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0 화. 허욕은 허욕으로 끝나는가.
방금, 뭐라고 하였느냐.
초(楚) 나라의 자원(子元)이 대군을 이끌고
벌써 쳐들어오고 있더란 말이냐.
왜 쳐들어온다더냐.
자기들에게 아무 통보도 없이 조공도 바치지 않고
제 맘대로 제(齊) 나라와 동맹을 맺어
초(楚) 나라를 배신하였다는 명분이옵니다.
허 어, 어떻게 대비하면 좋겠소.
싸우는 게 좋겠소. 강화를 청해야 하겠소.
주공, 싸워야 합니다.
인제 와서 제(齊) 나라를 배신할 수 없나이다.
주공, 아니옵니다. 제(齊) 나라는 너무 멀리 있어.
현실적으로 도와주러 오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우선 강화를 청하여 위기를 모면해야 합니다.
주공, 신 숙첨(叔詹) 이옵니다.
신이 보건대 초(楚) 나라는 머지않아 물러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군사를 내어 싸울 필요도 없고
사자를 보내어 강화를 청할 필요도 없나이다.
아니. 그대는 무슨 근거를 가지고
그들이 스스로 물러간다고 장담하는 것인가.
먼저. 자원(子元)이 대군을 일으킨 배경이 있나이다.
그 배경이란 것이 무엇이오.
주공, 세작(細作) 들의 보고에 따르면
자원(子元) 이란, 그자가 우리나라를 쳐들어오는 것은
단순히 도화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랍니다.
세작(細作) 들의 보고가 정말 그러한 것이오.
그렇구나, 남자가 움직이는 데는 마땅히
여자의 입김이 서려 있을 것이오.
주공, 정말 그러하옵니다.
자원(子元)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초조감에
사로잡혀 있을 것이 틀림없나이다.
누구나 이겨야 한다는 부담을 갖게 되면
그 뒤에는 패배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반드시 따라오기 마련이옵니다.
주공, 신에게는 초군(楚軍)을 물리칠 계책이
있사오니, 주공께서는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
정문공(鄭文公)은 의아한 표정으로 숙첨(叔詹)에게 물으며 의혹이
없는 바가 아니었으나, 자신만만한 숙첨(叔詹)을 믿기로 했다.
주공. 초(楚) 나라 군사가 이미 길질관(桔秩關)을 돌파하여
외성(外城)의 순문(純門)을 향해 진군해 오고 있습니다.
길질관(桔秩關)은 정(鄭) 나라 신정성(新鄭城) 남쪽 교외에 구축한
요새였으며, 순문(純門)은 신정성을 둘러싼 외성의 성문 이름이다.
주공. 대부 도숙(堵叔) 이옵니다.
주공, 진작에 강화(講和)를 맺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어렵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초군(楚軍)이 눈앞에 이르렀으니
이제는 강화(講和)를 청할 여가도 없게 되었사오니
주공께서는 서둘러 동구(桐丘)로 피신하셔야 합니다.
도숙(堵叔)은 경망스럽게 떠들지 마시오.
도숙(堵叔)은 왜 항복과 도피만을 생각하는가.
그대는 주공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 말라.
주공. 신 숙첨(叔詹)에게 모두 맡겨 주시옵소서.
숙첨(叔詹)은 정문공(鄭文公)의 승낙을 받자, 무장한 군사들을
신정성(新鄭城)의 내성 안에 매복시켜놓고, 대담무쌍 하게
성문을 활짝 열어놓고는 밖에서 모두 잘 들여다보게 하였다.
아니. 이게 무슨 짓인가.
주공. 이것은 이른바 공성(空城)의 계(計) 입니다.
아울러 백성들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거리를 왕래하며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여서는 아니 됩니다.
후일 삼국시대의 명 전략가인 제갈공명(諸葛孔明)은 서성(西城)의
성문을 활짝 열어놓고 성루에 올라가 거문고를 연주 함으로써
위군(魏軍) 장수인 사마의(司馬懿)를 스스로 물러가게 하였는데
바로 이때의 숙첨(叔詹)이 쓴 계략을 본뜬 것이라 할 수 있다.
투어강(鬪御疆) 장수님. 정탐 병입니다.
신정성(新鄭城)의 내성(內城)이 이상합니다.
이상하다니 무슨 말인가. 어서 가보자.
허 어. 참으로 이상하구나.
성문을 활짝 열어놓고
정군(鄭軍)의 움직임이 전혀 없구나.
우리 보고 마음대로 들어오라는 것이 아니냐.
이건 반드시 우리를 성안으로 끌어들이려는
계책(計策) 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모든 병사는 경솔히 나가지 마라.
중군(中軍)이 올 때까지 진채(陣寨) 만을 지키도록 하라.
선봉장으로 가장 먼저 외성(外城)의 순문(純門)을 통과한 장수
투어강(鬪御疆)은 내성(內城) 앞에 이르러, 의외의 광경에
주춤하며, 영윤인 자원(子元)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영윤(令尹) 임. 이제 도착하십니까.
왜 무슨 일이 있었소.
정군(鄭軍)의 동태가 이상합니다.
성문을 활짝 열어놓고는 정군(鄭軍)은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우리보고 맘대로 성안에 들어오라 합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어서 가보도록 합시다.
자원(子元)은 투어강(鬪御疆)과 높은 언덕에 올라 신정성(新鄭城)의
동태를 살펴보다가 이외의 광경에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된다.
아무런 동정이 없기는커녕
성벽에는 깃발들이 정연하게 꽂혀 있고
무장한 군사들이 성벽 위에 숲처럼 늘어서 있구나.
아니. 어쩜 저럴 수가 있습니까.
저 많은 군사가 어디서 나타난 것입니까
정(鄭) 나라는 뛰어난 지략가(智略家)가 많다더니
과연 저들의 계책은 측량하기가 정말 어렵구나.
쉽사리 움직이지 말고, 정군(鄭軍)의 동태를 살펴보아
약점을 탐지한 후에 공격하도록 하자.
자원은 신정성의 광경을 바라보며 여기에서 패하기라도 한다면,
돌아가 도화부인을 어떻게 대할까를 먼저 염려하게 되어,
과감하게 공격하지 못하고 좋은 기회만을 잡으려 기다리게 된다.
영윤(令尹) 임. 큰일 났습니다.
지금, 제환공(齊桓公)이 송(宋)과 노(魯)의 군사들과
함께 정(鄭) 나라를 구원하러 오는 중이랍니다.
투어강(鬪御疆), 누가 그런 말을 합디까.
정탐 병들의 보고이옵니다.
아니 정말이오. 이거 큰일 났구나.
영윤(令尹) 임, 투어강(鬪御疆) 입니다.
아니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오.
제환공(齊桓公)이 우리의 귀로(歸路)를 끊으면
우리는 앞뒤에서 공격받게 됩니다.
허 참, 그렇게 될 수도 있겠도다.
허 긴, 진(陳) 나라 쪽으로 돌아오면 퇴로가 막히고 말지.
투어강(鬪御疆) 장수, 우리가 이번에
정(鄭) 나라 도성의 외성까지 쳐들어가 점령하였으니
이는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 아니겠소.
자. 모두 이긴 것으로 하고 돌아가도록 합시다.
후퇴 시에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언제 덮칠지 모르는 적군의 기습이오.
모든 군사에게 알리시오.
말에 매달린 방울을 모조리 떼어내고
입에는 함매(銜枚)를 하며 조심스럽게 철군해야 하오.
자원(子元)은 한 달 동안이나 정군(鄭軍)과 대치하고 있으면서,
한 번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제환공이 송(宋)과 노(魯)의
군사들과 연합군을 만들어 구원군으로 오고 있다고 하자.
다잡은 걸 놓쳤다는 듯이 크게 아쉬워하면서도,
초군(楚軍)이 승리 했다고 큰소리를 치고는,
전군에 철군하도록 비밀 명령을 내렸다.
그는 정군(鄭軍)의 추격에 대비하여, 마치 초군(楚軍)이 계속 머물러
있는 것처럼 가장하고는 밤을 새워 정(鄭) 나라를 떠나가고 말았다.
정경(正卿) 숙첨(叔瞻) 어른.
초군(楚軍)의 군막이 뭔가 좀 이상합니다.
뭐가 이상하다는 것이오.
자, 성루(城樓)에 올라가 봅시다.
허 허, 그렇군, 저건 빈 군막이 분명하오.
초(楚) 나라 군사는 이미 다 달아나고 말았소.
저것이 빈 군막이라는 것을 어찌 아십니까.
군막이란 군사들이 거처하는 곳이므로
당연히 움직임이 많고 기세가 진동振動 합니다.
자, 다들 자세히 보시 오.
새 떼들이 잔뜩 모여 놀고 있지 않소이까.
빈 군막이 아니라면 어찌 겁 많은 새들이
군막 위에서 한가롭게 놀고 있겠소이까.
부장(副將)은 어서 빨리 가 확인하고 오너라.
정경(正卿) 나리. 확인하여보니 초군(楚軍)은 이미
모두 철수하여 버리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마 제환공(齊桓公)이 도와주러 오는 모양이오.
틀림없이 초(楚) 나라 영윤(令尹) 자원(子元)이
그 소식을 먼저 듣고 달아난 것이 분명하오.
정경 나리. 정탐 병이옵니다.
제(齊) 나라가 송(宋)과 노(魯), 두 나라와 함께
우리나라를 도우러 달려오는 중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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