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8 화. 묵은 원한을 풀어라.

제 88 화. 묵은 원한을 풀어라. 

 

곡구(谷邱) 땅에서 송(宋), 연(燕), 노(魯). 세 나라가 회맹을 하고

난후에 노환공(魯桓公)은 귀국하였으며, 그해 가을부터 겨울까지

송장공(宋莊公)에게서 아무런 기별을 받지 못했다.

 

이에 노환공(魯桓公)은 정(鄭) 나라 문제가 원만히 해결된 줄로

알고 안심하고 있다가, 그러던 중에 갑자기 정(鄭) 나라 사신이

또다시 찾아와 하소연하는 일이 생겼다.

 

      노후(魯侯) 님, 안녕하시온지요？

      정(鄭) 나라 대부 옹규(雍糾) 이옵니다.

 

      어허. 그 일로 또 찾아온 것이오?

      죄송하오나 그러하나이다.

 

      송장공이 상이(商彝)와 대정(大鼎)을

      모두 가지고 가고서도, 나머지 재물과

      세 성을 바치라고 난리이옵니다.

 

      허 참. 그만하면 되었을 터인데！

      어찌하여 그리 심하게 구는 것인가?

      거참, 송장공(宋莊公)의 욕심이 지나치도다！

 

      알겠소. 돌아가 기다려 보시 오！

      내 송장공(宋莊公)을 다시 만나보리다！

 

노환공은 송장공에게 11월 보름에 허구(虛龜) 땅에서 만날 것을

청하여 그곳에서 정(鄭) 나라 문제를 마무리 지으려고 하였다.

 

허구(許龜)는 현 산동성(山東省) 남쪽인 임기시(臨沂市) 서쪽으로 

20킬로 지점의 마장향(馬庄鄕)을 말한다.

 

      허구(虛龜) 땅에서 하루가 지났도다！

      송공(宋公)은 왜 오지 않는가?

 

      노후(魯侯)께선 안녕하시온지요?

      송(宋) 나라 공자 유(游) 이옵니다.

 

      국내, 문제가 있어 신이 대신 왔사옵니다.

      그래 사자는 어서 말해보라！

 

      송(宋)과 정(鄭). 두 나라가 맺은 약속에 대하여

      더는 관여하지 말라는 말씀을 전하라 하셨사옵니다.

 

      방금, 사자는 뭐라고 말했는가?

      한낱 필부(匹夫) 라도 탐욕으로 신의가 없으면

      장래가 걱정스럽다고 하였거늘

 

      하물며 챙길 걸 다 챙기면서 턱도 없는 욕심을 내다니！

      한나라의 군주 된 자가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른 노환공(魯桓公)은 즉시 수레를 몰고

가면서 무보(武父) 땅에서 정려공(鄭厲公)에 만나자고 통지하였다.

이 일에 대하여 염옹(髥翁)이 시로써 읊은 것이 있다.

 

      逐忽弑隱幷元凶 (축홀시은병원흉)

      홀을 쫓아낸 정려공이나, 노은공을 시해한 노환공이나

      모두 흉악한 임금들인데

 

      同惡相求意自濃 (동악상구의자농)

      악을 같이 행하고 서로 돕자고 하니

      저지른 죄악이 저절로 짙어지는구나.

 

      只爲宋庄貪詐甚 (지위송장탐사심)

      송장공이 오로지 탐욕에 눈이 멀어

      남을 속이기를 심하게 하니

 

      致令魯鄭起兵鋒 (치령노정기병봉)

      결국은 노와 정 두 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전쟁이 일어나는구나.

 

노환공(魯桓公)은 무보(武父) 땅에서 정려공(鄭厲公)을 만나자마자, 

함께 송(宋) 나라를 침공하기로 맹약을 맺게 된다.

 

      턱도 없는 욕심이 전쟁(戰爭)을 일으키고 있소！

      우리 노(魯)와 정(鄭0이 함께 군사를 일으켜

      저 송(宋) 나라 재물(財物)을 몽땅 빼앗아 버립시다！

 

그해 12월이 되자, 노환공(魯桓公)은 병거(兵車) 3백 승을 이끌고,

정려공(鄭厲公)과 함께 송(宋) 나라 수도인 수양성(睢陽城)을

향하여 물밀 듯이 쳐들어갔다.

 

      노환공(魯桓公)이 몹시 화를 내며 돌아갔다고 하였느냐?

      주공, 그러하옵니다.

 

      남의 일에 괜히 개입하여 생색을 내려 하다니

      어쩔 수 없는 일이로다！

 

송장공(宋莊公)은 노환공(魯桓公)이 화를 내며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제는 노환공(魯桓公)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가만있자！ 이러나저러나 우리 편이 하나도 없잖은가?

      그렇다！ 이참에 제(齊) 나라와 동맹을 맺어보자！

 

      제희공(齊喜公)은 세자 홀(忽) 인 정소공(鄭昭公)을

      정려공(鄭厲公)이 몰아냈다 하여 몹시 싫어한다니

      제(齊) 나라와 맹약(盟約)을 맺어 만약을 대비하리라！

 

      공자 유(游)는 제(齊)나라로 빨리 가거라！

      제희공(齊喜公)과 우호조약을 빨리 맺어야 한다.

 

이때 송장공(宋莊公)에게는 똑똑한 아들 공자 어설(御說)이 있었다.

여기에서 노(魯) 나라의 공자 유(柔)와 송(宋) 나라 공자 유(游)를

혼동하여서는 안 된다. 서로 다른 사람이다.

     

송장공(宋莊公)은 맹약을 맺기 위하여, 공자 유(游)를 제(齊) 나라에

보냈으나, 사신으로 간 공자 유(游)가 돌아오기 전에, 국경의

관리가 급하게 쫓아와 송장공(宋莊公)에게 고하는 일이 발생한다.

 

      주공, 노(魯)와 정(鄭)의 군사가 공격해오고 있사옵니다.

      주공, 그 기세가 매우 사납습니다！

      주공, 머지않아 이곳 수양성(睢陽城)에 당도하겠나이다.

 

      아니. 그렇게 빨리 온단 말이냐?

      아바마마. 신 공자 어설(御說) 이옵니다.

      군사들은 명분에 따라 강하고 약해집니다.

 

      우리 송(宋) 나라가 정(鄭) 나라의 재물을 탐하였고

      노(魯) 나라의 호의를 저버리다가 생긴 일이옵니다.

 

      이는 모두 탐욕으로 생긴 일이 되옵니다.

      차라리 죄를 청하여 싸움을 피하며

      군사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상책일 것입니다.

 

      주공, 소장 남궁장만(南宮長萬)이요！

      적군이 성 밑에까지 쳐들어왔는데

 

      화살 하나도 쏴보지 못하고 허약함을 보여준다면

      어찌 나라를 지킨다고 할 수 있겠소이까?

 

      주공, 신 화독(華督)도 남궁장만(南宮長萬)의 말이

      옳다고 생각되오니, 이제는 힘차게 싸워야 하옵니다.

 

      모두 옳은 말이로다！

      남궁장만(南宮長萬)은 정(鄭)과 노(魯)의 연합군을

      가차 없이 섬멸시키도록 하라！

 

남궁장만(南宮長萬)은 맹획(猛獲)을 선봉장으로 삼아 병거(兵車) 

300승을 이끌고 송군을 양대(兩隊)로 나누어 수양성을 나선다.

 

      송후(宋侯)는 어디 있느냐?

      송후(宋侯)는 아주 경우를 모르는 자로구나！

      송후(宋侯) 야. 얼굴 좀 보자！

      부끄러워 숨지 말고 앞으로 나오너라！

 

송(宋) 나라 남궁장만(南宮長萬)은 노(魯)와 정(鄭)이 놀리는 소리를

들으며, 화려하게 수놓아 비단 덮개가 바람결에 휘날리는 두 대의

수레를 가리키며 맹획(孟獲)에 명령한다.

 

      맹획(孟獲) 아！ 오늘 같은 날 공을 세우지 못하면

      언제 이런 좋은 기회를 만날 수가 있겠느냐?

      저 두 군주의 수레를 무자비하게 쳐부숴 버려라！

 

맹획(孟獲)이 병거兵車 위에 올라서서 창날이 길며 번쩍거리고

어지럽게 빛나는 혼철점강모(渾鐵點鋼矛)를 손에 꼬나 들고,

힘차게 휘두르면서 용맹하게 돌진하며 쳐들어간다.

 

맹획(孟獲)이 달려들자, 두 나라 군주가 탄 두 대의 수레는 뒤로

물러나며, 양옆에서 장수 두 사람이 앞으로 나와 맞대응한다.

 

      멈추어라！ 너는 누구냐?

      나는 송(宋) 나라의 선봉장 맹획(孟獲) 이다！

      앞서나오는 자는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나는 정(鄭) 나라 상장(上將) 원번(原繁) 이다.

      맹획(孟獲) 이라고 하였느냐?

 

      그렇다！ 나는 송(宋) 나라 선봉장 맹획(孟獲) 이다

      너의 이름은 들어보지도 못하였노라.

      무명소졸(無名小卒)에게 어찌 칼을 더럽히랴！

 

      너는 어서 썩 물러가라！

      돌아가 너의 남궁장만(南宮長萬)을 나오게 하라！

      우리 장수를 만나기 전에 네 놈의 목부터 내놓아라！

 

맹획(孟獲)이 크게 화를 내며 혼철점강모(渾鐵點鋼矛)를 꼬나 잡고

달려드니, 원번(原繁)은 큰 칼을 휘두르며 맹렬 차게 싸우게 된다.

 

노(魯) 나라 공자 익(溺)이 두 장수의 싸움을 보고 있는 그때

그의 휘하(麾下) 군사 중에 용맹한 철엽반(鐵葉般)이 뛰어나온다.

 

      공자 익(溺) 임！ 나아가 싸우겠습니다！

      오, 철엽반(鐵葉般) 장수인가?

      좋다. 어서 앞으로 나아가라！

 

정(鄭) 나라 상장(上將) 원번(原繁)과 노(魯) 나라 철엽반(鐵葉般)이

둘이서 맹획(孟獲)에게 달려드는데도 맹획(孟獲)은 조금도 지치지

않으며 맹렬하게 싸우니 오히려 두 장수가 몰리게 된다.

 

      와 아. 저런 놈이 다 있었구나！

      노(魯) 나라 진자(秦子)와 양자(梁子) 형제도 나가보아라.

      정(鄭) 나라 단백(檀伯) 도 나가보아라！

 

맹획(孟獲)은 다섯 장수가 달려드니 힘이 달려 고전하는데, 이때

양자(梁子)가 활을 쏘아 맹획(孟獲)의 오른팔을 맞춰버렸다.

 

      어느 놈이 비겁하게 활을 쏘았느냐?

      맹획(孟獲)！ 이놈아 꼼짝 마라！

 

맹획(孟獲)은 화살을 맞아 혼철점강모(渾鐵點鋼矛)를 떨어트리게

되어 붙들려 포로가 되니, 맹획(孟獲)이 거느린 병거(兵車)와

군사들도 모두 사로잡히어 함께 포로가 되고 말았다.

 

맹획(猛獲)과 그 부하들이 사로잡히자, 송군(宋軍)은 기가 죽었으며,

노(魯)와 정(鄭) 나라 연합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다.

 

      맹획(孟獲)이 사로잡혀 선봉 부대가 패하였다고 하였느냐?

      맹획(孟獲)을 구하지 않고는 절대 돌아가지 않으리라！

 

      아들 남궁우(南宮牛)야！ 너는 병거兵車 30승을 이끌고

      나아가 싸움을 걸고 열심히 싸우다가 패하는 척하면서

      적군을 서문 쪽으로 쫓아오게 유인하여라！

      네. 아버님！ 명심하겠습니다！

 

제 89 화. 서로 물러서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