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열국지( 101∼200회)

제 109 화. 사문구 신발이 왜 있는가.

서 휴 2023. 5. 20. 16:25

109 . 사문구 신발이 왜 있는가.

 

석지분여(石之紛如)의 목이 잘려나가자, 따르던 시종들이 모두

흩어져 달아나버리니, 제양공을 지키는 시종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

 

      , 이궁(離宮)의 침실로 가자!

      둥그렇게 꽃무늬로 수놓은 장막을 걷어내라.

 

      아직도 비단 용포(龍袍)를 덮어쓰고 자고 있다니.

      혼군(昏君)의 모가지를 들어 올려 보아라.

 

      어어. 이놈은 혼군(昏君)이 아니다

      내시란 놈맹양(孟陽)이 누워있구나

      어서 끌어내라.

 

       샅샅이 뒤져 혼군(昏君)을 찾아내라.     

       연칭(連称) 장수님.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 횃불을 이리 가져와라.

       큰일이다, 빨리 찾아야 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제양공(齊襄公)은 침상에서 분명히

맨발로 걸어 나와 지게문 속에 숨었는데, 사문구(絲文屨) 신발

한 짝이 지게문 쪽으로 놓여있는 것이다.

 

       연칭(連称) 장수님. 지게문 난간 아래에

      사문구(絲文屨) 신발 한 짝이 있습니다.

 

      이쪽의 지게문 쪽으로 도망간 것 같습니다.

      양쪽의 지게문을 힘차게 젖혀봐라!

 

      장수님, 혼군(昏君)이 여기 있습니다.

      허 어, 혼군(昏君)이 혼자 쭈그리고 앉아있구나.

 

연칭은 지게문 안에서 제양공(齊襄公)의 뒷덜미를 잡고, 밖으로

끌어내자마자, 땅 바닥에 메다꽂고는 큰소리로 꾸짖는다.

 

      , 이 무도한 혼군(昏君)

      너는 해마다 쉴 새 없이 전쟁을 일으켜 백성들에게

      재앙을 안겨주었으니 이는 불인(不仁)을 저지른 죄이다.

 

      부친의 유명을 듣지 않고 공손무지(公孫無知)

      멀리하였으니, 이는 불효(不孝)라 할 것이다.

 

      오라비가 되어 누이와 서로 간음하면서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무례(無禮)라 할 것이다.

 

      먼 황량한 땅에 나가, 오랫동안 외적을 막는

      군사들의 노고(勞苦)를 생각지 아니하고,

 

      더구나 참외가 익으면 교대해 주겠다는

      과숙지약(瓜熟之約)을 어겼으니

      이것은 무신(無信)이라 할 것이다.

 

      (), (), (), (), 네 가지의 덕을

      모두 잃었으니 어찌 사람이라 하겠느냐

 

      네가 저지른 것처럼 오늘은 내가

      노환공(魯桓公)의 원수를 갚아 주리라

 

연칭의 말이 끝나자, 군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벌 떼처럼 달려들어

제양공의 사지(四肢)가 떨어져 나가도록 마구 칼질을 하였다.

 

연칭(連称)은 제양공(齊襄公)을 맹양(孟陽)과 함께, 가마니에 둘둘

말아서 지게문 밑에 묻어버리게 하였다.

 

        제양공은 비록 13년의 짧은 기간을 재위했지만,

        허약했던 나라를 천하의 강대한 나라로 키워냈다.

 

        연합군을 결성하여 위(), (), () 나라를

        정벌하였고, 주변의 나라를 병합하며 영토를 넓혔다.

 

또한, 8대에 걸쳐 원수로 지내던 기() 나라를 멸망시킴으로써

() 나라 조상의 오랜 염원을 해결하는 큰 업적도 남겼다.

 

       그러나, 황음무도(荒淫無道)하여, 여동생이자

       노환공(魯桓公)의 부인인 문강(文姜)과 간통하면서,

 

       이복동생인 팽생(彭生)을 시켜 노환공(魯桓公)

       모시고 가다가 수레 안에서 모살(謀殺)시켰으며,

 

       그 죄를 모두 팽생(彭生)에게 덮어씌워 죽였다.

       그때부터 민심을 크게 잃기 시작했다.

 

       이처럼 짧은 기간에 많은 업적을 쌓았으나

       성실하지 못한 행동으로 민심을 잃음으로써

       결국, 연칭(連称)의 칼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이때가 제양공은 13년이며, 주장왕(周莊王) 11년으로

       기원전 686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제양공을 시해한 연칭과 관지보는 규구(葵邱) 땅에 같이 파견(派遣)

나갔던 군사를 재정비하여, 공손무지를 군위에 올려 세우기 위해

도성인 임치(臨淄)로 진격하였다.

 

       연칭(連称) 장수. 한 가지 물어보겠소이다.

       관지보(管至父) 장수. 말해보시오.

 

       제양공의 사문구(絲文屨) 신발 한 짝이

       어찌하여 지게문 앞에 떨어져 있었겠소?

 

       낮에 사냥터에서 커다란 멧돼지가 분명히

       덥석 물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말하던데

 

       글쎄요. 나도 그 점이 알 수 없소이다.

       한 짝은 분명 침상 곁에 있었소이다.

 

       억울하게 죽은 팽생(彭生)의 소행이 분명한가 보오.

       죽어서라도 원한을 갚겠다. 라고 크게 소리치며

       끌려가던 팽생(彭生)의 말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팽생(彭生)이 커다란 멧돼지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니

       이는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오

 

       제양공이 저지른 악행이 가득 차 넘치니, 하늘이

        팽생(彭生)의 혼을 앞세워 벌을 내린 게 아니겠소!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소.

       천벌(天罰)은 참으로 무서운가 봅니다.

 

공손무지는 연칭이 벌이는 반란이 실패할 수 있다면서 겁을 내어

숨어 있다가, 이들이 제양공을 죽이고 임치(臨淄)로 오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재빨리 임치(臨淄) 성문으로 쫓아갔으며

기다리고 있다가 두 장수를 반갑게 성안으로 맞아들였다.

 

        고생들 많았소. 어서들 오시 오.

        공손(公孫)께서 직접 마중 나오시다니 고맙사옵니다.

 

        제양공은 사냥하다가 죽었나이다.

        선군이신 제희공(齊僖公)의 유명에 따라

         공손(公孫)을 주군으로 모시겠나이다.

 

연칭과 관지보가 공손무지를 제() 나라 군위에 올려 세우게 되자,

공손무지는 연칭(連称)의 누이인 연빈(連嬪)과 약속한 대로 그녀를

정실부인(正室夫人)으로 맞이하였다.

 

이에 따라 연칭은 정경(正卿)이 되면서 국구(國舅)라 불리게 되고,

관지보는 아경(亞卿) 벼슬을 하면서 둘은 국정을 안정시켜 나갔다.

 

       주공, 신 옹름(雍廩) 이옵니다.

       신이 재삼 머리를 조아리오며

       옛날에 논쟁하였던 죄를 사죄하나이다.

 

       허 어. 이미 다 지나간 일이오.

       그대 옹름(雍廩)과 동곽아(東廓牙)

       기존의 대부들은 대부의 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충신이 되어주시오.

       주공, 너무나 황감(惶感)하나이다.

 

옛날 제양공과 옹름(雍廩)이 사람의 도리를 논의하고 있을 때

갑자기 공손무지가 뛰어들어 엉뚱한 다른 말을 꺼내자, 제양공이

불쾌하게 생각하며 핍박을 가한 일이 있었다.

 

       옹름(雍廩)의 입장에서는 굳이 사과할 일이

       아니었으나, 혹여 해를 당할까 염려하여,

       애써 사죄하며 용서를 빌었던 것이다.

 

이처럼 공손무지는 옹름(雍廩) 뿐만 아니라 조정의 신료들에게도

작은 잘못도 너그럽게 용서하고 아량을 베풀며 국정을 돕도록

독려하였으나, 신료들은 존중하지 않았으므로, 조례에 참석해도

모두 굳게 입을 다물고 있으면서 정견(政見)을 말하지 않았다.

 

        더욱이 원로대신으로 존경받는 고호(高虎)

        국의중(國懿仲)은 병을 핑계 삼으면서

        조당(朝堂)에 입조(入朝)하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다.

 

그간 국정을 운영하던 신료들은 공손무지와 연칭과 관지보가

그렇게 반란을 일으켜 가면서까지 무리하게 제양공(齊襄公)

죽였다는 사실에 동조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반감을 품고 있었다.

 

       이는 연칭(連称)과 관지보(管至父)가 중신들과

       아무런 상의 없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이며

 

       제양공(齊襄公)이 신료들에게 잘 하였으므로

       반란까지 일으켜 죽일 것까지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원로대신의 추천을 받지도 않았으면서

       자기들 마음대로 정경(正卿)과 아경(亞卿) 벼슬을

       한다는 것은 위계질서를 무시한 것이라 생각했다.

 

공손무지 또한 성품이 단순하여, 평소 신료들과 두터운 신뢰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이런 상황을 쉽게 수습할 능력이 없었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원로대신 고호(高虎)와 국의중(國懿仲)

       병이 났다고 조정에 나오지 않는단 말인가

 

       주공, 그러하옵니다.

       노신들이야! 안 나와도 어쩌지 못하겠으나?

       허 어, 나라 경영을 어찌하면 좋겠다는 것이오

 

       주공, 신 연칭(連称) 이옵니다.

       ()을 붙여 널리 현자를 초빙하게 되면

       백성들의 신망을 얻을 수 있사옵니다.

 

       좋은 방법이오.

       어서, 나라 곳곳에 방()을 붙이도록 하시오.

 

       주공, 신 관지보(管至父) 이옵니다.

       저의 관씨(管氏) 집안의 관이오(管夷吾)

       재주가 뛰어나오니 부르시옵길 바라나이다.

 

       관이오(管夷吾)가 어떤 사람이오?

       그는 지략이 뛰어나다고 널리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만한 인재가 있었소? 그렇다면

       어서 관이오(管夷吾)를 부르도록 하시오

 

 110 때를 기다릴 줄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