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9 화. 선연과 악연이 있는가.

제 69 화. 선연과 악연이 있는가.

 

축담(祝聃)의 부대가 맹공을 퍼부으며 뒤쫓아 가자, 북융(北戎)은

숱하게 목이 달아나고 잡혀가면서, 겨우 작산(鵲山)에 도착했다.

 

       소량(小良) 장수 여기가 어디인가?

       대량(大良) 임, 작산(鵲山) 이라는 곳입니다.

 

       어휴, 이제 쫓아오지 않는구나！

       자, 온종일 굶었잖느냐?

       여기서 밥 좀 해 먹고 떠나자?

 

북융(北戎)은 멀리 작산(鵲山) 땅까지 도망쳐와 뒤늦게 밥을 먹으려

거의 준비하며 밥이 다 익어갈 무렵에, 이때 또 숲이 크게 흔들리며

북소리와 함성이 떠나갈 듯 울리면서, 정군(鄭軍)이 덮쳐왔다.

 

       내가 정(鄭) 나라 고거미(高渠彌) 장수다！

       살고 싶으면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어라.

 

커다란 얼굴에 머리칼과 수염이 고슴도치처럼 치솟고, 왕방울만

눈 방울에 큰 덩치를 가진 고거미(高渠彌)는 쳐다만 봐도 질린다.

 

고거미(高渠彌)가 창을 휘두르며 쫓아가자, 이때 겁 없이 달려들던

북융의 장수 소량(小良)과 원수 대량(大良)의 목이 잘려 나갔다,

 

       뒤쫓아 온 세자 홀(忽)의 부대와 공자 원(元)의

       부대까지 합세하여, 북융(北戎)의 1만의 용사들을

       거의 전멸시키는 큰 전과를 올리게 되었다.

 

제(齊)와 정(鄭)의 연합군이 북융(北戎)을 한참 섬멸시키면서,

전쟁이 끝날 무렵이 되자, 뒤늦게 도착한 노(魯), 위(衛)의 구원군은

이 모습을 보고는 전투에 참여하지 못한 걸 크게 부끄러워했다.

 

       제후(齊侯)님, 정(鄭) 나라 세자 홀(忽) 이옵니다.

       대량(大良)과 소량(小良)의 수급과

       생포한 포로와 전리품을 모두 받으시옵소서！

 

       세자가 아니었다면 저 많은 북융(北戎)을

       어찌 이리 쉽게 물리칠 수 있었겠소?

 

       정(鄭) 나라 세자 홀(忽)은 과연 영웅이오！

       우리 제(齊) 나라를 안정시키는데

       그대, 홀(忽) 세자의 공(功)이 너무나 컸도다！

 

       작은 공(功)을 세웠을 뿐이 온대

       제후(齊侯)께서는 너무 과찬의 말씀을 하시나이다.

 

사로잡은 북융(北戎)의 갑병(甲兵)은 삼백 명에 불과했으나, 싸움

중에 죽인 북융(北戎)의 융사(勇士)의 숫자는 셀 수가 없었다.

 

제희공(齊僖公)은 승전에 대한 연회를 성대하게 베풀어 주면서, 

정(鄭) 나라의 세자 홀(忽)과 고거미(高渠彌) 장수와 축담(祝聃) 

장수를 맨 먼저 부르면서, 또한 노환공(魯桓公)과 공자 휘(翬)와

더불어 위선공(衛宣公)도 정중히 초청하였다.

 

       주최자인 이 제백(齊伯)이 먼저 말하겠소이다！

       북융(北戎)！ 저 오랑캐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여러분께서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먼저 노후(魯侯)께서 자리 배치를 하여 주시지요?

       허 어, 아닙니다！

       주인이신 제후(齊侯)께서 하시면 될 일입니다.

 

       허 나, 작위가 제일 높은 공작(公爵)이시니

       예의상 자리 배치를 하여보시지요?

 

       허 허, 여러분에게 실례가 될지 걱정입니다.

       제희공께서는 주인이므로 상석인 중앙에 앉으십시오.

 

       자, 이제는 왕실 예법으로 순서를 정하겠습니다.

       오작(五爵)의 순서대로 앉으시면 되겠습니다！

 

오작(五爵)이란 왕실에서 제후들에게 내린 다섯 가지 등급으로,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을 말하는 것이다.

 

노환공(魯桓公)은 이번 전쟁에서 공로가 없다는 걸 전혀 생각지

않고, 왕실의 예(禮)에 따라 오작(五爵)의 순서대로 정해 버리니, 

정(鄭) 나라는 백작(伯爵)인지라 맨 끝자락에 앉게 되었다.

 

       세자께옵서는 분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제일 먼저 달려와 피 흘리며 공을 세웠는데

       아무 공도 없는 노(魯)와 위(衛)를 더 우대하다니요?

 

       이번에 두 나라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불공평한 처사가 어디에 있습니까?

       제희공(齊僖公)은 예(禮)를 중시하지 않는 거 같소?

 

불평하는 고거미(高渠彌)의 말과 같이 가장 말석에 앉게 된

세자 홀(忽)은 여간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었으나, 그러나

제희공(齊僖公)은 이러한 분위기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다.

 

      성대한 잔치 자리는 술이 서너 순배 돌면서

      분위기가 무르익게 되자, 제희공(齊僖公)은

      노(魯), 위(衛), 정(鄭) 나라를 차례대로 위로한다.

 

제희공(齊僖公)의 여러 딸 중에서 특히 선강(宣姜)과 문강(文姜)은

천하절색(天下絶色) 이면서, 춘추시대에 가장 많이 회자(膾炙) 된다.

 

       선강(宣姜)은 위선공(衛宣公) 부인이 되었으며

       동생 문강(文姜)은 가을 물같이 생기롭고,

       흡사 부용(芙蓉) 꽃처럼 아름다웠다.

 

연회장의 술이 몇 순배를 돌자, 술이 오른 제희공은 기분이 몹시

좋아져 세자 홀(忽)을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어 하였다.

이에 가까이 다가가 기쁜 얼굴로 잔을 권하며 말을 걸었다.

 

       세자는 이번 전쟁의 영웅이 시 오!

       세자로 인하여 큰 위험을 벗어날 수 있었소!

 

       어떻소? 내게 못난 여식(女息)이 있는바

       홀(忽) 세자가 거두어 주면 고맙겠소！

 

       제후(齊侯)임, 고맙사옵니다！ 

       하오나 제후(齊侯)께서 제안하시는 바는

       너무 과분 하와 답을 드릴 수 없사옵니다.

 

이때 세자 홀(忽)이 기분이 좋았더라면 제희공(齊僖公)의 제안에

흔쾌히 답을 했을 것이나, 그때의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고마우신 말씀을 하시오나?

       백작의 나라에 불과한 정(鄭) 나라가 어찌

       후작의 나라와 혼사를 말할 수 있겠나이까?

 

당연히 승낙할 것으로 기대했던 제희공은 세자 홀(忽)이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하자, 뜻밖이라는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세자 홀(忽)의 비꼬는 말에 그제야 제희공은 자리 배치에 불만이

있다는 걸 눈치챘으나, 이미 그때는 연회가 끝나는 판국이었다.

 

       조용히 이중년(夷仲年)을 들라 하라!

       주공, 형님 부르셨습니까?

 

       정(鄭) 나라 세자 홀(忽)을 사위로 삼고 싶은데

       어찌하면 좋겠는가?

       형님, 제가 성사하게 시키겠습니다.

 

세자 홀(忽)을 마음 들어 하던 제희공(齊僖公)은 놓치기 아까워,

동생 이중년(夷仲年)에게 말하자, 그는 고거미(高渠彌)를 찾아갔다.

 

       우리 주공께서 세자 홀(忽)의 영웅다운 모습을

       흠모(欽慕) 하시어 혼인을 꼭 맺고자 하십니다.

 

       지난번에도 사신을 보냈으나 허락지 않았으며,

       이번엔 직접 말씀을 하시어도 허락이 없소이다.

 

       고거미(高渠彌) 대부께서 이 일을 만들어낸다면

       하얀 옥구슬 두 쌍과 황금 1백 량을 드리겠소！

 

고거미(高渠彌)는 세자 홀(忽)에게 제희공(齊僖公)의 뜻을 정중하게

전하며, 혼인 맺기를 간곡히 요청하였다.

 

       세자마마. 제(齊) 나라는 큰 울타리가 될 것이므로,

       어려울 때 큰 나라의 도움을 받을 수 있사오니

       제희공(齊僖公)의 뜻을 받아들이십시오.

 

       고(高) 장수. 이제 공을 세우게 된 바이오！ 

       지난날 아무 일이 없을 때도 거절하였는데

       이번에 공을 세웠다 하여 혼인을 맺는다면

       사람들의 비난이 따르게 될 것이 아니겠소?

 

       세자마마. 좋은 일에 누가 비난하겠습니까?

       이번 일은 좋은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이오니

       물리치기에 너무나 아까운 자리가 됩니다.

 

       알고 있으니 너무 권하지 마시오！

       처가에 기대어 살고 싶지는 않소이다！

 

고거미(高渠彌)는 세자 홀(忽)의 강직한 성품을 잘 알기에, 더욱

권하면서 어떻게 하든 이해시켜, 혼인을 성사 시키려 애를 썼으나

끝내 들어주지 않자, 마음 속으로 섭섭한 감정을 갖게 된다.

 

       고거미高渠彌 장수, 어떻게 되었소?

       내 말을 듣지 않소이다.

 

       더는 권할 수가 없었소이다！

       참 안타깝구려.

 

       우리 제후齊侯께서 꼭 사위로 삼으려 하십니다.

       너무 마음에 들어 하시니 성사 시켜야 합니다.

 

       미안합니다. 이중년夷仲年 장수！

       우리 주공께서도 세자의 성미를 잘 알고 있소이다.

       세자는 한번 마음먹으면 바꾸질 않소이다.

 

이중년은 고거미의 말을 듣고 나자, 다음날 직접, 세자 홀忽을

찾아갔으나, 세자 홀은 끝내 고개를 저으며 승낙하지 않는 것이다.

 

       부모가 계시온데 제 마음대로

       혼사를 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만 이제 본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중년(夷仲年)의 말을 다 듣고 난 제희공은, 자존심이 몹시 상하여

크게 화를 내게 되었으며, 세자 홀(忽)은 큰 공을 세우고도, 

 

너그럽게 참아내지 못한 작은 기분 하나로, 제희공의 미움을 사게

되면서 정(鄭)과 제(齊)의 관계도, 이로 인하여 소원해지게 되었다.

 

       내 여식이 허물도 없거니와

       남들은 재원(才媛)이라 칭찬하는데

       세상에 신랑감이 저 세자 홀(忽) 뿐이겠는가?

 

       연회장의 자리 배치도 그렇지 않은가?

       공로로 봐서는 세자 홀이 내 곁에 앉아야 하나?

       거기까지 살피지 못한 불찰은 있었다！

 

       그러나, 노(魯), 위(衛), 두 나라는 군주가 아닌가?

       그만한 일에 오해한다면 차라리 잘된 일이로다！

 

제희공(齊僖公)은 청혼을 거절하는 세자 홀(忽)의 태도와 속 좁은

마음을 읽고는 그 후부터 모든 혼삿말을 꺼내지 않았다.

 

제희공(齊僖公)의 청혼을 거절하고, 정鄭 나라로 돌아간 세자 홀忽은

귀국하자, 정장공에게 제齊 나라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아뢰었다.

 

제 70 화. 어느 신부를 택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