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열국지( 301∼400회)

제 392 화. 서로 반목하면 어떻게 될까.

서 휴 2023. 12. 16. 21:38

 392 서로 반목하면 어떻게 될까.

 

한편 진() 나라의 진양공(晉襄公)은 선군인 진문공(晉文公)처럼

내정을 안정시키고 부국강병을 이뤄내며패공(霸公)의 지위를

유지해야 했었다.

 

       그러나 진양공(晉襄公)은 재위 중에 선군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 내지 못했으며()나라와 장기간

       싸움만 함으로써, 내정도 공고하게 다지지도 못했고

       국력은 오히려 그 예전보다 많이 약화하였다.

 

기원전 623, 진양공(晉襄公)이 군주의 자리에 오른 지 6년째가

되던 해에 그의 어린 아들 이고(夷皐)를 세자로 세웠다.

 

       그 해에 조쇠(趙衰), 란지(欒枝), 선차거(先且居), 

       서신(胥臣) 등이 차례로 계속해서 죽었다

 

() 벼슬 직에  있던 중신이 4명이나 죽자, 진양공(晉襄公)

진군()의 군제를 개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때는 한동안 진()과의 전쟁이 없었으므로

       진양공(晉襄公) 평화 시대가 계속 유지 될 것으로

       생각하고, 부담이 큰 군사비용을 줄이기로 하였다.

 

이는 삼군(三軍), 이행(二行)의 편제에서 이행(二行)을 폐하게 되고,

옛날처럼 삼군(三軍)으로 개편하면서 군사의 수효를 대폭 축소했다.

 

       중군은 사곡(士穀)을 원수로 삼고

       양익이(梁益耳)를 부수(副帥)로 삼으려 하오

 

       상군은 기정보(箕鄭父)를 주수(主帥)로 삼고

       선도(先都)를 부수(副帥)로 임명할까 하오

       신료들은 어서 의견을 말해보시오

 

       주공신 선극(先克이옵니다.

       호씨(狐氏)와 조씨(趙氏), 두 가문은 우리나라에

       공을 크게 세운 충신들의 집안입니다.

       그 후예들을 쓰지 않고 버리시면 아니 됩니다

 

       현재 벼슬이 사공(司公)에 불과한 사곡(士穀)

       양익이(梁益耳)는 지금까지 전쟁터에 나가,

       아무런 공을 세운 바가 없사옵니다.

 

       그들에게 막중한 중군을 맡기시면다른 사람들이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옵니다

 

진양공(晉襄公)은 선차거(先且居)의 아들 선극(先克)의 간언을

받아들여, 곧바로 사람을 바꿔가며 임명하게 되었다.

 

       중군은 사곡(士穀대신에 호언(狐偃)

       아들 호사고(狐射姑) 원수로 삼았으며

 

       양익이(梁益耳)를 대신하여, 조쇠(趙衰)의 아들

       조돈(趙盾)을 부수(副帥)로 임명했다.

 

       상군의 원수 기정보(箕鄭父)는 그대로 이었으나,

       그 부수(副帥)에는 선도(先都대신에

       순림보(荀林父)를 임명했다.

 

       하군은 원수에 선멸(先蔑)을 임명하고

       부수(副帥)에 선도(先都)를 임명했다.

 

이윽고 중군 원수가 된 호사고狐射姑가 등단하여 군령(軍令)

내리는 것과 지휘를 하는 것을 서로 의논치 않고 자기 생각대로

할 뿐만 아니라방약무인(傍若無人)하며 건방지기가 짝이 없었다.

 

       호사고(狐射姑원수님

       군사마(軍司馬유병(臾騈)이 몇 말씀 올립니다.

 

       장수나 군사들이 서로 화목해야 훈련도 잘되고

       싸움에서 승리를 취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임명된 삼군(三軍)의 원수와 부수들은

       모두 싸움터에서 뼈가 굵은 장수 들이 아니고

       모두 권문세가(權門勢家출신들뿐입니다.

 

       원수께서는 마땅히 겸양하는 마음으로 서로 만나

       의논하시면서항상 남의 뒤에 서려는 몸가짐으로

       대하시며 넓게 포용하셔야 합니다.

 

       너무 강직한 자세는 자부심만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던 초()의 성득신(成得臣)

       우리와 싸우다가 패하게 된 것입니다.

 

       원수님경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군사마(軍司馬유병(臾騈)은 방금 뭐라고 했는가

 

       내가 이제 군령을 처음으로 내리는 마당에

       필부 따위가 어찌 이렇게 어지러운 말을 하여

       군심을 태만하게 만든단 말이더냐

 

       유병(臾騈) 저놈에게 채찍 100대를 쳐라

       뭣들 하느냐 어서 쳐라

 

바른말을 조언하던 군사마 유병이 100대의 채찍을 가혹하게 맞는

걸 많은 사람이 보게 되자, 이 일을 시작으로 불만을 갖게 되었다.

 

       또한, 사곡(士穀)과 양익이(梁益耳)은 자기들의 기용을

       선극(先克)이 방해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을 품었다.

 

       선도(先都)도 선극(先克)으로 인해 상군 원수의

       직을 얻지 못했다며 역시 한을 품게 되었다.

 

그때 태부(太夫양처보(陽處父)는 진문공(晉文公)의 장례식에

참석해 준 답례로 보빙(報聘사절이 되어 위(나라에 있었기에,

삼군(三軍)의 새로운 인사에 참여할 수 없었다.

 

양처보(陽處父)는 위()) 나라에서 돌아오자마자중군 원수에

호사고(狐射姑)가 임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비밀리에

서둘러 진양공(晉襄公)을 찾아가 상주한다

 

       주공호사고(狐射姑)는 남의 윗자리에 앉으려고만 하여

       여러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공호사고(狐射姑)는 중책을 맡을 재목이 아닙니다.

 

       옛날에 신 상군을 조쇠(趙衰)께서 맡고 있을 때

       신은 부수로 있으면서그의 아들 조돈趙盾을 알게

       되었던바그때 저는 조돈(趙盾)이 정말로 어질고

       그 재주가 뛰어남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신 양처보(陽處父), 주공께 마저 말씀 올리겠나이다.

       무릇 어진 사람을 받들고 재주 있는 사람을 임용하는

       일은 나라의 중요한 전범(典範)이 되옵니다.

 

       그런데 주군께서 중군 원수를 뽑으실 때 어찌하여

       조돈(趙盾) 같은 어진 사람을 택하지 않으셨나이까

 

태부 양처보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 진양공은 다음날 즉시 병거와

군사들을 동(땅에 다시 소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땅은 황하의 지류인 분수(汾水)와 속천(涑川)

       사이에 있던 곳으로지금의 산서성 임의현(臨猗縣)

       북쪽으로 약 10 지점이 된다.

 

진양공이 동(땅에 모이게 한 것은 중군 원수를 바꾸기 위해 취한 

조치라는 걸알지 못했던 호사고(狐射姑)즐거운 마음으로 

중군 장수들이 서 있는 반열의 제일 앞자리에 서는 것이었다.

 

       호사고(狐射姑)는 들으시오

       예전에는 과인이 조돈(趙盾)으로 하여금

       그대를 보좌하도록 명하였으나,

       이제는 그대가 조돈(趙盾)을 보좌하시오

 

호사고(狐射姑)는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은 진양공의 명령을 갑자기

받게 되자그는 감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명령에 따라

뒷자리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중군 원수에 조돈(趙盾)으로 임명되자,

       조돈(趙盾)은 처음으로 국정을 맡게 되었다.

 

조돈(趙盾)은 여러 제도와 법령을 정비하고형옥(刑獄)의 일을

재정비하고조세의 체납이나 탈세를 엄중하게 관리하도록 명했다.

 

       모든 일에는 반드시 증서를 사용하게 했으며

       종래의 악법을 과감히 철폐하고, 귀천을 떠나

       상과 하의 질서를 근본으로 삼았으며,

 

       폐지되었던 좋은 직책은 다시 복구시키고

       초야에 묻혀있는 인재들을 찾아내 발탁했다.

 

       이처럼 여러 제도가 정비되자그 내용을 태부(太夫

       양처보(陽處父)와 태사(太師가타(賈佗)에게 맡겨,

       (나라 전역에 시행케 하며 법도로 삼았다.

 

이렇게 시행해나가며 나라 안의 질서가 잡혀 나가게 되자제일 

먼저 백성이 크게 기뻐하였으며조정에서도 인정을 받게 되었다.

 

       태부(太夫양처보(陽處父말씀드리겠습니다.

       태부(太夫)께선 사심 없는 충성의 말씀이라 하겠으나,

       그로 인하여, 중군 원수의 자리에서 밀려난 사람에게

       원한을 사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됩니다.

 

       나라에 이익이 되는 일인데어찌 사사로이

       원한 살 것에 염려하여 몸을 사린단 말이오

 

그러나, 얼마 후 호사고(狐射姑)가 진양공(晉襄公)에게 독대(獨對)

청하여 승낙되자궁실에 들어가 그간에 있었던 일을 묻게 되었다.

 

       주공께선 저의 선친이 세우신 공로를 생각하시어

       불초한 소생에게 군사에 관한 일을 맡기셨는데

       이렇게 갑자기 바꿔버리시니신에게 무슨

       죄라도 있는지 도무지 알지 못하겠사옵니다.

 

       저의 선친이신 호언(狐偃)께서 세우신 공로가

       조쇠(趙衰어른보다 크지 않아서 그리 하셨는지요

 

       그렇지 않으시다면 또 다른 이유가 있으신지

       속 시원히 알려 주시기 바라나이다.

 

       허허과인을 오해(誤解하지 마시오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오.

 

       다만 양처보(陽處父)가 과인에게 말하기를그대는

       민심을 얻지 못하여 대장의 재목이 되지 못한다고

       간언하기에중군 원수의 직을 바꾸게 한 것이오

 

호사고(狐射姑)는 진양공(晉襄公)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자더는

할 말이 없어 입을 굳게 다물고 물러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는데,

       진양공은 주요 직책을 여러 번 바꾸면서

 

       서로 간에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잘 설득시키지도

       않았음으로써서로 간의 불신이 생기게 되면서,

       반목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招來하게 된다.

 

  393 . 조돈나라를 어떻게 이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