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201∼300 회

제 257 화. 엉뚱한 말이 씨앗이 된다.

서 휴 2022. 11. 3. 17:28

257 . 엉뚱한 말이 씨앗이 된다.

 

주양왕은 워낙 큰 공을 세운 진문공晉文公이 하사품을 사양하자,

겸양하는 그 모습이 보기 좋아 가볍게 한번 의중을 묻게 되었다.


       숙부叔父께서 큰 공을 세우셨으니

       짐이 어찌 그 은혜를 잊을 수 있겠소?

 

       숙부叔父께서 소원이 있으면 말해보시오.
       황공하오나, 청이 하나 있사옵니다.

 

       호 오, 그렇소, 경의 소원을 말해보시오?

       내 기꺼이 들어주리다.

 

       주상, 신이 훗날 죽은 뒤에 수장隧葬 이나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다면,

 

       비록 지하에 누워있을망정 폐하의 무궁한

       은혜를 입은 마음을 간직하고자 하나이다.

 

       뭐라, 방금 수장隧葬 이라 하였소

       황공하옵게도 그렇사옵니다


이때 진문공晉文公은 엎드려 사은품에 대한 겸양의 절을 올리면서

뜻밖의 청을 하였다.

 

수장隧葬 이라, 함은 커다란 무덤을 만들게 되면서 무덤 안의

지하에다 길을 내고 관을 안치하는 것으로, 주 왕실에서 만이

할 수 있는 엄격한 의례이다.

 

       커다란 무덤 안에 길을 내는 수장隧葬

       오직 천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며,

       일반 사대부들이나, 제후라 할지라도

       허락되지 않는 천자만의 상징적인 일이었다.

 

그런 걸 모를 리 없는 진문공晉文公이 굳이 수장隧葬을 청한 것은

곧 자신이 천자가 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주양왕은 진문공晉文公의 엉뚱한 요청에 갑자기

       안색이 돌변했으며 불쾌한 감정이 노골적으로 쌓였다.

 

이건 보통의 청이 아니란 걸 깨달은 주양왕은 단번에 진문공의

요청이 관작이나 보물에 있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 그것은 봉지를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주양왕은 줄 땅이 없었다.

 

       얼마 남지 않은 왕실의 직할지를 주게 된다면 왕실은

       식량을 조달할 수 있는 땅이 한 조각도 남지 않는 것이므로,

 

       도저히 줄 수가 없는 처지였으며,

       그렇다고 청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이런 사정을 빤히 알고 있을 진문공이 무리한 걸 청하는 의도에
주양왕은 괘씸한 생각이 들어 엉뚱한 말을 하였다.

 

       선왕께서 예를 만드실 때 임금과 신하의 신분을

       구분하기 위해 아무도 이를 어길 수 없게 한 것이오.

 

       짐이 사사로이 왕실의 대전大典

       어지럽게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소.

 

       그러나 숙부叔父께서 큰 공을 세우셨으니

       짐이 어찌 그 은혜를 잊을 수 있겠소?

 

       그 대신에 기내畿內의 땅에 있는 온읍溫邑

       원읍原邑 그리고 양번陽樊과 찬모攢茅의 네 고을을

       숙부께 하사하니 봉지에 더하도록 하시오.

 

주양왕周襄王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 땅을 내주긴 하였으되, 모두가

왕실 소유가 아닌 주인 있는 땅이었으므로 생색만 낸 것이다.

 

       기내畿內는 주나라 왕성王城을 중심으로

       사방 오백 리 내의 땅을 말하는 것이며,

       그중에서 네 개의 고을 땅을 주겠다는 것이다.

 

       찬모攢矛는 지금의 하남성 신향시新鄕市

       서쪽으로 20지점에 있는 곳이다.

 

       양번陽樊 땅은 지금의 제원현 북쪽에 있었으며

       원읍原邑은 경사 원백관이 다스리는 봉지이다.

진문공晉文公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면서, 기내畿內의 땅을

하사받아 감사하다며, 큰절을 올리고 왕궁을 나오게 되었다.

길에는 수많은 백성이 길 가득히 몰려나와 서로 다투면서 칭송했다.

 

       ​정말 대단 하구나!

       제환공이 다시 환생했도다!

진문공晉文公은 모든 일을 마치고 낙양에서 철수하여 강성으로 돌아

가게 되었다. 가는 중에 급한 성질을 참지 못한 위주가 투덜거렸다.

 

       천자도 어이없는 일을 하는군.

       주인이 있는 땅을 주다니

       주인들이 순순히 넘겨줄 리가 있겠는가.

 

       천자는 좋은 말로 생색만을 내고

       우리 주공께선 헛농사를 지셨도다.


진문공晉文公은 강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겉으로 내색하지 않다가
위주魏犨가 투덜거리자, 이 말을 듣고는 드디어 웃음을 터트렸다.

 

       위주魏犨 , 우리는 황하를 건너 중원中原으로

       나갈 수 있는 교통 요충지가 필요하지 않겠느냐.

       주 왕실은 가난하다.

       공신에게 하사할 땅이 더는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 낙양 주변의 직할령뿐이로다.
       우리가 필요한 건 그 땅인데
       주양왕이 허락할 리가 있겠느냐.

 

       그래서 수장隧葬을 청하여 주양왕을 궁지에 몰아넣으니

       어쩔 수 없이 기내畿內의 땅을 말한 것이 아니겠느냐.


       기내畿內의 땅 중에 일부이긴 하나,

       우리가 황하를 건너 중원으로 가는 길목이 아니겠느냐?


       예전부터 기내畿內의 고을을 차지할 수 있었으나

       단지 명분이 없는 것이 문제였었다.

 

       이번에 천자로부터 그 땅을 분양받았으니,

       우리가 군대를 동원한들 누가 비난하겠는가?


       주공, 신 조쇠趙衰 이옵니다.
       하오면 돌아가는 길에 기내畿內의 땅을 접수하면

       될 것을, 굳이 강성으로 귀환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거, 일리 있는 질문이오.
       진백秦伯이 우리보다 먼저 근왕군을 일으켜

       출정까지 하였으며 하수를 건너려고 하였잖소?

 

       진백秦伯이 우리의 말을 들어 황하를 건너지 않은 것은

       우리가 왕실의 일을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기에

       순순히 물러선 것이 아니겠소?

 

       진백秦伯의 예상과 달리 우리가 왕실을 안정시키고

       더구나 우리가 기내畿內의 땅까지 얻었으니,

 

       진목공秦穆公은 지금쯤 우리를 무척 시기할 것이며

       더 나아가 속였다고 원망할 것이 분명하오.

 

       우선 진목공秦穆公의 마음을 풀어주어야 하오.

       듣자 하니 진秦 나라의 속국인 약나라가

       진나라를 배반하고 초나라에 붙었다 하오.

 

       우리가 스스로 먼저 약나라를 쳐서

      진백秦伯의 마음을 풀어주어야 할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진백秦伯에 대한 염치에 걸려

       기내畿內의 땅을 영원히 접수하지 못할 것이오.


       진목공秦穆公의 마음을 풀어주고 나면

       우리가 기내畿內의 땅을 접수하는 일에 집중해도

       진목공은 우리를 괘씸죄로 침공하지 못할 것이오.


       주공, 이 조쇠趙衰는 지극히 감탄하나이다.
       주공이야말로 천하의 일을 바둑판 들여다보듯

       샅샅이 파악하여 살피고 계시니

       머잖은 날에 천하 맹주가 되실 것입니다.

 

그해 진문공晉文公은 눈부실 정도로 바삐 움직였다. 기원전 635

1월에 강성絳城을 떠나, 3월에는 주 왕실의 분란을 해결하였고,

그해 6월에는 다시 강성絳城으로 돌아왔다.

 

       서신胥臣은 진백秦伯에게 과인의 말을 전하라.

       진나라를 배반한 약나라를 공격하고자 하니

       진백秦伯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라.

 

진문공晉文公은 진군秦軍과 연합하여 배반한 약나라를 공격하여

끝내 항복을 받아내면서 진목공秦穆公의 마음을 풀어주었다.


       이제는 염려할 것이 없도다.
       이제부터 기내畿內의 땅을 접수하러 가자.

 

       우리 진군晉軍은 태항산太行山 남쪽을 돌아

       좌우 양로로 군사를 이동하며,

 

       위주魏犨는 양번陽樊의 땅을,

       전힐顚頡은 찬모攢茅 땅을 접수토록 하라.

 

       과인은 조쇠趙衰를 대동하고

       란지欒枝를 대장으로 삼아

       원읍原邑을 접수하러 행군해 갈 것이다.

 

       아무쪼록 무력을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

       끝까지 설득해야 하며 순리적으로 접수하라.

       이 명령을 절대 어기지 말도록 하라.

 

진문공이 직접 원읍原邑 땅을 접수하러 행차한 이유는 원래부터

원읍原邑, 왕실에서 경사卿士 벼슬을 하고 있던 원백관原伯貫

고향이며 영지였기 때문이다.

 

       진군晉軍의 기내畿內 땅의 접수는 순조로운 듯 했다.
       전힐顚頡은 별 어려움 없이 찬모攢茅 땅을 접수했으며

       온읍溫邑으로 나간 난지欒枝도 그곳 백성들의 영접을 받았다.

 

       온읍溫邑의 경우는 태숙太叔 를 물리칠 때

       보여준 진군의 위용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양번陽樊과 원읍原邑의 두 땅이었다.

       양번陽樊 땅의 수장首長은 창갈蒼葛 이었다.

 

양번陽樊의 백성들은 왕실의 직할 소속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으므로 하루아침에 그렇게 할 수 없다며, 끝까지 진

복속되기를 거부함은 물론이며 극렬히 저항까지 하였다.


위주魏犨는 양번陽樊 땅을 포위하고 창갈蒼葛에게 순순히 땅을

넘기라며 요구했지만 창갈蒼葛의 저항은 거셌다.


       우리는 주 왕실의 백성이로다.

       제후국으로서 감히 왕실의 땅을 노리는가!


       주나라가 기와 풍땅을 버리더니

       이제 남은 땅이라곤 별로 없는데도

       네 고을을 마저 내줘 버린단 말인가?

 

위주魏犨는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성문을 부수고 그곳 백성들을

짓밟아버리고 싶었지만, 떠나오기 전에 진문공晉文公의 명령을

어길 수 없어 극도로 흥분이 끓어올랐으나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위주魏犨 장수 님, 양번陽樊 땅의 포위를 푸시고

       창갈蒼葛에게 사자를 보내 말로써 해결하십시오.

 

       창갈蒼葛 , 위주 장수로부터 사자가 왔습니다

       그래, 어서 사자를 들라 하라.

       창갈蒼葛 장수 님, 편지를 읽어보십시오.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천자의 명을 받아서이다.

       만일 그대가 천자의 신하임을 자부하고 있다면

       백성들을 데리고 왕성으로 들어가라.

       나는 결코 백성의 이주를 막지 않을 것이오.


무력으로 침공할 줄 알았던 창갈蒼葛은 위주의 편지를 받아보니

자기 혼자로는 판단할 수가 없어 백성들의 의견을 묻기로 하였다.

 

       이건 땅만 가져가겠다는 것이 아니냐.

       백성은 남던, 떠나던, 맘대로 하라니

       허 어, 이것 참 난감하구나.

 

       어쩔 수 없도다. 곳곳에 방을 붙여

       성내의 모든 백성에게 알리도록 하자.


창갈蒼葛로서는 위주魏犨 의 기발한 제안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그는 백성들이 방을 보고 스스로 결정하게 하였다.


       주왕실을 따르는 자는 나를 따르라.

       진나라를 따를 자는 이곳에 남도록 하라!

 

창갈蒼葛이 백성들을 이끌고 지촌軹村 땅으로 옮겨갔으나 성안의

백성은 반이나 남아 있었다. 위주魏犨는 약속대로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양번陽樊은 진나라의 영토가 되었다.


       원읍原邑을 지키는 사람은 원백原伯 이었다.

       원읍原邑은 나라 형태를 띠고 있어, 제후의 관작은

       백작이었기에 원백原伯 이라 부르는 것이다.

 

태숙太叔 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원백原伯 은 패전하여

아무 공도 세우지 못하고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했었다.

 

그 후 원백原伯 은 주양왕이 원읍原邑을 진문공에게 내주로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펄쩍 뛰며 크게 반발하고 있었다.


       말 한마디 없이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어찌 알지도 못하는 제후 밑에 살라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백성들을 모아 항전합시다.


       원성原城은 포위되었다. 원백 관은 항복하시오.

       항복은 절대로 못 하오.


       진나라 군대가 양번陽樊 땅을 포위하고

       양번陽樊의 백성들을 모두 죽여버렸다 하오.

 

       어찌하면 좋겠소.
       어차피 죽을 바엔 싸우다 죽읍시다.

 

       진군晉軍이 포위만 하고 왜 공격하지 않는 거요.

       저러다 한목에 우리를 몰살시키려는 거 아니겠소.

 

       진군晉軍, 저놈들을 어찌 믿겠소.

       자, 물 샐 틈 없이 경계나 잘 섭시다.

 

원백原伯 은 진군이 곧 원성原城을 공격하여 양번陽樊에서

했던 것처럼 백성을 모조리 학살시킬 것이라는 소문을 퍼트렸다.

 

이에 백성들은 극도로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으며, 오히려 죽음을

각오하고 항거할 자세를 더 갖추었다.

 

258 . 신의가 얼마나 중요한가.