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불인생
先拂人生
서 휴
아주머니 오셨어요.
가계는 언제 오픈합니까.
작은 가계지만
이것저것 준비할게 많네요.
이번엔 어떻게 오셨어요.
예. 방 좀 구하려고요
방 몇 개짜리요
아니 둘이면 좋겠어요.
방 두 개짜리라.
얼마나 준비되시지요.
5천만 원 정도짜리 없겠어요.
이 동네는 좀 비싸 그 돈으로는
반지하도 어려운 금액이네요
지금 나가는 아주머니는 누구지
아니. 김 회장님이 다 보셨어요.
참한 아주머니 같은데
남편은 어떡하고 혼자 다니지
자식들하고 살려고 무던히 애를 써요
남편은 직장 생활만 하여
사회물정을 모르나 봐요.
먹고 살겠다 하여 저 옆 가계를 싸게
계약시켜 주었는데
경험도 없이 작은 식당을 한다는데
월세月貰나 잘 낼지 걱정이지요.
남편은 놀고 있는데 돈이 적으면
변두리에서 어떻게 해보지
이 비싼 동네를 왜 들어오는지
이해가 안 가요.
그런데. 저 아주머니 용기가 대단해요.
기氣가 살아있어요
각오覺悟가 대단한 것 같아요
작은 돈으로 비싼 동네에 이사를 온다.
남편이 백수白手인데도 기氣가 살아있다
적은 돈으로 비싼 동네에서
무언가 이루려고 한다.
으 음, 일리가 있어
어려울수록 용기勇氣가 있어야지
저 아주머니 남편과 같이
나하고 만나게 해줘
뭐하시게요.
글쎄. 사람 보며 이야기함세.
인생유전人生流轉
사람은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일까
아니야,
넓은 세상을 헤엄쳐가며 사는 것이야
왕사장
예.
자네 부친 왕회장님은
참 훌륭한 분이셨어.
지금도 왕 복덕방이지만
얻으려는 사람 얼굴을 보며
방을 구해 주었었지
나도 실패하여
아주 어려운 때가 있었어.
변두리에 나가면 방3개를
얻을 수 있는데 이동내로 들어온 거야
방 두개에 아이들과 함께 부모님을
모시려니 말 못할 고생을 하였지
아버님은 목수木手 일을 하러
공사工事 판에 나가시고
집사람도 식당食堂에서 일을 했었어.
나만 농땡이야
나는 새벽 네 시 반이면 일어나
대빗자루로 온 동네를 쓸었지
쓸고 나면 일곱 시야
집사람과 밥하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설거지하고
부모님 나가신 후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어 어슬렁거리다
동내의 굳은 일을 도맡아하였지
별일이 참 많았어.
그렇게 3년이 지나가니
자네부친 왕 회장님이
일거리를 만들어 주시 더만
목수木手일 하시는 아버님과 같이
외상外上으로 빈터에
집을 짓기 시작한 거야
부자富者라 할 순 없지만
오늘날 나를 있게 한 거지.
알아요. 부친父親이 돌아가셨을 적에
부조금扶助金을 엄청 냈었지요.
장례葬禮를 치르고도
생활에 보탬이 많이 되었으니까요
동네가 많이 변하여
대빗자루로 쓸 곳도 별로 없지만
지금도 일찍 일어나
내 집 앞은 쓸고 있지
저 아주머니 남편이
세상물정을 알 때까지
내대신 골목을 쓸게 하면 어떨까
새벽에 일어날 사람인가 잘 살펴보게
古话说, 有志者事竟成
gǔhuà shuì, yǒuzhìzhě shì jìng chéng
옛 말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
읽어보고 써보면
마음에 공감共感이가며 그럴 듯하다
그러나 고생苦生할 때
그 뜻이 가슴에 와 닿겠는가.
열심히 일할 일거리가 있기나 하나
어떻게 살아나가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그래도 진인사대천명은 盡人事待天命은
어려울수록 그렇게 하여야지 하며
마음속에 되새기면서 살아가는
희망希望이 아닐까
김 회장님 오늘 토요일이지요.
그래 토요일 맞아
왜. 그러나
약속 없으시면
저의 왕 복덕방으로 나오시지요.
그 아주머니가 남편하고 올 겁니다.
아니 최 CEO 여긴 웬일인가
아니 김 회장님 여긴 어떻게
아니 다들 아시는 사이인가 봐요
이쪽은 그 아주머니와 남편분이지요
안녕하세요.
여보게, 최 CEO
그러면 이 남편분과 최 CEO가
서로 아는 사이인가
예, 죽마고우 竹馬故友입니다
최 CEO. 자네는 연봉年俸이 많은데
친구를 좀 도와주지
예, 좀 더 쓰라 해도
1억 이상은 안 쓰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와 봤지요
아주머니 왜 그래요
비록 망하여 여기에 왔지만
빚을 많이 질 수가 없어요.
갚을 것도 생각해야지요.
으음 그래요
좋은 친구親舊 들이구먼.
아주머니 성공成功 하여야지요.
왕사장. 내 가네
이따 식사라도 같이할까
예, 회장님
이 추어탕鰍魚湯 집은 항상 자리가 없어
처음엔 열 평도 안 되었는데
이제는 자기 건물建物이 되었지요.
왕회장님이 말씀하시어
나도 돈을 좀 빌려줬었지
참 성실誠實한 사람들이야.
오랜만에 튀김도 먹고
탕湯에 소주燒酒도 한잔하지
예, 회장님
회장님. 그 최 CEO 있지요
연봉年俸이 많은가 봐요
96평 빌라를 3년간 2억에
깔세(삭을세)로 살고 있어요.
3억을 한꺼번에 선불先拂로 냈지요.
나도 알고 있네.
그 친구 연봉年俸이 23억이야
그 세貰를 제가 놨거든요
이삿짐이 없어요.
달랑 큰 가방 둘뿐이고
집에 관계되는 모든 우편물郵便物은
집주인에게 직접가게하고
신경神經 쓸 일은 하나도 없게 하라는
조건條件이었지요.
심지어 신문新聞도 보질 않아요.
신문 값 내는 게 번거롭다며
아이하나와 셋이 사는데
무슨 96평 빌라에 사냐며
이사한 후 집에 가보니
온통 자동차 전시장이지요.
세계자동차 모형이 다모인 것 같아요.
허어. 최 CEO는 자동차 광인 모양이지.
그렇게 열심히 하니 오늘이 있지.
조건 좋고 값싼 부동산을 사놓으면
돈 번 다고해도
돈을 안 벌겠다고 해요
최 CEO는 재산에 대한
욕심欲心이 없는 사람 같아
그냥 살아도 연봉年俸이 쌓이잖아
최 CEO도 고생을 많이 하였지
대학입학시험에 떨어져 방황하다
어렵게 영국英國으로 갔지
유망有望한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어
돌아온 거야
그 사람은
자동차 디자인 밖에는 생각을 안 해
아.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어쩐지 우리나라 차들의 모양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최 CEO는 외상이나 빚을 싫어해
남의 신세도 지지 않고
세상일에 신경神經 쓰는 게 싫다며
모든 걸 선불先拂을 내며 살고 있지
그래서 우리는 최 CEO를
선불인생先拂人生이라 부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