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201∼300 회

제 258 화. 신의가 얼마나 중요한가.

서 휴 2022. 11. 5. 20:11

258 . 신의가 얼마나 중요한가.

 

진군晉軍은 원성原城을 철저히 포위하고 매일같이 성문을 열면서

항복하라고 하였으나, 원성原城은 꼼짝도 안 하며 더욱 저항하였다.


       주공, 신 조쇠趙衰 이옵니다.

       원성原城을 포위한 지 보름이 지났습니다.


       이곳 원땅의 백성들이 항복하지 않는 것은

       우리 진나라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공께서는 저들에게 믿음을 보이십시오.

       그러면 성문이 저절로 열릴 것입니다.


       어찌하면 믿음을 보일 수 있겠소?
       군사들에게 사흘 먹을 양식만 내주고는

       앞으로 사흘간만 더 포위하게 하십시오.

 

       사람이 상하도록 공격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고 원땅의 백성이 성문을 열지 않으면

 

       원땅을 포기하고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명령하여 소문이 퍼져나가게 하십시오.


진문공晉文公은 조쇠趙衰의 말에 따라 시키는 대로 했으나,

성안은 더욱 날카롭게 경계를 서며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원성原城을 포위한 지 어느덧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원성原城의 성문은 열리지 않았다.

 

       주공, 병참 담당 군리軍吏 이옵니다.
       주공, 사흘이 지나는 마지막 날 밤이옵니다.

 

       주공, 내일 아침 해먹을 양식밖에 없습니다.

       양번陽樊 땅에 가서 구해 오겠습니다.

       허. 그럴 필요 없도다. 약속한 대로

       원성原城을 떠나 양번陽樊으로 갈 것이다.


진문공晉文公은 식량 담당 군리軍吏의 말을 듣고는, 착잡한 심경이

되었으며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모르면서 군리軍吏를 내보냈다.


그런데 다음날 밤의 삼경쯤이었다. 원성原城 안에 있던 백성

몇 명이 밧줄을 타고 내려와 진문공晉文公을 뵙기를 청했다.


       저희 들은 어제저녁에서야 양번陽樊 땅 백성들이

       한 사람도 죽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원백原伯이 조작해낸 헛소문이었습니다.

       진후 님, 저희는 날이 밝으면 성문을 열고

       진군晉軍을 영접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저희 들의 항복을 받아주십시오.
       아니요. 사흘 동안 원성原城을 포위하였다가

       그안에 원성原城 백성들 스스로 성문을 열지 않으면

       우리는 돌아가기로 군사들과 굳게 약속한 바요.

 

       오늘로써 이미 사흘이 지난 것이오.

       과인은 아침 일찍이 군사를 이끌고 물러갈 것이오.

 

       그대 백성들은 스스로 온 힘을 다하여 성을 지켰으니

       이제 다른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소!

       원성 백성들은 잘 있도록 하시오.


찾아온 원성 백성의 말에도 진문공晉文公은 고개를 저으며 완강히

거절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신하들이 안타까운 듯 건의한다.


       주공, 날이 밝으면 성을 접수할 수 있는데,

       사흘 약속을 꼭 지킬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주공, 원성 백성들의 호의를 거절하지 마십시오.       

       모두 들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백성과의 믿음은 나라의 보배이다.

       믿음이 없으면 백성은 무엇에 의지하겠는가?

 

       사흘 기한을 준 것을 모두 알고 있는데

       하루를 연장한다면 이는 곧 신을 잃는 것이다.

 

       원땅을 얻는다 하더라도 신을 잃는다면

       원성原城 백성들은 뭘 믿고 나를 따르겠는가.


진문공晉文公은 좌우 신하들을 둘러보며 크게 꾸짖었으며, 아침이

되자, 곧바로 원성原城의 포위를 풀고 즉시 회군준비를 시켰다.

 

       진군은 양번陽樊의 백성을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단다.
       진후晉侯는 성을 잃을지언정 신의를 지키는 군주란다.

       천하에 이런 훌륭한 군주가 또 어디 있겠는가!


소문을 들은 원성 백성들은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리되자

누가 말하기 전에 앞을 다투어 백기를 들고 흔들었다.

 

사세가 이렇게 돌아가자, 원백 관도 백성들을 더는 제지할

수 없어, 마침내 성문을 열고 진문공晉文公 앞에 나와 항복했다.


       진후께 원성原城을 바칩니다.

       벌을 내리신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아니 오. 원백 관께서는 전처럼

       왕실의 경사卿士로 남아 있으시오.

 

       그리고 원성原城에서 좀 떨어져 있는

       하북의 기땅으로 옮겨가 살도록 하시오.

 

진문공晉文公이 중신들과 함께 원성原城 안으로 들어갔다. 이에

원성의 백성들이 모두 나와 북을 두드리고 춤을 추면서 환영했다.
이 광경에 대해 염선髥仙이 시를 지어 노래한다.

 

       ​口血猶含起戰戈 (구혈유함기전과)

       입에 피를 머금고 창을 들고 싸우려 하는데

 

       誰將片語作山河 (수장편어작산하)

       그 누가 말 한마디로 산하를 차지할 수 있겠는가?

 

       去原畢竟原來服 (거원필경원래복)

       일단 버린 원읍의 백성들이 쫓아와 복종했으니

 

       譎詐何如信義多 (휼사하여신의다)

       속임수가 어찌 신의와 같을 수가 있겠는가?

 

진문공晉文公은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출병한 지 두 달이

채 안 되어, 기내畿內의 네 땅을 모두 차지하게 되었다.

 

       진문공은 새로 얻은 네 고을의 수장을 임명하려고

       생각할 때 마침 발제勃醍와 단둘이 있었으므로

       마음을 터놓고 서로 의논하게 되었다.

발제勃醍는 지난날 진문공晉文公과 생사를 겪었으며, 오랫동안

내시로 있는 바이었므로, 누구보다도 신하들의 성품과 공적과

행적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발제勃醍는 어찌 생각하는가?
       이 원땅을 누가 다스려야 좋겠는가?

       서슴지 말고 말해보라.

 

       주공, 조쇠趙衰야 말로 가장 신의信義가 있습니다.
       발제勃醍가 옳은 말을 하였도다.

 

       오늘날 내가 신으로 원땅을 얻었으니,

       마땅히 신의가 있는 사람이 다스려야 할 것이다!

 

진문공은 며칠 후 조례가 열리자 문무백관이 모두 모인 가운데

새로 얻은 네 고을의 수장을 임명하면서 말했다.

 

       옛날 망명 다닐 때 며칠이나 굶어가며

       우리가 얼마나 배가 고팠던가.

 

       조쇠趙衰는 그렇게 배가 고팠으면서도

       가지고 다니던 호찬壺饌(호로 박에 든 죽)

       먹지 않고 과인에게 주었도다.

 

       조쇠趙衰는 배고 품을 얼마나 참았겠는가.

       그리고 언제나 믿음을 지키며 살아왔도다.

       이야말로 신의 있는 선비라 하지 않겠는가?

 

       과인이 신의信義로써 원성原城을 얻었으니

       신의 있는 선비에게 주노니 잘 지키도록 하시오.

       또한, 조쇠趙衰를 대부로 임명하노라.

 

       호모狐毛는 들으시오.
       그대는 나와 함께 19년 망명 생활 동안

       음양으로 나를 많이 도와주었도다.

 

       그대의 공적은 호언狐偃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과인은 그대의 보이지 않는 공을 잘 알고 있노라.


       온땅을 그대 아들 호진狐溱에게 다스리게 하라.

       이에 호모狐毛를 대부로 임명하노라.

 

       극곡郤穀은 들으시오.

       난순欒盾 함께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소.

 

       그대 극곡郤穀은 그대의 극씨 종족도 돌보지 않고

       난순欒盾과 같이 마음을 통하여 나를 맞이하였으니

       과인은 결코 그대의 은혜를 잊을 수가 없노라!

 

       극곡郤穀과 난순欒盾을 대부로 임명하는 바이며

       양번陽樊 땅은 극곡郤穀이 다스리며,

       찬모攢茅 땅은 난순欒盾이 잘 다스리도록 하라.

 

       기내의 땅에 군사 2천 명을 두어 지키도록 하고

       앞으로 이곳을 남양南陽 이라 부르도록 하라.

 

이때부터 조쇠趙衰와 호모狐毛가 대영주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이로써 국내에 기반이 없던 망명 파들도 국내에 확고한 기반을

다질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진나라가 큰일을 해낸 것이다.

       기내畿內의 네 개의 땅을 획득함으로써

       중원으로 직접 나가는 길을 뚫은 것이다.

 

       이 네 고을은 모두 태항산太行山 남쪽에 있는

       매우 중요한 교통의 요충지이다.

 

       그 이전까지는 중원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태항산太行山 북쪽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이제는 낙양까지 직통로를 개설하게 된 것이다.


진문공晉文公이 제환공에 이어 춘추시대 두 번째로 패공覇公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교통로를 확보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주양왕을 복위시킨 것은 의를 실천한 것이요,

       원읍原邑을 공격함에 신을 보여줌으로써

       덕이 많은 군주라는 소문이 중원으로 퍼져나갔다.

 

중원의 제후들은 유랑자에 불과했던 중이重耳한순간에 진후晉侯

가 되자마자, 왕실의 분란을 깨끗하게 해결하면서, 단숨에 낙양의

남양南陽 땅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며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반하여 제나라는 제환공齊桓公 이후,

       자식들의 내분으로 몰락하였다가

 

       어려움을 겪을 때 송양공宋襄公의 도움으로

       세자 소가 제효공齊孝公이 되었으나,

 

       몇 해가 지나도 침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제나라의 모습이 진晉과 비교되면서,

       높아진 진나라의 위상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후로 진나라는 조정 신료들이 한마음으로 뭉쳐, 계속해

정책을 쇄신시키며 국정을 안정시켜나갔다. 이에 진문공은 백성들도

믿음을 가지고 따르고 있는 바이므로, 이대로 계속 진행해 나가게

된다면, 천하 패업도 실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신료들은 어찌 생각하시오.

       이제 나라도 안정된바 주변의 못된 제후들의

       나쁜 버릇을 고쳐줄까 하오.

 

남양 땅을 접수하고 돌아온 해의 겨울이었다. 진문공은 조례가

열린 자리에서, 지난날 유랑 시절에 당했던 수모를 말하며, 반드시

, , 나라를 쳐서 복수하고 싶다는 결심을 말하였다.

 

       주공, 신 호언狐偃 이옵니다.

       주공, 아직은 때가 아니오니 기다리셔야 합니다.

 

       어째서 때가 아니라고 하오?

       주공, 일국의 군주로서 개인적인 과거의

       원한을 갚기 위해 군사를 동원한다고 하면

       백성들이 잘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주공, 조금만 기다리시오면

       적당한 명분이 생기게 될 것이옵니다.

 

호언狐偃 역시도 진문공晉文公의 심정을 알고 있으면서,

그 시절에 당했던 수모를 한시도 잊지 않고 있었으나, 백성들을

자발적으로 따라오게 할 대의명분이 약하다고 만류한 것이다.

 

       한편 제나라는 제환공齊桓公이 죽으면서

       아들들의 내란을 겪게 되며 많이 약화 되었다.

 

       중원의 제후들은 약해진 제나라에

       실망하게 되면서 더는 바랄 것이 없게 되었으므로

 

       제나라의 수도인 임치臨淄 성에는

       옛날처럼 외교사절도 오지 않고 쓸쓸해졌다.

 

이에 제효공齊孝公 역시도 마음속으로 분노하며, 마음 같아서는

제군齊軍을 이끌고 노, , 나라를 침공하여

 

선군이신 제환공齊桓公이 이룩해놓은 방백이면서 패공인

자리를 승계承繼 받으려는 생각을 가슴속 깊이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만한 힘이 없다는 걸 탄식 하고 있는 때였다.

 

       제효공은 노희공魯僖公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

       형인 무휴無虧가 난을 일으켰을 때 지원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기를 군위에 올려준 송양공宋襄公의 은혜는

       생각지 않고, 단지 무시 당하였다는 반감이 더 컸다.

 

       송양공宋襄公이 주재한 녹상鹿上의 회맹에서

       약조 문서의 서명을 초성왕楚成王에게 미루며

       자기는 서명을 하지 않음으로써, 친밀하게

       지내던 송나라와도 사이가 벌어졌으며.

 

       그다음 우땅의 회맹에서는 송양공宋襄公

       옥에 가두었으며 초성왕楚成王이 맹주가 되면서

       송양공을 풀어준 사건도 있었다.

 

       이 우땅의 회맹에는 아예 참석도 하지도 않아,

       초나라와도 멀어져 버렸다는 걸 제효공은

       혼자서 생각하며 후회하면서 탄식했다.

 

259 . 제효공, 겁도 없이 덤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