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열국지( 301∼400회)

제 394 화. 힘으로 안 되면 함정을 파는가.

서 휴 2023. 12. 17. 21:53

 394 . 힘으로 안 되면 함정을 파는가.

  

       진양공의 시신을 빈궁에 모신지 두 달이나 되었소

       장례를 자꾸 미룰 수 없으니 이번 10월에 치릅시다

 

       상주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니 오

       우선 세자 이고(夷皐)를 상주로 정합시다!

 

조돈(趙盾)은 중신들과 의논하여원래대로라면 세자 이고(夷皐)

군주의 신분으로 당연히 상주가 되어야 했으나어쩔 수 없이

세자를 임시 상주로 세우고그해 10월에 장례식을 치렀다.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세자 이고(夷皐)가 엄연한 상주가 아니겠소

       어찌 임시 상주라고 정할 수 있더란 말이오?

 

죽은 진양공의 부인이자 세자 이고(夷皐)의 생모인 양영(襄嬴)

가슴이 찢어지는 듯 통탄의 눈물을 흘리며 울부지졌다.

 

       조돈(趙盾) 원수님 양영(襄嬴)은 너무나 슬픕니다

       선군이신 진양공께서 무슨 죄가 있으며

 

       정당한 후계자인 세자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한 덩이 고깃덩어리를 버리듯이 내치시면서,

 

       하필이면다른 나라에서 선군의 동생을

       군주로 모셔 오려 한단 말이오

 

진양공(晉襄公)의 부인 양영(襄嬴)은 세자 이고(夷皐)와 함께

장례식을 치르며또다시 조돈(趙盾)에게 원망 섞인 말을 하면서

애통하게 울었다그에 조돈(趙盾)은 조용히 답변해준다.

 

       나라의 군주를 세우는 일은 이 조돈(趙盾)의 사사로운

       일이 아니오라나라의 큰일이오니 이해하시옵소서.

 

이윽고 장례식이 다 끝나며 진양공의 신위를 받들어 태묘에

모시고 나자조돈(趙盾)은 그때야 비로써 대부들에게 말했다.

 

       선군께서는 형벌과 상을 분명히 하시어

       제후들의 패주(覇主)가 되셨소이다.

 

       선군의 관을 채 묻기도 전에 호국거(狐鞫居)

       제멋대로 강도로 변장하고 양처보(陽處父)를 죽였소

 

       신하 된 자 모두가 이처럼 망동(妄動)을 일삼는다면

       우리 신하 중에 위험하지 않을 자가 누가 있겠소

 

       이런 일은 반드시 밝혀야 내야 합니다

       사구(司寇)는 호국거(狐鞫居)의 무릎을 꿇려라

 

조돈(趙盾)은 호국거(狐鞫居)를 참수형에 처하고그의 집에 사람을

보내양처보(陽處父)의 잘린 목을 찾아오게 하였으며관에서

시신을 꺼내, 목을 꿰매게 한 다음에 장례를 다시 치르게 해주었다.

 

       동생 호국거(狐鞫居)가 처형되다니 큰일이로다

       모든 걸 이 호사고(狐射姑)의 음모로 볼 것이다.

 

       가복(家僕)은 어서 수레를 준비하라

       (나라 백돈(白暾)에게 몸을 의탁하리라

 

호사고(狐射姑)는 반드시 자기가 꾸민 일이 발각될 것으로 알고

저녁이 되기를 기다려 책(나라로 급히 달아나 버렸다.

 

(나라의 책주(翟主)가 된 백돈(白暾)은 원래 하수(河水)

낙수(洛水사이에 살았었다. 백돈(白暾)은 자기 종족들을 이끌고

하수河水를 건너갔으며, 동쪽으로 이동하여 태항산(太行山

서쪽 숲속으로 들어가 살게 된다. 이때부터 사서(史書)에는

백돈(白暾)의 책족(翟族)을 백적(白狄이라고 적고 있다.

 

      우리 책(나라에서 교여(僑如)를 당할 자가 있겠는가

      책주(翟主천하에도 교여(僑如)를 당할 자가 없습니다

 

      교여(僑如)의 신장은 한 장 오척이라 장책(長翟이라

      부르며힘은 천균(千鈞)의 무게를 들 수 있사옵니다

 

       그리고커다란 머리통은 마치 쇠처럼 단단하여

       바위로 내리쳐도 상처를 줄 수 없나이다

 

춘추시대의 한 자()는 대척으로 22.5cm, 소척은 18cm이다.

교여(僑如)의 신장이 일장 오척(五尺)이라는 것은 대척(大尺)

 3m 40cm이고, 소척(小尺)일 경우 2m 70cm 정도이므로

소척(小尺)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 시대의 1()의 무게는 30()이고, 1()은 약 250그람

이므로,  1()은 약 7.5kg, 천균() 7.5톤이다.

 

       좋다교여(僑如)를 우리 책군(翟軍)의 선봉에 세워라

       (나라를 점령하여 우리 것으로 만들고 말리라

 

한겨울이 되자책주(翟主백돈(白暾)은 교여(僑如)를 선봉장으로

(나라를 침공하게 하였다이때 노()의 노문공(魯文公)

대부 숙손(叔孫득신(得臣)에게 노군(魯軍)을 이끌고 막게 했다.

 

       대부 숙손(叔孫득신(得臣

       대부 부보(富父종생(終甥)의 말을 꼭 들으십시오

 

       교여(僑如)는 그 용력(勇力)이 매우 사납고

       천균(千鈞)의 무게를 들 수 있어 당할 자가 없습니다.

 

       저 교여(僑如)는 절대 힘으로는 막을 수 없으니

       오늘 밤에 폭설이 내릴 것인바, 지혜로 잡아야 합니다.

 

부보(富父종생(終甥) 책군(翟軍)이 쳐들어올 길을 미리 택하여,

 길 가운데에 깊은 함정을 여러 곳에 파놓고그 위를 풀잎과

거적을 깔아 덮은 후에 다시 그 위에 흙을 뿌렸다.

 

       그 날 밤 부보(富父종생(終甥) 짐작한 대로 과연

       큰 눈이 내리면서 온 땅을 하얗게 덮어버렸으므로,

       어딘가 어디인지 전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눈 덮인 아침이 되자노군(魯軍)의 종생(終甥)이 군마를 이끌고

책군(翟軍)의 교여(僑如)가 주둔하고 있는 진채(陣寨)를 공격했다.

 

자신만만(自信滿滿 )한 교여(僑如)가 진채 밖으로 나와 싸우려고

덤벼들자종생(終甥) 일부러 패하는 척하며 말을 돌려 달아났다.

교여(僑如)는 용기백배하여 종생(終甥)의 뒤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함정을 팔 때 자기만이 알 수 있게 표시를 해 두었던

       종생(終甥)은 그 함정을 피해 달아 날 수 있었으나,

 

       종생(終甥)의 뒤를 계속 추격해오던 교여(僑如)

       드디어 깊은 함정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함정 주변에 매복하고 있던 득신(得臣)과 군사들이 일제히 일어나

앞으로 돌진하면서교여(僑如)의 뒤를 따라오던 책병(翟兵)을 막고

있는 사이에종생(終甥) 함정에 빠져버린 교여(僑如)의 목만을

긴 칼로 베어내어 건져 올렸다.

 

       (나라 군사들이 교여(僑如)의 시체를 함정에서

       꺼내, 큰 수레에 싣고 노성(魯城)으로 들어가자,

       보는 책병(翟兵) 마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 마침 대부 숙손(叔孫득신(得臣)은 첫아들까지 얻게 되자

너무나 기쁜 나머지 자기의 아들 이름을 교여(僑如라고 지어

자기의 공을 기념하고자 했다.

 

       이어서 노(), (), (세 나라가 즉시

       연합군을 일으켜 책군(翟軍)을 정벌하였다

       이때 책주(翟主백돈(白暾)은 도망치다가 죽었다

       이로써 백적(白翟나라는 멸망하며 사라졌다.

 

백돈(白暾)이 죽고 책(나라가 망해 버리자호사고(狐射姑)

 수 없이 적책(赤翟)의 종족이 세운 로국(潞國)으로 쫓겨가서,

그 나라 대부 풍서(酆舒)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었다.

 

       (나라가 망했는데 호사고(狐射姑)도 죽었는가

       조돈(趙盾원수님로국(潞國)으로 쫓겨가 살고 있습니다.

 

       호씨(狐氏형제의 선친이신 호언(狐偃)과 나의 부친

       조쇠(趙衰)는 함께 천하를 떠돌며 선군을 모셨었다.

 

       내 비록 호국거(狐鞫居)를 죽였지만

       어찌 호사고(狐射姑마저 죽일 수 있겠는가

 

       호사고(狐射姑)가 죄를 두려워하여 도망쳤으나,

       혼자 몸으로 조그만 로국(潞國)에 빌붙어 사니

       몹시 곤궁한 처지가 되어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비단과 양식을 내놓을 것이다.

       군사마(軍司馬유병(臾騈)은 이를 수레에 싣고

       호사고(狐射姑)의 가솔(家率들을 안전하게

       안내하여 로국(潞國)에 데려다주도록 하라

 

군사마 유병(臾騈)은 원수 조돈(趙盾) 명을 받고 로국(潞國)으로

떠나려고 하자집안의 가솔(家率들이 모두 반대하며 말했다.

 

       어찌 옛날에 있었던 일을 생각지 않습니까

       옛날에 이(땅에서 호사고(狐射姑)가 군사들을

       사열할 때, 주인께서는 호사고(狐射姑원수에게

       충심으로 간언을 했지만오히려 호사고(狐射姑)

       100대의 채찍질을 해 죽을 뻔하였습니다.

 

       유병(臾騈주인님어찌 그 모욕을 갚지 않으십니까

       유병(臾騈주인님이는 하늘이 준 좋은 기회입니다.

 

       호사고(狐射姑)의 가솔(家率)을 이끌고 가다가

       마땅히 모두 죽여 그때의 한을 푸십시오.

 

       그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조돈(趙盾원수께서 이 일을 나에게 맡긴 것은

       나를 믿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조돈(趙盾원수께서 보내라는 가솔(家率들을 오히려

       내가 죽인다면 원수는 나에게 노하지 않겠는가

 

       다른 사람이 어려움에 빠진 일을 이용하는 것은

       또 다른 사람들의 분노를 사는 일이 될 것이다

       어찌 지혜로운 일이 아닌 걸 알면서 행하겠는가

 

군사마 유병(臾騈)은 그 즉시 호사고(狐射姑)의 처자를 수레에 타게

하고는 가솔(家率들을 이끌고그들의 가재(家財)를 모두 장부에

등재(登載한 다음에 수레에 싣고, 국경까지 나아가 환송했는데

잃어버리거나 남긴 것은 하나도 없이 정성을 다해 보내주었다.

 

처자와 가솔(家率들과 조돈(趙盾)이 보낸 비단과 양식과 그의

가재(家財)를 모두 받게 된 호사고(狐射姑)는 감개가 무량해 말했다.

 

       내가 어진 사람을 몰라봤으니 이렇게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된 것은 나의 죄로써 마땅한 일이로다

 

       원수 조돈(趙盾)과 군사마(軍司馬) 유병(臾騈) 이여

       장차 이 은혜를 반드시 갚을 것이오

 

군사마 유병(臾騈)이 호사고(狐射姑)의 뒤처리를 완전하게 처리하자,

조돈(趙盾)은 이때부터 유병(臾騈)의 인품을 높이 사게 되었다.

 

 395 . 조돈신의를 잃고 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