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0 화. 악연의 사랑은 어찌 될까.
공자 영나(贏拿)와 거군(莒軍)은 제(齊)의 국경지대인 문수(汶水)에
당도하여 함거를 열어주며, 경보(慶父)를 풀어주고 돌아가버렸다.
이 변방 문수(汶水)에서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아아,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이 넓은 천하에 내 몸 하나 갈 곳이 없다니.
지난날이 너무나 슬프고 애통(哀痛) 하구나!
경보(慶父)는 거(莒) 나라에서 제(齊) 나라로 들어가려 하였으나,
제(齊)의 성장(城將)은 이미 경보(慶父)의 악행을 알고 있었으므로,
접근조차 못 하게 막고있어, 문수(汶水) 강변에서 배회하게 되었다.
아니, 경보(慶父) 형님! 거기서 무얼 하십니까?
어. 아니, 너는 해사(奚斯) 동생이 아니냐?
형님은 거(莒) 나라에 계시는 줄 알았는데
어찌하여 이 외로운 문수(汶水)에 계십니까?
동생은 어디를 다녀오는 길인가?
사절단으로 제(齊) 나라에 갔다 오는 길입니다.
해사(奚斯)는 노환공(魯桓公)의 시녀(侍女)에게 태어난 아들이며,
한때는 서형(庶兄)인 경보(慶父)와 아주 좋은 사이로 지냈었다.
그러나 경보(慶父)가 마구간지기인 어인(圉人) 낙(犖)을 사주하여
공자 반(般)을 살해하는걸 보자, 경보(慶父)의 흑심을 알아차리고,
그의 당(黨)에서 탈퇴한 바가 있는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아니, 왜 이리 초라한 모습을 보이십니까?
부끄러우나. 거(莒) 나라에서 쫓겨났느니라!
형님, 함께 귀국하시어 종묘(宗廟)에 용서를 비십시오.
내가 노(魯) 나라로 돌아가는 건 어렵지 않으나
누구보다도 계우(季友)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 돌아가거든 네가 계우(季友)에게
잘 말해서 나를 살려달라고 대신 빌어보아라!
우리는 선군(先君)의 피를 이어받은 형제가 아니냐?
형님 알겠습니다. 꼭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해사(奚斯)는 경보(慶父)와 작별하고는 문수(汶水)를 건너갔으며
노(魯) 나라에 들어가자마자, 도중에 경보(慶父)를 만났던 일을
고하면서, 경보(慶父)의 초라한 행색을 상세히 알리었다.
이에 노희공(魯僖公)은 측은한 마음이 일어, 재상이며 숙부인
계우(季友)를 불러들이도록 하였다.
계우(季友) 형님, 아우 해사(奚斯) 입니다.
경보(慶父) 형님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사오니
한번 용서하여 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도리에 맞지 않는 말은 하질 마라!
계우(季友) 형님, 정말 안 살려 주실 겁니까?
주공, 어찌 형제간을 죽이면서 해결하려 하십니까?
주공, 신 해사(奚斯)가 이렇게 빕니다.
주공, 경보(慶父) 형님을 살려주십시오!
해사(奚斯) 숙부의 마음은 알겠습니다.
계우(季友) 숙부님!
해사(奚斯) 숙부의 말을 어찌 생각하십니까?
한번 용서해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주공, 군주를 죽인 자를 죽이지 않고 용서해준다면
장차 무엇으로 뒷사람들을 경계하시겠습니까?
계우(季友) 숙부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해사(奚斯) 아우는 섭섭하게만 생각해선 안 된다.
문수(汶水)에 가서 경보(慶父)에게 내 말을 똑똑히 전하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자손(子孫)의 대를 잇게 해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손(子孫)도 보존치 못하리라!
계우(季友) 형님, 경보(慶父) 형님의 가족은
이미 백성들에게 짓밟혀 모두 죽었습니다.
해사(奚斯) 숙부, 할 수 없습니다.
계우(季友) 숙부님의 말씀대로 그리 하십시오.
계우(季友) 형님, 이 아우 그리 전하겠습니다.
다음날 해사(奚斯)는 수레를 몰아 다시 문수(汶水)로 달려갔으나,
차마 계우(季友)의 말을 전할 수가 없어, 경보(慶父)가 머무는
집 대문 앞에서 큰 소리로 애처롭게 통곡(痛哭) 하고 말았다.
저 통곡(痛哭) 소리는 해사(奚斯)의 목소리가 아닌가.
동생 해사(奚斯)는 나의 뜻을 만들지 못하였구나.
울고만 있으니 이는 계우(季友)의 뜻이리라.
아. 모든 게 지나간 한낱 꿈이 되고 말았구나.
경보(慶父)는 마침내 스스로 허리띠를 풀어 대들보에 걸쳐놓고는
지나간 일들을 길게 탄식(歎息) 하기 시작했다.
아아, 나는 어리석은 경보(慶父) 로다!
지성(至誠) 이란. 지극하게 정성을 들인다는 말이 아니냐.
지성(至誠) 이면 감천(感天) 이란 말처럼
정성을 다해 치성(致誠)을 올리면 하늘도 감동하여,
바라던 소원(所願)을 이루어 준다고 하였다.
그래, 사람이 살아가며 열심히 바라는 것을
정성껏 빌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지성(至誠)은 무엇을 위하여 정성을 올리는 것이냐.
그래, 나는 열심히 빌며 소원을 이루러 하였을까.
그러나, 나는 정성껏 빌어본 게 하나도 없었다.
나는 머리만 잘 쓰면 저절로 꿈이 이루어지는 줄 알았다.
그래 그렇지! 반절은 이루었지!
그러나, 백성이 나의 마음을 몰라준 거야.
그래 나도 백성의 마음을 몰라 실패한 거야.
나는 백성을 위해 정성껏 치성(致誠)을 드린 바도
없이 그저 보위에 오르려고만 하였어.
나는 나의 탐욕(貪慾) 만을 이루려 하였던 거야.
올바르지 않은 탐욕(貪慾)을 이루려 하였던 거야.
어찌 하늘이 탐욕(貪慾)을 이루게 하여주겠는가.
탐욕으로 거창(巨創)한 것을 이루려 하거나
바라던 것을 얻게 되는 소원성취도 좋지만
그래, 인생살이는 탐욕이 아닌 것 같아.
어쩌면 사람이 살아가면서 평범하게 어울리며
평법하게 얻을 수 있는 행복이란 것이 있었어.
나는 이 평범한 행복을 왜 몰랐을까.
나의 탐욕 속에는 왜 행복이 없었을까.
해사(奚斯)는 경보(慶父)의 시신을 목관에 정성스레 담아 수레에
싣고, 노(魯) 나라로 돌아가면서 인생무상을 생각하며 눈물을 뿌렸다.
거(莒) 나라 군주 거자(莒子)와 동생 영나(贏拿)는 문수(汶水)에서
경보(慶父)의 시신을 노(魯)가 싣고 갔다는 걸 알게 되자, 곧바로
거군(莒軍)을 이끌고 노(魯)나라의 곡부성(曲阜城)으로 쳐들어왔다.
주공. 거(莒) 나라가 난데없이 쳐들어왔나이다.
아니. 무엇 때문에 거(莒) 나라가 쳐들어온 것이냐?
거(莒) 군주 거자(莒子)와 동생 영나(贏拿)가
경보(慶父)에 대한 예물(禮物)을 달라 하나이다.
거(莒) 나라가 사로잡아 보내지도 않았고
그의 목을 잘라 보내지도 않았거늘
어찌 공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주공, 신이 거군(莒軍)을 물리치겠나이다.
계우(季友) 숙부님. 이 칼을 받으십시오.
이 칼은 맹로(孟勞) 라는 보검(寶劍) 입니다!
길이는 한자도 아니 되지만
애리 하기가 비할 데가 없습니다.
숙부(叔父)께서 이 맹로(孟勞) 잘 간직하시면
반드시 쓰일 때가 있을 겁니다.
계우는 노희공이 준 보검인 맹로(孟勞)를 품속에 잘 간직하고는
역(酈) 땅에 도착하여 거군(莒軍)의 진채 앞에서 고함을 지른다.
거자(莒子)와 공자 영나(贏拿) 야!
공자 경보(慶父)는 우리가 손수 처리하였거늘
너희가 무슨 공이 있다고 예물을 바라느냐?
너희 거(莒) 나라는 아무 계책도 없이
탐욕에만 눈이 어두워 있는 게 아니냐?
재상 계우(季友) 야, 뭔 소리를 하는 거냐?
우리가 함거에 실어 문수(汶水)에 버렸지 않았느냐.
우리가 넘겨주었기에 그래서 너희가
문수(汶水)에서 넘겨받지 않은 것이냐?
경보(慶父)를 넘겨주었는데도 약속한 사례를
왜 주지 않으려 발뺌만 하는 것이냐?
억지 소리하지 말고 어서 물러가라.
우리 노魯 나라와 한번 싸워 보자는 것이냐.
계우(季友) 야! 우리 거군(莒軍)을 이길 수 있겠느냐?
너희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우리 노(魯) 나라는 새 군주가 이제 보위에 올라
아직 국사(國事)가 안정되지 못하였노라.
영나(贏拿) 야! 너희와 싸워 승리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 민심이 크게 흔들릴 것이기에
나는 반드시 이겨야 하겠노라.
야, 이놈, 공자 영나(贏拿) 야!
너희나 우리나, 군사들이 무슨 죄가 있겠느냐.
너는 힘이 세어 씨름도 잘한다고 하더구나.
우리 서로 무기를 버리고 맨손으로 씨름하여
자웅(雌雄)을 겨뤄보면 어떻겠냐?
허 어. 씨름으로 겨뤄보자는 것이냐?
허 어, 좋다. 어서 덤벼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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