것이 아닐까.

 

      사방을 둘러보며 이제 다시

      나의 모습을 훑어보게 한다.

 

      즐거웠던 일. 절망하여 울었던 일.

      후회 속에서 간절히 바라던 소망들.

 

      내 생각은 깊어지며 새해 아침에

      너무 많은 걸 보며 많은 걸 생각하려 한다.

      버리자. 그래 모두 다 버리고 말자.

 

그래그래, 이제 해뜰목에서 세찬 바람에 지난 마음을

버리고 새로운 내일을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하여 보자

 

       그래서 가거도에 온 것이 아닌가.

       그래서 해뜰목에 오른 것이 아닌가.

 

       해뜰목은 깎아지른 물 둥개 절벽 위

       후박나무 고목들도 서있기 힘든 곳.

 

       물둥개 절벽 아래는 천 길 낭떠러지

       더 나아갈 수가 없단다.

 

우리의 마음도 끝까지 걸으며 더 나아갈 수 없는 곳까지 가보았고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고 새로운 희망을 만들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래. 이제 새로운 한 해를 만나보자.

      그렇다. 해뜰목을 찾아가는 숲길처럼 향기롭게

      새로운 희망을 찾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래. 좋은 마음으로 간다면 닫는 곳도 좋은 곳이 되겠지

이제부터라도 좋은 길로 가고자 해뜰목에 와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도 참아가며 묵묵히 걸어간다면

      이무기가 천년을 기다리다 승천하는 것처럼

      그렇게 긴 세월은 아니려니

 

      바라는 희망을 향하여 소원을 빌고자 해뜰목에

      꿇어앉아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래 간직하였던 마음을 세찬 바람에 날려 보내며

      새로운 기도를 하여보자.

      아름다운 기지개도 힘껏 펴보기도 하자.

 

가거도 사람들은 왜 이렇게 깎아지른 절벽 위에 해뜰목을 만들고

세찬 바람을 맞으며 막다른 이곳으로 소원을 빌러 오는 것일까.

 

       이곳 가거도 사람들은 시퍼런 바다 위에서

       거친 파도와 싸워가며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마냥 기다리는 여인도 있고

 

       그 무거운 그물을 펴고 당기면서 서로 도와야

       서로의 목숨을 지켜나갈 수 있다는 마음이

       합쳐져 이심전심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흐르는 피땀 속에서 서로 힘을 북돋아 주며

       오랜 세월 세대를 넘어가며 살아가고 있다니

 

      서로 도우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걸

      조상님 때부터 몸소 겪고 온 것이었나 보다.

 

      가거도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곳이려니

      해뜰목 막다른 곳에서 비는 그들의 소원은

      더욱 간절하였던 것이었으리라.

 

      그렇다. 우리도 여기 이 먼 곳까지 찾아와

      무릎을 꿇고 소원을 빌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해뜰목. 물 둥개 절벽으로부터 구절곡의 앵화골을 지나면서도

이처럼 높게 이어지는 절벽의 빈주암을 또 지나면 그리고

절벽들의 끝머리에 절벽에서 살아가는 대풍마을이 나온다.

 

       대풍마을로 이어지는 길고 긴 절벽은

       짙푸르게 깊으며 물살 또한 센 곳으로

       이곳을 앞맨 바다란 이름으로 지어

       언제나 물고기의 밭으로 생각하며 살아간단다.

 

       앞맨 바다는 태평양에서 몰려오는 물고기 떼들이

       거센 물결을 타고 지나가는 서해안의 길목이란다.

 

이 절벽들의 앞은 한없이 넓고 깊으며 물살도 세게 흘러

수많은 물고기 떼들이 떼를 지어 수월히 서해로 나아가도록

미리 알아서 걸림돌들을 없애준 것은 아닐는지 모르겠다.

 

      그래. 가게 하자.

      서해안으로 힘차게 가게 하자.

 

      그래. 그들도 희망을 품고

      먼 길을 찾아가 좋은 알을 낳아야 하지 않겠나.

      모두 다 좋은 정월 초하루가 아니겠냐.

 

가거도의 해뜰목에서 남해안에서 떠오르는 밝은 해를

보며 그리고 거센 바람 속에서 꿇어앉아 기도한다.

 

해뜰목을 내려오며 후박나무 숲속을 지나 만나는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정초의 덕담을 나누어보리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터는 혼자서 살아가는 곳일까.

아니다. 더불어 덕담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 보자.

 

     어기야디여 아하 어기야

     어기야디여 아하 어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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