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이야기

마지막 밤을

서 휴 2014. 6. 27. 14:40

마지막 밤을

서 휴

 

 

형님 저를 알아보실 수 있겠습니까

소대장님께 소대원인 제가

형님이라 불렀었지요.

 

설악산 전투에서 같이 싸웠던

소대원 정ㅇㅇ입니다

 

정전협정을 맺기 전이라

우리는 한 뼘이라도 더 국토를 차지하려

괴뢰군들과 치열하게 싸웠지요

 

53년도 7월 달까지의 일이니

벌써 60여년이 흘렀습니다.

 

전투에서 소대원 반 이상이 죽어나가고

살아있는 우리도 세월까지 흘러

이제 몇이나 남았겠습니까.

 

형님께서는 이제 팔십 중반이 되가시지요.

세살이 어렸으니

저도 팔십이 넘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뒤늦게 소식을 올리는 바는

 

소대장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였던

여인이 있었다는 것을

 

그 여인도 소대장님을 잊지 못하여

애타하는 심정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참 우연이라면 우연이지요.

그 여인은 바로 저의 아내입니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아내를 위하여

                 첫사랑을 만나도록 주선하는

                 너그러운 남편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남편의 마음을 헤아려

                 부인께서 남편의 마지막 하룻밤을


     첫사랑의 여인에게

     양보하였다는 애틋한 이야기

 

옛날처럼 혜야라 불러도 괜찮을까

그럼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너무도 많은 세월이 흘렀어.

그래도 옛 모습이 많이 남아있구먼

 

안녕이라는 인사를 차마 못 하겠네요

그사이 많은 세월이 너무 흘렀어요.

 

우리는 사랑을 하였었어.

야는 아름다웠지

 

나는 혜惠야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와

너무 사랑하였든 거야

 

나는 혜야를 보면 즐거웠었어.

즐거움을 보면서 혜야를 떠났어.

 

그렇게 사랑하였는데 왜 떠났어요.

떠나라고 하였잖아

 

언제 예.

내가 그런 말을 할리 없어.

 

아니야.

거북하면 언제라도 떠나라고 하였었어.

 

나는 그런 말을 한 일이 없어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면

 

나는 어떻게 해

나는 하지 않았는데

 

울지 마.

울어도 다 지나간 이야기야

 

나도 울고 있어

운다고 그 시절이 다시 올 리 없잖아

 

울지 마. 이제야 손을 잡게 되다니

울지 마. 이제야 만나게 되다니

 

              형님은 저의 아내와 같은

              함흥 출신이시지요.

 

              형님은 함흥사범학교에 다니시고

              저의 아내는 형님 학교와 가까운

 

              영생여고보永生女子高等普通學校

              다녔다면요.

 

              함흥의 평전平田백화점에 들어가면

              있었다 하지요

 

              책을 고르다 만났다면서요.

              그때 첫눈에 첫사랑이 싹텄나 봐요

 

              남의 눈에 뜨이지 않으려

              조심조심 하면서

 

              반룡산 盤龍山의 봉수대烽燧臺

              오르기도

 

              태조 이성계님이 태어난

              준원전濬源殿으로 구경을 다녔다면서요.

 

              그래요. 그때는 젊은 남녀가 만나면

        남녀 만면

             바로 소문이 나는 때였지요.

 

              더구나 6.25가 터지면서

              위험 속에 숨어 다니며

              사랑할수 있었다니


              사랑하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듯합니다.

 

              이제 돌이켜보면

              6.25를 전후한 그 혼란한 시절에

 

              잠시 만난 인연이

              즐겁고 다움만을 간직한 채

 

              평생을 가며 애타게 할 줄은

              몰랐었겠지

              참으로 힘겹고 어려운 인연인 모양입니다

             

 

    총알이 팔을 뚫고나갔지

    자칫하면 팔이 부러질 뻔 하였어.

    뼈는 다치지 않아 많이 꿰매었었어.

 

    불과 두 달간이지만

    혜야의 치료는 참 정성스러웠어.

 

    총상을 입었으니

    후방으로 갈 수 있었지만

 

    뜻밖에 만난 혜야를 두고

    나만 떠날 수가 없었어.

 

    나는 야전 병원에서 나오자

    다시 전선에 배치되었지

 

    설악산 맨 끝의 고미성리. 사비리.

    강원도 고성군 수동면이라는 곳이야

 

    동부전선

    지금의 휴전선이 되어있는 곳이지

 

    그곳에서 곧바로 전투를 한 거야

    밤낮이 없었어.

    주먹밥 먹을 시간도 없이 싸웠어.

 

    총알도 포탄도 비오는 속에

    개미떼처럼 다가오는

    괴뢰군을 향하여 총질을 하다

    처참한 육박전도하였지

 

    밀고 당기고

    한 뼘이라도 더 점령하려고

    치열하게 싸웠어

 

    국군도 괴뢰군도 많이 죽어나갔어

    불과 삼개월간의 설악산 전투는

    정말 치열했었어.

 

    조금만 더.

    40키로 만 더 밀어붙였어도

    금강산이 우리 손에 들어왔을 거야

 

    싸우는 자리 서로 차지하는

    그 자리가 휴전선이 된 것이지

 

    그러니 그렇게 치열히 싸우다가

    휴전을 맞게 된 거야

 

    1953727

    정전협정이 이루어졌으니까


     형님은 1.4 후퇴 때

  함흥부두에서 배를 타려하니

 

   군인들이 청년들을 모두 불러 모으며

   군대에 지원하겠다는 사람은

   튼튼한 군함을 타고갈 수 있고

 

  지원하지 않는 사람은

  민간인 목선을 타고가라 하니


  가뜩이나 배가 부족한 터라

  군에 지원하였다면서요.

 

  저의 아내의 오빠가

  괴뢰군에 가지 않으려 숨어 다니다가

  잡히어 뭇매를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부모님이 너라도 남한으로 가라고하여

  저의 아내도 배를 타려다

 

  군함을 태워주겠다 하여

  간호원看護員이 되었답니다.

 

  그래도 괴뢰군처럼 강압이 아니고

  우리는 지원이지요.

 

  물론 나중에는 다 태워주었지만

  그때는 군인들이 턱없이 부족할 때니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함흥사범 졸업반으로 장교가 된 형님은

   야전병원에서 저의 아내를

   우연히 다시 만났다면서요.

 

   저의 아내의 비밀 일기장을 보면

   보는 순간 끌어안을 만도한데

 

   형님은 손과 팔만을

   꽉 잡았다면서요.

 

   끌어안는 게 익숙지 않을 때였으니

   제 아내도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적어놓았습니다

 

   뿔뿔이 흩어진 고향사람을

   전쟁터에서 만나다니요

 

   더구나 사랑하던 사람을 만나

   어 울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참으로 감격스러운 만남이었겠습니다.

 

     참 무더운 여름이었어.

     전투를 하지 않는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았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 잠만 잤어.

 

     전쟁이 멈추니 부대를 정비하고

     새로운 부대로 발령을 받았지

     몇 일간 외출을 허락받은 거나 같았어.

 

     이제 만나러가야지

     배낭에 넣어둔 쪽지를

     아무리 찾아도 없었어.

 

     그제야 전투 중에 없어진걸

     알게 되었지

 

     꺼내본다며 주머니에 넣었다가 

     전투 중에 빠져나간 거야

 

     아마도 생사를 건

     육박전을 너무 심하게 하였나 봐

 

     다 지나간 일이니

     쉽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정말 처참했었어.

     서로 간에 너무 많이 죽어나갔지

 

     그래도 혜야가 있으니

     부푼 꿈을 꾸며 야전병원에 달려갔지

 

     이리저리 아무리 찾아도 없는 거야

     간호원看護員을 그만두고 떠났다는 거야

 

     하기야 그래.

     혜야는 여군이 아니었었어.

     그냥 간호원看護員이었어

 

     그리고 너무 길었어.

     그동안에 사 개월이나 지나갔으니

 

그래요.

전쟁이 끝난다니 기다리다가

대구에 있는 외갓집을 찾아갔지요.

 

외갓집 주소는 적어드렸잖아요.

그렇지 쪽지가 있었어.

 

배낭에 숨겨 논 줄 알았는데

전투 중에 없어진 거야

 

읽어 본 기억을 더듬으며

많이도 찾아다녔지

 

주소도 정확히 모르지

외삼촌 이름도 모르지

 

혹시 대구지역의 병원에 있을까

병원마다 찾아다니며

헛고생을 많이 하였지

 

그래요.

저도 망설이며 기다리다

야전병원을 떠나며 편지를 남겨놨지요

 

. 최 간호원看護員을 못 만났어요.

그 최 간호 원 아시잖아요.

 

며칠 전에 떠났데.

전쟁이 끝났다고 다들 떠난 거야

 

          뻔히 알 만한 사람도

          막상 찾으려면 쉽지 않은가 봐요

          형님을 찾느라 많이 쫒아 다녔지요.

 

          고생을 고생이라 생각 안하며

          만나게 하여야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형님과 아내의 한을 풀어주어야 하지요.

 

          대위로 예편하여 민간인이 된

          형님을 찾기가 참 어려웠지요.

 

          지금은 주민등록이 잘 정리되어 있으나

          그때는 컴퓨터가 없는 시절이었지요.


          알 만한 사람을 찾아다니다가 어려워

          육군본부로 경찰서로 많이 쫒아 다녔지요.

 

          이렇게 찾아다니며 도

          아내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제 아내의 비밀 노트에

          이런구절이 나옵니다.

 

       나는 내 남편을 사랑하게 되었다

       남편의 성실한 정성에

       정말로 사랑하게 되었다.

 

       아이들도 잘 크고

       그러면서도 옛날의 그분이

       마음 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첫 사랑이어서 일까.

       그분과의 사연이 많아서일까

 

       전쟁터에서 살아나있을까

       안 찾아올 사람이 아니야

       죽었기에 찾아오지 않지

 

       문득문득 떠오르는 모습에

       눈물 젓기도 한다.

 

       아니면 북에 계신 부모님처럼

       고향생각이 나서일까

       왜 그리 보고 싶은지 알 수가 없다

 

  외삼촌의 이름도 번지수도 모르지

  적어준 쪽지의 기억을 더듬으며

 

  대구 ㅇㅇ동을

  이름만 들이밀며 찾아다닌 거야

 

  동사무소에 특별히 부탁하여

  고향과 나이와 성명을 가르쳐 주며

  혜자는 다 찾았지    

  그 많은 사람 중에 없었어.

 

  양양에서 대구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하루가 걸리다 시피하지요

 

어쩌면 외삼촌 이름을 적어드리지 않았을까

편지에는 자세히 적어놨었는데요

 

호적에는 혜자가 아니라 

자로 올라가있어요

 

최 간호원看護員에 맡기지 말고

좀 더 기다렸어야하는데

마음에 걸리는 데로 되고 말았네요.

 

ㅇㅇ사단으로 편지도 했었어요.

씨 이름이 없다더군요.

 

읽어 본 기억을 더듬으며

많이도 찾아다녔지

 

내 아둔한 기억력을

얼마나 탓하였는지 모르겠어.

 

요즘 젊은이들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사귀여야 하는데

 

우리 때는 말보다

얼굴 보는 게 더 좋았던 거 같았어.

 

그때에 외삼촌 이름이라도 알아둘걸.

외삼촌 이름이라도 물어봤어야하는데

 

혜야는 학교 선생이 되고 싶다고 하였지

혹시나 하여 국민 학교도 모두 수소문 했었어.

 

저는 다시 학교에 다녔지요

피난민 학생들이 모이는 임시학교에 나갔어요.

 

외삼촌은 서문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고요.

하루 종일 점방을 봐주고 밤에는 학교에 갔지요.

 

길을 걷다가 똑같은 군인을 보고

놀라기도 하였지요.

 

군부대에 아는 사람이 있어

물어보기도 하였어요.

 

            안 찾아올 수가 있나

            참으로 무심한 사람이지

 

            전쟁터에서 돌아가셨나.

            그래 그럴 거야

 

        혼란한 시기라 뭐하나 알아보기가 쉽지를 않다

        왜 소식이 없을까

        있던 부대에도 편지를 띄웠는데 없다고 한다.

 

        고향사람에게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다

        살아만 있으면 찾아올 텐데 죽었을까

 

             정전협정 전에 많은 군인들이 죽어나갔지

             야전병원에 부상자며 시체로 넘쳤었어.

             그때에도 그 속에 없었어.

 

             하기야 시체들을 다 수습할 수 없었으니

             설악산 어느 산야에 묻혀있나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우리의 인연은 왜 이리 힘들까

             죽은 걸로 알고 잊어야하나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일가친척 없는 그분이 살아만 있으면 꼭 찾아오지

이런 생각도 점점 지쳐가게 되더군요.

사오년이 금방 흘러갔지요.

 

그러다가 고향 분을 만나 소식을 들었지요.

참 우연이었어요.

 

우리가 처음 만나고할 때 소문낸다고 하며

여러 번 빵을 뺏어먹은 짓궂은 친구 분 있지요

 

친구 분을 길가다 부딪쳤지요.

친구 분이 원래 장난기가 많았잖아요.

 

친구 분은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었어요.

너무나 반가웠어요.

 

묻기도 전에

이 결혼도 안하고 많이 찾고 있다며

 

양양 근처의 ㅇㅇ사단으로

빨리 찾아가라는 것이 엇어요.

 

입이 다물어지지 않더군요.

아무 말을 못하는 나는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어요.

 

한참을 지나자 친구 분은

내 몸을 훑어보는 것이었지요.

참으로 부끄러웠어요.

 

     나는 짓궂은 친구 분에 깜짝 놀랐다

     멀리서본 친구 분은

     내 뒤에 와 심하게 툭 친 것이다

 

     어 멋 어 머

     나는 이 소리밖에 안 나왔다

     우리는 근처 다방에 들어갔다.

 

     친구 분은 호기심이 발동한 듯

     피난 나오는 이야기며

 

     고향이야기와 이것저것

     마구 이야기하며 물어 데는 것이다

 

     잠간만 하더니.

     곧바로 친구를 만났냐며

     몰아치는 것이었다.

 

     아니 살아있다니

     그렇게 나를 찾고 있었다니

 

     말문이 막히며

     기다렸다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고향사람들과

     이리저리 찾아 만나는데

 

     우리는 왜 이제껏 못 만났을까

     참으로 기구한 인연이다

 

친구로부터 이야기를 다 들었어.

대구를 그렇게 찾아다녔는데

 

왜 못 만났을까

많은 생각이 오고갔지

 

그래도 건강히 살아있다니

다행이라 생각했어.

 

김일성이가 6.25를 일으켜

얼마나 많이 죽어나갔어

 

어디 군인들뿐이야

굶주리고 병들고 다치고

많은 민간인들도 죽어나갔지

고생은 얼마나 많이 했었고

 

외삼촌 존함을 좀 가르쳐줘

이제 와서 뭐하게요

한이 맺혀서 그래

 

      나는 놀랐지요.

      내가 너무 좋아해 형님이라 부르던

      소대장님의 애인이

      어떻게 제 아내가 될 수 있었을까요

 

      집사람과 저 둘이는 동갑네기지요

      약간의 근심을 가지고 있는 듯한

      모습이 저를 끌어당겼지요

 

      아무래도 마음을 열어주지 않아

      저도 마음 고생을 많이 하였지요.

 

      가슴 깊은 곳에

      형님이 계셔서인가 봅니다.

 

친구로부터 주소를 알게 되었지

대구에 갔었어.

 

야 집 근처에

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여관

삼층 방에 들어 창문으로 보는 거야.

 

사복차림에 모자를 눌러쓰고

가까이 가보기도 하였지.

 

갓난아기를 업고

남편과 함께 집에 들어가는 걸 보았어.

 

한번이라도 만나야할 것 아닌가하고

그 다음날도 가까이 갔었지

 

야가 남편과 같이

시장바구닐 들고 오는데

넘어질 뻔 하였어.

 

아니 왜요

내가 너무 놀란 거야.

 

아무리 봐도 소대원 정ㅇㅇ이야

이럴 수가

저 친구는 형님 형님하며

너무 따르던 소대원인대

 

나는 혜야를 만나는 것 보다

풀 수없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

 

어찌된 일일까.

어떻게 된 일일까.

 

저 친구도 혜야

서로 알 턱이 없을 텐데

 

맘씨 좋고 의리 강한 정ㅇㅇ

나를 알면서도 내 이름을 숨기며

결혼한 걸까

 

아무리 집어 봐도 알 수가 없었어.

마음을 풀 수가 없었어.

 

쇠주(소주)를 사들고

여관마당에 앉아 마셨지

 

혼자서 고독하게 한참이나

쇠주를 마시고 있으니

 

ㅇㅇ이 결혼하게 된 사연을

여관주인 아주머니가

다가와 이야기하여주더군

 

혜야는 시집을 안가겠다고

많이 버텼다며

 

   말수가 적은 아내라

   함흥이 고향이라는 것만 알고

 

   저의 부친과 아내의 외삼촌이

   좋다하여 결혼하게 되었지요.

 

   형님, 아내는 가계부를

   매일 꼬박꼬박 쓰고 있었습니다.

 

   형님에 대한 그리움을

   글로 쓰는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아내의 생활태도는 성실하고 치밀하였어요.

   이사를 다니지 않고

   한집에 사니 숨길만도하지요

 

   그러다 결혼 후 십년이 될까할 때

   아내가 나간사이에

   찾을 서류가 있어 벽장을 뒤지다

 

   깨알같이 써놓은

   두터운 노트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지요.

 

   저는 깜짝 놀랐어요.

   눈을 의심하였지요

   형님의 이름이 또렷하게 적혀있는 것입니다

 

   야전병원의 만나는 이야기에서

   형님이 틀림없다는 것을 믿게 되었지요.

 

  이를 어쩌나

  처음 만날 무렵

  내가 군대 이야기를 할 때

  왜 나에게 형님을 물어보지 않았을까

 

  야전병원에 근무하였다면서

  소대장님 이야기를 왜 하지 않았을까

 

이름만 이야기했어도

찾을 수 있도록 도왔을 텐데

 

그때만 이야기 하였어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이제는 헤어지는 운명인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어.

마음을 달래느라 한동안 고생하였지

 

우리는 결혼할 인연이 아닌가 봐

첫사랑은 헤어져야하는 것일까

 

    그래도 그놈

    사람 좋은 그놈

    정ㅇㅇ에게 시집갔으니 다행이지

 

우리 그이는 의리도 있고

좋은 사람이에요

 

내 일기장을

그이가 읽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러나 이렇게

단둘이 만나게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

 

표 안 나게 살살 물어보며

씨 이름은 절대 말하지 않는 거예요

제 마음을 다치지 않으려 하였나 봐요

 

형님. 형님과 제 아내를 만나게 하는 데는

형수님의 좋은 이해가 있었습니다.

 

형수님은 형님을 무척 사랑하시며

속이 넓은 분이라

형님에게 과분한 분이신 듯. 하하      

 

엔간한 여자 분들은 이해하기 힘들며

평지풍파를 일으킬까봐

거절하기가 쉽지요.

 

역시 맘씨 좋은 형님은

형수님을 잘 만난 것 같습니다

 

. 형수님 이리 앉으세요.

형님은 오른쪽에요

 

아니 이 사람이

아니 이 자리는 내가 만든 자린데


왜 자네가 설쳐

혜야씨 안 그렇습니까.

 

아야야. 꼬집지 마

야씨 혜야씨 너무 찾지 말아요.

듣는 사람 질투 나요

 

형수님 그렇지요.

저도 질투 많이 했어요.

아야야. 이쪽도 꼬집네.

 

술잔을 들어요.

오랜만에 건배합시다.

 

건 배 에

첫 사랑의 마지막 밤을 위하여

 

형수님 금방 무어라 말씀하셨어요.

왜요.


첫 사랑의 마지막 밤을 위하여

라고 하였지요.

 

참 멋진 말입니다

첫사랑의 마지막 밤을 위하여

형님. 안 그렇습니까.


'생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머님이 놓는 돌  (0) 2014.10.19
선불인생  (0) 2014.08.09
떠나는 연습  (0) 2014.06.03
엉겅퀴  (0) 2014.05.06
매화 꽃  (0) 2014.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