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201∼300 회

​제 280 화. 진문공, 단단한 진나라를 만드는가.

서 휴 2022. 12. 13. 15:25

280 . 진문공, 단단한 진나라를 만드는가.

 

이윽고 천토踐土의 맹회가 끝나자, 진문공晉文公태숙太叔

숙무叔武원훤元暄을 대리고 주양왕周襄王을 알현하게 하고

나오면서, 숙무叔武를 위의 새로운 군주로 세우겠다고 말했다.

 

       위성공衛成公이 도망가, 위의 군위가 비어있잖소.

       이제부터는 태숙太叔 숙무叔武가 위후衛侯가 되어 주시오.

 

       진후晉侯 , 그것은 아니 됩니다.

       옛날 영모寧母 땅의 맹회 때 정의 공자 자화子華

       그의 부친인 정문공鄭文公을 몰아내려 참소하였으나

       제환공齊桓公은 이를 거절한 적이 있었습니다.

 

       진후晉侯께서는 우리 위나라의 사정을 잘 모르시어

       제환공齊桓公의 백업伯業을 계승하자마자

       곧바로 신 숙무叔武로 하여금 형님을 참소하여

       몰아내라고 하시는 것과 같사옵니다.

 

       진후晉侯께서 이 숙무叔武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면

       부디 위나라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시어,

       바라옵건대 저의 형님에게 위나라의 군위를

       다시 잇도록 해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신의 형인 위성공衛成公이 다시 복위한다면

       목숨을 다하여 진후晉侯의 은혜를 갚을 것입니다.

 

태숙太叔 숙무叔武가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사양하는 말을 올리자,

원훤元暄도 역시 땅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면서 위성공衛成公

대한 용서를 간절히 빌었다. 이에 진문공晉文公은 위성공衛成公

대한 괘씸한 마음이 많이 누그러지게 되었다.


       두 사람의 마음은 알겠소.

       이 일은 천자께 보고해 결정할 일이오.

 

       그대들은 일단 귀국하고 난 후에

       나중에 글을 보내 청원하도록 해주시오.


이 같은 진문공의 말에 숙무와 원훤은 기쁜 마음으로 돌아갔으며

이처럼 천토踐土 회맹의 의식이 끝나자, 진문공晉文公을 비롯한

각국의 제후들도 헤어져 각기 자기들 나라로 돌아가게 되었다.

 

       세작은 천토踐土 회맹에서 본 그대로 말해보라.

       주공, 숙무叔武와 원훤元暄은 맹단에 올라가

       ​모든 제후가 보는 앞에서 맹서문에 서명하였나이다.

 

       또한, 진후晉侯를 따라 주양왕周襄王을 알현하고

       나오면서 기쁜 얼굴빛으로 돌아왔습니다.

 

       주공, 천견歂犬 이옵니다.

       태숙太叔 숙무叔武가 제후들 앞에서 확실하게 서명하였다면

       이는 숙무叔武가 위후衛侯 라는 것을 증명받는 것입니다.

 

       더구나 진후晉侯와 같이 주양왕周襄王을 알현하고

       나오면서 기쁜 얼굴빛으로 돌아왔다는 것 또한 태숙太叔

       숙무叔武가 위후衛侯 라는 것을 확정 지은 것입니다.

 

       숙무叔武 , 이놈이 과연 위나라의 군위를 탐하여

       기어이 위후衛侯 자리에 앉으려 하는 심보로구나!

 

천견歂犬의 말에 미혹되어 숙무叔武와 원훤元暄을 의심하고 있던

위성공은 천토에서 염탐하고 돌아온 세작細作의 보고를 받게 되자,

더욱 분을 삭이지 못하면서 버럭 큰소리를 지르며 욕을 해댔다.

 

       원훤元暄 이란, 이놈은 과인을 반역하는 역적이로다.

       숙무叔武를 군주로 세우고 부귀영화를 탐하는구나!

 

       뻔뻔스럽게 그 아들놈 원각元角을 내게 보내어

       나의 동정을 살피며 염탐하게 했도다!

       원훤元暄 이란 놈은 아주  가증스럽구나!

 

       원각元角은 이 앞으로 나오너라!

       내 어찌 너희 부자를 용서할 수 있겠느냐?

곁에 있던 원훤元暄의 아들 원각元角은 무어라 변명도 미처 하지

못하고, 위성공衛成公이 빼든 칼에 그만 그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원각元角의 시종이 황급히 도망쳐 원훤元暄에게 갔으며 그의 아들

원각元角이 위성공衛成公이 휘두르는 칼에 살해된 사실을 고했다.

 

       원훤元暄은 왜 그러고만 있는 거요

       사마司馬 은 무얼 말하는 것이오

 

       아들 원각元角이 비명에 억울하게 죽었잖소

       억울하게 죽은 원각元角의 한을 풀어줘야 하잖소.

 

       원각元角을 죽인 건 주공의 오해에서 생신 일일거요.

       어 휴, 아들놈의 생사는 다 자기가 타고난 제 명이오!

 

       주군이 비록 이 원훤元暄을 버린다고 해도

       신하의 신분으로 어찌 주군을 버릴 수 있겠소!

       허허, 어찌 태평스러운 말만 하지 마시오

       주공께선 이미 대부를 의심하고 죽이려 하는데

       왜 마땅히 몸을 피하려 하지 않는 것이오?

 

       빨리 관직을 버리고 위나라를 떠나시오

       떠나서라도 반역할 마음이 추호도 없다는 걸

       꼭 밝혀야 하지 않겠소이까?

       내가 이 시점에서 벼슬을 버린다면

       누가 우리 주군의 군위를 회복시켜 줄 것이며

       누가 있어 우리 주군을 지킬 수 있겠소이까?

 

       아들 원각元角이 살해된 일은 사원私怨 이며

       위나라를 지키는 일은 신하로서 반드시 할 일이오

 

       사사로운 원한怨恨 때문에 국가 대사를 그르친다면

       이것은 신하 된 자로서 나라에 보답해야 하는

       국가의 대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 할 수 있소이다.

사마司馬 과 헤어진 원훤元暄은 그 즉시 숙무叔武을 찾아가

숙무叔武로 하여금 위성공衛成公이 빨리 돌아와 위후衛侯

자리에 복위하게 해달라는 글을 써서 진문공에게 올리게 했다.

 

       원훤元暄 이야, 말로 사사로운 원한을 버리고

       대의를 쫓은 위나라의 훌륭한 신하라 하겠다.

한편 진문공晉文公은 출병한 지 반년 만에 대단한 성과를 거두고

돌아오는 길이며, 더구나 주양왕周襄王에게서 방백方伯 이란

칭호까지 받고 귀국 길에 올랐으므로, 모두가 의기양양하였다.

 

이윽고 강성絳城에 입성하자, 온 백성들이 길을 가득 메웠으며

앞다투어 진문공의 지엄한 용모와 진군의 행군을 구경하려면서

군사들에게 베풀 음식을 장만해 들고 있기도 하였다.

 

       영명하신 우리 진나라 군주님이시여!

       ​이제 우리 진국晉國을 크게 일어나게 해주어

       군주님, 고맙고 고맙나이다!

       ​만세! 만세! 만만세!

 

실로 오랜만에 진나라 모든 백성이 하나 같이 열렬히 환영하며

감격하여 지르는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쁨이 넘쳐흘렀다.


이것은 20여 년 만의 어려움 속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진晉 나라의

명예를 회복한 엄청난 사실이면서, 더욱이 앞으로 잘살 수 있다는

희망찬 기대에 대한 확신이며, 나라 사람의 자긍심이 살아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때의 광경을 노래한 시가 있으니 읽어보자.

 

       ​捍艱復纘文侯緖 (한간복찬문후서)

       곤궁한 처지를 극복하며 진문후晉文侯가 일으킨

       사업을 진문공이 이어받아

 

       攘楚重修桓伯勛 (양초중수환백훈)

       초를 물리치며 제환공의 공적을 다시 일으켰도다.

 

       十九年前流落客 (십구년전유락객)

       옛날 19년간을 구걸하며 유랑하던 나그네가

 

       一朝聲價上靑雲 (일조성가상청운)

       하루아침에 소문이 높아져 높이 올랐구나!

 

강성絳城으로 돌아온 진문공晉文公은 조당朝堂에 임하여 여러

신료의 하례를 받은 후에 성복城濮 땅의 싸움에 대한 논공행상을

실행하는데, 신료들이 이해 못 할 일을 벌리었다.

 

       제일 등 공로자 호언狐偃
       제이 등 공로자 선진先軫

 

       주공, 성복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귀신같은 작전을 펼친 선진의 공입니다.

       어찌하시어 호언의 공을 앞에 놓으십니까?

       선진은 싸움에서 무조건 승리를 앞세웠으나

       호언은 승리를 위하여 신의를 앞세웠도다.

 

       무릇 승리를 쟁취하는 일은 한때의 공이지만

       신의를 보전하는 일은 만세에 걸친 의로움이리라!

 

       어찌 일시의 공이 만세에 이르는 공을

       앞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연유로 호언의 공을 앞세운 것이로다.

 

진문공晉文公의 처사에 문무백관들은 모두 수긍하였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모두 복종하게 되었다.

 

       주공, 호언狐偃 이옵니다.

       옛날 순식荀息은 해제奚齊와 탁자卓子를 지키다가

       죽었습니다만 그의 충절이 가상하나이다.

 

       마땅히 그의 후손들에게 봉록을 내리시어

       순식荀息의 충절에 보답해야 하옵니다.

진문공晉文公이 호언狐偃의 말을 들어 허락하고 즉시 순식荀息

아들 순림보荀林父를 대부로 삼았다.

 

       하수河水에 배들을 집결시키라는 명령을 소홀히 하고

       처자를 돌보기 위해 집에 다녀왔던 주지교는

       이미 몸이 포승줄에 묶이어 진군의 뒤를 따라왔다.

 

논공행상이 끝나고 나자, 원수 선진先軫은 주지교舟之僑를 끌고

나오게 하였으며, 그의 죄를 논하게 하였다.

 

       주지교舟之僑는 할 말이 있는가?

       주공, 맡은 바 임무가 소중하다는 걸 알고 있사오나?

 

       갑작스러운 처자의 병으로 부득이 집에 다녀 왔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관대한 용서를 바라나이다.

 

       군주를 모시는 자는 그 몸을 뒤돌아보지 않는다,

       라는 말을 알고 있지 않은가?

 

       하물며 수많은 군사의 목숨이 달린 일을

       그다지 소홀히 하다니 말이 되겠는가?

 

       대사마 조쇠는 주지교의 죄를 어찌 생각하는가?

       주공, 군법에 따라 마땅히 참수형에 해당하나이다.

진문공晉文公은 즉시 큰 소리로 명하여 참수형에 처하였으며,

그의 수급을 성루에 매달아 강성絳城의 백성들에게 보이게 했다.

 

       이번에 진군을 출동시키면서

       맨 처음 전힐顚頡을 참수했으며,

       두 번째로 기만祁滿 을 참수하고

       세 번째로 주지교舟之僑를 참수시켰다.

 

이들 세 명은 모두 진의 이름난 장수들이었지만, 군령을 어기면

반드시 죽는다는 관례를 세우면서 그 죄를 가볍게 보지 않았다.

 

       이렇게 함으로써 진군은 삼군에 기강을 세우면서

       장수들과 군사들에게 군법을 지키도록 만들었다.

 

상벌賞罰이 분명하지 않으면 이룰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도 없으며

상벌賞罰이 분명하면 천하도 다스릴 수 있다. 라는 옛말이 있는데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진문공이 제후들을 호령하며 방백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신상필벌 信賞必罰을 엄격하게 행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신료들은 다 모였는가?

       주공, 조정에 조례 준비가 되었나이다.

 

이때 진문공은 진군을 확대하여 막강한 강군을 만들어 천하의

패공 자리를 확고하게 유지할 방안을 선진에게 묻게 된다.

 

       원수 선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진군의 편제를 확대할 방안을 연구했는가?

 

       주공, 왕실은 6군을 가질 수 있으나

       우리 제후국은 3군만이 가질 수 있나이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으므로 3군에 더하여

        3이라는 편제를 새로 만들겠나이다.

 

        33이라?

       기존 삼군의 편제에 3행을 별도로 두게 한다.

       거, 좋은 방안이로다!

 

진군晉軍은 진문공晉文公으로 인해 33을 더하는

진군晉軍 편제를 만들게 되었다.

 

       춘추시대를 포함하여 중국의 고대 군사 편제는

       4마리의 말이 끄는 1개의 병거兵車를 일승一乘 이라 하고

       100승은 일사一師라 하며 삼사三師를 일군一軍 이라 했다.

 

       병거兵車 일승一乘에는 말을 모는 마부馬夫

       지휘관과 지휘관을 돕는 차우車右가 타게 되며,

 

       병거兵車 뒤를 따라 정규군인인 10명의 갑사甲士

       징발徵發 20명의 보졸步卒을 기본으로 한다.

 

       지금으로 말하면 군은 병거와 보졸로 이루어진

       혼성 기갑사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편제는 춘추시대 중기에 접어들자, 개활지에서 포진하면서

병거兵車를 돌진시키는 전투뿐만 아니라, 산악지역이나 도로가

없는 곳에서도 전투를 치러야 하는 필요에 따라 병거兵車

운용이 어려워지면서 보병으로만 이루어진 군대가 창설되게 된다.

 

       이런 필요에 따라 진군은 행이라는 보병사단을

       만든 것이며, 1행은 약10,000명으로 편성하였다.

 

주례周禮에 따르면 천자만이 6군을 보유할 수 있고, 제후국들은

등급에 따라 공작 국은 3, 후작과 백작 국은 2군이며

자작과 남작 국은 1군을 보유할 수 있었다.

 

       진국이 군사력을 3군에 3행을 더한 행위는

       천자국 만이 6군을 보유할 수 있다는

       주례周禮의 법을 피하기 위한 편법이었으며

       단지 이름만 달리했을 뿐이었다.

 

진군의 3행은 병거兵車 없이 갑사와 보졸로 편성했다.

이때부터 진군은 군사의 수를 늘려 6군을 보유하게 됨으로써

진군과 천하를 놓고 다툴 수 있는 나라는 당분간 없게 된다.

 

       순림보荀林父를 중행대부 中行大夫로 삼고

       선멸先篾은 좌행대부 左行大夫로 삼으며

       도격屠擊을 우행대부 右行大夫로 삼노라.

 

281 . 의심으로 친동생을 죽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