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 열국지( 001∼94회 )

제 70 화. 어느 신부를 택할까.

서 휴 2023. 4. 5. 16:21

70 . 어느 신부를 택할까.

 

        아바마마, 잘 다녀왔사옵니다.

        () 나라 소식은 잘 들었다.

 

        아무리 연회장(宴會場) 이라 하지만

        논공(論功) 서열(序列)은 분명히 있는 법이다.

 

        () 나라와 혼사가 깨진 것이 아쉽긴 하나?

        크게 마음 쓰지 말도록 하라

 

        이 넓은 천지에 어찌 좋은 혼처가 없겠는가

        그래, 그동안 고생하였구나들어가 쉬어라.

 

정장공(鄭莊公)은 대범하게 혼사문제를 넘겼으나, 옆에서 듣고 있던

상경 제족(祭足) 만은 심상치 않게 여기며 고거미(高渠彌)를 만난다.

 

        고거미 장수세자께서 제()와의 관계를

        소원(疏遠) 하게 만들다니 너무 안타깝구려

 

        세자께서 제() 나라와 혼인을 맺는다면

        어려울 때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터인데

 

        ()가 싫다고 하였더라도 오히려 우리 편에서

        서둘러 혼인을 맺어야 할 판이었잖소

 

        어째서 굴러들어온 복을 차버렸는지 알 수 없구려?

        고거미 장수 어찌 달아주려는 날개를

        그리 쉽게 포기할 수 있더란 말이오?

 

        고거미(高渠彌) 장수는 세자를 잘 수행하거늘,

        어찌하여 성사되도록 간하지 않았소?

        허 어, 내가 적극적으로 권하여 보았소이다

 

        고거미 장수는 세자와 그리 가까이 지내면서도

        설득을 못 시켰다니 정말 알 수 없구려.

    

        허 어, 내 참 내가 여러 번 말씀을 올렸지만

        들어주지 않으니 어쩌란 말이오?

        제족(祭足)은 나에게 더는 말하지 마시오

 

        만약, () 라는 동맹을 잃게 되면,

        우리 앞날에 큰 어지러움이 따를 수 있소

 

제족(祭足)은 고거미(高渠彌)를 불러, 세자 홀()이 제희공의

청혼을 거절하게 된 내용을 다 듣고서는 길게 탄식하였다.

이에 염옹(髥翁)이 시를 지어 이 혼사 문제를 논하였다.

 

        丈夫作事有剛柔 (장부작사유강유)

        장부가 일을 도모함에 강함과 유연함을 겸해야 하거늘

 

        未必辭婚便失謀 (미필사혼편실모)

        끝까지 혼사를 거절함은 한편으론 지혜가 없는 짓이리라.

 

이 시는 시경(詩經)의 국풍(國風) 중에서 제풍(齊風) 편에 전문이

실려있다.

 

제족(祭足)은 고거미(高渠彌)가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자, 자기가

너무 심한 말을 하지 않았나, 생각하면서 위로하며 염려한다는

것이 그만 자기도 모르게 큰 실수를 저지르는 말을 하고 말았다.

 

        너무 실망하지 마시오

        주공의 똑똑한 아들이 셋이나 더 있소이다

        앞으로 공자들끼리 어지러움을 가져올까 걱정되오

 

        세자의 동생인 돌(). (). (). 세 공자가

        이들 모두 보위를 넘보고 있는 것 같소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오!

 

고거미는 제족(祭足)의 예언 섞인 탄식이 무슨 뜻인지 처음에는

몰랐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고는 커다란 희망을 품게 된다.

 

       큰 어지러움이 무엇인가?

       군위 계승 다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세자 홀()의 지위는 위태로워지고,

       미() 공자에게도 기회가 올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고거미는 세자 홀()이 자기 말을 잘 들어주지 않아 몹시 섭섭하게

생각하며 지내고 있을 때, 공자 미()가 선물을 보내 주는 등으로 

환심을 사려 애를 쓰면서 계속 접근해 오고 있었다.

 

        고거미도 평소 자기에게 잘해주는 공자 미()

        진작부터 괜찮은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으며

        서로 자주 내왕하고 있는 사이가 되었다.

 

       고거미와 공자 미()는 더욱 가까이 접근하며,

       의미심장한 말을 주고받기도 하는데,

       이 사실이 세자 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

 

세자 홀()은 고거미를 욕심이 많고, 성격도 거칠고 사납다며,

이상하게도 싫어하면서 가까이하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었다.

 

        아바마마. 고거미(高渠彌)가 이상합니다.

        왜 무슨 일이 있느냐?

 

        공자 미()와 내통하며 빈번히 오간다는데

        무슨 일을 꾸미는지 알 수가 없사옵니다

 

정장공(鄭莊公)은 마침 조례가 끝나려는 무렵에 세자 홀()에게

들은 이야기를 고거미(高渠彌)를 불러 세우며 물어보게 되었다.

 

        고거미(高渠彌) 아경(亞卿)은 요즘 무슨 일이 있는가?

        주공. 무슨 말씀이신지요?

 

        공자 미()와 빈번히 만나며 오간다는데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건가?

 

        아니옵니다. 아무 일도 없사옵니다

        궁에는 왜 자주 드나드는가?

 

        의심받을 행동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앞으로 행동거지를 조심하도록 하라

 

고거미(高渠彌)는 많은 신료 앞에서 정장공(鄭莊公)에게 면박을

당하고 나오자, 세자 홀()이 이 일을 고해바쳤을 것으로 짐작하며

몹시 기분이 상해져 있었다. 그때 공자 미()가 웃으며 찾아온다.

 

        () 공자는 나를 어찌 생각하시오?

        아경(亞卿)께선 주공한테서 면박당하셨다면서요?

 

        아니, 그걸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그 정도 야다 들어 알고 있지요

 

        세자 때문에 생긴 일입니까

        앞으로, 아경(亞卿)께선 세자 형님과 잘 지내십시오

 

        지난번 공자 려()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주공께서는 고() 대부에게 상경(上卿) 벼슬을

        내리려 하였으나, 세자 형님이 반대하였답니다

 

        이 고거미가 세자께 잘못한 바가 하나도 없는데

        세자는 나를 왜 자꾸 싫어하는 것이오?

 

        글쎄요? 글 쌔 말입니다

        () 공자 이젠 자주 뵙지도 못하겠습니다.

 

        주공께서 말씀하시는 의도를 보게 되면

        이제 우리 두 사람 사이까지 끊으려 하고 있소

 

        주공이 살아 있는데도 이러한데, 만일이라도

        주공이 세상을 떠나시면 우리가 무사할 수 있겠소?

 

        세자 형님은 우유부단하여 해치지 못할 것이므로

        아경(亞卿)께선 너무 염려치 않아도 될 것입니다.

 

        강직하고 포용력이 없는 세자보다는

        오히려 돌() 형님이 더 걱정됩니다.

 

        으음, 맞는 말이오

        () 공자가 제일 똑똑하며, 주공께서도 인정하지요.

 

고거미 세자 홀()에게 아무런 희망을 걸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되었으며, 그로부터 둘 사이는 더욱 벌어졌다.

 

제족(祭足)은 고거미(高渠彌)와 공자 미()와의 사정을 그리 크게

보지않으면서, 자기 나름대로 세자 홀()에게 탄탄한 기반을

구축해 주려고 혼자서 골몰하며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공자들이 비록 형제간이라 하지만

        이런 상태라면 단합하기가 어렵겠구나

 

        잘못하다간 우리 정() 나라 공실에

        큰 혼란이 생길 수도 있겠도다

 

        가장 믿음직한 동맹국은 제() 나라였으나,

        강직한 세자 홀()의 성격으로 인하여

        서로 믿고 지내기가 힘들게 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어느 나라가 좋겠는가?

        이제는 어쩔 수 없도다작은 나라라하지만

        가까운 진()과 위()와의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상경 제족(祭足)은 세자 홀()이 순수한 마음으로 고지식하게

살아가려는 의지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혼자서 미리 걱정하게

되었으며, 앞으로 어려운 일을 당하였을 때를 염려하면서

부지런히 세자 홀()을 찾아가 의논한다.

 

        세자마마. ()와 진()은 우리와 가까운 나라이며

        우리와 서로 우호 관계를 맺고 있는 바이므로,

        앞으로 한 형제처럼 잘 지내셔야 하옵니다

 

        더 나아가 만약에 혼인까지 맺게 된다면

        솥발 같은 세(鼎足之勢 정족지세)를 이루어

        세자의 위치를 더욱 굳건히 할 수 있습니다.

 

정족지세(鼎足之勢)는 솥 정, 발 족, 갈 지, 기세 세

솥의 세 발처럼 서로 믿고 밀어주는 형세를 말한다.

 

        진환공(陳桓公)에게는 어여쁜 따님이 있사온데

        세자께옵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나라라면 어울리겠습니다

        상경께서 힘을 써 보시지요?

 

제족(祭足)은 세자 홀()의 의중을 물어보고 난 후에 정장공을

찾아가 의논하게 되었다.

 

        주공.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 제족(祭足), 어서 말해 보시 오.

 

        그동안 내왕이 뜸하였던 위선공(衛宣公)

        진환공(陳桓公)에게 사신을 보내시어

        굳건한 동맹을 더욱 강화하셔야 하옵니다

 

        상경(上卿) 제족(祭足)이 아니었다면 잊을 뻔 하였소

        주공, 진환공(陳桓公)에게 어여쁜 따님이 있사온데

        세자와 연을 맺어주시면 어떠실는지요?

 

        좋소, 상경은 그렇게 되도록 해보시오

        () 나라는 상경(上卿)이 직접 다녀오시오.

 

제족(祭足)은 구혼사절을 이끌고 진() 나라에 직접 찾아갔으며,

청을 받은 진환공(陳桓公)도 이를 흔쾌히 승낙하게 되었으므로,

세자 홀()() 나라의 규씨(嬀氏)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로써 정() 나라는 위(),()과 유대를 강화하였다.

 

71 . 비련의 사랑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