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이야기

어머님이 놓는 돌

서 휴 2015. 9. 17. 19:31

 

어머님이 놓는

서길수 

 

 

    야, 너는 어떻게

    어머님이 우리들 동창회 비를 다 내게 만드나.

 

    미안해

    내가 지금 하늘에 있잖아

 

 

그래 맞아

내가 동창회장을 할 때야

내가 모 금융회사에 상무로 있을 때였어.

 

내가 다니는 회사로

나이 드신 점잖은 어머님 같은 분이 찾아왔었어.

나는 고객이신 줄 알고 내방으로 정중히 모셨지

 

봉투를 내놓으시는 거야

내 아들 동창회비라며

 

아니 동창회비라니요

우리 동창 노 길생이 지난해에 하늘로 갔다는 거야

그래서 아들대신 동창회 비를 가져왔다는 거였어.

 

참 어떻게 하여야할지 말을 할 수가 없었어.

나와 어머님은 눈물이 맺혔었지

 

                     야, 너는 어떻게

                     어머님이 우리들 동창회 비를 다 내게 만드나

 

 미안해

                      내가 지금 하늘에 있잖아

  

그때 우리는 고교졸업 40회 기념식을 성대히 개최하자며

모두에게 연락을 띄우며 바빴었지

그게 벌써 십 년 전일이야

 

요즘 우리 동창 카페에는

내년에 50회 졸업기념 식을 하자며 준비위원을 구성하고

바쁘게들 움직이지만

 

나는 지방에 있어

어느 날 카페를 들여 보다 깜짝 놀랐어.

 

그 어머님

노 길생의 어머님께서

동창회비에 쓰라며 일천만원을 보내시겠다는 거야

 

        어머니 무리하지마세요

        아니야, 네 대신 동창 회비를 내는 거야

        네가 동창회에 나가는 거지

 

        그래도 어머님

        나는 이미 하늘에 와 있잖아요.

        동창 회비를 낸다면 어머님 마음만 아파요

 

        너는 몸이 아파

        다른 친구들과 같이 동창회에 나가질 못했어.

 

        아픈 네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내 마음이 미어졌던 거야

 

        네가 떠나고 난 다음부터

        나는 네 마음의 동창 회비를 내기로 하였어.

 

        내가 무슨 돈이 있니

        노령연금으로 10년간 적금을 부었지.

 

        내 나이가 벌써 90이 넘어가니

        널 낳은 지도 70년이 되가는 구나

 

        유난히 엄마를 따르던 내 아들 길 생

        나는 오늘 적금을 털어 동창회에 보낸다.

 

어머님은 안양의 보통의 아파트에 홀로 사셨어요.

한사코 오지 말라며 거절하시는걸.

우리 동창들 십여 명이 찾아갔지요.

 

아주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있는 모습에서

노 길생의 학교 다닐 때의 모습과 마음가짐이

어머님으로 부터 비롯되었음을 알게 하였습니다.

 

 어머님 절 받으시지요.

       어머님, 우리 모두가 어머님의 아들입니다

 

       그래 괜찮아요.

       어쩜이리. 모두 다 잘생겼지

       자꾸 눈물이 날려고 해

 

       어머님

       우리 모두가 아들 노릇을 하겠습니다.

 

       그래 괜찮아요. 

       세월이 지나니 하얀 머리가 까맣게 되었어.

       염색한 게 아니야

 

       이리들 와 봐요

       길생이 가 쓰던 방이야

 

       걸려있는 사진들

       꽂혀있는 책들

       길생이 가 쓰던 물건들이야

  

천주님께 기도 올리시며 사시는 맑은 마음이

아름다움을 지니게 하였을까

 

나이를 초월하신 밝고도 아름다우신 모습이

우리 모두의 어머님이기에 과분한 분이셨다 

 

        아름다운 우리들의 어머님

        이제는 아들에 대한 을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사세요.

 

        차마 우리는 이 말을 하지 못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체

        어머님의 배웅을 받으며 돌아선다.

 

        그리고 다시 찾아갔다

        식사를 대접하고자 모시려하였으나

        손수 준비하신 음식에 대접을 받고 말았다

 

        작은 선물을 드리며

        내년 50회 기념식에 꼭 모시러 오겠습니다.

 

        우리는 총총 걸음으로 나서며

        어머님의 얼굴을 한참이나 보았다

 

2013.12. .

총동창회에 보고하여 감사패를 만들어

받으려 하지 않으심에도 드렸으며

 

어머님이 주신 동창 회비를 명분 있고

보람 있는 일에 쓰자며 의논들을 하였지요.

 

어머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자식 동창들이라고 하나 70줄 나이이니

누구아빠하고 부를 테니 이름들을 가르쳐줘요.

 

다음에 찾아뵈니

우리를 맞으시며 OO아빠 △△아빠로

십여 명의 이름을 하나도 틀리시지 않으시며

다 부르심에 우리는 놀라고 말았다

   

아니 어머님

어떻게 이름들을 다 외우셨어요.

  

뭘, 까만 머리가 다시 나듯

기억력이 조금씩 살아나나 바

 

멀리 나갔다 돌아온 아들을 반기는 양 즐거워하시며

오랜만에 만난 아들과 다정히 이야기 나누는 듯

 

옛날이야기와 더불어 시도 읊으시고 노래도 부르시며

눈물 빛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천주님을 믿으시며

가슴속에 얼마나 십자가를 그렸을까

가슴속의 십자가는 멍이 들다가 멍에가 되어

 

오랜 기도 속에

이제는 그마져 다 사그라진 가슴이 되어

우리를 끌어안으며 꼭 품고 계시었다.

   

 2014.10.15.

일 년이지나 어머님께서는 1천만 원을 더 쾌척하시어

일금 2천만 원을 동창회 기금에 보태셨습니다.

 

어머님의 정성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모으게 하시어

엄숙하고 가슴 뭉클한 가운데

50회 졸업 기념식이 성대하게 치러졌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머님의 만수무강을 빌며

아름답게 보답하고자 모두 일어나 큰절을 올렸습니다.

 

 2015.08. .

노길생 이 친구는

태어날 때 가지고나온 선천적 심장병이 있었지요.

    

심장은 간과 폐와 더불어

우리의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중요한 장기이며

 

심장은 간에서 영양분을 받고 폐에서 산소를 받아

피를 통하여 우리 몸에 보내주는 역할을 하지요.

 

심장에 이상이 생기면

온몸에 피를 잘 돌게 하질 못하여

몸의 모든 기관이 어려움을 겪게 되며

   

특히 폐의 활동을 돕지 못하여 숨쉬기가 힘들거나

가슴이 조여 오며 빈혈 등으로 쓰러지기도 하지요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선천적 심장병

 

정성을 드려

내 피와 내 살을 나누어 주었건만

몹쓸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나다니

 

아들아

내 잘못이야

  

너의 운명이라 말할 수는 없어

다 내 잘못이야

   

이 고통을 네가 어이 감당하느냐

이 죄를 내가 어찌 씻어야 하느냐

   

네가 태어나던 때가 1945년 해방되든 해야

그때는 수술은 생각할 수도 없었단다.

약도 제대로 있지도 않았단다.

  

나는 성당에 나가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리며 매달렸지

 

다행히 견디며 자라며 학교에 다니고

토목학과를 나와 큰 회사에 취직도 하였었지

   

그러나 왼쪽 가슴이 답답하고

때로는 바늘로 콕콕 찌르듯이 아프다가

      쓰러지기도 하여

 

안정을 찾느라 직장은 쉬게 되고

조바심 속에 세월은 자꾸 흘러갔지

 

길생아 그래

너를 따르던 신붓감도 있었어.

참하고 예쁘기도 하였어.

   

찾아와 매달리는 사랑을

너는 화를 내며 자꾸 쫒아버렸지

 

말없이 집을 나가

먼 산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어.

 

먼 산을 그냥 바라보고 있지만

가슴속엔 얼마나 눈물이 흐르고 있었을까

 

천주님 내 아들을 건강하게 하여주소서.

천주님 저 아리따운 처자와 같이

오순도순 살아가게 하여 주소서

   

말을 해서 무엇 하니

운다고 마음이 풀리니

 

그러나 가슴속엔

한없는 눈물이 흐르고 흐른단다.

 

길생

오늘 네 친구들을 부른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

2015년 8월 5일, 화요일

 

안양 변두리 20여 평 아파트

큰 재산도 없이 조촐하게 홀로 사시는

 

향년 92세

발끝치기 운동을 하고 계시는 우리들의 어머님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저 형준 애빕니다.

 

언제 오시려나. 한시가 바빠

노인네 건강은 믿을 게 못 돼요.

밤새 안녕이거든.

 

와 줘서 고마워요.

이 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 돈 다 채우기 전에 명줄을 놓을까 바

노심초사하며 이제 겨우 마쳤다네.

이제야 긴장이 풀리는구먼.

 

약속도 빚이라고

자네와 약속하지 않았더라면 포기할 뻔 하였어.

 

늙은이 말이라 믿기지 않았을 텐데

도와줘서 고마워요.

 

몸도 불편하신데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이 더위 속을 다니시다니요

 

2015.08.13.

어머님 모시고 다니던 모교를 찾아갔습니다.

 

      길생

      오늘 네 친구들을 불렀다

       내 마지막 가진 돈 1억 원을 학교에 보내련다.

 

       네 비록 하늘로 갔으나

 이 세상에 너를 살려두고자

 네 이름인 노길생 장학금을 만든다.

  

 이레야 내 마음에서 너를 살려낼 수가 있어

 이레야 너를 향한 내 마음이 풀릴 수가 있어

 

 사랑하는 네 이름이 영원하도록

 사랑받는 네 이름이 영원히 살아있도록

 사랑하는 내 아들을 살려내는 거야

 

 네 이름인 노길생 장학금을 만든다.

 

       내가 네 학교에다가 장학금을 내었다.

 장학금을 냈으니깐

 내가 평생을 소원했던 내 소원을 풀었다.

 

 잘 가거라.

 엄마도 바로 갈 거야. 이제

 알았지.

 

먼저 떠나보낸 아들을 가슴에 묻어둔 채 살아온

애달픈 어머니의 마음이 노길생 장학금을 만들었습니다.

 

장영자 여사님의 아들 사랑은

아들 이름으로 노길생 장학회를 탄생 시켰습니다.

 

2015.09.14.

다들 왔네.

차가 몇 대야. 됐구먼.

 

가자고

북한산자락 송추 가막골 갈빗집으로

 

다른 뜻은 없어요.

불쌍하게 먼저 간 길생이 몫으로

내가 죽기 전에 장학금을 내겠다는 결심을 하였지

 

언제 얼마를 기부할지 정하지 못하고

절약 절약하며 열심히 모으며 지내왔어

 

자식들도 내 뜻을 알고 있지만

일부러 알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부모 마음과 형제간 사이는 좀 다른 것 같아

다들 살기 힘들잖아

 

그동안 고생들 하였어.

갈비를 마음껏 푸짐하게 들어요.

소문 내지 말고 조용히들 하여주면 좋겠어.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일산 호수공원을 모시고 산책하였습니다.

 

영감이 육 년 전에 돌아가셨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도 마음고생을 많이 하였어.

 

부인이 잘못하는 일이 아무리 생겨도

가슴에 못 박는 막말은 절대 하면 안 돼요

어머님은 가슴을 쓰다듬으며 우리에게 교훈을 주신다.

 

저 세상에 먼저 간 길생

내 큰아들을 위해 남은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해요

 

이제 우리도 헤어질 때가 된 것 같아

앞으로 나를 찾지 말아줘

오늘이 마지막 만남이다.

 

       멋진 어머님

       이제 할일을 다 하였으니

       이제 우리도 헤어지자는 말씀을 들으며

 

       아들에 대한 무거운

       멍에가 된 십자가를 이제 내려놓으시는 듯

       홀가분한 어머님의 얼굴빛을 바라볼 수 있었다.

 

YTN 뉴스 홈 >사회 Posted : 2015-08-18 17:00

[영상] "가슴에 묻어 둔 내 아들의 이름으로"

  

서울 북아현동 한성고등학교에

돈뭉치 들고 나타난 아흔두 살 할머니

과연 무슨 사연일까요

  

13년 전 선천적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들

   

넉넉지 못했던 형편

남들처럼 결혼생활 한번 누려보지 못한 채

홀연히 떠나버린 아들이 못내 한스러웠던 어머니

 

그렇게 10여년이 흘러

아들의 모교에 찾아간 92세의 노모는

가슴에 묻은 아들의 이름으로 1억 원을 기부합니다.

   

내가 네 학교에다가 장학금을 내었다.

장학금을 냈으니깐

내가 평생을 소원했던 내 소원을 풀었다.

 

잘 가거라.

엄마도 바로 갈 거야. 이제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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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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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졸업 40주년 기념행사를 치룬 송평종 회장과 임원진들

이제 50주년 기념행사를 치룬 소광 회장과 임원진들이

그간에 어머님을 찾아뵙거나 만나 담소를 나누며

 

또한

정성껏 침을 놔 드리거나 크고 작은 선물이라도 드린 동창들이

올린 글과 사진들에 마음을 아울러 쓴 글임을 밝히며

 

이 글의 부족하고 미약한 부분을 말씀하여주시면

첨가하거나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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