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1 화. 중동과 변협이 무언지 아십니까.
호언(狐偃)이 열심히 달아나다가 갑자기 멈추면서 히죽히죽 웃으니
중이(重耳)도 더는 쫓지 않고는, 마침내 들고 있던 창을 던져버리고,
풀밭에 털썩 주저앉았다가 드러누워 하늘을 본다.
鳳脫鷄群翔万仞(봉탈계군상만인)
봉황은 닭 무리에 몸을 빼내 하늘 높이 날고
虎离豹穴奔千山(호리표혈분천산)
호랑이가 승냥이의 굴을 나와 깊은 산을 달리누나.
갑자기 호언(狐偃)이 정색하며 중이(重耳) 앞에 무릎 꿇자, 가신들도
모여들더니 다 함께 무릎을 꿇으며 눈에는 이슬이 맺히었다.
공자, 이 호언(狐偃)은 유쾌하게 웃고 있나이다.
공자, 이 얼마만의 일입니까?
공자, 이 호언(狐偃)은 무릎을 꿇었나이다.
공자께서 저를 죽여 꿈을 이루실 수 있다면
저는 사는 것보다 죽기를 바래겠소이다.
공자, 저희는 부모 형제 처자까지 버리고
공자를 따라 만리타국(萬里他國)을 떠돌면서
서로 도우며 서로 버리지 않는 것은
공명(功名)을 죽백(竹帛)에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공자가 성공하지 못하신다면, 저희는
아무것도 남길 수가 없는 사람들이 되옵니다.
지금 고국은 진혜공(晉惠公)이 무도하여
우리, 진(晉) 나라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있습니다.
어느 누가 공자에게 천하를 갖다 바치겠습니까?
저희 모두가 함께 공모(共謀)하여 이뤄내야 합니다.
공자, 저는 아직도 강성(絳城) 밖의 높은 언덕에서
맹세하던 시절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공자, 이제 노여움을 푸십시오!
나, 위주(魏犨)가 한마디 하겠소!
대장부는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것이며
그 명성을 후세에 전하도록 힘을 쏟아야 하거늘
어찌 일시적인 환락에 연연하여 평생을 두고
품고 다니던 뜻을 돌보지 않으려 하십니까?
모두 모여들어 무릎을 꿇으니 내 지난 과거가
무색해지면서 나도 가슴이 뭉클해지오!
호언(狐偃) 외숙, 천하라 하였소?
호언(狐偃) 외숙, 이제 마음을 푸시오?
나도 한줄기 뜨거운 열기(熱氣)가 가슴을 치고 있소!
자, 다들 들으시오!
그대들은 임치(臨淄)를 떠나오자마자
그 옛날처럼 굶기를 시작하려는 것이오.
하하하. 배들 고프지 않소?
유쾌한 중이(重耳)의 음성에 모두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며, 이제
즐거운 마음으로 미리미리 준비하여 가지고 온 음식들을
꺼내놓고, 아침 겸 늦은 점심을 먹기 시작한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있다.
쓸 고(苦). 다할 진(盡), 달 감(甘), 올 래(來).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는 말이다.
세상일은 좋고 나쁜 일이 돌고 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인가.
우리는 고진감래(苦盡甘來) 만을 생각하며, 좋은 일만 빨리 오기를
바라면서, 항상 애타게 고생하며 행운만을 기다리며 사는 것 같다.
그래요. 우리 다 같이 좋은 일만을 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행운이 다가오길 기다려봅시다.
중이(重耳)와 가신 일행도 고진감래(苦盡甘來) 만을 생각하면서,
힘없는 발 길이긴 하나, 제환공(齊桓公) 덕분에 미리 준비하여온
수레와 말과 양식으로 예전보다는 훨씬 여유롭게 떠날 수 있었다.
어디로 갈 것이오?
어디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더 생각할 게 있는가? 어서 초(楚) 나라로 가자!
공자임, 좋습니다. 초(楚) 나라로 갑시다.
제(齊) 나라에서 초(楚) 나라로 가려면 두 가지 길이 있다. 첫 번째는
노(魯) 나라를 거쳐 송(宋), 진(陳), 채(蔡), 수(隨) 나라를 지나며,
드디어 초(楚) 나라의 영성(郢城)에 이르는 길이다.
공자, 조쇠(趙衰)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이 여정은 임치(臨淄)와 영성(郢城)을 직선으로
잇는 것이므로,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합니다.
하오나 이 길은 수십 개의 강(江)을 건너야 하고,
수십 개의 늪지대를 지나야 합니다.
길이 여간 험한 것은 아니나 걸림돌이 많아
오히려 늦어질 수 있습니다.
더구나 외딴곳이 많으므로 가는 도중에
어떤 봉변을 당할지 알 수 없으며
양식이 떨어져 곤욕을 치를 수도 있습니다.
그보다는 두 번째 길이 있습니다.
황하(黃河)를 따라 서쪽으로 가다가 조(曹) 나라를
거쳐, 송(宋) 나라와 정(鄭) 나라를 통과하여
초(楚) 나라의 영성(郢城)으로 접어드는 길입니다.
이 길은 약간 돌기는 하지만, 길이 잘 닦여져 있고,
도중에 조(曹)와 정(鄭)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오, 두 번째 그 길이 좋겠소!
이러나저러나 무려 3천 리가 넘는 여정(旅程)이오!
먼 길을 돌아가는 여정이지만 그들의 발걸음은 가볍고 활기가 넘쳤다.
특히 호언(狐偃)의 몸놀림은 청년 못지않게 발랄하기까지 했다.
호언(狐偃)은 나이를 거꾸로 먹는 모양이오.
공자, 이렇게 희망찬 길은 처음입니다.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오?
공자, 우리 모두 즐겁습니다!
중이(重耳)와 가신 일행은 모두 새로운 희망을 안으며, 며칠이 지나자
조(曹) 나라 도성에 당도했다. 조(曹) 나라는 작은 나라로 송(宋)과
노(魯)와 정(鄭) 나라 사이에 끼어 눈치를 보는 약소국 중 하나였다.
국성(國姓)은 희(姬)로 주(周) 왕실 혈통의 제후국이며
중이(重耳)와 같은 혈족이었으므로, 섭섭지 않은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걸게 되며
들렀다 가기로 하였다.
그 무렵 조(曹)나라의 조공공(曹共公)은 명군(名君)과는 아주 거리가
먼 암군(暗君)으로, 정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300여 명의 소인배에게 하나씩 감투를
나눠주고는, 매일 같이 그들과 어울려
장난질이나 하며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다.
2년 전의 일이다. 송양공(宋襄公)이 조규(曹葵) 땅에서 회맹을
열려고 소집할 때 조공공(曹共公)은 항상 유희(遊戱)에 빠져 있느라,
아무런 권한도 없는 한 대부를 대신 보냈다가, 송양공(宋襄公)의
분노를 사게 되어, 침공까지 받은 적도 있었다.
진(晉) 나라 공자가 성안으로 들어왔다 하였소?
주공, 그렇사옵니다.
그가 진(晉) 공자라고는 하지만 본국에서 쫓겨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유랑자라 하지요?
우리가 잘 대접하였다가 오히려
진(晉) 나라의 원망을 살 수 있지 않겠소?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무얼 하겠소?
그냥 지나가게 놔두시오.
주공, 상경 희부기(僖負羈) 이옵니다.
진(晉) 나라는 동성(同姓) 간의 가까운 나라입니다.
공자 중이(重耳)께서 곤궁한 처지로 지나가오니
후(厚)하게 대접하여 보내셔야 합니다.
상경은 어찌 그리만 생각하시오?
이 작은 나라가 열국(列國) 사이에 끼어
지나가는 자마다 후(厚)하게 대접한다면
나라의 국고 손실이 얼마나 크겠소?
주공, 중이(重耳) 공자의 어짊은 널리 알려진 바이며
몸도 특이하여 건강한 체질이면서 귀한 관상이라,
크게 되실 분이 분명합니다.
주공, 헤헤, 신 신혜우(申惠雨) 입니다.
주공, 중동(重瞳)과 변협(騈脅)이 무언지 아십니까?
허허, 어서 말해보라.
헤헤, 중동(重瞳)은 한눈에 눈동자가 두 개입니다.
허허, 그런 눈도 다 있는가?
그래 변협(騈脅)은 또 무어냐?
변협(騈脅)이란, 갈비뼈가 여러 개로 되어있지 않고
판자(板子)처럼 하나의 넓은 뼈를 말합니다.
허허, 그런 갈비뼈가 다 있더란 말이냐?
신도 말만 들었을 뿐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이참에 변협(騈脅)을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허허, 어떻게 볼 수 있단 말이냐?
헤헤, 중이(重耳) 공자를 공관에 머물게 하시고
목욕할 때 몰래 보시면 될 것입니다.
허허, 그거 좋은 생각이로다.
진(晉) 공자 중이(重耳)를 공관으로 모셔라.
제 292 화. 신중하지 못하면 대가를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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